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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산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 둘째날

충주탄금대~안동 하회마을

충주호의 귀퉁이(?)에서 차가운 새벽바람과 함께 둘째날 아침을 시작한다.   충주호에서 막 흘러나오는 남한강 자락의 아침은 상쾌한 이슬 같았다.


사실, 어제 밤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칠흑 같아져 버린 시골길을 조그만 헤드라이트에 의존한 채 길을 재촉하던 찰라, 갑작스레 불빛에 비춰진, 고양이 같은 걸 안고 쭈그린 채 앉은 한 여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놀란 가슴 진정하느라 이른 잠을 설친 터였다.


날이 밝은 낮은 강가의 호젓한 길이 어젯밤 놀란 가슴을 미소짓게 한다.


*커버사진: 충주 탄금대 가까이 아침 남한강


휴일의 아침, "파크골프"를 즐기시는 어르신들

탄금대를 지나, 얼큰한 해장국으로 배 속을 채운다.   체력 소모가 많을 땐, 쉴 새 없이 먹어야 한다. ^^


새재 자전거길

국토종주 라이딩의 남한강길에 이은 두번째 카테고리~

시작은 비포장 도로 때문에 첫인상을 구겼지만, 이내 그 상쾌함과 내 고향산천을 달리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분명 고향은 아니지만, 원래 부터 이곳에 살았던 듯, 익숙한 라이딩을 이어간다.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던 코스모스

남한강자전거길과는 달리, 강 폭이 좁고 좁은 강 옆으로 아기자기한 산들과 바위들이, 이 곳이 새재길 임을 말해주는 듯 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다리에 툭 하고 부딛치는데, 내려다 보니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매미다.   매미는 수년간 땅 속의 생명을 틔우는 시간을 지나 한 여름의 단 며칠을 살다가 떠난다고 하는 데, 이 녀석은 늦여름의 시간에 태어난 모양이다.  



악명 높은(혹은 유명한?) 이화령 고개길은 첫 시작점에서 곧바로 5.2킬로미터 업힐(고개길 오르막)이 시작된다.  대략 8~12%를 오가는 고개길인데, 5킬로미터 이상 지속되다 보니, 자전거로 이 곳을 찾는 라이더들에게서 "악" 소리 날만 한 듯하다.

이화령을 오르는 고개길. 8~12%의 오르막이 5킬로미터나 지속되는 길이다

이화령 고개길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전거 라이더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명성 값을 하나보다.   이런 힘든 업힐에서는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의도하지 않았고, 나의 페이스 유지를 위해 달릴 뿐인데, 동생벌 라이더들 조차 앞지르며 오른다.   어떤 분께는 앞지르는게 미안한 나머지, 엄지를 들어 화이팅을 외쳐 드린다.   이런 업힐에선 누군가 앞질러 가면, 힘이 빠져버릴 수 있기에.


힘든 숨을 연거푸 몰아 쉬며 땅 만 보고 올랐다.   내 발 밑에서 콘베이어밸트처럼 흘러가는 땅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단 한 번도 원했던 적 없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란 상상 조차 해 본적이 없는, 어릴적 약한 아이였던  내게서 이런 힘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왜 나오는 걸까?'


숨은 턱 밑까지 올라왔지만, 머리 속은 육체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듯, 생뚱 맞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화령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이화령 정상에 오른 뒤.  다행히 뒤 이어 오른 분이 계셔서, 한 컷 부탁드렸다

어제 춘천(북한강)을 가려다 남한강길로 잘 못 들어서서 여기까지 오셨다는 분, 그분 덕에 이화령 표지석 앞에서 사진 한 컷.   댁에서 전화가 걸려 온 모양인데, 멀리서 들리는 한 마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제 돌아갈게~"   와이프 되시는 분 화나신 듯. ^^


올해 일흔 되셨다는 어르신은 배터리를 달고 전동자전거를 만드셔서 여기까지 올라오셨다.   귀한 영양갱 하나를 내게 건네셔서, 자연스레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번 여행 동안 처음 보는 분들과 수다만 늘어 간다.


"배터리 없이 타시는게 어떠세요?  배터리 방전되면 낭패 보실 것 같아요~"  말씀 드렸더니, "아냐~  이렇게 젊은 사람들하고 예까지 와서 얘기도 하고 좋지 뭐~"   어제 남한강길의 멋진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상주 상풍교에는 무인판매를 하는 시원한 얼음물 아이스박스가 놓여있다.   자연스레 숙소 홍보도 겸해서.

안동쪽 낙동강(최상류)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을 만난다.   오늘 밤 묵어갈 하회마을 초가로 가는 길이다.  한참을 더 가야한다.


안동 하회 마을로 향하는 아름다운 늦은 오후 자전거 길

길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중간중간 어이없는 어려움도 있었다.  등산으로 만날 것 같은 숲 길도 지나치며, 해가 져버릴까 쉴 새 없이 페달을 밟는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 대한 추억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회마을은 와이프가 좋아해서 가족들과도 얼마 전에 다시 들렀었는데, 하루 밤 묵어 가는 것은 처음이다.    마을 초입의 장터에서 안동찜닭을 안주삼아 막걸리로 갈증을 푼다.   내일, '하회마을의 아침'의 기대감이 부푼다.


하회마을 초가 숙소에 늦은 시간 도착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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