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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는 믹스커피 Jul 04. 2022

11년 전 한 아이돌의 태도

성실함과 묵묵함이 기억에 남는 경우.

* 저는 이준호님과 전혀 친분이 없습니다. 

* 이 글은 이준호님의 특별한 미담이 아닙니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보면, 

성공가도를 달리는 연예인에 대해 그 사람과 마주쳤던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짧은 순간인 적도 있고, 

그 연예인이 성공하기 전 평범한 연예인이였을 때 함께 일했던 순간 일 수도 있다. 

이 친구는 언젠가 틀림없이 잘될꺼야!! 

저 친구가 저렇게 까지 잘 될 줄이야...  할 때도 있다. 


11년 전,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 이준호 님이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었다. 

평범한 상황은 아니였다. 

녹화날이 명절 당일이였고, 어떤 이유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게스트 1명이 펑크가 난 상황에 녹화를 며칠 앞두고 2PM 매니저에게 부탁을 하였다. 


명절 당일날 나오라고 하는 것도 미안하고,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하는 것도 미안했다. 

매니저가 화를 내며 거절해도 당연한 것이였다. 


"작가님, 저희가 몇달 전 부터 멤버들에게 추석엔 휴가를 주겠다고 했어서. 

이미 개인 일정을 잡았을 수도 있어요. 말을 해보겠는데, 본인이 거절해도 어쩔 수 없어요."

라는 답변이 왔다. 말했듯 당연했고, 매니저 선에서 단칼에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곧 답이 왔고, 명절에 게다가 오전 녹화에 역할이 크지도 않은데 출연을 허락해줬다. 

너무나 송구하게도 ...이 와 중에 숙제 까지 내어드렸다.


"기왕 나오시는 거  00회 00회를 보고 미리 보고 오시면, 

해당 녹화날 내용 연결을 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


출연자에게 "몇 회, 몇 회 혹은 어떤 영상들을 미리 보고 오면 도움이 될꺼다. "라고 

숙제 아닌 숙제를 내 줄 때가 있다. 

이 숙제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고, 안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성실함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기간에 하루에 몇 시간 못자는 스케쥴을 

소화해야 하는 출연자가 뭘 안보고, 안하고 왔다고 해서 불성실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게스트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은 아니였어서 이런 숙제를 내주는 것도 살짝 미안했다.

하지만, 출연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멘트 한마디라도 더 해준다면 기꺼이 숙제를 내고 

출연자의 성실함을 요구 하는 역할을 제작진은 해야한다. 


녹화 당일날, 그리고 명절 당일 아침

애미애비도 조상님도 없는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스텝들과 출연자들은 스튜디오에 모였다. 

MC와 고정게스트, 그리고 이날 특별 게스트인 이준호님도 늦지 않게 대기실로 왔다. 

명절 당일 녹화에 미안해서 머리를 조아리는 피디와 나에게 MC들은 오히려 번잡한 집 피해서 

일하러 나와서 좋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2시간 정도면 되는 아주 짧은 녹화였고, MC와 게스트들은 영상을 보면서 코멘터리를 하면 되었다. 

대본리딩 시간에 피디와 나는 오늘 봐야할 영상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설명을 하고, 

어떤 톤앤 매너를 유지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준호 님에게 혹시 말씀드린 회차를 미리 보았는지 (미리 보지 않았음 써머리한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확인했는데 아니라 다를까 미리 보았다고 했다. 


대본 리딩이 끝나면, 출연자는 마지막으로 매무새를 점검하거나, 동료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눈다. 

나와 피디는 스튜디오에 돌아가 촬영준비가 끝난걸 확인하고, 출연자들을 스튜디오로 부른다. 


FD나 조연출이나 막내작가들이 대기실 복도를 돌아다니면 외친다. 

"녹화들어갑니다, 마이크 찰께요!!"


이때, 모든 스탭들은 스탠바이 된 상태인데, 

출연자들은 아주 천천히 스튜디오로 모여든다.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며, 그제서야 화장실을 가며, 그제서야 메이크업 수정을 하며..

그래서 생각보다 스탠바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튜디오의 어둠 한 켠에서 마이크를 차면서도 한참을 잡담을 나누기 일쑤이다. 

이것도... 제작진은 마음이 급하지만, 출연자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예열을 하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서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식으로 긴장을 풀고 텐션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좀 짧았으면 하는 게 제작진의 바램이다. 

수십명의 스탭들은 이미 자기 포지션에서 스탠바이 하고 있지 않는가. 

정해진 시간에 슛이 들어가고 정해진 스케쥴대로 녹화가 시작되어도 시간에 늘 쫓기는 마음인게 

제작진의 직업병이다.)

너무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이상 함부러 재촉하거나 뭐라고 해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재촉도 기분좋게 하는 법을 일을 하다 보면 배우게 된다. 


우리는 누가 마이크착용을 했는지, 누가 아직 스튜디오에 도착하지 않았는지, 

누가 빨리 스튜디오에 착석해야 다른 사람들도 빨리 착석을 할지 보고 있다. 


이 와중에 이준호님이 가장 먼저 자기자리에 착석을 했다. 

대기실에 나와 거의 쓰루로 마이크를 차고 쓰루로 착석을 했다. 

마이크 차는 출연자무리를 보며 왜 준호는 없어? 했는데 이미 자기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였다. 

아이돌게스트가 저런 경우는 없어서 좀 놀랬었다. 


보통은  또래 연차, 아이돌들은 제작진, MC에게 잘 보이려고 어떤 어필을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었다. 

그때 2PM은 굉장히 잘나가는 아이돌이였는데, 

이렇게 작은 역할과 급작스러운 섭외에 자기가 왔줬다 하는 생색도 없었다. 


이건 특별한 미담도 아니고, 그냥 내가 겪고 느꼈던 그 짧은 순간의 

이준호 님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의 이준호님의 성공을 보면, 

당시 가장 잘나가는 20대 초반의 아이돌 멤버였는데, 묵묵했던 그의 태도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런 태도와 성격이면 연기자를 하면 잘어울리겠다는 생각을 맘 속을 했는데, 

아니라 다를까, 연기자로 잘 된걸 보면 사람 생각이 다 똑같다.


20대 초, 중반에 평범한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조차도 

운이 좋고, 재능이 돋보이는 또래를 보면 기운이 빠진다. 

내가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실하고 묵묵한게 손해가 아닐까, 

게다가 옆에서 노력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게 잘되는 친구들을 보면 누구나 허탈하기 마련이다. 

나는 왜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까 

나는 왜 각광받지 않을까 

(이 와중에 그때 이준호님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냐, 각광받지 않았냐...

 11년 전에도 그는 톱스타였다. 그때 2pm은 대상 가수였고, 

그 중에 이준호님의 별명은 황제였다. 메인 댄서와 리드보컬을 겸하는 멤버였다) 


성실함과 묵묵함,  좋은 태도를 일관되게, 오랫동안 유지 하는 것 또한 

사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재능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성실함과 노력이 당장의 결과로 돌아오지 않아 

힘이 빠지는  청춘들에게 이준호님은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참고로... 저 당시 게스트 중에 뭘 보고 오라고 했는데, 안보고 왔던 사람들은 

이제 TV에서 보기 힘들다. 

인생에 한방도 있지만, 작은 잽이 모여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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