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44. 디카 시 & 에세이

by 조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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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한번 팔지 않고

긴 세월 땅만 파더니

요즘엔 전 세계에 빛나는 너.

자랑스럽고 대견해.



이 장마가 지나면 머지 않아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겠지요.

햇살은 맹렬이 불타오르며 열기를 뿜어 내고

여름은 영원 할 것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깊숙이 빠져 들겠지요.


“그럼 그러라지!”

나는 누군가 말 했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나는 오늘 사과 나무를 심는다.”

는 말처럼 아파트 옥상 텃밭상자에

엎드려 뻘뻘 땀을 흘리며 가을 감자를 심었지요.


올 봄

감자 농사가 풍년이라 재미가 든 탓이지요.

사실 가을 감자는 먼 제주도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감자 농사가 서울에서도 가능 하다길래

올 해 처음으로 가을 감자를 심었어요.


아파트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감자를 심은 상자텃밭부터 찾아 봤어요.

그런데 감자싹 곁에 왠 잡초 하나가 배시시 웃고 있었어요.

분명히 잡초를 다 뽑아내고 감자를 심었는데 말이지요.


손톱만 한 잡초까지 다 뽑아 냈는데

매서운 내 두 눈을, 날카로운 호미질을

어찌 피해갔는지 참 용타 싶으면서도

호미를 다시 들었어요.


“그래, 뽑아라. 뽑아!”

“치사하게 너한테 목숨 구걸은 하지 않을 란다.”

들꽃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소리쳤어요.

어이없어 바라보고 웃다가

이 작은 들꽃 입장에서 보면

이런 배짱을 내지를 수 있겠다 싶어요.


호미 날을 용케 비켜 간 행운에

“여름 뙤약볕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

“아침 이슬 한 방울이면 살 수 있어”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 멋진 꽃 한 송이 피울 거야.”

라며 밤마다 별을 바라보며 되새기던 꿈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판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나도 그에 답을 했지요.

“어떻게 용케 내 호미질을 피했는지 모르지만

훗 날, 네가 꽃 한 송이 피운다고

누가 너를 거들 떠나 보겠니?”

매정하게 하고 말해 주었지요.


사실 그렇잖아요.

이 작은 들꽃을 보자면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데

누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바라 보겠어요?

누가 예쁘다고 엎드려 사진 한 장 찍지도 않을 텐데

내가 안쓰러워 할 이유도 없잖아요.


웅얼웅얼,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듯 떠들다 보니

호미는 이미 들꽃을 피해

애먼 곳을 긁적이고 있었어요.

저 작은 것을 깔보고 구박해 봤자

나만 하찮은 사람이 되고 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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