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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는 믹스커피 May 25. 2022

호의와 편의 사이의 노동  

방송사 대기실 간식에 관한 불편한 진실 




얼마 전 김숙이 본인의 유튜브에 자신들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대기실 간식을 찍어서 

업로드한 적이 있다. 


각 프로그램마다 각양각색의 간식이 있었고, 

김숙은 정성스럽게 하나씩 소개를 해줬다. 


그런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불편할까. 


대기실의 간식은 어떤 스텝이 세팅하는 것일까?

대기실 간식은 왜 필요한 것일까?


대기실 간식은 연출팀 중 막내작가나, 막내 조연출의 주도 하에 

FD와 진행팀이 준비하고, 세팅한다. 


팀에 따라 출연자가 특정 간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팀의 메인작가나 담당 피디가 어떤 걸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재량껏 준비한다. 


나는 늘 이게 이해가 안 됐다. 


간식이 없을 때 당연하다듯이 그걸 준비해달라고 요구하는 출연자가 있다. 

그리고 대부문의 예능프로그램 녹화 때 당연하다듯 저렇게 대기실을 세팅하는 연출팀과 진행팀이 있다. 


저런 편의와 호의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럼, 저런 세팅이 당연한 것인가. 

저런 간식 준비가 막내작가와 조연출의 명확한 업무의 영역인가. 


나는 그게 좀 이해가 안 됐다. 

막내작가나 조연출이나 FD는 촬영 전날과 촬영 날 세상 제일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바쁜 사람들의 업무 중에 저 간식 준비가 있다. 


작가가 됐을 때, 간식 조합을 하는 걸로 센스가 있니 없니 평가받는다는 걸 

많은 작가 지망생은 알까?


나는 막내 때도 지금도 저 간식을 왜 연출진에서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저 간식들은 몇 개만 까먹고 그대로 인 경우가 많아서 

그대로 다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세상 이런 낭비가 어디 있나..


일하는 중에 간식이 필요하면 그 정도는 본인이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회당 출연료가 

막내 스텝들의 회당 임금보다 10배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정도면 간식은 자기가 알아서 사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비단 대기실 간식뿐 아니라, 

굉장히 섭외하기 어려운 스타를 모셨을 때 

대기실을 풍선과 반짝이로 꾸미는 이벤트를 할 때도 있고, 

(작가료 5만 원 올려달라고 할 때 제작비 없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연예인 대기실 꾸미는 수십만 원의 비용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피디를 보면 정말 힘이 빠진다.

그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수십 통 하고, 머리를 조아린 건 정작 작가인데 말이다.

물론 피디들이 직접 섭외하는 경우도 많고, 좋은 피디들이 더 많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끝났을 때 매니저나 헤메 코 스태프들이 차량을 꾸며서 

이벤트를 해주는 경우를 종종 볼 때가 있다. 

현장 매니저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도 같이 고생했는데

왜 한쪽은 늘 이벤트를 준비하고, 한쪽은 늘 이벤트를 받는 입장이어야 하나. 


시청자들이나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스태프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이 보기 좋겠지만, 

나는 저것이 관행이 될까 봐 늘 마음이 불편했다. 


이상하게 출연자에 대한 저런 배려과 대접은 점점 과해져 간다. 


과거에, 김숙 님이 코미디실에 막내였을 시절. 

후배 작가가 선배 작가의 담배 심부름하는 게 당연하고, 

매니저가 PD차를 세차해오는 게 당연한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잘못된 관행들은 깨져 왔다. 


김숙 님을 비난하거나 김숙 님이 잘못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저렇게 간식을 소개하는 영상을 통해 

각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얼마나 신경 쓰느지, 

그리고 김숙 님이 저런 제작진의 호의를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해당 영상을 촬영하신 것처럼 보인다. 


대기실 간식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건 그 팀의 연출진들의 호의인 경우가 많다. 

연출진의 호의로 출연자들이 편의를 누리는 것이다. 

그 호의와 편의 사이에 누군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스텝들은 간식을 어떻게 먹느냐

저 간식 이전의 상태인  대용량 과자 번들 봉지들이 쌓인 곳에 가서

사료 봉투를 기웃 거리는 고양이처럼 꺼내 먹어야 한다


적어도 간식이 필요하면 외국처럼 한쪽에 스낵바를 마련해서 모든 스탭이 이용할 수 있기만 해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면 각 방송사에서 일괄적으로 간식키트를 구입하거나 제작해서 그냥 놔눠 주는 것으로

업무를 간편화하고 팀마다 구성을 통일만 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출연자의 컨디션은 중요하다. 

스텝들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지만, 

출연자는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니 그들의 컨디션이 좋고, 기분이 좋고, 

이렇게 이벤트를 받아서 예쁜 사진 찍어서 많은 팬들에게 홍보가 되고 

그러는 게 좋은 게 좋은 걸로 다 좋겠지만, 

그들의 컨디션과 기분을 맞춰 주는 게 누군가의 굳이 않아도 될 노동의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물론, 가끔은 연예인 분이나 매니저분들이 역으로 

스태프들에게 간식과 음료를 대접하는 경우도 많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주고받고 하면 좋겠지만, 

그런 대접들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면, 결국 강제성과 업무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누구나 호의를 받고, 배려를 받고,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안 받아도 되는 것이면,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저런 관행을 생략함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의 막내 스텝들이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막내작가도, 막내 조연출도, 막내 FD도 취업을 준비할 때

부모님께 방송국에 취직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촬영 날 아침에 과자봉지를 까고 심혈을 기울여 과자 접시를 세팅하게 될지는 몰랐을 것이다. 


어디 프로그램은 백화점의 마카롱, 마들렌 주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싸구려 과자밖에 없냐는

소리를 듣게 될지는 몰랐을 것이다. 

대기실 남은 과자를 내가 싸갈 테니, 그걸 담아갈 봉투도 매번 준비해달라는 출연자의 

이상한 요구를 들을지 몰랐을 것이다.

 

호의와 편의가 당연하지 않고,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건 각자 준비 하자. 

쓰레기 제발 많이 만들지 말고. 태도와 감정을 다른 사람을 통해 고취시키지 말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숙 님을 비난한 의도는 전혀 없다. 

어떤 제작진은 대기실 세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너무 꼰대고 내가 너무 이상할 것일 수도 있다. 

이건 꼰대 같고, 불친절한 내 생각일 뿐이다.

그냥 나는 일터에서 특정인들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 더 많은 노동을 하는 게 싫다. 

호의와 편의를 받는다면 기분 좋아하기 전에 오히려 거절하는 게 미덕인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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