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오르며 만난 설악, 설악산 자전거여행

한계령-진부령-미시령


태풍 콩레이가 요란하게 이 땅을 할퀴고 지나간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낙산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버스좌석아래 짐칸 어딘가에 가지런히 뉘어져 있을 내 자전거와 함께다. 한 달쯤 전, 백두대간을 13개 스테이지(Stage)로 나누어, 틈나는대로 한번에 1개 스테이지씩을 나누어 라이딩하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한달에 1~2개 스테이지를 다녀올수만 있다면, 백두대간 라이딩여행은 짧게는 반년, - 물론, 아주 부지런해야할듯 한데, 현실적이진 못하다 - 한겨울은 백두대간 라이딩은 어림도 없으니, 일년하고도 서너달은 더 필요하다. 직딩답게 1박은 가능한한 피하고, 당일 출발과 복귀를 원칙으로. 오늘 세 번째 백두대간 라이딩여행 코스는 제일 북쪽에 위치하여 스테이지 원(One)에 해당된다. 대략 99킬로미터의 거리다.


경유지인 원통버스터미널을 잠시 구경했는데, 저 멀리 설악산 자락의 낮은 골짜기 마다 안개가 내려앉아 오늘 라이딩에 앞서 날 겁이라도 주려는 듯 하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지점 낙산으로 이동하며 한계령을 지나는데, 겁이 덜컥났다. 아침안개와 청명한 햇살이 어우러진 깊은 숲의 멋진 경치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버스도 힘겨워하는 이 끝없는 고개길과 차원이 다른 그 스케일에 압도되고 만 것이다.


버스에서 바깥으로 보이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더불어 바짝 쫄기도 했다.
낙산으로 향하며 한계령을 막 넘어 내리막에 접어드는 버스의 창 넘어로 보이는 아침의 설악
코스 (총99km)

낙산종합버스터미널 도착 - 7번국도와 44번국도를 이용해서 한계령으로 진입 - 가라피리 기점 15km 업힐 - 한계령 - 44번 국도를 타고 15km 다운힐 - 고원통로(400km 서울-속초 자전거코스) - 진부령로를 따라 6km 업힐(경사도 낮음) - 진부령에서 다시 되돌아 미시령옛길로 미시령업힐 6.8km -다시 미시령 옛길로 56번국도와 만나는 지점까지 다운힐 7.3km - 56번 국도를 이용 속초진입 후,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

팁: 버스를 타고 서울/경기에서 이동할 경우 양양과 낙산 전, 오색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출발하는 것을 추천한다, 낙산과 양양일대의 44번 국도의 위험한 공도(터널포함) 라이딩을 피해 거리도 단축할 겸, 안전하게 한계령 업힐을 시작할 수 있다.
대략 오늘의 코스 by Strava

낙산에 내린 승객은 나 한명이었다. 버스를 만석으로 채웠던 44명의 승객은 한계령을 넘어오며 모두 하차했는데,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모두가 이른 설악의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객 승객이었고 나홀로 라이딩여행 승객이었던 것. 호기심 때문에 계획대로 낙산에서 하차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오색" 근처에서 하차했더라면 더 나았을 법하다. 그만큼 낙산에서 한계령 입구까지의 경로가 안전하지 않다. 갓길이 전혀 없는 "남설악터널"을 지나야하는 것도 그렇고.


그나마 이점이었던 것은 버스를 타고 오며, 자전거로 되돌아와야할 길을 미리 봐둘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솔직히 겁이 더 났다. 차창을 넘어 바라보는 그 길은 너무 높고, 길고, 험악했다.


낙산에 홀로 내린다. 버스 짐칸에서 자전거도 내린 후 바로 옆 세븐일레븐에서 작은 생수 두통과 팥빵 하나를 집어들어 출발 전 갈증과 허기를 달랜다.


얼마나 왔을까? 낙산과 양양을 잇는 사나운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까지 마지막 주유소'라는 간판을 지나치니, '이제 시작이겠구나' 라며 긴장감이 인다. 이곳부터 업힐의 경사각이 달라지기도하고 한계령까지는 15킬로미터다. 북악산 업힐이 경복궁길 기점으로 대략 4킬로미터이니 그길의 4배거리에서 조금 모자란다. 긴장이 안될수 없다.

가라피 마을 입구의 한계령마지막 주유소
그 중 홀로 나를 앞서가던 모터바이크 한대가 조금 앞서 가는 듯 싶더니, 오른팔을 들어 엄지를 세워 보인다. 힘이 난다. 그런 멋진 사람들은 뭘 해도 주위의 사람들이 힘이나게 도와주는 모양이다. ㅎㅎ


오색버스터미널 입구 즈음이었던것 같은데, 이곳에서 경사각은 더욱 눈에 띄게 달라지며, 오르는 차들도 줄지어 정체를 보일 정도로 높아진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곳부터 한계령 정상까지 9킬로미터의 거리에 경사도는 남산보다 약간 높은 6.7%를 기록하는 곳이다. (참고로, 남산은 1.8킬로미터의 거리에 6.4%의 경사도)


본격적인 한계령 업힐 중에 같은 방향이건 마주오는 그것이건 멋드러진 모터바이크의 그룹 라이딩을 자주 만난다. 멋지다. 할리도 있고 BMW에, 내가 모르는 브랜드들 까지. 물론, 난 모터바이크 보단 자전거 라이딩이다. 조금 더 오르려니, 이번엔 홀로 나를 추월해가던 모터바이크 한대가 조금 앞서 가는 듯 싶더니, 오른팔을 들어 엄지를 세워 보인다. 힘이난다. 그런 멋진 사람들은 뭘 해도주위의 사람들이 힘이나게 도와주는 모양이다. ㅎㅎ

망경대인듯한 바위 봉우리가 나타나는 한계령 초입. 이곳에도 모터바이크 한 대가 쉬고 있다.

낙산에서 오르는 한계령은 코너를 돌 때 마다 또다른 산수병풍의 마디가 펼쳐지듯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와 그 사이마다 뿌려 놓은 듯 피어나는 붉은 단풍이 눈앞에 등장한다. 말 그대로 '경이롭다'라는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설악은 우뚝 솟은 그림 같은 바위 봉우리도 좋지만,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계곡 또한 힘차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후, "한계령을 오르며 바라본 설악이 가슴이 북받칠 지경이었다" 하니, 우리 딸은 그런 표현 '아저씨' 같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내가 아저씬것은 분명하고, 살면서 여러번 올랐던 설악인데도 이처럼 좋았던가 싶다. 그간 내가 보아오고 기억하는 설악은 제대로 된 설악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계령에 올라 동해쪽(낙산)을 바라보며.
한계령의 표지석엔 "오색령"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오색' 그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한계령 정상에서 다운힐은 15킬로미터의 긴 라이딩이다. 지난밤 태풍 콩레이로 생채기난, 오늘 아침까지도 축축했던 그길은 가을 햇살에 기분 좋게 말라 있었다. 선물 같았다.


44번 국도는 "한계교차로"를 끝으로 "고원통로"로 이어지며 진부령으로 안내한다. 이길은 서울에서 속초로 400킬로미터 라이딩을 할 때 만나게 되는 길인듯한데, 옛길 답게 차량도 드문, 설악의 고요함이 묻어나는 그런 길이다.

고원통로 진부령/미시령 방향. 고원통로는 미시령로의 두개 터널을 우회할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원통로는 미시령로의 두개 터널을 우회해서 지나면, 다시 미시령로로 모이고, 진부령을 오르는 진부령로에서 갈라진다.


미시령로에서 진부령로로 이어지는 갈림길

이미 미시령로가 고지대여서인지 해발 520여미터가 넘는 진부령고개를 쉽사리 오른다.

진부령 표지석과 내 자전거.

이제 미시령이 남았다. 한계령도 긴장했던 것이 머쓱할 정도로 어렵진 않았고, 진부령은 거저먹은 듯하던 차에, 미시령은 사납고 날카로웠다. 진부령로와 만나는 기점에서 미시령옛길을 이용해 오르는 미시령정상까지는 6.7킬로미터이지만, 마지막 3.3킬로미터는 평균 8.2% 경사도에, 가끔 나타날 법도 한 완만한 곳이 전혀 없이 높은 경사각이 유지되는 매서운 길이다.


이 힘겹고 긴 길을 임백준님(지금은 삼성전자의 리서치센터 임원이시다)의 "나는 프로그래머다"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한바퀴씩 내 딛는다. 생뚱맞긴 하다만, 에너지 샘 솟는 뮤직과는 달리 조용한 숲길을 자전거로 오를 때, 또렷이 들리는 팟캐스트 속의 담론도 나름 특이하다.


미시령 정상 표지석. 이승만 전대통령의 휘호로 알려져 있다.
표지석 맞은편인 속초로 향하는 미시령 다운힐

한계령 업힐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면, 미시령 다운힐은 '초현실적'이다. 늦은 오후의 붉은 태양빛이 어우러지며 더욱 극적인 효과가 만들어진 듯한데, 헤어핀의 회전하는 도로에선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굽이굽이 길의 끝들은 당연히 아래로 향하지만, 허공으로 뻗어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킨다.

미시령 옛길 다운힐
역시, 다운힐에는 강한 비트의 음악이 어울린다. 오늘 솔로 라이딩의 벗이 되어준, 후배가 디자인한 52Speaker.

좀 더 내려 달리니, 오른쪽으로 거대한 대양의 파도와 같이 설악의 숲이 바다를 메우고, 그 위로 흩어지는 파도 포말과도 같이 황철봉이 솟아있고, 좀전의 그 서쪽으로 넘어가던 붉은 빛은 이제 울산바위의 목덜미에 앉아있다.


미시령 옛길 우측으로 보이는 울산바위
미시령옛길 위. 속초가 보인다.

활공하듯 했던 미시령옛길 다운힐을 마치고 속초에 내려 앉는다. 때마침 완연해진 석양이, 속초항과 낚시꾼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으며 저물고 있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았던 설악산 백두대간 자전거 여행은, 예상했던 것 보다는 빨리 끝난다. '집에 좀 더 일찍 도착하겠군.' 월요일 출근을 앞둔 직딩에겐 현실로 돌아오는것도 금방이다.


속초항
터미널 앞 카페 "지느러미"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한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잠깐! 속초고속터미널과 혼돈해선 안된다.

혼자여서 달랐겠지만, 혼자오기엔 아깝다. 나눠주고 싶기에, 벗들을 데리고 한 번 더 와야겠다. 오늘 백두대간 Stage 1은 이렇게 마무리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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