제167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67장 — 불타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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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불태운다고?”
키르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떨렸다.
세란의 손에는 아르-에노라의 기억결정이 들려 있었다.
검은 수정 속에서 수천 개의 종족 언어가 울부짖듯 번쩍였다.
라피엘은 말없이 손에 불꽃을 일으켰다.
그건 인위적 마법이 아닌, 우주 기억의 점화였다.
"기록을 지우는 게 아니야.
이건 *정화(淨火)*야."
“정화? 아니, 그건 다시 반복하는 길이야!”
세란이 반발했다.
"기억은 살아 있어야 해.
진실은 유산처럼 남겨야 한다고 했잖아!"
그러자, 어디선가 느릿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짧은 검은 외투, 무늬 없는 금속 안면 마스크.
그건 잊힌 사서(司書), 레미우스였다.
"기록은 보존되어야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이에게 그 무게를 강요할 수는 없지."
그는 손을 뻗어 라피엘의 불꽃 위로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기억결정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기억 언어의 나무로 자라났다.
“이건… 살아 있잖아?”
세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이었다.
불꽃 속에서 타오른 건,
사라짐이 아니라 변형이었다.
레미우스는 중얼거렸다.
“진실은 형태를 바꿔야 살아남는다.”
“너희가 전할 건 과거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현재다.”
라피엘은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오래된 철학자의 말이 울려 퍼졌다.
"모든 우주의 종족은 동일한 죄를 품는다.
그러나 동일한 구원을 누리진 못한다."
그때, 기억의 나무에서 하늘의 뼈의 진형이 피어났다.
이전과는 다른 문양.
더 이상 검은 조각이 아닌, 투명한 하얀 뼈였다.
"… 이건?"
"이건 우리 모두의 이름이야."
세란이 속삭였다.
"각기 다른 언어, 다른 삶, 다른 기억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융합된…"
"우주공명언어."
레미우스가 마침내 이름을 부여했다.
"이제, 이 언어로 다시 묻자."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기억하는가?”
“우리는 왜 하늘을 지탱하려 하는가?”
그리고 세 사람은,
새로운 기억의 나무 아래에서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잊힌 별들이 모여 있는 카르페자 은하의 중심부,
그곳에 감춰진 최초의 생명 기록체 —
**‘시초의 골(骨)’**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남아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걸 찾아야 해."
"하늘의 뼈를 만든 자들의, 첫 번째 문장을."
기억의 먼지 속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