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슬을 가르는 질주
담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과 자전거를 실었다. 피곤했던 탓인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지만, 잠결에서도 느려터진 경부고속도로 때문에 마음은 다급해져만 간다. 토요일 오전 서울을 벋어나는 고속도로가 번잡할 것이란 생각을 미처 하지못한 채 담양에서 목포까지의 라이딩을 마치고 당일 서울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워 놓은 터이다. 담양버스터미널에서 담양댐까지는 자전거로 거슬러 올라, 그곳에서 다시 목포를 향해 흐르는 영산강변을 되돌아 라이딩할 계획이다. 총 130여 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다.
전라도를 많이 여행해보지는 못했다. 두해 전 섬진강 자전거여행과 전주가 고향인 벗의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그곳을 들렀던 오랜 기억정도이다. 담양, 광주, 나주, 그리고 목포. 오늘 영산강의 물길을 통해 만나게 될 곳들이다. 게중에서도 목포에 처음 가 볼수 있다 여기니 은근한 기대감조차 든다.
담양에서 유명하다는 돼지갈비 석쇠구이로 늦은 점심을 마치고 식당이 위치한 그 길을 따라 영산강을 만나러 자전거에 오른다. 곧 화강암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다리가 보이고 그 입구에 자전거를 안내하는 익숙한 자전거길 표지판이 나타난다.
강둑 위에 조성된 여느 강변 자전거길과는 달리, 강 옆에 거의 나란하다 싶을 정도의 가까운 곳으로 난 자전거길 덕분에 조그마한 강이 한 층 더 친근하기 까지 하다. 영산강은 그의 상류와 만나는 담양을 그렇게 조그맣고 아늑하게 품고 있었다.
영산강 상류의 자전거길은 포장 소재를 잘못 선택했다. 붉은 우레탄 소재로 자전거길을 포장했는데, 보행로였다면 몰라도, 자전거에겐 최악의 선택이다. 메타세퀘이아인증센터에서 담양댐에 이르는 구간 내내 붉은 바닥이 나의 두바퀴를 끈질기게 잡아당기는 통에 시작부터 다리힘을 꾀 끌어다 써야했다.
이번 영산강 라이딩에 함께한 친구들은 선수급의 체력과 근력을 지녔다. 철인삼종경기를 취미삼아 도전하는 라이더이자 나를 지난해 봄 춘천까지 왕복 라이딩을 끌어준 훌륭한 코치이기도 하다. 또 다른이는 로드바이크 자전거 입문은 나보다 늦지만, 오랜 스피닝 훈련으로 뛰어난 근력과 체력을 지녔다.
오늘 라이딩의 시작점인 담양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시간은 깊은 오후로 접어든데다, 우레탄으로 포장된 어이없는 자전거길을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선수급 로디(로드바이크 라이더)들과 주저없이 국도로 들어선다. 영산강 주변 도로나 자전거길은 업힐이 거의 없는 평지다. 휴일 오후여서인지 한적하기만 한 도로는 세명의 로디에게 탁 트인 아스팔트길을 제공해 주었다.
해질녘에 나주에 도착했다. 한때 광주의 기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다가 10여년 전부터 조성되어온 "혁신도시"의 불씨를 타고 도시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해 간다고 한다. "혁신"이라는 단어로 부터 풍겨오는 기대감에 부응이라도 하듯, 대형 옥외간판에 예술적 창의성으로 해체하듯 필요한 메세지를 담은 대담함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보아온 저물어 가는 태양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날만큼은 최상의 빛을 뒤로 던지며 저편으로 넘어간다. 라이딩을 통해 만난 나주는 그 순간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나주 영산강의 지류인 만봉천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우리를 위한 깜짝 환영파티라도 열어주듯, 나무가지와 잎으로 드리워진 길로 들어서자 조명이 하나 둘 밝아지며, 탄성을 자아낸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 늦은 길을 재촉하는 와중이었지만,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광경이다.
익숙한 시골의 냄새를 들이키며 조용한 나주의 마을길을 빠져 나올 즈음, 붉은 태양의 뒷 자리도 나주를 벋어나듯 그 자리는 금세 어둠으로 채워진다. 덕분에 죽산보의 유명한 야경을 만끽하는 행운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이제부턴 칠흙같은 어둠이다. 인적이 없는 숲이나 강변을 달릴때는 우리 셋의 전조등과 빨간 후미등만이 유일한 의지가 된다. 고백하자면, 혼자서는 달리지 못했을 법한 어둠이자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휙하고 전조등 앞을 가로지르는 고라니(고라니라 믿는다), 길 한쪽 구석에 웅크린 들고양이, 그 외엔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맑은 밤하늘의 만월이 좌측이 숲, 우측이 강일것이라 알려주지만, 확신은 못한다.
영산강 자전거길. 중간중간 국도를 이용하기 위해 자전거길을 벗어나기도 했지만, 코스의 대부분은 콘크리트 포장바닥의 농로와 아스팔트 국도로 이루어진 길인 듯 하다. 물론, 메타사퀘이아인증센터에서 담양댐인증센터까지의 우레탄 포장 자전거길은 예외다. 전라남도 평야의 평지 특성 때문인지 업힐이 드문 아스팔트길을 만나면 로드바이크를 그 길 위에 그냥 풀어놓으면 된다. 고속의 케이던스라이딩 (일정한 회전속도로 지속하는 페달링)을 시원하게 한껏 이어갈 수 있다.
우리 셋이서 전세라도 낸 듯한 목포로 향하는 도로이다. 휴일 저녁이라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한적한 도로위를 어둠을 뚫으며 체인회전의 굉음과 함께 달려 나간다. 이제 막 밤 9시를 넘기고 있지만 서울의 새벽 2~3시의 감각이다. 볼가를 스치는 차가운 밤공기가 그렇고, 어둡고 한적한 도로위에서 한층 밝아진 교통신호등 불빛이 그렇다.
어떤이는 영산강 자전거길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고 하지만, 늦은 시각에 라이딩을 이어가면서, 기대하지 못했던 그만의 특별함으로 가득했던 그런 라이딩이다. 하나 둘 이런 경험을 하고나면, 어느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고 가볍게 여기지 못하게 된다.
끝.
1. 메타세쿼이아인증센터 ~ 담양댐인증센터 우회로
"금성산성로"와 "담순로"를 이용해 우회할 수 있다. 물론, 도로 라이딩이 익숙지 않은 라이더나 한번즈음 정식 자전거길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2. 보급
영산강 자전거길은 보급이 원활하지 않다. 담양댐 인증센터 옆에 위치한 편의점이나, 승촌보에 위치한 편의점 정도가 물과 에너지를 보급할 수 있는 장소다.
나주 황포돛단배나루터 맞은편에는 홍어를 요리하는 식당이 모여있어 지역음식으로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