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고 햇살도 산뜻하고 좋았습니다. 간간이 스쳐가는 바람에 섞여 콧속으로 스며드는 벚꽃 향기에 마음은 두둥실 부풀어 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문득 내 차림에 영 아니다 싶습니다. 집 근처 공원길 산책인데 싶었습니다. 집에서 입고 뒹굴던 몸빼 바지에 발에 걸리는 대로 아무 신발이나 신고 나온 게 영 못 마땅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게 얘기하면 하나 둘 주변에 대해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전 같으면 화장도 안 하고 집을 나선다는 건 꿈에도 생각도 못 할 일입니다. 그랬던 내가 퇴직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며 집 밖을 나오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몸 단장을 하고 나오나, 안 하고 나오나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다른 게 없는 탓일지도 모릅니다. 후회를 해 봤자 이미 나선 길입니다.
평일이라 공원 벚꽃 길에 별로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주말에 벚꽃 구경을 할 사람들은 쓰나미 밀려오듯 밀려왔다, 밀려가 버린 탓입니다. 늘 나오던 사람들이 소나무 길이나 대나무 길을 걷다가 삼삼오오 벚꽃 길 긴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눌 뿐입니다. 그들이나 나나, 바삐 가야 할 곳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벚꽃 향기 날리는 공원 의자에 앉아 올해의 벚꽃은 작년보다 유난히 풍성하게 곱게 피었다던가, 저 건너편 산자락에 피었던 진달래꽃이 이미 지고 툭툭 불거진 잎눈이 올라오고 있다는 얘기가 고작일 것입니다.
버드나무 길로 접어들자 눈길 닿는 곳에 그네의자가 비어있습니다. 냉큼 그네 의자에 몸을 맡기고 흔들흔들 꿈길에 들었습니다. 버드나무 연두빛깔에 파묻혀 꿈길을 걷다가 눈을 뜨니 잔디밭 틈새에 보랏빛 꽃송이 수줍게 웃는 게 보입니다. 오랑캐꽃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잔디 속에 숨어 겨울을 나고 꽃을 피웠으니 기특합니다. 고개 숙이고 수줍게 웃는 오랑캐꽃을 대견하게 바라보다가 벚꽃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원 둘레 길을 걷습니다. 벚꽃나무에는 반은 나무에 매달려, 반은 길바닥 위에 벚꽃들이 난장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동화 속 아름다운 풍경처럼 꿈길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들이 안녕을 고하고 있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어려서는 꽃이 피었으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없었습니다. ‘왔으면 가는 건 당연한 거고 내년에 또 올 건데 뭐’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확실히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떠나갑니다. 오늘 내 곁에 있는 벚꽃들과 내년에 볼 벚꽃은 분명 다른 것인데 말입니다. 과거의 나의 길은 길고 미래의 나의 길은 아주 짧아졌습니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빛나는 날들이지요. 다시 오지 못하는 날들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탓입니다. 천천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을 받아 들고 ‘올해도 날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다. 잘 가’ 인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