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완주자의 그란폰도 체험기

춘천 그란폰도 Chuncheon Gran Fondo 2019


새벽 5시 45분, 이제 막 어둠이 가시고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춘천을 향해 달린다. 물론, 내 SUV 뒷좌석엔 앞바퀴가 분리된 로드 자전거도 실려있다. 지난 6월 새만금에 이어 두 번째 그란폰도 참가이자, 지난 7월 첫 도전이었던 속초 Triathlon 참가를 포함하면 세 번째 공식 사이클링 대회 출전인 셈인 "춘천 그란폰도 2019" 대회 참가를 위해서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의 방향표시를 따라 언덕을 넘어서자 넓은 지역에 조성된 주말 이른 아침의 스포츠 아레나가 그 인상 깊은 모습을 드러낸다. 춘천송암스포츠센터다. 예상치 못했던 아침의 우여곡절 탓에 동료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터여서 가까운 주차장을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황급히 자전거를 내렸다.


워낙 넓은 지역에 사전 정보 한 줄 없이 자전거와 함께 툭하니 날 떨어뜨려놓다 보니, 먼저 도착한 동료들을 찾는 것조차 어려워 이리저리 헤맨다. 다행히, 눈에 띄기 좋은 장소를 골라 자리를 잡고 있는 그들의 센스 덕분에 방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팝업스토어들과 푸드트럭들이 대회 분위기를 한층 돋워 놓았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그제야 신호가 오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니, 태호와 준원이 푸드트럭을 가리키며 맛있는 토스트 메뉴를 알려준다. 얼른 먹고 오란다. 사실, 배고픈 채로 체력 소모가 큰 대회를 시작할 순 없다.


열량 높은 토스트를 허겁지겁 입속으로 욱여넣으며, 두 눈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주변 이모저모를 담기 바쁘다. 각지에서 모여든 로드 바이크 라이더들을 바라보자니 지난 새만금 그란폰도의 출전 선수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젊어진 선수층과 남성 선수가 많다는 걸 쉽게 가늠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대회가 업힐 코스 비중이 높은 데다 컷오프 룰은 상대적으로 더 도전적이다 보니 그런 것이라 여겨졌다.


오전 8시, 이제 출발선이다. 사전 대회 참가 신청 시, 개인 평속 수준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출전 신청을 했었는데, 그 그룹별로 출발 순서가 정해졌다. 평속 30km 수준의 선수들인 A그룹이 먼저 출발하고, 25km 그룹인 B그룹이 그 뒤를 이으며, C그룹(평속 20km)이 마지막으로 출발하는데, 좀 더 빠른 라이더들이 앞서 출발하는 식이다.


대회 출발을 위해 모든 라이더들이 모여드니 꾀 번잡해진다. 우린 중간 그룹인 B그룹으로 함께 출발선에 모였고, 곧 벌어질 시련을 알지 못한 채 사진 촬영과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춘천의 아침 공기마저 너무도 산뜻하다.



2019년 춘천 그란폰도는 코스 68km 지점 (전체 코스는 119km)의 배후령(업힐 거리 3.1km, 평균 경사도 9%)까지, 4개의 업힐 코스가 몰려있다. 그나마 체력이 남아 있을 코스 전반에 업힐들을 배치한 배려일까,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겠지만, 개인적으론 다행이다 싶다.


대회 주최 웹 제공
내 스트라바 ^^


첫 고개인 고탄고개부터 경사가 사나웠다.


평균 11%의 경사도 높은 업힐이 2km가량 이어져 있는데 다행히 고개 입구 전에 어느 정도 몸이 풀려서인지 난이도에 비해선 효율적인 업힐 라이딩을 이어간다. (참고로, 서울 남산 코스는 1.5km의 거리에 6.5% 경사도)

예사롭지 않은 업힐 정상에 도착하니, 7명의 우서라(WSR) 멤버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난 준호와 태호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각각 4시간대 초반과 중반의 기록으로 대회를 마쳤다 한다. 역시 괴수들이다. ㅎㅎ 참고로 전체 대회 컷오프는 6시간이다.)


우리 멤버들 중에선 세 번째로 고탄고개 정상에 도착한 나는, 이대로 달려봐야 홀로 경기를 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뒤따르는 나머지 네 명과 함께 그룹 라이딩을 할 요량으로 고개 정상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하나 둘 씩, 땀에 젖어 정상에 도착하는데, 초반부터 험한 코스에 짐짓 놀란 듯한 표정들이다.


고탄고개


고탄고개 다운힐을 지나, 부다리 고개(3.6km, 7%), 새 고개(1.3km, 6%)를 5명이 함께 차례로 넘는다. 새 고개 입구에는 첫 보급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첫 번째 (1차) 컷오프가 적용된다.


컷오프는 제일 마지막 그룹인 C그룹의 평속 20km 기준으로 1차 컷오프 지점인 새 고개 입구와 2차 지점인 배후령 고개를 정해진 시간에 통과하지 못하면 적용되는데, 교통 통제와 대회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절충 방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기준 속도 미만인 참가 선수들이 중도 탈락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물론, 2차 컷오프를 통과하더라도 6시간 내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지 못해도 '완주'에서 탈락된다.


새 고개 입구 보급소에서의 막 튀겨낸 뜨거운 찹쌀도넛과 꽈배기는 제일 인기가 좋았다. 그만큼 맛도 좋아,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에 하나다. 지금 생각하면, 보급소는 다양한 그란폰도에 그만의 색깔을 입혀주는 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인듯.


얼마나 달렸을까? KOM(King of Mountain) 계측 장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곳이 이번 대회 4개 업힐 중 마지막 업힐이자 가장 난도가 높은 배후령 고개란 뜻이며, 입구에서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오른 선수가 KOM의 기록을 갖게 된다.


처음엔 근거 없는 욕심도 났지만,
나는 KOM 도전은 커녕, 3km에 달하는 옛 도로를, 중간에 잠시도 숨 돌릴만한 틈 조차 없이 위로 뻗은 고각의 경사도에 놀라고 참기 어려운 고통을 간신히 누르며 정상에 올랐다.


실제로, 업힐 라이딩 동안 많은 라이더들이 소위 말하는 "끌바"를 하는 모습이었고, 그나마 안장 위에서 버티는 대부분의 라이더들 조차 도로 위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체감 경사도라도 줄여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겨우 끌바의 충동은 버텨냈지만, 지그재그로 오르는 동안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과 고관절 통증과 싸우느라 제대로 된 생각이 들기도 어렵다. 늘 그렇듯,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답도 없이 스무 번 즈음 반복할 때 즈음이면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알루미늄 자전거라는 핸디캡 때문에 자주 뒤처지는 신입 멤버 경우는, 여전히 그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서도 나를 몇 미터 앞서 배후령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엔진"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엄지 척!!!


경우가 남겨 준 사진 @배후령


잠시 후, 태호 - 우서라 클럽엔 태호가 둘이다. 다른 태호는 이미 앞서 가버렸다. ^^ - 가 가쁜 숨을 허덕이며 도착한다. 업힐은 이제 끝났다며 바나나와 꿀맛 같은 방울토마토로 갈증을 다 채우기도 전, "컷오프가 8분 남았어." 라며, 주위의 라이더들이 분주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새만금 그란폰도 출전에서 처럼, 여유를 부리면서 심지어 컷오프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숙지하지 않은 채 대회를 즐기고 있던 터여서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후령의 쉽지 않은 경사와 거리를, 뒤처진 두 명은 어찌 견뎌내고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자 마음이 급해진 우리 셋은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배후령 다운힐을 시작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배후령의 2차 컷오프 뒤엔, 교통통제를 평상시로 전환해야 하므로, 컷오프된 선수들을 모아, 마샬이 지름길을 이용해 대회장으로 복귀시키는 "회수"라는 걸 한다고 한다.


배후령 정상에서 다운힐은 시원하고 상쾌했지만, 춘천지역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기엔 대회의 기준 속도 수준이 녹녹지 않았다. 출발선 이후로 사진 한 장 담지 못하고, 그 아쉬움조차 느낄 새 없이 쉴 새 없는 페달링은 계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 배후령 다운힐을 포함하여 코스 몇몇 군데에서 전문 촬영가들이 달려 나가는 출전 선수들의 모습을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힘겨운 라이딩을 이어가다가도 그 앞에선 "인생 샷"을 남겨 보려 멋진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이때문에 달려 나가던 그룹이 속도를 갑자기 줄이며 정체현상까지 나타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긴다.


배후령을 막 내려오는 (맨 뒤에서부터) 태호, 경우, 나


배후령 다운힐을 뒤로하고 긴 평지로 접어든다. 지금부터 50km가량의 짧지 않은 평지 구간 동안 최대한 효율적이면서도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얼마 즈음 달렸을까, 잠시 허리를 펴고자 잠시 쉬는 우리 셋에게 "마샬" 한 분이 다가와서 전하길,


"완주선수들 중 '제일 후미'세요. 어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분명, 2차 컷오프 8분을 남겨두고 배후령 고개를 내려왔건 만 ㅠㅠ


더 이상 쉴 수가 없다. 최종 도착지점까지 35km 정도는 족히 남겨둔 지점인 것 같은데, 셋은 서둘러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지금껏 경쟁적으로 달리진 않았지만, 이제는 '제일 후미'는 면하고 싶었던지, 앞 선수들을 하나 둘 추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체력은 이미 많이 소진됐고, 힘들고 지쳐버렸다.


춘천 그란폰도는 많은 대회 운영자와 경찰이 코스 안내와 차량 통제, 그리고 안전을 위해 도로 곳곳에 배치되어있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차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통제하며 라이더들의 안전을 살피는 "마샬"의 수도 적지 않다. 지치고 힘들지만, 그들을 지나칠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잊지 않는다. 그분들도 "파이팅"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라이더들을 위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점점 지구력이 떨어져 갈 즈음, 앞쪽에 십여 명의 그룹(팩)을 이룬 라이더들이 눈에 띈다. 한 팀은 아닌 것 같고, 이런 상황에서는 앞사람의 후류를 타고 라이딩하는 "그룹 라이딩"이 더 효율이 높다는 것을 알고, 서로 속도가 맞는 이들끼리,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속도와 에너지 레벨 대비 약 110% 정도를 발휘하는 그룹을 택해 남은 에너지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태호와 경우에게 수신호로 내 뒤에 붙으라 전하고, 속도를 높여 그 그룹에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그 뒤로도 같은 선택을 한 몇 명의 라이더가 더 합류하여 그룹이 꾀 커진다.


다른 참가자들과 그룹을 이루어 효율적으로 라이딩 할 수 있었던 서상로

하지만, 머지않아 지친 선두 그룹 5~6명이 휴식을 위해 한꺼번에 빠지자, 난 갑자기 두 번째 라이더가 되고, 내 앞의 라이더마저도 몇 km를 라이딩 후 더 이상 어려웠던지 나 더러 앞으로 가라는 손짓을 하며 사라진다. 그룹 라이딩은 선두의 체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 동호인 클럽이나 팀은 선두를 교체해 가며 장거리 라이딩을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라이더들끼리 그런 호흡이 통하기 어렵다.


이제, 완주 지점까지 대략 25km 정도가 남았다. 그룹도 몇 명 남지 않은 채, 내가 선두가 되고 태호가 바로 뒤에 붙어 달린다. 나중에 태호에게 들으니, 경우는 초반 그룹 라이딩 즈음 뒤쳐졌다고 한다. 나중에, 자전거를 카본으로 업그레이드(기변)한다면 누구보다 높은 기량을 뿜어낼 친구임엔 틀림이 없지만, 알루미늄 자전거로 카본 자전거 대열에 끝까지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엔, 우리보다 앞서있었지만 지친 채 홀로 달리던 라이더들 중, 아직 힘이 남은 이들이 우리 그룹을 발견하곤 합류한다. 나중에 라이딩을 마친 후, 태호가 15명 이상 그룹이 커졌었다고 하는데, 나는 남은 체력이 많지 않았고 제정신도 아니어서 ^^ 페이스를 잃지 않고 달리는 일에 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피니시 지점까지 2km가 남았다는 코스 안내를 받자 '완주'가 실감되기 시작했다.


그즈음 끝까지 뒤따르던 태호도 그렇지만, 나도 체력이 거의 소진된 터여서 속도를 줄였다. 뒤를 따르던 라이더들이 하나 둘 그룹에서 나와 각자의 마지막 스퍼트를 시작한다. 게 중엔 "덕분에 20km를 잘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는 분도 계셔서 손짓으로 겸연쩍게 화답했지만, 사실 이런 상황에서 바람막이를 하며 속도를 끄는 그룹 선두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회 후반부에 태호와 내가 우연히 그룹을 발견하고 성공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도, 마지막엔 그룹을 이끌며 마지막 에너지를 태울 수밖에 없는 동기부여가 스스로 된 것 모두 '행운'이다.


대회 최종 컷오프 28분을 남기고 피니시라인을 넘었다. 완주 '제일 후미'에서 28분이나 앞당겼으니, 꼴찌는 아닐 듯하다. 그러고 보니, '제일 후미'라고 알려주신 마샬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ㅎㅎ


끝.


우서라(WSR)클럽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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