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하게 사는 친구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별 알맹이도 없는 넋두리에 신물이 날만도 한데 어찌 그리 넋두리는 끝없이 흘러 나오는 샘물 같습니다. 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쓸데없이 말수가 많은 것을 말한답니다. 찾는 김에 넋두리란 뜻을 찾아 봤습니다. 넋두리는 사전에서 찾아보니 억울하거나 불만스러운 일 따위가 마음속에 있을 때 하소연하듯 길게 늘어놓는 말이랍니다. 요즘 우리가 모여서 나누는 얘기를 가만히 보면 넋두리와 수다를 넘다 듭니다. 경계선이 없습니다. 나이가 드니 수다보다 넋두리 쪽으로 살짝 기우는 모양새입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다가 늘 그러하듯 방향도 없이 흐르다가 느닷없이 날씨 얘기에 머물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부는 바람의 온도는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온 듯 부드럽다고 합니다. 꽃나무들이 다투어 꽃눈을 부풀리고 어느 날인가 팝콘 터지듯 꽃망울을 터트릴 터 거라고 합니다. 우리 곁으로 들뜨고 설레는 바람이 스쳐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 했습니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생강꽃이 필 거라고 합니다. 그런 얘기가 오가는 중에 누군가 툭하고 화두 하나 던져 놓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그 화두에
“ 봄바람 불면 뭐 하고, 꽃 피면 뭐 하니?”
찬물을 확 부어 버립니다. 전부 눈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봅니다. 모두들 수다 떠는 내내 조용히 있더니 겨우 그녀가 던져놓은 말 한마디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녀의 넋두리가 시작 됐습니다. 우울증이 왔다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끙끙 댔다고 합니다. 귀가 잘 안 들린 답니다. 보청기를 껴야 할 상태라고 합니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모두들 서로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녀를 어루만져 줄 생각도 못 합니다. 다들 충격을 먹은 탓입니다.
“어머, 얘 좀 봐! 다 그러고 살아”
“지금까지 뭘 들었니?”
“얘는, 무릎 아프고, 쟤는 허리 아프고......”
“지금까지 넌, 아픈데 없잖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이 나이에 한 두 군데는 아픈 데가 있어야 정상 이지!”
아기가 말문을 트듯 이 친구 저 친구들이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습니다. 굳이 반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랬을 겁니다. 나이가 70이 넘어가면 아픈 데가 있는 게 정상인 나이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동의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싫어서 입을 다문 건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고, 밤이면 달 뜨고 별 뜨는 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처럼 비도 내리고 며칠 전처럼 폭설도 쏟아집니다. 사람들마다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갖고 삽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그걸 모르지 않더라도 그녀는 기운 빠지고 심드렁한 날들이 좀 더 계속 되겠지요. 들리지 않는 귀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질 리는 없겠지요. 꾸며서 만들 아픔이 아니니 어쩌겠어요. 우울증에 발목 잡히기 전에 마음속에 돌덩이 하나 넣겠지요. 돌덩이 꾹꾹 우겨 넣고 살다보면 머지않아 보청기 파는 매장으로 갈 테지요.
그렇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라는 말을 돌덩이 하나로 지긋이 눌러 놓으면 그만입니다. 속도 없이 가끔은 그 말이 돌덩이 틈 사이로 고개를 들 테지만 결국은 순응하고 말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무릎이 아파 올 때 나는 관절염이 아니라고 쉴 새 없이 도리질 하며 슬퍼 했지만 결국은 덤덤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어쩌다 바람이 들어가 돌덩이가 들썩이며 ‘왜, 나만.....’ 이라고 고개를 쳐들면 다시 돌덩이를 꼭꼭 눌렀습니다.
장아찌도 그렇고 김장 김치도 그렇습니다. 쓸데없이 바람이 들어가면 군내만 풀풀 납니다. 돌덩이로 꾹 눌러 놓아야 그 맛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냥 깨끗하게 인정하고 병원 다니면서 아픈 곳을 달래가며 남은 생을 사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사는 게 조금 재미가 없어졌다고 인생이 다 끝난 건 아닙니다. 우리들의 얘기가 수다인지 넋두리인지 경계야 애매모호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불안이나 속상한 일들을 모여 앉아 털어 놓으면 다시 힘차게 남은 생을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다는 겁니다.
자동차 면허증을 반납 했습니다. 해서 나이가 들었다는 게 한 없이 속상한 요즘입니다. 그 속을 털어내려면, 올 봄에는 KTX 기차를 타고 고향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자동차 면허증 없는 삶도 살만하다는 걸 체험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사는 삶에서도, 기쁨을 찾는 날도, 하루 이틀 늘어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