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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05. 201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디즈니 실사 영화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판타지 동화로 처음 쓰인 후, 수많은 철학가와 문학가의 입에 오르내렸고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가끔씩 궁금할 때가 있다. 고전은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누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는가? 작가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접한 우리 모두인 것 같기도 하다.


원작 판타지 동화의 작가는 영국의 루이스 캐럴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립학교인 리치먼드 스쿨과 럭비 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열일곱 살 때 백일해를 앓으면서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겼으며 이후 말을 더듬게 되었다. 백일해는 백일해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인데, 연령이 어릴수록 사망률이 높은 질병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는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은 탓에 그리 인기 있는 강사가 되지는 못했다.


원작 판타지 동화의 작가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학 교수를 하던 1862년 캐럴이 템스강에서 함께 피크닉을 갔던 열 살 정도의 단과대 학장의 세 딸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탄생했다. 기존의 동화가 순종과 도덕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주인공이 신기하고 허무맹랑한 캐릭터들과 만나 모험을 하는 파격적인 동화였다. 1865년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생전 자신이 베스트셀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로 기록되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말 더듬이인 자신이 원작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작품의 명예가 훼손될까 봐 걱정했던 것일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작품의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특이점이 온 실사 영화


자연과학에는 ‘특이점’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빛마저도 빨아들일 정도로 엄청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의 내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지금껏 인간이 고안해 낸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으로는 블랙홀의 내부 상태를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특이점’이라는 말은 단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 버튼 감독의 작품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10억 달러 매출 돌파에 성공하였고, 당시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역대 5위의 기록을 세웠다. 원작의 힘일까?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토끼굴에 들어가기 직전의 앨리스


우선 실사 영화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관이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하트의 여왕과 붉은 여왕은 원래 다른 캐릭터이지만, 영화에서는 하나의 캐릭터로 표현되어 있다. 또 앨리스가 물리치는 재버워키는 사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다음으로 앨리스의 나이가 달라졌다. 원작에서는 꼬마 아가씨였던 앨리스가 영화에서는 성장이 끝난 성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호기심 많고 천진난만한 소녀라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아기자기하고 신비한 원작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어여쁜 성인 여성의 모험 서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앨리스의 현실과 꿈 사이에 강한 메타포가 형성되어 있다. 모자 장수, 붉은 여왕, 하얀 여왕, 토끼, 트위들 쌍둥이, 애꾸 눈의 기사, 체셔 캣은 모두 현실의 엄마, 아빠, 언니, 형부, 애스콧 부부, 약혼자, 쌍둥이 자매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쩌면 세계관과 캐릭터의 차이는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메타포를 구축하게 되면서 영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효과를 얻었다.


콘텐츠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게 되면 상반되는 두 가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긍정적인 측면은 관객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각색하였다면 성공적인 전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대로 부정적인 효과도 존재한다. 그것은 예술성의 하락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콘텐츠에서 예술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원작 판타지 동화는 상당한 예술성을 보유하여 많은 철학가와 문학가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은 원작이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읽어낼 수 있었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해내는 작업이 가능했다. 반면 영화에서는 메시지가 분명해지면서 이런 작업이 어려워졌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성장한 모습의 앨리스가 어떤 모습인지, 빨간 여왕의 머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또 동화를 보며 상상했던 여러 캐릭터가 어떻게 실사화 되었는지 보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큰 기쁨이다. 귀찮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원작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사람은 안심하고 편안하게 보자. 예술성에 특이점이 온 대중적인 상업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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