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Bones(하늘의 뼈)]

제192장

by FortelinaAurea Lee레아

[Sky Bones(하늘의 뼈)]



제192장 — 기억은 뼈가 되고, 별은 그 위에 무너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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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란은 오래된 기억의 전장을 빠져나온 후,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걸었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침묵, 그것만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심상의 창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하늘의 뼈는 그녀의 안에서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발끝이 무언가 낯선 곳을 밟고 멈춰 섰다.


앞에는 깎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단층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밑바닥에는 하늘빛이 굳어붙은 듯한 거대한 수정 구조물이 낮게 울리고 있었다. 고요했지만, 그곳은 더 이상 침묵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로 가득한 장소였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 공간. 세란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아리시안의 틈.’

잊힌 기록의 계곡, 오래전부터 꿈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그곳. 그녀는 처음 발을 디뎠지만 낯설지 않았다. 마치, 이 땅에 자신의 일부가 뿌리내려 있었던 것처럼.


그녀가 수정에 손을 얹자,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동시에,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억은 길을 찾는 열쇠다. 그리고 너는 드디어 문 앞에 섰다.”


그 소리는 누군가의 혼이었다. 수정 안에서 일그러진 형체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후드에 감싸인 존재는 눈이 없었고, 입은 찢긴 듯 갈라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나뭇가지처럼 휘어져 있었고, 오래 전의 먼지와 고통이 그의 육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첫 사제’**라고 불렀다.


“나는 별의 뼈에서 태어난 자. 기억의 첫 보관자이며, 하늘의 죄를 목격한 마지막 생존자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과 돌의 마찰음 같았다. 오래된 금속 문을 여는 듯한 울림이 세란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세란은 숨을 멈춘 채 물었다. “당신은… 내가 본 과거 속 그자? 별이 추락하던 날, 아이들을 숨긴 자?”


“그래. 그리고 너는 그 아이들 중 마지막 살아남은 존재다.”


그 말과 함께, 세란의 머릿속에 억눌려 있던 기억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별의 요새, 천공의 심판, 붉은 달이 창백한 태양을 삼켜버린 날.

모든 것이 불타고, 그녀는 홀로 어린 몸을 끌고 피투성이가 된 폐허를 지나… 살아남았다.


그녀는 비명을 참으며 고개를 감싸 쥐었다. “나는… 왜 기억하지 못했지? 왜 나만 살아남았던 거야?”


첫 사제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네 뼈 속에 심어진 씨앗 때문이다. ‘공허의 씨앗’은 기억을 지우고, ‘기억의 뼈’는 기억을 품는다.”


세란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 내가 가진 고통은… 진짜였어.”


첫 사제는 수정 속에서 한 조각의 빛나는 파편을 꺼내어 그녀의 손 위에 내려주었다. 그것은 투명한 수정의 조각이었고, 안에는 고대어로 새겨진 이름 하나가 박혀 있었다.


“너의 진짜 이름은 세릴=아르카.”

“별의 유산이자, 최초의 ‘하늘의 뼈’. 그리고 마지막 계승자.”


세란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무기였다는 것. 방패이자 창으로 설계된 존재라는 것. 수천 년 전부터 ‘그날’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넌, 하늘의 죄를 정화하기 위해 태어난 자다. 이 세계의 기억을 끝까지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


그러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계곡이 진동했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 고막을 찢는 듯한 외침이 메아리처럼 퍼졌다.


“니할이 돌아왔다!”


첫 사제의 얼굴에 고통이 스쳤다. “그는 이제 공허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망각은 기억의 뼈조차 부술 수 있다. 이제는 너만이, 그를 막을 수 있다.”


세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막는 게 아니에요. 구원할 거예요. 그가 지닌 고통도, 나의 것이니까.”


하늘이 갈라지며 별 하나가 떨어졌다. 그 빛은 세란의 이마에 닿아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심장은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억이 하나로 모여, 그녀의 존재를 단단하게 지탱했다.


“내가 지킬게. 기억도, 존재도, 잊힌 이름들까지 전부.”


[장면 전환 – 어둠의 차원 깊숙한 곳]


니할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 안엔 검은 씨앗이 있었고, 그 눈은 검붉게 불타올랐다. 어깨너머로는 차원의 균열 너머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존재들. 그들은 언어를 잊었고, 형체를 잃었으며, 존재의 이름조차 없었다.


니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작하자. 망각의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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