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캘리포니아 주말 자전거여행 2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토요일 실리콘밸리의 산악도로 라이딩은 긴 업힐과 낙타등 코스로 갈증과 근육피로가 작지 않았지만, 다시금 가뿐한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라이딩 테마를 골라 두었다. 서니베일(Sunnyvale)역에서 칼트레인(Caltrain) 첫차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싣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해변, 골든게이트브리지(Golden Gate Bridge 일명, 금문교)를 자전거로 다녀오는 여정이다. 좀 더 사람 냄새 풋풋한 여행을 기대하면서.
처음 이용해보는 캘리포니아 열차여행인 만큼, 첫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티켓팅과 자전거 싣는 방법 등 여유를 갖고 하나하나 체크해야겠기에 일찌감치 서두른다. 내가 쫌 부지런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ㅎㅎ
사실, 돌아오는 칼트레인과 자전거 반납시간까지 계산해보니,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라이딩 시간이 기대만큼 길지는 않았기에, 열차를 놓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놓친 열차 다음은 1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만날 수 있다.
서니베일(Zone 3)에서 샌프란시스코(Zone1)까지는 8.25불이다. 스크린에 표시된 가격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 끝. 티켓을 뽑아들고 열차를 기다린다. 그 누구도 티켓을 검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저도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사진을 찍어준 청년은 어디서 왔느냐며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운 얼굴로 말한다.
"저도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아, 그래요? 이런 우연이 있나요? 그럼 한국어를 하세요?"
"아뇨. 전혀 못해요. 태어난지 16개월만에 이곳으로 입양되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좋은 곳에 사시는게 부러워요. 실리콘밸리 잖아요."
17세 고등학생인 청년은 일요일 아침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토이샵에 일을 하러 출근 중이었다. 입양해주신 지금의 아버지가 은행간부인 만큼, 금전적 이유는 아니고 대학 진학전에 사회와 경제활동을 경험해 보기 원해서란다. 나중엔 엔지니어로 게임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 똘똘한 청년이었다. 자연스레 한국의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보답으로, 진심으로 그 청년의 미래를 위해 행운을 빌었다. 그럴 자격이 있어 보였다.
기차가 들어오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 뒤, 표시된 자전거 차량에 올랐다. 오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국의 서울-경기 기차도 주말에는 양 끝쪽 차량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고 약간의 시설도 마련되어 있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실용적 구조와 디자인으로 자전거 이동의 편의를 극대화 한 차량 구조였다. 이곳을 오가는 많은 자전거 커뮤터들에게 주중에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교통수단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꾀 시간이 걸리는 것 빼고는 괜찮은 여행이다.
서니베일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1시간30분, 우리나라 경춘선이 떠오를 만큼, 그 중간의 역마다 선다.
10시 30분 즈음, 종점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처음 이용해 보는 기차역사를 구경하는 것도, 기차에서 우르르 내려선 주말 여가를 보내려는 지역 주민들을 보는 것도 신선했다.
역에서 내려, AT&T 파크와 피어30을 연이어 지나, 디자인회사로 오랜 명성을 떨친 IDEO가 있는 오클랜드베이브리지(Oakland Bay Bridge) 아래를 지체없이 통과한다. 이쪽 지역은 몇 번 출장을 통해서 들러 본 곳이어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샌프란시스코의 북쪽지역으로 올라가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Pier는 부둣가의 선착장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부두선착장들을 개조해 사무/쇼핑시설 들이 많이 들어서서 샌프란시스코를 개성있게 만드는 명소가 되었다. Pier 30, 24, 4... 이런 식이다.
Pier 39를 지나면 곧 샌프란시스코의 북쪽해변이다. 그 해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 지역에 이어 골든게이트브리지가 나오고 그 다리를 통해 아름다운 예술마을, 소살리토와 더 오르면 우리에게도 와인 명소로 익숙한 나파밸리와 소노마밸리다. 소노마 밸리는 몇 년 전, 홀로 미국을 여행하던 시절, 와인 문화가 궁금해 잠시 들러 쉬어갔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오늘은 다리를 건넌 뒤 바로 뒤돌아 와야한다. 정말 아쉽다.
골든게이트브리지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다리아래 포트포인트(Fort Point)에서 잠시 머무르며, 이 순간과 땅을 느껴본다. 마치 오랜 고목의 나무결처럼 찢어질듯한 녹슨 쇠사슬은 그 어마어마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마치 골든게이트브리지의 힘과 무게를 대신 말하듯 다리 교각아래로 보이는 그 모습은 연약해 보이기 그지 없다.
이제 다리 위로 오를 차례다. 그 명성에 맞게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게중엔 관광용 자전거를 타는 가족 여행객들과 다리를 건너 북쪽 도로 라이딩을 나가는 저돌적인 사이클리스트들이 한데 섞여 상행과 하행의 큰 흐름을 이룬다. 다리 건너로 보이는 검붉은 바위산은 다리아래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흐르는 요트들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오늘은 눈이 호사로는 날이다.
다리 위에선 생각보다 여유는 없다. 그도 그럴것이 바다 위 허공에 뜬 채 강한 바람과 좁은 길목을 상행 하행으로 나뉜 라이딩 행렬이 분주히 움직이는데다, 초보라이더(대부분 관광객)는 틈나는대로 자전거를 세워 단체 사진을 찍거나 - 물론 나도 그랬다. - 불쑥불쑥 좌우를 오가는 통해, 빠른 속도의 라이더들은 빠짝 긴장한 채 페달링을 이어간다. 그 커다란 현수교 위의 붉은 쇠 기둥과 파이프들은 그 공간을 지탱하며 베이만의 바람과 어울려 굉음의 휘파람을 연주하고 있다.
하마터면 내일 일정이고뭐고 내팽개쳐 버리고, 캘리포니아에서의 일탈의 미학을 추구할 뻔 했다.
골든게이트브리지를 건너 맞은편 광장에 도착하자, 또다른 세계가 열리며 내 페달링 본능을 유혹한다. 앞쪽으로 놓인 도로는 골든게이트국립휴양지의 업힐 라이딩을, 다리 아래로는 소살리토로 이어지는 해변도로가 내 자전거를 끌어당긴다. 하마터면, 내일 일정이고뭐고 내팽개쳐 버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일탈의 미학을 추구할 뻔했다. 그도 나쁘진 않겠지만, 미국산 토종 자전거를 잘 달래서 뒤돌아선다.
주말엔 Farmer's Market이 도로위에 열리기 마련인데, 늘 신선한 과일과 갓 요리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 마침 화창하게 갠 하늘이 거리의 마켓에 꽃과 과일들 그리고 시장바구니를 든 여인네들을 한폭의 그림으로 만든다. 늦은 점심을 해결해야하기도 하고, 기차 시간 까지는 조금의 여유가 있어 마음에 드는 적당한 부스를 찾아 음식을 주문하고 자릴 잡았다.
옆자리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두명의 자전거여행객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외곽 남쪽에 살며 아들과 함께 주말 라이딩을 즐기는 중이란다. 내 대여 자전거 Niner를 알아보길래 인사를 건냈는데, 얼마전까지 인천 송도에서 5년간 거주하다 2달 전에 본국으로 돌아온 가족이란다.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는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다. 중학생 남짓한 아들은 아빠가 자연스레 대화를 하자 중간중간 서스럼없이 대화에 참여한다. 아침에 기차역에서 만난 한국에서 태어난 청년의 기억과 함께 기차-자전거여행이 가져다 준 두 번째 우연한 만남이다.
다시 기차 안이다. 자전거를 묶는 것도 훨씬 능숙해졌고, 나처럼 출장을 왔다가 주말 자전거 여행을 나온 동승자를 도와 자전거를 묶어주는 여유까지 부린다. 클릿슈즈와 라이딩수트까지 입은 내가, 그 사람에겐 로컬인으로 보였던 것 같다. 자전거 묶는 것 좀 도와달란다. 자긴 처음이라서 자신이 없다면서. ㅎ
어제보다는 여유롭고 색깔이 확연히 다른 도심라이딩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지나친 기대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