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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떠나는 인생 여행

음악과 대화가 가득했던 교감의 겨울 제주여행


이번 여행의 주제는 '우리 님의 힐링'이다.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과 뻔히 알면서도 마음 처럼 쉽게 나아가지지 못하자신 사이에서 스트레스와 방황이 한창인 아들에게 여행을 통해 아빠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지'와 '휴식'.   물론, 우리 마눌님의 지시사항은 적잖이 달랐지만 말이다. ^^    아들과의 겨울여행을 잘 아는 가까운 친구들은, 아빠의 노력을 가상해 하면서도 "정말 애도 좋아하는 거 맞지?", "그건 아들이 정말 착한거야." 며 장난끼 어린 소릴 하지만, 아들은 이번 여행이 특별히 더 좋았단다.   


첫째날 오전.

둘만의 추억을 따라, 안도 다다오를 만나다.


오전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일주동로"를 따라 아침 드라이브로 여행을 시작한다.   제주의 "일주동로"와 "일주서로"는 섬의 동과 서편 해변길을 따라 돌며 해안선을 따라 일주하는 "제주환상자전거길"과 자주 만나있다.    자전거로 지나치던 익숙한 제주의 해변은 또한번 그곳을 찾은 아빠와 아들을 둘만의 추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구좌읍 해변


자전거로 여행 하다보면 가보고 싶지만 들러보지 못하는 곳들이 많은데, 구좌읍의 전복요리로 유명한 "명진전복" 식당은 길게 늘어선 대기손님 때문에, 성산읍 "섭지코지"는 자전거길에서 벋어나 한참 더 들어가야해서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일찌감치 찾아온 허기를 달래러 그 전복요리로 유명한 식당부터 들렀다.   지글지글 석판위에 구워지고 있는 전복과 맛갈나게 전복 내장에 비벼진 돌솥비빔밥으로 겨울여행은 시작부터 구수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은 맛있게 잘 먹었지만 전복에 대해 아빠만큼의 큰 감흥은 없는 듯.   하기야, 해산물보다는 육류에 더 반응하는 나이이긴 하다.               


명진전복 @구좌읍
글라스하우스 @섭지코지

이른 점심으로 배를 채운 부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러(?) 성산읍 섭지코지에 위치한 "글라스하우스"와 "유민미술관"으로 향한다.   제주는 안도 다다오에겐 너무도 완벽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터'의 성격과 너무도 잘 조화되는 그의 건축은 그 곳에 원래 부터 있어왔던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특히 이곳 제주의 그의 작품은 더욱 그렇다.    


글라스하우스 2층에 위치한 - 1층은 지포(ZIPPO) 박물관이다 - 레스토랑에 앉은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차를 한 잔씩 주문하고 마주 앉는다.   겨울 섭지코지의 찬바람에 언 몸도 녹일 겸,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아들의 여자친구 이야기,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야기, 그리고 아빠의 어릴적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원하게 시야가 열린 레스토랑의 글라스월(Glasswall) 너머로 성산 일출봉과 회색빛 제주 겨울바다가 눈보라와 함께 춤추고 있다.       


유민미술관 @섭지코지

유민미술관은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48점의 아르누보 양식의 유리공예품들이 전시 되어있고, 모두 유민선생님의 개인 수집품이라고 하는데, 한 개인에 의해 유럽의 특정 미술양식의 훌륭한 유리공예품이 수집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미술관에 들어서는 동선 내내, 안도 다다오의 건축디자인 세계에 다시한번 탄복을 금치 못하지만, 유리공예품을 대하는 순간부터는 그 작품들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푹 빠져든다.   미술사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미술관 벽에 설명되어진 내용까지 인용해서, 아빠가 지금 얼마나 들떠있는지 열심히 아들에게 설명보지만, 둘이서 여기 이렇게 훌륭한 공간과 작품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둘째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행행행" 하우스 콘서트


한림5일장 전경


어느 지역이던, 여행을 통해서 그 곳의 시장을 둘러보는 것 재미지다.   제주의 5일장은 매월 4 9로 끝나는 날 열리는데, 우리 여행일정 중에 한림5일장에 들러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조그만 시골시장에 늘 보아오던 값싼 물건들일 뿐이지만,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인냥 바닥 한가득 늘어놓은 물건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시장 안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다 붐비는 식당 한 곳을 찾아 제주식 순대국밥 한 그릇씩 나눠 먹는다.   식당 안 빈자리가 없어, 찬 시장바닥에 놓인 실외 테이블이지만, 따끈한 순대국물이 속을 데워준다.    맛있는 순대국이다.      

  

한림5일장 순대국밥

이번 여행에선 유난히 카페에 자주 들렀다.   추운 날씨에 중간 중간 몸을 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쉬다보니 둘이서 수다를 많이 떨게 되었는데, 그 재미가 한 몫 했다.   


카페 와랑와랑 입구에서 오는 손님 가는 손님을 맞는 슈나우저.  아들은 한참동안 이 녀석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남원읍 카페 와랑와랑.  올레길과 동백숲공원길에 위치한 덕에 그 앞을 지나는 손님의 발길이 한겨울인데도 끊이질 않는다.

오후가 깊어질 즈음, 구좌읍 행원리로 출발한다.   서귀포 옆에 위치한 남원읍에서 출발하니 차로 약 1시간 남짓한 거리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그리고 제주의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에 찾은 곳인데, 오늘 저녁 일정인 하우스콘서 공연이 그곳에서 열린다.   소수의 게스트들은 공연의 호스트이자 가수로 활동 중인 가수 염성훈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과 와인, 그리고 우쿠렐레(Ukulele, 아들은 "유클레일리"라고 발음해야 한단다.)와 피아노 반주로 호스트의 자작곡을 공연한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오후 5시 즈음 도착한 "행행행"  하우스콘서트 장소는 제주 옛 가옥의 소박한 모습 그대로, 실내 한 쪽 구석만 음악 공연에 맞게 리노베이션된 곳이었다.   공연이 없을 땐 거실로 쓰일만한 공간이다.   처음에 도착 했을 땐, 여느 제주 시골 마을의 골목과 집들과 어우러져 잘못 온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을 정도로 소박하다.   어두워지며 조명이 하나 둘 밝혀지니, 그제서야 그곳이 그냥 주거용 집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장소임을 눈치챌 수 있다.



세 시간정도의 콘서트 프로그램인데, 참여한 게스트들과 그리고 호스트의 제주견 "물개"와 함께 근방의 조그만 오름에 올라 행원리 마을과 바다 경치를 보는 가벼운 산책으로 콘서트는 작된다.   상업적 '공연'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노래하는 친구의 집에 하나 둘 모여드는 또 다른 친구들과 갖는 주말 모임 같은 느낌이다.   오름을 가볍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 친해졌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들도, 인도네시아에서 온 미국의 젊은 커플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를 따라 금방 편하게 대화에 참여한다.    호스트와 게스트들, 그리고 우리 부자는 와인잔을 부딛치며, 방안을 가득메운 Gregory Porter 의 재즈선율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긴다.      


호스트의 요리로 준비된 저녁식사.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 이곳은 레스토랑으로도 운영했었다고 한다.
호스트이자 가수 염성훈님과 그곳에 잠시 놀러 온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다빈님. 공연 피아노 연주는 다른 분이 하신다.

식사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우쿠렐레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공연을 준비하며, 가수 염성훈(호스트)씨가 연주자와 함께 소리를 조율하는 중인데, 이 악기 소리에 벌써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리도 음악이 좋을까'      



한 곡 한 곡 그가 소개하는 음악엔 그만의 스토리가 있다.   아직은 젊은 노래하는 호스트였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묻어나는 그가 걸어온 인생이나 생각의 깊이가 고스란히 음악에 담겨 흐른다.   세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렀다.   돌아오는 길 옆좌석에 앉은 아들은 원래도 감정 표현에 솔직한 성격이지만, 이번 하우스콘서트와 염성훈씨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즐겁고 뿌듯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밤이다.     



날.

세계적 화가와의 만남.


방주교회는 자주 들렀던 듯 한데, 한겨울 눈 속에 서 있는 방주교회는 또다른 색깔을 띤다.
오토피아 레스토랑.   원래는 오토피아 박물관을 들러보고 싶었으나 일주일전에도 예약이 찬 상태였다.   다음엔 좀 더 일찍 예약해서 꼭 들러볼 작정이다.

화가 이중섭.   

어린시절을 외국에서 보내고, 한국에서는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아들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그런 아들에게, 북한을 고향으로 두고, 일본 여인과의 사랑으로 가족을 꾸렸으며, 6.25동란을 겪으면서도 창의적 열정을 꺼트리지 않았던 이중섭화가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주제라 여겼다.   이중섭화가를 모르는 아들에게, "한국인이라면 이 화가 만큼은 알아야돼."라며 한 시간 가까이 미술강의를 이어갔다.   잊지 말라며, 사진도 찍어주면서.       


전쟁을 피해 제주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이어갔다는 집.   이 집 방한칸에서 화가 이중섭은 머물렀다고 한다.
화가 이중섭의 방

이중섭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박물관을 끼고 있는 이중섭 문화거리를 거닐어본다.   서울에 남겨둔 가족들을 위한 소소한 선물도 살겸.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줄 악세사리도 하나 고른다.   값은 내가 치렀지만.


이중섭 문화의 거리

네째날.

여행의 마무리.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혼자 와인잔을 기울이다, 아직 잠들지 못하는 아들을 불렀다.   와인잔도 한 개 더 준비한다.   낮에 못다한 얘기들로 거문오름 근교의  조용한 밤은 깊어간다.   아닐것 같지만, 그렇지 못할 이유가 없을것 같지만, 이 시간과 공간이 우리 둘에게 마련해주는 기회는 서울로 돌아간 후에는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여행의 이유'라 생각해본다.


마지막날 저녁시간을 보낸 함덕해변

한껏 게으름을 피운 제주의 아침이다.  오늘 아침은 며칠동안 불어대던 세찬 바람도 잦아들었고, 겨울 햇살도 제법 환하다.   야외 공원을 걸어야해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렸던 "제주돌문화공원"을 들러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날 오전의 브런치 메뉴로 점찍어 둔, 교래리에 위치한 "성미가든"의 제주 토종닭 샤브샤브 요리와 오후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 사이를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일정인 셈이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보전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지난 15년을 준비해왔지만, 앞으로 5년여의 준비기간을 더 가진 뒤에야 완성된다는 돌문화공원은 그 기획의도와 투자, 그리고 제주의 돌이 품고 있는 문화와 자연가치를 표현해내는 세련된 멋스러움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제주 돌의 다양한 모습과 자연의 섬세함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다.   전시관 코너를 돌 때마다 감탄사를 뱉어내는 아빠가 신기했는지,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아빠, 그정돈 아닌거 아냐~?"    



"설문대할망" 이라는 제주의 여신을 처음 배웠고, 그 동안 수많은 테마파크나 멋진 자연경관으로만 접해 오던 제주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좋았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 면적이나 세련되게 계획되어진 스토리텔링의 의도에 비해서 컨텐츠의 양이나 전달 방법이 좀 더 더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균형을 잃은 단순미나 여백은 공허함으로 그 빛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겨울철 사람의 발길이 뜸 한 탓에 그런 느낌이 더 들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에 훌륭하고 귀중한 공간들이 지나치게 절제된 나머지 '이게 뭐지'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나, 아들과 아빠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기엔 더 없이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두시간여 동안, 수준 높은 박물관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주의 자연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눈길을 밟으며 훌륭하게 마무리한다.




세 해 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겨울날, 처음으로 아들과 단둘이 여행을 하겠다며 짐을 쌌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약 24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일주하는 자전거여행이었는데,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여행 코스이긴 했지만, 한 겨울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그것도 자전거를 평소에 즐기지 않던 당시 15살 아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했다.   그럴만한 동기는 있었는데,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던 아들과 티격태격 하느라 마음고생 심했던 아내에게 잠시 동안 만이라도 휴식을 주고 싶기도 했고,  그 동안 아들과 부족했던 교감의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해보려는 아빠의 가상한 노력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낯설었던 첫 여행이 어느덧 익숙한 부자간의 겨울여행이 된 걸 보면 아들에게도 영 터무니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올해도 제주로 여행을 떠난다.   며칠 전 운동을 하다 살짝 다친 아들을 위해 자전거 두바퀴 위 대신 네 바퀴 렌트카 운전대를 잡고 좀 더 따뜻하고 대화할 시간이 더욱 넉넉한 여행을 떠난다는 것 말고는, 그 익숙함 그대로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세번째 제주 겨울여행이다.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한 해씩 더 성장한 아들의 모습은 마치 일년에 한 번씩 똑같은 장소에서 찍은, 커가는 아들의 스냅샷들을 나란히 놓고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들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그의 인생 한 마디 한 마디를 느끼는 그 순간엔, 내가 그의 '아버지'일지라 하더라도 마주한 아들이 대견할 뿐 만 아니라, 그의 질문, 표현,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에 담게 되고, 나의 그것도 귀하게 내어 놓을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아빠를 향해 닫혀있지는 않은 아들의 마음과 가슴이 느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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