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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Feb 28. 2021

인생이 그렇고 그런 거지

"가도 가도 산이고"

아이가 졸업한 성당 유치원의 마당을 걸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머물렀던 곳.

‘우리 어머니’라고 쓰여 있는 성모상을 찬찬히 올려다봤다. 키 작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어 나의 아이까지 돌보고 계셨을 성모님을 생각했다.


너른 성당 마당에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앳된 젊은 엄마가 보인다. 허리춤에 매달린 힙시트가 아이가 뛰어갈 때마다 같이 흔들린다. 엄마가 뛰어가므로. “까꿍” “옳지! 잘하네!”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엄마가 아기를 놀아준다. 원래 저 목소리는 저 엄마의 평소 목소리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성당 마당의 한쪽 편에는 아이들을 다 출가시켰을 법한 60대쯤 보이는 어르신들이 모여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있다. 그 둘 사이를 가로질러 가며 생각했다. 이 쪽이나 저 쪽이나 외롭기는 똑같겠지.


나는 아직 중년 여성의 편에 서보지 못했으나 그래서 외로움의 깊이는 모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허리춤에 힙시트를 매달고 뛰어본 경험은 있으므로, 그저 아이가 잘 뛰고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만족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므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내어주고 헌신하고 돌보는 일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이 고였다. 그것을 항상 퍼내야 살 수 있었다. 한 장소에서 펼쳐진 두 갈래 여성의 삶을 조우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혹은 저 중년 여성의 삶으로 빨리 건너가고 싶진 않은지.


3월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이의 머리카락을 말려주며 말했다.

“지성아, 서진이도 너처럼 엎드려서 머리를 감으면 좋으련만. 서진이는 아직까지 아기처럼 머리를 감겨야 해서 엄마가 너무 힘이 드네. 머리가 꼭 수박처럼 무거워.”

“엄마, 인생이 원래 그렇고 그런 거지. 가도 가도 산이고!”

쭈그리고 앉아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주다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나의 폭소는 멈추질 않았

다.

“지성아,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얼마 전, 내 엄마에게 두 아이를 같이 입학시켜야 되고 회사일도 많아 바쁘다고 투덜거렸는데 엄마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줬다.

“원래 다 그런 거다.”

그때 아주 잠시, 위안을 얻었더랬는데. 그 같은 맥락의 말을 아이에게서 들으니, 이건 하늘이 주는 메시지다 싶으면서도 웃음이 나는 거다.


“인생이 그렇고 그런 거지. 가도 가도 산이고.”

3음절과 4음절의 묘한 반복으로 운율까지 입에 착 감기는 이 문장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이 말은 예전에 읽어줬던 동화책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대사였음을 기억해냈다.

내 폭소의 의미를 지성이는 ‘기쁨’ ‘즐거움’으로 해석했고,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지성이는 뒤에서 이 말을 내뱉었다.  

“인생이 그렇고 그런 거지. 가도 가도 산이고. 엄마 웃었어?”

“그래 맞아. 인생이 그렇고 그런 거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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