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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Mar 04. 2024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1. 시작부터 말았어야 했던 그 일, 입사.

그렇게 대표에게 단단히 홀린 나는 현직장에 퇴사를 고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급한 것 없으니 천천히 정리하고 오라는 대표의 말도 당시에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정말 일이 없고 명목상 필요한 사람이라 뽑았던 것인데,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름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터라 방콕여행을 10일 정도 하고,

귀국 당일 첫 출근을 했다.

새벽 6시 도착, 캐리어가 제일 마지막으로 나오는 바람에 캐리어 픽업하니 7시.

택시 타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출근하니 9시.

이십 대 때에는 귀국 후 출근을 종종 했던 터라 가능할 줄 알았는데,

가능은커녕 혼이 나가버려 몸은 회사에 있지만 영혼은 지천을 떠도는 상태였다.


대표와의 간단한 커피챗 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회사를 한 바퀴 도는데

이런, 영- 분위기가 좋지 않다.

피곤한 내 컨디션 탓 일거라 생각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두 분의 임원과 허가를 담당하는 직원과 함께 총 4명이 함께하는 식사였다.

간단한 호구조사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전무의 호구조사는 꽤나 집요했다.

특히 종교를 묻고 타종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 손꼽히는 모 교회의 권사님이시라고 한다.


전도의 손길이 뻗어져 나올까 싶어 재빠르게,

나의 종교는 천주교임을 밝혔다.

그러면 그만하실 줄 알았는데...

구교가 타락해서 발생한 게 개신교인 것을 아냐며, 천주교는 더럽고 타락한 존재라며

한참을 열변을 토하신다.

암요, 암요. 세계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인걸요.

십자군전쟁을 포함한 세계사를 한번 훑고 나서야 전무의 이야기는 멈추었다.

끝에 '우리 선임님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 다들 그래요, 남들이 싫어하고 힘든 전도를 왜 하냐고. 좋아서 하는 거야. 내가 좋으니까. 이 좋은걸 나만 알 수 없으니까. 기회를 주고 싶은 거야.. 좋은 걸 알 수 있는 기회. 나중에 내가 시간 되면, 기도로 이뤄낸 것들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줘 볼게요. 우리 선임님이 좋은 사람 같아서 그래.'


'아 네, 전무님. 하하. 네.시간 되실 때 더 대화 나눠요.'

다행히도 영혼이 밖에서 돌고 있었기에 큰 노력 없이도 웃어낼 수 있었다.

내 안에 자아가 있었다면 표정 관리에 힘이 들었을지도.

귀국 후 출근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특허 담당자분께서 커피챗을 요청하셨다.

아. 그래, 그래. 안그래도 피곤한데 커피 많이 마시면 좋지.

오늘로만 4번째 커피이긴 하지만,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인사할 때, 식사할 때, 변함없이 표정이 좋지 않았던 분.


그분은 나를 앞두고 말했다.


'여기 왜 왔어요? 가능하면 이번달 안으로 이직 준비하세요.. 이 회사는 진짜 최악이에요.

제가 다녀 본 그 어떤 회사들 중에서도................................'

 


아, 나 원참-..

기분탓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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