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이킷 2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남편 문수씨

by 비트윈 Mar 17.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남편 문수씨는 거제에서 태어나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 노량진 수산시장의 활어 유통회사에서 물차 끄는 일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회를 잔뜩 실은 트럭을 끌고 나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광어 1kg짜리를 응원단에 던져준 일이 뼛속에 영웅담으로 새겨져 있다. 그때만 이야기하면 눈빛이 광어처럼 빛난다.


“아, 요새 왜 이렇게 힘이 없지?

회를 못 먹어서 그런가.”

“회랑 과일을 통 못 먹었잖아.”  


문수씨는 구독자 5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다. 4년 전 유명한 대기업 식품회사에서 채소 MD일하다가 1년 육아휴직을 한 후 복직했지만 팀장은 과일 MD와 채소 MD의 일을 동시에 맡겼다. MD라 하면, Merchandiser의 약자로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남편 직장의 MD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을 줄인 말이라고 농담을 했다. 문수씨는 아빠 육아휴직을 권고하는 시대에 회사의 처우가 불합리하다고 느꼈고, 그 후로 팀장이 회의실로 부를 때마다 휴대전화의 녹음 앱을 켜고 들어갔다. 고맙게도 팀장은 반말을 일삼았다.


경선씨는 남편이 MD로 일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김장철이면 배추와 배추소를 발주했고, 추석이면 명절선물센트를 구성했다. 상품을 구성하고 기획하는 일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남편이 자신이 쌓고 싶은 경험이었고, 또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므로. 그러나 김장철에 남편은 회사에서 직영하는 매장에 발주가 잘못 들어가거나 물량이 부족하면, 배추 몇 포기를 들고 KTX를 탔다. “뭐야, 배달 일도 하는 거야?”


독박육아에 지친 경선씨는 주말에 서울역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남편의 뒤통수를 향해 투덜댔다. 경선씨는 제철음식을 즐겨야 하는 사람들 덕분에 ‘제철음식’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어느 소설가는 봄나물을 먹으면 장기가 따뜻해진다, 흙냄새가 올라온다고 제철나물에 대한 찬양 글을 썼지만 경선씨는 먹는 사람의 기쁨과 먹을거리를 차려내는,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의 노고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비자 뒤에는 제철 과일, 제철 채소를 생산하고 수확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의 고생이 줄줄이 꿰어져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새벽배송을 시작한다는 광고가 붙은 화물트럭을 본 순간에는 얼음이 되었다.


“새벽배송을 사람이 하는 거잖아. 새벽배송이라니 너무 가혹한 일 아니야? 누군가는 새벽에 깨어 있어야 하고. 먹도록 설계된 인간은 오로지 먹기 위해서 그 어떤 노동도 자신 가족의 노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안 하나 봐!”


이 모든 말은 그저 경선씨가 독박육아의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은 고될 것이라는 단지 그 믿음 하나에서 쏟아져 나왔다. 삶이 고단해서 퍼부어지는 그런 류의 말이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고통과 밀접하게 연관된 어떤 일을 몹시 증오할 수밖에 없게 설계되었음을 경선씨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남편 문수씨는 육아휴직의 부당함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모든 자료와 녹음파일을 제출했고, 노무사 상담으로 도움도 받았다. 회사에서 받아낸 돈으로 문수씨는 젖병소독기, 가습기, 베이비마스터기, 유아용 매트리스 같은 육아용품들을 브랜드별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경선씨의 복귀 날짜는 계획보다 당겨졌다. 경선씨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택배 박스가 그를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이번에는 뭘 산 거야? 제발 그만 좀 사면 안 될까? 집에 놓을 자리가 없어...”


문수씨는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절은 지금”이라며 유튜버 꿈나무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절이라는 말도 유명 유튜버가 한 말이었다. 꿈나무라는 남편의 이마는 M자형 탈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은 유명 유튜버를 꿈꿨다. 구독자 65.3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열심’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처럼 되는 게 계획이었다. 유튜버 열심은 식기세척기를 3개월간 100번 넘게 사용하고, 공기청정기 3대를 사서 100일 동안 사용하고, 로봇청소기를 1년 넘게 써보고 난 후의 리뷰를 올리는 ‘경험 리뷰어’의 대가였다.


“구독자가 80만 명이 넘으면 수익이 얼만 줄 알아?”

남편의 언어는 항상 질문형이었다. 아내 경선씨는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는 이야기들이 그만큼 많았다. 둘은 같이 살았지만, 두 사람의 내면이 속한 세계는 달랐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열심 채널에서 몇 개의 동영상을 살펴보았지만 경선씨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식기세척기에 건조오징어를 넣으면 반건조오징어가 되는지, 옷을 건조기에 반복해서 돌리면 옷이 얼마만큼 줄어드는지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도 했는데, 경선씨에게는 이또한 한없이 안쓰러운 일로 비쳤다.


“여보, 열심 집에는 택배 박스가 진짜 무한으로 쌓여있겠다. 저걸 계속 주문하고 치우고, 구매하고…. 근데 자기도 이걸 하겠다는 거야?”


경선씨는 베이비마스터기를 조립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문수씨는 설명서를 보며 하나씩 조립을 해나갔다.

“이게 이번에 신제품으로 나온 건데. 두유 제조 기능이 있어. 우유랑 콩만 넣어도 두유가 만들어져. 너무 신기하지 않아? 지운이가 따듯한 두유를 좋아하잖아. 예전에는 이유식 만들 때 일일이 다….”


“와, 누가 들으면 자기가 지운이 이유식을 다 만들어서 먹인 줄 알겠네.”


경선씨는 남편과 아들이 잠든 밤에 홀로 식탁 부엌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조용해진 공간에서 홀로 써 내려가는 글은 그에게 누구도 주지 못하는 평화를 선사했다. 고요히 잠든 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그의 펜이 노트에 닿는 소리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주택에서의 삶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