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가야지

23.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2월의 눈.jpg

그립다.

사랑한다.

이런 말을 뛰어 넘어야

봄도 다시 오는 법이다.




지나간 가을 누구라도 쓸쓸했음을 안다. 돌아가신 후, 잊고 살았던 부모님이 생각났을 것이다. 헤어진 이유도 잊힌 옛 연인이 떠 올랐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하나, 둘 먼 길 떠나간 친구가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고 누군가에게 포근히 안겨버리면 좋을 그런 계절이다.


그런 가을을 넘자 이번엔 겨울이 찾아왔다. 시베리아에서 산다는 광풍은 심심하면 내려와 온 산하를 흔들었다. 성미 급하거나 미리 겁먹은 단풍들은 낙엽이란 이름을 달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갈 길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제 알아 넙죽 엎드렸다가 눈을 감았다. 성깔 있는 낙엽들은 꼿꼿이 서서 대항하다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이런 와중에도 단풍 몇몇들은 온 힘을 다하여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살아남았다. 기온은 영하 10도를 넘나들고, 눈 내리는 캄캄한 밤에도 발 동동 구르며 살아냈다. 그런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시베리아 광풍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 제켰다. 끊어내고 뜯어내 버렸다. 미련 하나 남기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바람은 불었다. 엄동설한에 강요된 기억의 상실이었다. 그렇다고 미련 하나 남지 않았을까?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이름도 헷가리는 2월의 비가 내렸다. 그 비 속에 저 단풍잎 홀로 살아남아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나를 바라본다. 그걸 보면서도 난 ‘쟤는, 왜 아직도 저기 있지?’ 못 마땅하게 잠시 바라만 볼 뿐이다. 이미 봄은 저만치에 와 있고, 나는 그 봄을 찾아 이리저리 꽃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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