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73장 — 심연의 말, 기억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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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동자 속에서 별들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어떤 문’이 있었다.
눈을 마주한 순간, 레미우스는 숨이 막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 문은 뭐지…?”
세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너는 준비됐어, 레미우스? 이 문은 진짜 너를 마주하는 길이야.
그 누구도 날 대신해 열 수 없어.
너의 그림자와 너의 빛, 너의 실수와 선택, 모든 기억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소년은 덧붙였다.
“이 문은 기억의 신전이자, 거울의 중심.
여길 통과한 자만이 ‘하늘의 뼈’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지.”
레미우스는 천천히 문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순간, 그를 휘감은 회색 안개 속에서
어릴 적 버려졌던 기억, 부모의 싸움,
그가 외면했던 부끄러운 과거들이 떠올랐다.
“이건… 싫어. 다 지워버린 건데…”
세란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네 안에 여전히 남아 있잖아.
우리는 과거를 통해 만들어져.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자유는 없지.”
그 말은 칼처럼 깊었다.
레미우스는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부신 어둠과 함께
그의 ‘내면 우주’가 펼쳐졌다.
한편, 세란은 이미 소년 곁에 다가서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에너지들이 유적과 하나 되어 진동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조용히 말했다.
“넌, 알고 있었지. 네가 이곳을 다시 깨울 존재라는 걸.”
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려웠어.
내가 모든 걸 떠안게 될까 봐.
내가 ‘신’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
소년은 미소 지었다.
“진짜 신은 스스로 신이 되려 하지 않아.
모두를 기억하고, 연결하고, 이해하려는 자가
결국 중심에 서게 되지.”
그 말이 끝나자, 세란의 발아래 바닥이 갈라지며
거대한 ‘뼈의 나무’가 솟구쳤다.
별빛을 머금은 뿌리, 시간을 관통한 가지,
그리고 수많은 생명의 울음이 새겨진 줄기.
그것이 바로,
하늘의 뼈의 진정한 형상이었다.
“이건… 나였어.”
세란이 중얼였다.
소년이 대답했다.
“이건 너였고, 나였고,
모든 생명이 서로를 기억하던 시절의 증거야.”
세란의 눈이 젖었다.
“이제야 알겠어.
우리가 왜 떨어져야만 했는지.
왜 각자의 고통이 필요했는지.
왜 잊어야만 다시 만날 수 있었는지.”
소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넌 이제 그 모든 기억을 다시 품을 준비가 된 거야.”
같은 시각, 문을 통과한 레미우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품에 안은 채 돌아오고 있었다.
눈동자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안엔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세란은 조용히 말했다.
“이제 우린… 함께 할 수 있어.”
소년은 두 사람 사이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심장은 다시 뛴다.
하늘의 뼈는 깨어났다.
이제 잊힌 자들을 위해,
너희가 길이 되어야 해.”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속에서 태초의 존재들이 고개를 들었다.
기억을 잃은 자들, 진실을 봉인한 자들,
그리고 ‘다음 문명’을 지켜볼 신생의 존재들.
그 모든 이들이
‘기억된 자’ 세란과 레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