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자전거여행 4, 지안재-오도재-성삼재-정령치
아직도 깜깜한 새벽을 나선다. 어두운 탓인지 겨울이 다가올수록 이른 아침 몸을 일으키는 데 몇 줌의 힘은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은 함양으로 떠난다. 네번째 백두대간 라이딩이자 지리산 지안재, 오도재, 성삼재, 마지막으로 정령치를 거쳐 남원으로 라이딩하기로 한 날이다.
올해 백두대간 라이딩의 마지막 라이딩일 듯 하여 더욱 특별하기도 하지만, 오랜 지기인 "처린"과 함께한 라이딩이어서 더 힘나고 즐거운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격차가 나는 체력과 라이딩 근력을 또한번 절감한다. 처린은 클럽라이딩에서 늘 맨 뒤에서 함께하는 이들을 챙기느라 앞으로 잘 나서지 않는 그런 친구다. 그러서인지, 가끔 이 친구가 철인삼종경기 선수라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취미생활이긴 하지만, "올림픽"코스가 아니라, 정말 풀코스 "철인"경기 선수다. 그런데, 또한번 그 사실을 잊은채 함양에서 첫 출발 부터 그의 페이스를 따라가려다 한계를 깨닫고는 아에 포기하고, 멀찌감치 앞서 지리산 고개를 오르는 뒷모습만 바라본다. 그래, 스포츠는 나 자신과의 싸움인게지. 아무렴. ㅎ
방금 팔레트에 담구어졌던 붓을 여기저기에 세워놓고 잠시 쉬기라도 하듯, 노랗고 주홍 빛깔의 잎들 끝자락들만 발갛게 물들어 있다. 수채화를 그리던 중인양.
함양에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안재를 만난다. 꼬불꼬불 겹겹의 헤어핀 모양의 재를 오르는 차량불빛을 긴 노출로 찍은 멋진 야경사진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재를 오르는 길은 길지는 않지만, 경사각도가 만만치 않아 아직 풀리지 않은 근육들을 한것 달구어 놓는다. 게다가, 함양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기사식당에서 너무도 맛있게 먹은 점심에 꾀 매운 고추가 섞어 있었나보다. 그 고추 덕택에, 숨도 차고 허벅지 근육도 적잖이 놀라 힘든데, 움직이는 몸의 리듬에 맞추어 위 속까지 쓰라린다.
그래도, 오늘 지리산에 왔다. 지리산 단풍의 절정으로 부터 한 두 주가 지난 시점이어서, 그 잎들이 많이 떨어져 앙상하리라 생각했는데, 지리산은 그 마지막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반긴다. 마치, 누군가 지리산을 붓으로 그려내다 방금 팔레트에 담구어졌던 붓을 여기저기 세워놓고 잠시 쉬기라도 하듯, 노랗고 주홍 빛깔의 잎들 끝자락들만 발갛게 물들어 있다. 수채화를 그리던 중인양.
오도재.
2년 전 라이딩 시작 후, 처음으로 '끌바'를 생각했을 정도다.
지안재를 지나, 오도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마전 다녀온 한계령과 미시령은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여겨질 정도로 높은 경사각이 변화없이 주욱 이어져 있다. 산의 지형이라는게 높낮이가 들죽날죽할터인데, 일부러 이렇게 도로를 닦은양, 3km에 가까운 가파른 길(평균 13%)이 재 정상까지 이어져있다.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헬멧 속모자의 챙 끝으로 땀방울이 쉴새 없이 떨어진다.
2년 전 라이딩 시작 후, 처음으로 '끌바'(자전거에서 내려 끌고가는 바이크)를 생각했을 정도다. 몸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점심도 아직 무거운 탓도 있겠지만, 낮은 지안재를 빼면, 오늘 지리산의 세개 고개길 중, 이제 그 첫 번째를 넘고 있는 것 뿐인데, 오늘 라이딩이 꾀 특별할 것 같은 불길함이 일었다. 고갯길에 차량이 없을 땐, 길의 폭을 전부 활용해 지그재그로 바퀴를 굴리며, 조금이라도 경사각도를 줄여보지만, 긴 거리이다 보니, 그것마저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
성삼재.
'정말 길다'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뱉어져 나온다.
지독했던 오도재를 넘어, 급경사의 긴 내리막을 지나고, 이제 성삼재와 정령치를 향하는 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연신 물을 들이켜도 쉽게 갈증이 가라 앉지 않는다. 성삼재와 정령치는 오도재보다 더 높고 큰 고개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엔 탄천 자전거길로 이어지는 경사각 20%의 짧은 나들목이 있다. 연습삼아 이곳을 자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3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높은 경사가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오는데 꾀 집중력 높은 근력과 요령을 필요로한다. 성삼재는 그런 지독한 경사까진 아니더라도 그 길이 5km이상 이어져 있다. 물론 대부분 10% 전후이지만, 커브길마다 15~20% 가까운 순간 경사각을 이룬 곳들이 많고 꼬불꼬불한 경사가 꾸준한데, 성삼재에서 이어지는 노고단 등산이 유명해서인지 세 고개길 중 차량의 통행량도 많아 차량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스트레스까지 한몫한다. 뒤에서 올라오는 차들의 엔진소리조차 힘겨울 정도인데, 오른 쪽 허벅지는 스스로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이미 경련이 시작된다.
한 바퀴 한 바퀴, 이렇게해서 언제 도착할까 싶었던 성삼재도 결국은 눈 앞에 두고 만다. "정말 길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뱉어져 나온다. 노고단을 찾는 등산객으로 가득한 성삼재를 얼른 빠져나왔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어, 서울로 되돌아가는 버스시간도 맞춰야하니, 근육이 쉴 틈을 갖지 못한다. 정령치로 향하기 위해서는 성삼재를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올 수 밖에 없는데, 브레이크를 잡는 손이 마비될 지경으로 길고긴 다운힐 라이딩은 힘겨웠던 좀전의 오르막(업힐)라이딩의 기억을 고스란히 환영처럼 보여준다.
정령치.
양쪽 다리는 번갈아가며 근육경련으로 굳어졌다 풀어졌다를 반복한다.
그 초입부터, 성삼재 업힐에서 시작된 근육경련이 바로 찾아왔다. 성삼재 정상에서 전혀 쉬지 못한 탓일 것이다. 멀찌감치 먼저 올라간 처린이 많이 기다려야하겠지만, 양쪽다리 모두 경련으로 고통이 적지 않은 탓에, 페달을 느릿느릿 밟을 수 밖에 없다. 자칫 너무 심해져서 더이상 페달링을 못하게 되는 상황은 피해야하니.
양쪽 다리는 번갈아가며, 근육경련으로 굳어졌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허벅지, 다음은 종아리, 왼쪽 오른쪽을 오가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페달링을 이어가니 굳어졌던 근육경련이 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바닥난 체력에 비해서 정령치의 고갯길 마저도 너무 길고 높았다. 성삼재보다 더.
저 멀리 정령치 너머로 해는 기울었고, 맞은편으로 느릿느릿 내려오는 차들은 전조등을 밝혔다. 지프의 운전자는 일부러 창을 내려, 내게 "화이팅"을 외쳐준다. 늘 이런분을 만나면 고맙고 반갑다. 물론, 나 같은 무모한 라이더들이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남원으로.
그마다의 특별한 시간에 저마다 지닌 귀중한 찰라의 모습을 선사한다.
정령치의 고갯길이 눈 앞에 보이니, 처린은 석양을 등지고 서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라이딩을 이어가는 나를 촬영해 주느라 여념이 없다. 고맙고 미안했다. 정령치 표지석 뒤로는, 한낮의 지리산 보다 한층 붉은 석양이 지리산의 서쪽 하늘을 태우고 있었는데, 이렇듯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그 마다의 특별한 시간에 저마다 지닌 귀중한 찰라의 모습을 선사한다. 이 맛과 그 멋에 자전거여행을 그만두기 어려운가 보다.
불타는 지리산 정령치의 석양 속으로 뛰어들 듯 탄성을 지르며, 아래로 아래로 치닫는다. 저 멀리, 남원시의 불 빛이 석양아래로 찾아든 땅거미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장관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그 순간을 담고 싶었지만, 이미 어둑해진 길에 가파른 경사 때문에 그냥 기억 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한 낮의 뿜어지듯 쏟았던 땀은 이제, 지리산 늦가을 찬바람에 살갗을 스치는 추위로 바뀐다. 입술은 떨리는데, 암흑의 내리막은 끝날 줄 모른다. 자전거 전조등 불빛에 의지한채 한참동안 지리산 정령치 자락 내리막을 내려와야했는데, 처린이 없었더라면 혼자서는 외롭고 무섭기까지 했을 법한 일이다.
전라도 남원의 맛난 음식은, 남원고속버스터미널의 세븐일레븐의 컵라면과 삶은 달걀로 대신해야했다. 그나마, 버스시간에 댈 수 있었던게 다행이다. 예상치 못했던 난이도에 처린이나 나나 모두 놀랐고, 진땀을 흘려야했던건 둘다 마찬가지였나보다. 두다리가 느끼는 후유증은 많이 달랐겠지만...
상상 못했던 가파르기와 거리였지만, 그리고 한 바퀴 한 바퀴 그런 속도로는 어림없어 보였지만, 끝내 마무리 지었고, 지금은 두다리에 남은 기억으로 편안한 잠을 청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