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가을끝은 그랬다.
강화도.
서해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첫번째 '서해 라이딩'이다. 올 봄 부터 동해에 매료되어 네댓번 연이은 여행을 하면서, 후포리의 5일장과 그 장터 구석의 작은 간판 하나 없는 무명국수집을 나의 단골집 처럼 드나들었다. 그런 재미에, 내가 살아가는 이 땅 구석구석을 느껴보고자 틈나는 대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서울 부산을 잇는 긴 여행에 오르기도 하고 자전거로 거니는 안동이 궁금하여 하회마을을 다시 찾고 새벽안개 속을 지나 안동댐을 올랐다. 오늘은 겨울의 문턱에 선 강화대교를 건넌다.
지도 위 해안선만 바라보아도 동해와 서해는 그 모습과 의미가 참으로 다르다. 가령, 거침없이 뻗어내린 동해의 해안선은 질주하는 라이딩 본능을 불러 일으키지만, 서해의 그것은 몽글몽글 크고 작은 섬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번에 이어갈 마땅한 해안 자전거도로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섬들로 향한 호기심을 그냥 달래기엔 서운함이 클 수 밖에 없다.
휴일이어서 한적한 강화군청은 "올해의 관광도시"라는 큰 자랑거리를 안은 모양인 듯, 군청 건물 앞에 내 걸린 대형 배너가 눈에 들어온다. 차 뒤 꽁무니에 한시간 반이나 매달린 채 자존심을 구긴 자전거를 내렸다. 강화의 해변을 보고 싶은 조바심에 가까운 강화대교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지만, 라이딩 내내 강화의 해변을 좀 더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섬 가운데에 남북으로 나란히 솟은 혈구산과 고려산을 먼저 보고 싶기도 했다. 자전거로 여행하려면 그 사이로 난 고비고개길을 넘어야 하는데, 재를 넘는 일은 늘 힘겹지만, 이젠 어느덧 고동치는 심장소리와 땀냄새의 살아있는 느낌에 중독이라도 되어가는 것 마냥 일부러 찾는다. 게다가, 재를 넘음으로써 자전거를 달리는 그 땅의 질감을 더 잘 느낄 수 있기에 그런 설레임도 함께 한다.
강화도는 섬 일주 도로를 비롯해서 곳곳의 도로가 비교적 잘 정리된 탓인지, 자전거 길도 넓고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군데군데 쌓인 낙엽과 흙더미들이 자전거 도로를 가리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강화의 맛이다. 유명 관광지에 어울릴 만큼 강화도의 휴일엔 북적이는 도로가 라이딩 중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지만, 군데군데 나타나는 넉넉한 자전거길이 친근감 마저 느끼게 해준다.
고비고개를 넘는 일은 그리 사납지 않다. 적당한 땀과 근육운동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이고, 이내 고려저수지로 이어지는 시원한 길로 안내한다. 해변을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서 섬 가운데를 먼저 찾았는데, 섬안에 있을 것 같지 않을 만큼 넓은 저수지를 만나니 보상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이다.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끊임 없이 짖어대던 고려저수지 옆 백구 한마리는 나를 발견하곤 신기했던지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외포항으로 향하는 길이다. 포구의 모습이 보이기 훨씬 전 부터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량 행렬로, 포구에 다달았음을 금방 알게 된다. 줄지은 차량들을 뒤로하며 좁은 틈을 이래저래 빠져 나가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젓갈수산시장"이다. 강화는 새우와 새우젓갈이 유명하다더니, 그런 기대에 딱 어울리는 장소이다.
따지고 보면, 젓갈은 우리나라 먹거리의 생명력이자 진한 색깔이다. 어렸을 땐, 그 진한 냄새가 코를 찔러 입까지 틀어막고는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을 했지만, 어느덧 내년에 먹을 김치 생각에 침샘이 흥건해진다. 말린 백조기들은 살이 꽉 찼다. 불 위에 노릇하게 구워 옆구리 살을 한 줌씩 튿어 입 속에 넣으면 그만일 것이다. 시장 상인들도 힘든 노동에 지쳤을 지언정 친절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정감 넘치는 그런 우리네의 시장이다. 아내와 함께 왔다면 참 좋아했을 것 같다.
외포항 포구 앞에는 갯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몰려드는 갈매기들, 소주 안주거리 삼을 망둥어 낚시를 즐기는 어르신, 젓갈봉지를 양손에 든 아버지와 딸, 며느리와 어머니들로 포구는 살아 숨 쉰다. 새우깡을 연신 받아내는 갈매기들이 신기한, 서울서 온 꼬마들의 웃음소리는 분주하기만 할 것 같은 한 낮의 외포항 포구를 더 없이 평화롭게 만든다.
운이 없어 잡혀든 맛있게 생긴 망둥어들을 바라보다, 포구의 터줏대감이실 듯한 어르신께 외포항에서 점심으로 무얼 먹으면 좋을지 여쭈었다.
강화도는 밴댕이지~. 점심 때니까 '밴댕이무침' 드시면 될거에요. 포구에 있는 식당들 중에 맘에 드는 곳 아무데나 찾아서 드시면 되요. 다 맛있어요.
지난번에 멸치와 함께 섞여 국물을 우려낼 적에는 유난히 큰 몸집에 '제 이름이야 있겠거니' 하며 지나치고 말았는데, 강화도를 말하는 유명인사인지는 외포항에 직접 와 보고서야 알게 된다. 밴댕이는 바다에서 건져지면 그 생명을 오래 잊지 못한다. 그래서 활어로 맛보긴 어렵다하고 냉장고에서 숙성이 되므로 사철 식탁에 오를 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회를 떠도 한 입 밖에 안되는 작은 녀석이 횟거리로, 구이로, 그리고 국물까지 맛있게 우려내니 그 쓰임새에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외포항을 떠나 섬의 남쪽으로 향한다. 석모도를 가보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내년 봄에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넉넉하고 시원하게 뻗은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오른편 바닷가의 갯벌과 마음이 같다. 바닷가 군데군데, 양식장들이 보인다. 강화도의 그 유명한 새우나 갯벌장어가 키워 질텐데, 멀리서 바라보니 꼭 바닷물로 한칸 한칸 채워진 밭을 연상시킨다. 하기야, 농작물 대신 바다의 생명들을 기르고 수확하는 밭은 밭이다.
남쪽은 꼬불 꼬불 도로가 '저 코너를 돌면 어떤 새로운 장면이 나올까' 기대하게 만들고, 적당히 오르고 내리는 높낮이가 있어 업힐과 다운힐 라이딩의 재미도 더한다. "여차리"를 지나 다시 섬 안쪽으로 돌아드니, 우뚝 솟아오른 산이 내 앞으로 병풍처럼 열린다. 그가 강화도의 마니산임을 깨닫기도 전에, 남쪽태양빛을 한껏 받아 환한 넓은 가슴을 가진 산세를 보고 탄성 부터 나온다. 마니산은 본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섬이었다가 바다를 막아 육지로 그 팔자가 바뀌었다한다. 그 역시도 장관이었으리라.
남쪽일대의 갯벌은 끝이 없이 넓은 또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그 위를 발갛게 물들인 칠면초의 군락이 대조를 이룬다. 갯벌의 짙고 어두운 회색 빛 위에, 누군가가 군데군데 붉은 물감을 쏟아 놓은 듯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의 조합이다. 그 앞으로는 아직 겨울에 자리를 완연히 내어주지 못한 강화의 가을이 나뭇가지에 머물러 있다. 강화의 가을끝은 그랬다.
김훈 원작의 영화 "남한산성". 그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같이하는 강화도이다. 강화도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오래전이지만 유적지를 찾아 하루 종일 머문적도 있고 짧은 방문까지 포함하면 서너번은 강화대교를 건넌 듯 하다. 그땐 막연히 많은 역사 속 이야기를 안은 섬으로만 기억했지만, 지금의 자전거 여행은 강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동막해변을 지나 바다 위에 그려진 한폭의 작품 감상을 마치고 김포를 마주하는 동쪽 해변을 따라 강화 일주의 마지막 구간을 라이딩한다.
어느새 늦은 오후를 알리는 황금빛 태양이 내려 앉는다. 강화를 떠나 김포로,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초지대교 앞에 줄을 잇는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바닷길은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유속이 꾀 빠르다. 이곳을 지나 한강으로 접어드는 뱃길이 열리기 때문에 그 옛날 부터 여러 전투가 있었고, 조선의 마지막 시절엔 척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초지대교 옆 초지진을 비롯해서 섬을 따라 북상하다보면 지금의 초소나 포대의 역할을 해온 언덕위의 조그마한 성들을 만나게 된다. 섬 건너편의 붉은 태양빛을 받고 있는 해로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도 푸르다. 푸르름이 지쳐 은빛을 발하기 까지 하고 그 빛깔은 듬성듬성 떠 있는 배들을 만나 정점을 이루는데, 은으로 덮은 해수면 위에 보석과 같이 빛난다. 이에 질새라 섬 반대편의 붉은 낙조는 섬의 중앙에 솟은 산들의 어깨 사이를 비집고 해로 위로 내리쬐어 그 부분만 황금색으로 물들이니, 일주 라이딩을 마칠 즈음의 을씨년스러운 감상을 큰 아름다움으로 대조시킨다. 이 빛은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같을 것인데, 돌성 위에서 김포를 바라보며 죽음을 떠 올렸을 군인들의 눈이 되니 한스럽기까지 하다.
출발 지점이었던 강화군청에 가까워지면서 강화대교로 이어지는 빡빡한 차량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금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곧 해가 질 것이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지루하겠지만, 당분간 늦가을 바람과 함께한 강화섬의 깊은 향취는 잊지 못할 듯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