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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산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 넷째날

가슴이 터질 듯, 낙단보 ~ 합천창녕보


매일 열 시간에 가까운 라이딩 나흘째 아침이다.   이상하리만치 몸은 가뿐하다.   어제 밤 낙단보의 한 숙소에서 따뜻한 목욕물과 휴식...   국토종주를 하는 이 자전거 여행자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를 제공해 주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 출발이어서 아침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숙소에서 제공해 준 컵라면으로 굶지않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오늘은 구미보를 거쳐 칠곡보, 그리고 낙동강 종주길의 사대천왕으로 불리우는 힘겨운 고갯길 중 두군데, "다람재"와 "무심사 임도"를 넘으면 합천창녕보를 만나게 될 것이고, 합천창녕보를 지나 10여 킬로미터 지나면 이번 여정의 마지막 숙박지이다.   사대천왕의 나머지 "박진고개"와 "영아지마을 임도"는 체력과 시간 안배를 위해 마지막 날 (다섯째 날) 오전으로 일정을  조절해 두었다.


1-다람재, 2-무심사임도, 3-박진고개, 4-영아지마을임도.   낙동강 종주길 중 최고악명을 지닌 네개의 고개길. 58킬로미터 거리에 몰려있다. 도착지점은 창녕함안보


거친 고갯길들과의 일전에 쓸 체력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오늘 아침도 가능한한 국도를 활용해 라이딩하기로 한다.   낙단보를 지나는 "도안로"를 활용하여 "도개면"을 지나 "도개리(이곳에서 자전거도로로 옮겨 타야 한다)" 까지 7.5킬로미터를 효율적으로 라이딩 할 수 있었다.   가뿐하게 시작은 했지만, 몸 구석구석 찾아든 피로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오른쪽 고관절 쪽에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라이딩을 하다보면 가라앉길 기대하며 계속 페달링을 이어간다.


구미보와 칠곡보까지는 자전거도로가 비교적 평탄하고 잘 구성되어 있고, 구미의 산업단지를 지나는 길은, 훌륭한 수준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분주하게 내달리는 산업용 트럭들로 부터 안전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다.   낙단보에서 구미보 - 칠곡보 - 강정고령보 - 달성보까지이어지는 100여 킬로미터의 자전거길은 그리 인상 깊이 남는 곳은 없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한계와 싸우는 난코스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의 도전은 그 다음 구간(달성보~합천창녕보) 부터다.


매점확장 공사가 한창인 구미보.   곧 쾌적한 보급 포인트가 생길 것 같다
구미 근처 칠곡보로 이어지는 길 옆, 밭을 가꾸는 농부들
구미를 지나는 낙동강변

달성보를 앞두고 만난 왜관이 집인 청년은 꾀 어린시절 부터 라이딩을 즐겨온 베테랑 라이더였다.   한때 꾀 라이딩을 즐겼지만, 크게 다치면서 지난 일년 이상 동안 치료와 회복기를 거치고 나서야 오늘처럼 라이딩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단다.   내 여행 계획은 듣고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달성보까진 문제 없을텐데, 다람재에서 힘을 다 써버리니, 무심사에서는 대부분 못 올라가더라구요."


"무심사 임도는 로드바이크로 넘어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에요."


어디를 가면 좋을지, 우리나라 어느 곳이 가장 인상이 깊었는지, 한마디 한마디 얘기 속에 자전거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이나 한강 근교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라이더들에겐 해발 548미터(웬만한 산보다 높다)의 이화령에 대한 모험담이나 영웅담이 흔하다.   낙동강의 일명 사대천왕에 대해선 (자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올 수록, 만나는 사람들은 이 네 고개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이화령 앞에서도 담담하기만 했던 내가, 지금 다람재 앞에서는 긴장감이 적지 않다.


다람재 입구.   저 멀리 산중턱에 "ㄱ"자 모양으로 휘어지는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온다.

지도앱을 열어 확인하니,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5.2킬로미터였던 이화령 비하면 괜찮을거야'라면 머리 속에서 화이팅을 외쳐보기도 하지만, 머리 속에서 뭐라고 하던, 두 다리는 이미 페달링을 시작했다.   한 코너를 돌고, 두번째 코너를 돌고, 한참을 올라왔는데도 "정상까지 600미터" 란다.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로, '길다'라는 생각마저 든다.   또 한번의 코너를 돌고 보니, 달성보에서 스쳐 만났던 두 청년이 자전거를 눕힌 채 땀에 젖어 지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들 생각할 처지는 아니어서 힘든 고개를 들 힘조차 아끼며 땅에 얼굴을 묻으려는 듯 힘찬 숨을 몰아 그들 앞을 지나 돌아 오를 때, 청년 중 한명이 "힘 내세요~!"  라며 큰 소리로 응원해 준다.  감사하고 또 고맙지만, 미소만으로 화답하기조차 힘겹다.   스타일은 구길 수 없어 찡긋 멋있게 눈인사를 던지듯 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 정상이 저 멀리 보이는 듯 한데, 경사가 더욱 가팔라지며, 거친 숨의 호흡이나 극에 달한 근육의 피로 뿐만 아니라, 눈 앞을 가로막듯 서있는 예상밖의 가파름에 대한 시각적 충격까지 와 버렸다.   '못 올라 갈 것 같다' 는 두려움이 점점 강해 질 때 즈음, 제 스스로 회전하는 허벅다리 덕분에 고개 정상의 모서리에 겨우 앞바퀴를 걸쳐 놓는데 성공한다.   "와~~~."   허벅지 근육 속의 현관들이 다시 숨을 들여 마시듯 감각이 돌아온다.   메마르고 거친 사포 표면 같은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자전거의 핸들바에 박은 채, "하~악, 하~악 " 부끄러움도 모른채 연신 탄성을 내뱉는다.   


다람재 정상.   탁 트인 낙동강 만큼은 더할 나위없이 시원하다.

둘째날의 이화령은 경사도가 8~12% 정도로 기억되지만, 이곳 다람재는 이미 시작점 부터 10%의 위용을 자랑하더니, 오를 수록 더해지며 정상을 남겨둔 100~200미터는 15%, 마지막 10~20여미터 구간은 15~20%에 가까운 경사로 이뤄져 있다.   '뭐 이런 곳이 있나~?.'   이제 겨우 첫번째를 지났는데, 가슴이 탁 트이듯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저만치 아래 있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자니, 좀전에 화이팅을 외쳐준 젊은 청년이 숨을 컥컥 거리며 다가와 세상에서 제일 밝은 웃음으로 "안녕하세요~? 잘 올라 오셨어요?" 라며 동생이 어제 만난 형을 다시 발견한 듯 인사를 건넨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와 함께 무작정 종주를 나섰다고 하는데, 이곳 다람재가 너무 힘들어,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단다.   다른 한 친구(호주 유학가는...)의 말로는, "그래도 저 친구 자전거는 50만원짜린데, 제거는 30만원 짜리에요~ ㅎㅎㅎ"    


어려운 취업난을 직접 피부로 겪으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동생들 같은데, 웃음과 우정 그리고 해맑은 친절을 잃지 않은, 다람재 숲의 두 요정같은 친구들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훌륭하고 만남이 소중하여, 인생 선배랍시고 어줍잖은 몇 마디를 도왔지만, 그 두 청년의 에너지와 순수함을 덤으로 얻어가는 것은 나 인듯 하다.   웃음과 수다로 기운을 차린 뒤, "행운을 빌어요~ 화이팅!  내려올 때 조심하고~" 라며 인사를 건네고 다운힐 라이딩으로 두 번째 '천왕'을 만나러 간다.


용기있고 우정어린 그 동생들

무심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지도앱을 이리저리 클릭하며 방향을 가늠하고 있을 때, 4X4 차량 한 대가 내 앞에서 서더니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온다.


"합천창녕보로 내려가세요?" 


"네~.  이쪽으로 가면 되죠?"


"네.  그런데, 무심사로 올라가진 마시고, 제가 알려드릴테니 그 길로 가세요~.    것도 없는데 무심사로 가면 고생만 실컷 하고 1시간이 걸려요.  해가 면 위험 할 수도 있으니, 제가 알려드리는 길로 가면, 젊으시니까 15분이면 충거에요. "


환경청 직원이셔서 순찰 중이신데, 이곳 사정을 훤히 아신단다.


"아~네.  감사합니다만, 저는 고생 좀 해보려구요~ ^^  무심사는 이쪽이죠?"


"네~ 허~ 참~^^  그러세요.   근데, 숙소는 정해 두셨죠?  시간 걸릴 수 있으니, 확인 꼭 하셔야 되요~"


호의로 말씀해 주셨는데, 결국 '잘난 채'가 되어 버린 건 아닌지...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그걸 포기할 순 없었다.


무심사 입구에 서 있는 길 안내판.  이곳에서도 우회로를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무심사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 아래 한마디.

무심사 진입로에 서 있는 우회로(안내판 내 노란색 라인, 레드라인은 '그' 무심사임도) 안내판이 다시 한번 나를 유혹하지만, 어렵다 우회할 것이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란 당연한 생각으로 주저 없이 페달을 밟는다.   완주 후 깨달았지만, 로드바이크와 MTB 코스가 같을 순 없다.  무심사 임도, 영아지마을 임도는 MTB용 코스로 로드바이크로 라이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핸들바를 잡은 손이 튕겨나가려는 듯 자갈돌들을  시멘트길에 일부러 촘촘히 심어 포장한 그런 길이다.   두 손이 달아나지 않도록 핸들바를 꼭 부여잡고 털털거리며 한동안을 굴러가듯 달린다.   타이어 펑크가 금방이라도 날 것 같은 길을 겨우 통과하여 무심사 사찰입구다.   돌아가긴 늦었고, 앞으로 어떤길을 만나게 될런지, 해지기 전에 마칠 수 있을런지...


무심사 사찰 입구.   위로 보이는 석탑 옆으로 난 길이 문제의 그 길이다.
사찰 입구에서 날 반겨주는 바둑이.

잠깐 동안의 경건함으로 안전 라이딩을 기원하며, 이제는 뇌의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움직이는 두 다리...   다람재의 긴 코스와 달리 짧지만, 공포를 가져다 주기 충분한 무심사 경내의 임도길의 충격적 경사에 또 한번 놀라지만, 두 다리가 잘 버텨주어 한번에 올라선다.   낙동강 위로 흐르는 풍경소리~  꼭 듣고, 봐야했던 오늘 코스의 컨텐츠였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의 떨림이어도, 이 멋진 풍경에 갑작스레 찾아든 평온함.  구름위에 선 느낌이 이런걸까.

이어지는 두 번째의 급경사 오르막길만 통과 해내면, 다음은 조금 쉬워진다.   물론 곧 바로 이어지는, 다양한 블로그로 잘 알려진, 비포장 흙길(약 100미터?)은 로드바이크는 당연히 끌고 가야 한다.   흙더미의 깊이가 거칠고 깊어, 로드바이크의 얇은 바퀴는 대부분 진행이 안되거나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전형적 MTB 트레일이다.


내리막은 (오르막의 경사가 말해 주 듯) 급경사 구간이 많다.   내리막의 경사는 오르막의 그것 보다 훨씬 위험하다.   손이 마비되지 않도록 브레이크 컨트롤과 엉덩이를 한껏 뒤로 옮겨 안간힘을 써서 겁먹은 채 내리막을 달려 내려온다.


한껏 달려 내려오다보면 코 끝에서 길옆의 우사를 알게된다.  무심사 임도의 끝이다.


다람재와 무심사.


이 두 코스를 지나오면서 "죽는 줄 알았다"는 표현,  "토 나오는 줄 알았다"는 표현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람재 마지막 구간에서는 고통스런 나머지, 입 밖으로 내뱉는 거친 호흡에 연신 흘러내리는 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체력과 근력, 그리고 담력을 요구하는 코스들이다.


무언가를 끝냈을 때, 기분 좋은 성취감을 맛 볼 수 있다.   때때로는 이 성취감을 넘어 '기쁨의 여운'이 오래가는 것들이 있다.   '이까짓게 뭐라고.' 하지만, 그 여운을 실컷 느껴 본다.


저녁노을과 함께 여행 마지막 숙소로 향하는 길.

기분 좋게 합천창녕보 인증을 마치고, 이번 국토종주 여행의  마지막 쉼터로 간다.   허기도 때마침 찾아온다.   그리고 때이른 아쉬움도 함께 찾아든다.


합천의 적포교 앞 마을. 숙소가 위치한 곳이다.

넷째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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