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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타

이미 늦은 걸까

나를 상품으로 내어놓기


미 영주권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동시에 미국 이직을 위한 준비와 변화가 필요했다. 미국 이직은 나의 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주권을 따는 순간, 난 미국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원했던 상황으로 나 스스로를 밀어 넣어 버린 거다.


우선, LinkedIn에 나의 프로필을 영문으로 손봐야 했고, 미국의 헤드헌터나 채용담당자로 부터 거주지 때문에 필터링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의 거주지역을 미국으로 바꿔서 세팅해 놓는 일 등, 바로 온라인 잡마켓(Job Market)에 '나'라는 상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IT서비스의 UX와 디자인 경력을 바탕으로, 최근까지 수년간 이어오고 있는 Ad Tech 플랫폼과 상품개발 담당 PM(Product Manager)으로 포지셔닝을 하고, 기대 직급은 현재의 디렉터(Director)급에서 책임연구원 수준(Sr. Manager)으로 한 단계 내렸다.


미국에서의 디렉터라 함은 한국의 기업환경에서 번역해 보면, 선임 부장 혹은 초급 임원에 해당하는 직급인데, 아직 부족한 미국 내 인적네트워크나 다국적 빅테크 업무환경이라는 전혀 색다른 문화권의 직장인들에 대한 매니지먼트 스킬, 더더군다나 늦게 시작한 PM경력을 감안해서 내린 판단이다. 무엇보다, 이 살 떨리는 도전에서 직급 레벨이나 처우는 내게 그리 결정적(Critical) 요소는 아닌 셈이다.


또 한 가지는, 지금의 맡은 업무를 좀 더 충실히, 세밀하게 대하는 것이다. 주어진 업무에 있어서 게을리 임한 적은 없지만, 다소 변화가 필요했는데, 더 이상 조직관리나 상위부서에서 시시때때로 요청되는 보고서들을 쓰는 일에만 나를 매몰시킬 수 없었다. 앞으로 몇 년의 과정이 될 수도 있는 채용 프로세스를 포함한 이직을 위하여 실질적인 서비스와 프로덕트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전과 실무 역량을 쌓아가야 했고, 채용 인터뷰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을 만큼 내 것으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내 근무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리더로서의 조직관리 업무 비중과 실무 비중을 관리해 나갔다.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미국 테크 기업들의 채용 인터뷰는 몇 가지 정보를 외우거나 단기적 준비만으로는 면접자들에게 어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뜻하는 바대로 결과를 빠르게 가지지 못할 수도 있기에 장기전을 계획했다. 애초에 부족한 걸 알았고, 끈기 있게 채워나갈 요량이었던 것 같다. 아주 가끔은, 이런 나의 무모함과 용기에 칭찬 한마디쯤은 주고 싶기는 하다. ^^



현타


코로나 기간 동안은 소위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본사를 둔 '빅테크' 기업들의 활황기였다. 그 덕분인지, 링크드인에 내 프로필을 손 본 후로 헤드헌터나 인하우스 채용 담당자들로 부터 드물지 않게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내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인터뷰 요청 메일들이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첫 연락을 받은 기업은 구글이다.


채용팀의 스크리닝 인터뷰 후, 본격적인 채용심사를 위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빅테크 기업은 커녕, 미국의 채용 인터뷰가 뭔지도 모른 채, 아니 너무 모른 나머지 긴장감조차 부족했고 무지했던, 그 귀중했던 첫 인터뷰는 지금 나 스스로에게도 '웃음거리'로 기억되어 있다. 물론, 지금으로선 그만한 당당함이나 '행동하기'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결과는 존재할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몇 개월 뒤, 고르고 고른 두 번째 회사와의 인터뷰도 초반에 떨어졌고, 세 번째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 첫 인터뷰는 물론이고 이어진 초반의 실패 경험을 토대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쉬쉬하며 '조용한 도전'을 고집했던 방식을 버리고, 그 후배를 포함한 지인들과 선험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절실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미국 IT기업 취업 후기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PM인터뷰에 관한 원서도 두 권이나 아마존에서 주문하여 읽어나갔다.


영어가 너무도 부족함을 느꼈다. 단순히, 한국기업에 소속된 한국인이 외국인 파트너들과 업무회의를 통해 협업을 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특히 PM의 지원자격조건(Qualification) 리스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Outstanding verbal and written communication skills."은 이 일이 나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여기게 만드는 또 하나의 벽처럼 여겨졌다.

 


전략전환


전략을 바꿔야 했다. 최종 목표는 여전히 최종합격이었지만, 인터뷰에 임하는 나의 새로운 전략은 미국의 채용 인터뷰를 아주 아주 많이 해보는 것. 이런 생각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국내에 위치한 미국기업도 있다. 모두가 알 만한 회사인데, 이 회사의 채용담당자들은 6개월이 멀다 하고 내게 연락을 해왔다. 최종 단계에서 불합격을 해도, 몇 개월뒤 다른 부서의 PM역할에 관심이 있는지 의사를 타진해 왔다. 당시 미국으로 이직을 준비하던 나로서는, 이 회사가 훌륭한 회사임은 분명했지만, 미영주권이 나오는 데로 미국으로 옮겨야 하는 내 계획과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도 매력적인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채용 인터뷰 낙방을 거듭하던 이 회사가 내게는 너무도 좋은 연습대상이라는 점이었다. 이 회사의 채용 모델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 중 하나의 모델을 많은 부분 사용하고 있었는데, 채용 시스템도 그러했다.  당시, 한국 대기업들이 좀처럼 적용하고 있지 않은 개별 인뎁스인터뷰(Indepth Interview) 방식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제시되는 질문들(예: Behavioral, Estimation, Product, Casestudy questions 등등)이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대부분 외국인 면접관과 영어로, 그것도 한국 시간대에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지나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러면서 조금씩 붙어가는 자신감으로 미국 기업에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타트업이건, 대기업이건, 나의 경력과는 잘 맞아 보이지 않는 콜(Video Call) 요청에도 일단 일정만 맞으면 응했다. 목표는 단 하나, 당장의 취업이 아닌 '실전'같은 연습과 인터뷰 자체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다. 사실, 당시엔 아직도 영주권이 없었기에 선뜻 비자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회사가 아니라면 실제로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어차피, 장기전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계획했기에 서두를 이유도 없었고, 좌절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내겐 채용 인터뷰의 갑과 을이 바뀐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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