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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캘리포니아, 산 마테오에서 스탠퍼드까지

우연히 만난 캘리포니아 주말 자전거 여행 3

올해 들어 첫 야외 라이딩은, 공교롭게도 해외 라이딩이다.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에게 다가오는 따뜻한 봄 햇살만큼 반가운 것도 흔치 않은 일일 텐데, 이런 소소한 행복마저도  미세먼지에게 빼앗겨버린 지 오래여서인지 한결 기다려졌던 라이딩이다.   해외 출장에서 주말을 낀 일정은 흔치 않은 데다, 맑은 공기와 햇볕 환한 캘리포니아의 주말이니 더더욱 놓치긴 아까웠다.  


출장 가방에 헬멧과 클릿 슈즈, 져지와 빕숏까지 단단히 준비한다.   단 하루의 라이딩 정도의 여유밖에는 없겠지만, 열흘의 일정 동안 모시고 다녀야 하는 노력 정도야 얼마든지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   부피만 차지할 뿐 무게감도 없는 것들이어서 부담도 없고, 헬멧까지 들어간 가방이지만, 어렵지 않게 지퍼도 부드럽게 닫힌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오피스앞에 세워진 내 출장 짐 전부

이번 출장의 첫 일정인 애틀랜타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다음 주에 있을 실리콘 밸리에서의 일정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다.   익숙한 우버(Uber) 서비스를 이용해, 산 마테오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해 여장부터 풀었다.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는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다.   자전거를 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여기고, 한껏 여유를 부리며 Cognition Cyclery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해 가을 첫 캘리포니아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를 대여했던 곳인데, 내 로드바이크와 같은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 모델을 취급하는 곳이어서 이번에도 대여를 염두에 둔 곳이다.   

 

이곳이 한 가지 까다로운 것은, '선착순(First come, first served)' 서비스여서, 전화를 걸어 대여 모델이 있음을 확인하더라도, 샵에 들렀을 때 그 사이 누군가 선수를 치면 빌릴 자전거는 사라져 버린다.   당연히, 전화를 먼저 걸어 원하는 모델과 사이즈(프레임 사이즈 52)가 있는 확인부터 해야 했다.   확인만 되면, 빛의 속도로 샵으로 향할 요량으로 말이다.


"So sorry, we have only one 54 and above.  Why don't you call the one in Mountain View?"


아직 금요일 이른 오후인 데다, 이상기온으로 캘리포니아엔 오랜 겨울 장마였다고 해서, 자전거 대여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난감한 상황이다.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몇 군데 더 전화를 해보니, 한 친절한 분께서 Bike Connection이라는 곳을 안내해 준다.   다행히, 그곳엔 자전거 여분이 있으니 와서 원하는 걸 골라서 가져가란다.  

    

Bike Connection 샵 내부. 한 직원이 내게 대여할 자전거를 내리고 있다.   딱 한대 남아 있는 52사이즈 로드바이크.

Bike Connection의 샵 위치는 스탠퍼드대에서 무척 가까웠다.  그곳 대학생들이나 거주민들이 많이 사용할 법한 위치였고, 도착해보니 판매를 위한 새 자전거부터 대여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양이 Cognition Cyclery와는 '급'이 달랐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Cognition Cyclery는 하루 대여 기준 85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Bike Connection은 50불이다.     


새로운 대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이것저것을 둘러본 후 선택을 했다.   말이 선택이지 미국에선 52 사이즈가 흔치 않아서인지, 로드바이크 모델로는 단 한대가 남아 있었다.  분명 행운이다.    

 

로드바이크 Marin.   MTB로 시작한 미국 토종 브랜드다.

마린(Marin)의 로드바이크인데, 탑 프레임이 날렵한 디자인이어서인지 내가 타던 스페셜라이즈드 모델보다는 승차감이 컴팩트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 팔로알토(Palo Alto)에 3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다.  특별하고 소중했던 추억이어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 나오는 길 구석구석의 팔로알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근처에 다다라 자전거 육교 위.  아래로 베이 지역 상징과도 같은 101번 고속도로가 지난다.

토요일은 소나기가 제법 세찼다.   함께 라이딩을 하기로 했던 미국연구소의 현채인 동료 Craig와 상의해 일요일로 라이딩을 미룬다.   업무 외, 같은 취미를 함께 하면서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거니와 워낙 라이딩을 즐기는 준프로급의 실력을 갖춘 데다 이 지역 토박이 친구여서, 최적의 코스 안내도 받을 수 있는 행운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10시, 토요일 많은 비로 아직 도로가 촉촉이 젖은 상태였지만, 맑은 공기와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캘리포니아의  신선한 내음이 콧 속으로 빨려 들면서 폐까지 청소해주는 듯했다.   한국의 미세먼지 속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니.    


오늘의 코스는 호텔이 위치한 Foster(포스터) 시티의 물길을 따라, 산 마테오에 사는 Craig와 합류, 멋진 Upper Crystal Springs Reservoir(저수지)를 끼고 곧게 뻗은 Canada Road를 달린 뒤, 한국의 북악산 업힐을 떠올리게 하는, Old La Honda 로드 업힐(약 5 km, 8%)을 왕복하고, 스탠퍼드대를 통과해 팔로알토 시내에서 마무리하는 환상적인 코스다.   혼자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그런 코스 이리라.


포스터시티 ~ 산마테오 ~ 어퍼크리스탈스프링스 저수지 ~ 라혼다로드 ~ 스탠포드대 약60km 라이딩 코스
양재천 자전거길을 떠올리게 하는 Bay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포스터시티 자전거길
포스터시티 자전거길.  오후엔 다시 소나기가 내릴 거라는데, 아침 햇살과 하늘이 청명하기 그지 없다.
Canada Road

궂은 날씨에도 캘리포니아의 주말은 자전거 라이더로 붐빈다.  물론, 워낙 넓고 스케일이 큰 땅이고 그 길이여서 '붐빔'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Craig를 따라 산마테오를 벋어나 서쪽을 향한 언덕길에 올라서자 280번 프리웨이가 좌우로 길게 뻗은 멋진 경치가 장관을 이룬다.   팔로알토에 머물던 시절에 샌프란시스코를 오갈 때면,  101 고속도로가 자주 막혔던지라 280 프리웨이를 종종 달리곤 했다.    거리는 101 고속도로보다 좀 더 멀었지만 캘리포니아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훌륭한 경치 때문에 일부러 돌아가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산 마테오 도심 경계에서 벋어나 Canada Road를 잇는 자전거 육교는 280 프리웨이 위를 넘어 가로지르는데, 때마침 눈앞에 펼쳐지는 Upper Crystal Springs 저수지(Reservoir)가 물안개와 함께 들어온다.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상쾌한 광경이다.

     

Craig와 함께. Upper Crystal Springs Reservoir
빗물에 젖은 Canada Road

5km 동안 이어지는 라혼다 로드 업힐(평균 경사 8%)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 첫 야외 라이딩을 하는 내겐 쉽지 않은 코스였다.  길기도 했고.  조금 전까지 뻥 뚫린 도로를 달리던 Canada Road와는 정 반대로 깊은 숲 속의 조용한 도로길로 이루어진 곳이다.   

  

Old La Honda 업힐의 정상

함께 라이딩한 Craig는 진지한 라이딩 전문가였다.  꾸준한 연습량뿐만 아니라, 함께 라이딩하는 내내 오가며 만나는 라이더들을 가리키며, "She is the world champion of RTB 땡땡땡 last year.", "He is the head of 땡땡땡 in yahoo.  You know what, he is 00 years old." 그들이 누군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갑작스러운 긴 업힐과 내려올 땐 추위에 정신조차 몽롱해져 왔지만, 로컬 지인과 함께 하지 않는 한 경험하기 어려운 재밌는 라이딩이다.


빗물로 흥건한 도로 상태 때문에 하반신은 물기와 이물질로 흥건해졌다.
스탠포드 대학교

3시간 남짓한 뜨거운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팔로알토 시내다.   좀 전엔 오랜만에 스탠퍼드대 캠퍼스 안을 지나쳐 왔는데, 이곳에서 3개월 동안 프로젝트를 하며 보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재밌는 기억은 그때 몇 주 동안 시범 프로젝트로 팀을 이루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주제도 자전거(종이 자전거)였다는 것이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실성한 사람처럼 자전거를 타며 혼자 웃음 짓는다.  


시원한 땀을 한 껏 쏟고, 팽팽해지는 허벅다리를 끌어당기며 올해의 첫 라이딩을 그렇게 열었다.   


그 시절 사진이 아직 있을 줄이야~ ^^   스탠퍼드대 기구공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페이퍼 바이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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