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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1장
43. 디카 시 & 에세이
by
조규옥
Jul 5. 2024
끝나도 끝난 게 아니더라.
청바지, 너랑 인연이 얼만데
선이 고운 한복 스타일 조끼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났으니.
사는 날까지 함께 가자.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가끔 후둑후둑 빗방울을 쏟아 내었어요.
장마라는데 짜증 나는 후덥지근함도 없었으니
시원해서 좋은 아침이었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빗소리가 요란하더니
내 발을 묶어 버렸어요.
공원으로 산책 나가려는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어요.
일 벌이기 아주 좋은 시간인 게지요.
여고 시절,
여름방학이긴 했지만
마땅히 놀 거리도 없었어요.
내 유일한 취미인
장롱 뒤지기 놀이를 시작했어요.
맨 아래쪽
장롱 서랍 깊숙한 곳을
뒤집어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때는 잘 열어보지 않는 곳이라
호기심이 일었던 탓이지요.
“어, 이건 뭐지?”
“한 번도 못 본 옷인데....”
장롱을 뒤지다가 남자 한복을 발견했어요.
분명 남자 어른 것이니 아버지 옷일 터인데
한 번도 한복을 입은 아버지 모습을 뵌 기억이 없어요.
그래, 이 거다 싶었지요.
당연히 안 입는 옷이라 내가 잘라도 괜찮을 성싶었어요.
생각 나는 대로 한복을 싹둑싹둑 잘라
재봉틀 앞에 앉아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을 돌렸어요.
그렇게 신나게 재봉질에 심취해 있을 때
“탁”
하고 머리에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세게 쳤어요.
너무 놀라 뒤돌아 봤더니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수수로 만든 방 빗자루를 거꾸로 움켜쥐고
다시 한번 등짝을 내려치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매 타작이었고
난 일단 피하고 보자고
무슨 영문도 모르고 냅다 튀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한복은 아버지 결혼식 때 입은 결혼 예복이었어요.
뭐든 가위로 자르는 거라면 좋았어요.
그림으로 그리라면 못하지만
가위로 자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조금은 이상한 소질이었고 취미인 셈이었지요.
취미를 살리고 싶었지만 그 시절 그 꿈은
여자가 그런 것을 잘하면 고생한다고
공부나 잘하라는
무수한 질책이 늘 따라다녔었지요.
공부에 별 취미도 없는데 말이지요.
열린 창으로 새들이 울고
언제 비 왔냐고 시침 뚝 뗸 하늘엔 햇살이 빛나고 있었어요.
창밖으로 바라보는 햇살은 투명하고 맑아 가슴 두근대게 했어요.
뜨거운 열기나 숨을 조여 오는 습함도 없었어요.
바람은 적당하게 불어 시원했어요.
“나와! 나와 봐.”
햇살도 바람도 유혹했지만
난 버리려던 청바지를 이미 뜯어 놓았고
머릿속에 떠 오르는 그림대로
가위질을 하고 있었어요.
나만 인생 2막이 아니고
너도 나와 함께 인생 2막을 열어
함께 하자고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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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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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보완심(緩步緩心)이란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젊은 시절 느끼지 못 했던 마음속 작은 일렁임들을 적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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