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과

22.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사과.png

너를 돌같이 생각하고

마트를 나왔다.

최영 장군이 환하게 웃더라.




마트에 들러 사고자 했던 조기 대 여섯 마리 샀다. 그냥 돌아 나올까 하다가 뭔가 허전 했다. 습관적으로 제일 먼저 들르는 과일 코너에 들렸다. 집에 귤 몇 알만 있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뭘 살까? 과일 매대 앞에서 머뭇대다, 샤인머스캣 포도 앞에서 갸웃댔다가, 다시 귤 앞으로 돌아가 기웃거렸다. 가격표보고 귤 내려다 보고, 샤인머스캣을 들여다 보고 가격표를 보고. 그러던 중에 달콤한 향기가 슬금슬금 나를 끌어 잡아당겼다. 딸기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 철이 아니어도 어쩜 그리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침 넘어가게 하는지....


결국은 딸기 두 팩을 사서 마트를 나오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혼자 웃었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반, 기특하다는 생각이 반이 서로 섞인 요상 야릇한 웃음이다. 내 머리에서 어쩜 그리 사과가 다 지워졌는지, 어쩜 그리 싱그러웠을 사과가 내 눈길 한 번 잡아끌지 못했는지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사과 구경을 못 한 것 같았다. 마트였으니 사과가 없을 리 없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물론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먹어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먹어 주는데 돌이켜 보니 사과를 먹은 지가 까마득하다.


사과는 배와 함께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 과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신맛 때문이다. 토마토의 신맛도 내겐 강렬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니 사과야 말할 것도 없다. 하여 사과를 먹을 때는 대부분 믹서기에 갈아 후루룩 마셔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과라고 다 그렇게 먹는 건 아니다. 아오리 사과가 나오고 뒤이어 잠깐 나오는 홍로 사과는 비교적 잘 먹는데 작년 가을엔 몇 개 먹어보지 못했다.


작년 가을 일이다. 마트 과일 코너에 홍로 사과가 나왔기에 춤추듯 달려갔다. 입 안에선 나도 모르게 침이 고여 가고 있었다. 마트 과일 매대의 홍로 앞에 서서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홍로 사과를 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사과가 왜 이렇게 생겼지?’ 무슨 조화 속인지 내가 먹었던 윤기 자르르 흐르던 붉은 홍로 사과가 아니었다. 사과가 비싼 건 둘째 치고, 사과 고유의 윤기도 없고, 생긴 건, 또 왜 그렇게 작고, 울퉁불퉁 못 생겼는지. 그럼 맛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은가?


대충 사던 사과를 누가 가르쳐 준 요령대로 해 보았다. 빨갛게 익은 것을 찾아서, 신선한지 사과 꼭지를 들여다 보고, 세로줄이 선명한 지부터 살폈다. 겉이 너무 매끄럽지 않고 만져 보았을 때 단단한지 살펴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사과에도 암사과 숫사과가 있단다. 가로로 퍼져 있으면 암사과이고 세로로 긴 것은 숫사과란다. 당연히 가로로 퍼진 암사과가 맛있다고 했다. 그러면 뭐 하는가? 거기에 해당되는 사과가 없는 것을....


정말 맛 좋은 사과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 큼 어려워졌다. 겉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도 맛은 왜 그리 없는지 한심할 지경이었다. 사과를 사다 놔 봐야 한 입 씩 깨물어 보곤 ‘사과 맛이 왜 이래?’ 소리만 들었다. 결국 그런 사과들은 내 차지가 되었다. 버릴 수는 없었다. 내 식대로 사과를 믹서기에 돌려 단숨에 마셔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사과는 ‘베어 먹는 맛으로 먹는 건데...’ 하면서 누구도 갈아 논 사과를 같이 먹으려 들지 않았다.


사과는 내 장보기 메뉴에서 퇴출되었다. 어쩌다 눈에 들어온 사과도 지나치기 일 수였다. 들여다봐야 값은 천정을 찌르고, 색깔도 푸르뎅뎅하고 덜 익은 듯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때라면 시장에 감히 얼굴도 못 내밀 사과들이 버젓이 매대에 올라앉아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내리깔고 ‘네가 감히 날 살 수 있겠어?’ 한다. 나는 그런 사과에게 ‘야! 안 먹고 만다. 너 아니라도 먹을 게 수두룩하게 많은데...’ 하곤 발길을 돌렸다. 그게 몇 달 되니 이젠 사과 보기를 돌로 볼 지경에 도달 한 모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방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