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1장

43. 디카 시 & 에세이

by 조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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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도 끝난 게 아니더라.

청바지, 너랑 인연이 얼만데

선이 고운 한복 스타일 조끼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났으니.

사는 날까지 함께 가자.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가끔 후둑후둑 빗방울을 쏟아 내었어요.

장마라는데 짜증 나는 후덥지근함도 없었으니

시원해서 좋은 아침이었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빗소리가 요란하더니

내 발을 묶어 버렸어요.

공원으로 산책 나가려는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어요.

일 벌이기 아주 좋은 시간인 게지요.


여고 시절,

여름방학이긴 했지만

마땅히 놀 거리도 없었어요.

내 유일한 취미인

장롱 뒤지기 놀이를 시작했어요.


맨 아래쪽

장롱 서랍 깊숙한 곳을

뒤집어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때는 잘 열어보지 않는 곳이라

호기심이 일었던 탓이지요.


“어, 이건 뭐지?”

“한 번도 못 본 옷인데....”

장롱을 뒤지다가 남자 한복을 발견했어요.

분명 남자 어른 것이니 아버지 옷일 터인데

한 번도 한복을 입은 아버지 모습을 뵌 기억이 없어요.


그래, 이 거다 싶었지요.

당연히 안 입는 옷이라 내가 잘라도 괜찮을 성싶었어요.

생각 나는 대로 한복을 싹둑싹둑 잘라

재봉틀 앞에 앉아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을 돌렸어요.

그렇게 신나게 재봉질에 심취해 있을 때


“탁”

하고 머리에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세게 쳤어요.

너무 놀라 뒤돌아 봤더니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수수로 만든 방 빗자루를 거꾸로 움켜쥐고

다시 한번 등짝을 내려치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매 타작이었고

난 일단 피하고 보자고

무슨 영문도 모르고 냅다 튀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한복은 아버지 결혼식 때 입은 결혼 예복이었어요.


뭐든 가위로 자르는 거라면 좋았어요.

그림으로 그리라면 못하지만

가위로 자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조금은 이상한 소질이었고 취미인 셈이었지요.


취미를 살리고 싶었지만 그 시절 그 꿈은

여자가 그런 것을 잘하면 고생한다고

공부나 잘하라는

무수한 질책이 늘 따라다녔었지요.

공부에 별 취미도 없는데 말이지요.


열린 창으로 새들이 울고

언제 비 왔냐고 시침 뚝 뗸 하늘엔 햇살이 빛나고 있었어요.

창밖으로 바라보는 햇살은 투명하고 맑아 가슴 두근대게 했어요.

뜨거운 열기나 숨을 조여 오는 습함도 없었어요.

바람은 적당하게 불어 시원했어요.


“나와! 나와 봐.”

햇살도 바람도 유혹했지만

난 버리려던 청바지를 이미 뜯어 놓았고

머릿속에 떠 오르는 그림대로

가위질을 하고 있었어요.


나만 인생 2막이 아니고

너도 나와 함께 인생 2막을 열어

함께 하자고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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