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93장 — 하늘의 뼈는 기억으로 깨어난다
---
기억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었다.
세란이 첫 사제로부터 받은 그 투명한 기억의 조각은, 오히려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존재의 이유’ 그 자체를 깨우는 열쇠였다.
그녀는 그것을 조용히 심장 밑에 묻었다. 조각은 살을 통과해 뼈로 스며들었고, 곧 심장박동은 새로운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였다.
하늘이 숨 쉬는 소리를, 세란은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진동이 아니라, 의식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일어나는 울림이었다. 세란은 갑작스레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야…”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손끝을 바라보았다.
피 대신, 은빛의 광류가 흘렀다. 그 빛은 공중으로 떠올라 자신도 해석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을 그리고, 하늘 위에 고대의 문장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어였다.
하늘의 말, 별의 명령, 고대의 설계도.
이 문장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면,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하늘의 뼈가 왜 존재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사제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 문장은 네 존재의 목적을 암호화한 것이며, 동시에 공허의 씨앗을 자극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니할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가 널 파괴하려는 이유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야. 그는 네 뼈를 망각의 부활 제물로 삼으려는 거다.”
세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엔 결연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를 막는 건… 나뿐이에요.”
같은 시각.
멀리 떨어진 붉은 고성, 트라나스의 폐허 위에 니할이 앉아 있었다.
검은 씨앗이 떠받치고 있는 옥좌는 고성의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 주위를 망각의 그림자들이 맴돌고 있었다.
니할은 더 이상 인간의 형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살은 음영처럼 일렁였고, 목소리는 마치 번개와 폭풍이 뒤섞인 음조였다.
“세란이 깨어났군.”
그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좋아. 이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어.”
그의 발아래에서 어둠의 사자들이 무릎을 꿇고 읊조렸다.
“그녀의 뼈가, 당신의 혼을 복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니할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니. 복원 따위는 원하지 않아. 나는 망각의 제국이 되겠다.”
다시, 세란의 의식.
그녀는 스스로의 내면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과거의 자신’들을 마주했다.
한 명은 아이였고, 또 한 명은 사춘기의 소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모두 세란의 기억에서 뽑아낸 또 다른 자아들이었다.
“우리는 왜 태어났지?” 아이 세란이 물었다.
소년 세란이 대답했다. “우리는 보호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야.”
청년 세란이 말한다. “기억은 고통이지만, 잊는 건 죄야.”
그리고 현재의 세란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나는… 그 죄를 막기 위한 검이 되겠다.”
그 순간이었다.
세란의 등에서 눈부신 빛이 뻗어 나왔다.
그 빛은 날개였고, 날개는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녀의 척추를 따라 별의 파편이 솟구쳤고,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현실과 차원을 관통하는 하늘의 경계선이었다.
그 변화는 곧바로 세계에 반응을 일으켰다.
기억의 하늘이 갈라지고, 그 틈 너머에서 붉은 별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균열은 찢긴 장막처럼 벌어졌고, 그 안에서 니할이 등장했다.
“세란…”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드디어 마주하는군. 너와 나, 기억과 망각.
이제 하나는 남고, 하나는 지워진다.”
세란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몸에서 울려 나오는 빛은 흔들리지 않았고, 두 눈은 온 우주의 진실을 꿰뚫듯 빛나고 있었다.
“나는 기억할 거야.
너의 고통, 나의 상실, 우리가 함께했던 진실까지.
그것이 우리가 아직 존재하는 이유니까.”
그 순간, 하늘은 다시 얼어붙었고
공기 중엔 별빛과 망각의 입자들이 교차했다.
세란과 니할.
기억의 창과 공허의 칼.
하늘의 뼈와 망각의 씨앗.
전장은 숨을 죽였고, 세상은 다시
기억과 망각 사이의 새로운 균열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