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로드바이크 라이딩
최근에 '불쾌감'이라는 것을 경험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되는 날이 잦아졌다. 몸 담고 있는 조직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늘상 있을 수 있는 '경쟁' 상황 때문인데, 상대의 Fair하지 못한 행동이나 방법을 접하게 될 때는 이런 '심기 불편함'이 종종 유약한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고, 심할 경우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잃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건 우리 프로젝트가(일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서로를 격려하지만,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각자의 마음 속에 크고 작게 일어나는 불쾌감이나 실망감을 다스리고 흔들림이 없는 집중력을 되찾는 것은 각자의 몫인 듯 하다.
이럴때 일수록 자전거 라이딩은 쓸데없는 잡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잊고 살았던 단순한 삶을 이해하는 지혜를 또 다른 방법으로 일깨워 주기 때문.
오늘처럼 로드바이크를 몰아 남산을 오르는 것은 작년 봄 부터 이어오고 있는데, 벌써 횟수로 열두어번을 훌쩍 넘긴다. 땅이 얼어버리는 겨울엔 경사가 있는 업힐과 다운힐 라이딩은 하지 못하는 걸 감안하면, 틈나는대로 참 부지런히 남산을 오른 셈이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지 않고 남산을 올라 본 적은 없으니, 이정도면 남산은 내게 라이딩 훈련장이나 다름없다.
그런 남산 라이딩 코스 중에, 라이더들이 흔히 관심을 갖는 기록구간이 있는데, 국립극장 근처의 코스 시작점(라이더들에겐 "약수터입구"로 불리운다.)에서 쉴 새 없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의 종점(남산타워 바로 아래 버스 정류장인 "주차장입구" 도착지점)까지의, 평균경사도 6.5%, 구간거리 1.8킬로미터의 업힐 라이딩 코스다. 이 구간을 5분내에 주파하는 국대급 라이더들도 있지만, 나름의 부지런한 라이더들도 10분 내에 코스를 완주한다. 지난 여름, 나는 7분 대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었는데, 겨울을 나면서 늘어난 몸무게 때문인지, 자주 자전거를 타지 못한 탓에 근육의 기억을 잊은 탓인지, 봄기운과 함께 다시 찾은 남산 라이딩의 기록은 지난 여름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일년여 전 첫 남산 업힐라이딩에선 숨 쉬느라, 다리 근육의 통증과 싸우느라 바빴다. 가본적 없는 도착지점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지, 경사도는 어떨지, 뒤쫓아 올라오는 버스와 길은 어떻게 나누어써야할지, 무서운 도로 대신 보행자로를 이용해도 될지, 모든게 낯설기만 했다. 끝이 없을 것 처럼 느껴지는 그 라이딩 중엔 생각할 겨를이나 주변의 경관은 잘 인지되지 않는다. '쿨(Cool)하고 멋진 도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그렇게 시작한 라이딩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페달에 얹은 채 대형버스들로 즐비한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한다. 이땐, 그 자체만으로 뿌듯했고, '해냈다.'라는 기쁨으로 그 휴일 하루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첫 '완주'는 그 후로 나 스스로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남산을 올라가 보지 않은 라이더' 에서 '올라가 본 라이더(그것도 중단 없이 한번에)'로.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동안 단 한번' 일어난 이벤트는 몇달 뒤, 몇주 뒤, 그리고 급기야 다음 한주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지난 여름 7분51초의 개인기록은 그 즈음에 만들어졌다. 함께 오르는 친구 라이더를 따라잡거나 따돌리거나, 모르는 라이더라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맛에 한창 남산 라이딩의 맛을 들인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약수터입구'에서 '주차장입구'까지의 단순한 기록은 더이상 큰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된다. 다회전(일방통행인 남산코스를 2~3회 회전하며 오르고 내리는)으로 근지구력 운동효과를 올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하고, 주변에 이어진 새로운 코스와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발견하기도 하며 또다른 재미와 목표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즈음에는 딱히 비교대상이 없거나 '경쟁(Racing)'의 의미는 줄어들고 라이딩은 '나의 색깔'이라는 의미로 바뀐다. 심지어, 허벅지의 고통이나 차오르는 호흡을 친구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진정한 내 방식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시작하던 첫날부터,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남산은 오래 전 부터 그곳에 있었을 뿐이니 오르막길의 경사가 힘들다 탓하지 않고, 머지않아 만나게 되는 비슷한 선택을 한 라이더들과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그런 '경쟁아닌 경쟁'은 나를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함으로써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소소한 성취감에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사회적 동기를 부여한다. 훌륭한 체력과 건강을 가진 저 멀리 앞서가는 라이더의 수준에 조금더 가까워지고자 내일 그리고 다음주 다시 찾게 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을 지난 어느날, 알지 못했던 이 일의 의미와 기쁨을 오롯이 즐길 줄 아는 여유를 만나게 된다. 다리 근육으로 전해오는 독특한 고통과 호흡을 견디며 라이딩을 하는 동안, 페달을 저어가는 일에만 집중해야 될 것 같던 그 예전의 기대와는 달리, 새롭게 찾아오는 이런 여유와 풍만감은 '익숙함과 숙련됨'이 주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
내가 선택한 그 일이 남들에게도 선택 받고 있다면 그만큼 값진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과의 부대낌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를 밀어주고 끌어당겨주는 엔진의 연료와도 같은 것이라 믿는다.
일과 취미생활은 다른 것이어서, 그 내용에서 비교되기 힘든디테일들이 없지 않을 것이지만, 닮아 있는 부분 또한 작지 않다.
일 역시, 처음 시작할때는 내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여 웬만한 난관에 너그럽다. 먼저간 이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하여 겸손하기 그지 없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하나 둘 익힘을 거듭하며 익숙해지기 시작할 즈음, 세상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온전히 하게 내버려두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도 하나 둘 만나게 되는데, 그 일이 어떠한 각도에서건 값어치 있는 일 일수록, 조력자와 경쟁자, 후원자와 훼방꾼, 그리고 관찰자들이 많아지는 법이다.
내가 선택한 그 일이, 남들에게도 선택 받고 있다면, 그만큼 값진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과의 부대낌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를 밀어주고 끌어당겨주는 엔진의 연료와도 같은 것이라 믿는다.
그러하니, 괜한 스트레스로 힘들어 할 필요도 없고, 그들(특히, 경쟁자와 훼방꾼)에게도 쿨(Cool)함을 잊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지혜로운 내 동료의 말 처럼, "이건 일이 잘 되어가고 있는"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시말해, 경쟁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이미 발전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다다르게 될 아름다운 숙련됨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