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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Dec 08. 2023

스타트업에는 어떻게 가게 됐어요?

3. 사람 착각하신 것 아니에요?

두 번째 면접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면접은 참 이상했다.

테이블에 대표, 메디컬닥터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모여서 이 회사를 어떻게 굴려야 하나-를 고민했다.

무경력자에서 갑자기 회사의 중역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고민을 아직 채용도 안 된 나와 함께 하다니, 이런 게 스타트업인가?


갑자기 회사의 이력과 구조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어떤 걸 수상했고, 어떤 투자를 받았고, 어떤 기기를 개발했고, 회사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등등..

지금 OJT를 하는 건지, 나에게 투자를 받고자 IR을 설명하는 건지 긴가민가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채용 전, 두 번째 면접이었다.


갑자기 대표가 본인 자랑을 시작한다.

라테는 말이야- 내가 예전에는- 식의

진부한 수식어를 써가며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영광에 찬 눈으로 설명한다.

아, 과거의 영광보다 이 회사가 뛰어난 게 없구나를 눈치채려던 찰나

메디컬 닥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한다.

대화의 주인공을 바꿔치기하다니, 연륜에 비례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본인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며 앞서 자랑한 것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암시와 겸손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노련미까지 보인다.


조금 지루하고 집중력이 사라질 무렵

지금 우리 회사에 부족한 게 임상이랑 기타 등등이 있는데(설명은 했으나 알아듣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해낼 수 있냐는 질문이 기습으로 들어왔다.


'못하죠.'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 연구 쪽 경력 없다고 사람 민망하게 한 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갑자기 모든 일을 총망라해서 해내라니!!!!


'사람 착각하신 것 아니에요?'


이 말에 대표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크게 웃어댔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못하겠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쳐야지!'


아, 내 포부가 부족했나 싶어 자신을 반성하고 있을 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이 회사를 어떻게 굴리는 게 좋겠냐며 회사 운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내부에 어떤 싸움들이 있고 자신의 높은 이상과 꿈, 비전에 비해 직원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토해낸다.

방금 전까지는 데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보잘것없다더니

지금은 뛰어난 자신에 비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해댄다.

그러면서 마치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면

회사의 부족한 임상을 해결해 주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일 것이고

회사 내의 갈등을 해결해 사기도 북돋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를 높이고 칭찬한다.


전형적인 꾼의 수법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대화에 끌려다니며

이 회사의 비전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회사는 대표부터 직원들까지 참 대단한 사람들만 모여있구나, 

이런 회사에서 내가 꼭 필요하다니! 이런 영광이 다 있나!

라는 결론에 함께 도착해 버렸다.


그렇다.


그날 사람을 착각한 것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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