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도시생활자가 주말 시골생활자에게

농촌유학에서 건져올린 단상

by 계절 부자

농촌유학 두 학기 째다. 지난해 여름을 순창에서 시작해 시간의 계절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시 맞은 여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계절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평일 도시생활자인 나는 주말에는 시골생활자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종종 느낀다. 평일 도시생활자가 주말 시골생활자를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나는 평일에 서울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농촌유학 중인 아이들을 만나러 온다.)


숲이 우거진 시골길을 떠나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명동거리를 거닐고 있노라면, 문득 도시에서 산다는 건 어쩌면 조금 불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와 집값을 생각하면 서울의 고층 아파트에 붙어살아야, 나중에 자식들에게 남길 재산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지만. 도시의 거리에서는 자본주의의 향 혹은 악취가 넘쳐흐른다. 계속 사고 싶게 하고, 계속 사라고 부추긴다. 물건들이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 도시를 걸을 때 내가 느끼는 것들이다.


반대로 초승달 옅게 뜬 저녁노을의 하늘,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걷노라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었단다’라고 누군가 삶의 진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인생에서 살 것은 그리 많지 않아. 홈쇼핑 채널을 끄고 장바구니를 비우렴.’ 속삭인다.


이마트에서 배라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면

자신의 몸체만 한 해체된 변신로봇 박스를

들고 있는 친구들이 보이고, 그 모습이 동공에 비친

아이는 입 안의 아이스크림은 잊은 채, 로봇 박스를 손에 든 아이가 부러워지는 거다.


대형 마트에서의 주말 일상이라는 것은

장바구니에 먹을 것, 입을 것을 부족하지 않게 꽉꽉 채워넣었음에도 만족은 장바구니에 담기지 않는다. 살 수도 없고,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결핍감이 계속 몰려오게 설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아이러니하게 아이들과 함께일 때 더 많은 결핍을 느낀다. 늘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그저 채워주고 싶은 부모의 욕구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4인가구가 키즈카페 돌고 식사 한 끼 하고

장을 보고 20만 원 가까이 썼는데도, 20만 원의 충만함은 온데간데없다. 그게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논두렁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초등학생 2학년 아들을 본다. 주말마다 아파트 단지에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가 엄청난 서울의 학군지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놀이터에는 미취학 아동들이 많다. 취학과 동시에 취원한다. 학원으로...


거리의 들풀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고 화분에 옮겨 심고, 손바닥 사이로 작은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미끄러져 탈출한다. 고층 아파트가 없는 이곳에서 하늘이 낮은 걸 알았다.


명절 때마다 수도권을 벗어나 할머니댁으로 가는 길에 논두렁길과 밭으로 이어진 배경들을 스칠 때마다, ‘이런 데서 나는 못살아’했지만 시골 정취의 진한 향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고 있다.


평일, 도시에서 멍든 고립되고 개인주의적인 마음을

주말, 이곳의 개울가에 헹구며 나의 인간성이 회복되어 간다고 느낀다. 아이들을 키우며 인간성 회복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했더랬는데, 너른 들판 역시 내게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여든 넘은 나이에 딸네 아파트 집에 와서

당신 고향, 당신 집의 낮은 문턱, 마당, 길을 그리워하셨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농촌유학을 와서 이제야 그런 마음들을 알게 된다. 하늘과 땅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고, 우리는 그 사이의 공간을 누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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