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목욕탕. 도서관. 카페에 갈 짐을 꾸려 운전대에 앉았다.
라디오 켜고, 등 따시게 하고 선희한테 전화를 걸어
남편 욕을 디립다 하는데
눈발이 날려, 차창으로 작은 눈발들이 흩날렸고, 그때 마침 라디오에서 흐르는, 흘러간 옛 노래가 나와
울고 말았다.
중학생 때 친구인 선희는,
기다렸던 소중한 시간이잖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그리고. 그 시간엔 끝이 있잖아, 했다.
눈물이 볼을 적셨다.
이제 일주일인데. 주말부부에게 갑자기
주말 + 평일까지 더해지면 보기 싫은 꼴도 봐야 하는 법.
둘째가 일요일 저녁에 물었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식 할 때 어떤 기분이었어?"
"왜 엄마아빠 싸우는 모습 보니까-
이럴 거면 왜 결혼했나 싶어?"
"응"
둘째는 아동학대라고 했다.
부모가 싸우는 것은, 요즘은 교육의 질이 섬세해졌고, 아이들은 또 그런 것들에 밝아졌다. 다행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세상의 모든 부모는 의견 차이로 다툴 수밖에 없어. 부부는 싸우면서 같아지기도 하고, 다른 걸 알아가기도 해.”
(난 갑자기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너랑, 형아랑. 맨날 싸우지?
그럼, 엄마 아빠는 부모학대네.
자식들에게 받는 부모학대. “
서진이가 말했다.
“아빠랑 똑같이 말하네.”
도시에 살 땐-
남편이랑 싸우면. 갈 곳이 많았다.
남편의 머리카락 하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도파인 터지는 재미난 곳들.
이곳 시골에 내려와 남편과 싸우니,
이 시골마을 전체가 지옥 같은 거다.
결국 내가. 아침에 막내가 오줌 싼 이불을 세탁기에 넣으며 생각해 낸 곳은 동네 작은 목욕탕이었다.
목욕탕에 갔다가 자주 가는 백반 집에 갔다.
식당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행방을 물었다.
나 여기 온 지, 우리 애들 여기 온 지 이제 2년 넘어가는데 우리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아신다.
남편이랑 싸웠는데, 계속 묻는다.
“왜같이 안 왔냐, 어디 갔냐.”
친구와 통화를 마친 후, 작은 목욕탕에 갔다.
2000원이었다. 귀여운 금액.
아니, 내가 지금 타임스퀘어라면 남편과 싸우고 혼자 호젓이 나와 밥을 먹고 있다면.
설령, 나를 아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남편은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을 것.
도시만이 가진 개인적인.
익명성이 갑자기 세련되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해줄 저녁거리들을, 왕창 샀다. 김밥재료들.... 어묵국.
작은 목욕탕에 몸을 적시니, 살 거 같았다. 내 몸 전체를 담글 수 있는 목욕탕 크기의 마음을 가진 남편은 세상에 없는 거다. 가슴과 엉덩이살이 늘어난 할머니들의 굽은 등을 목욕탕에서 보고 있자니, 저분들이 견뎌내야 했을 삶은 또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다. 온몸으로 버텨온 삶이었겠지. 쌓일 때마다 벗겨내는 때처럼 그렇게 밀기만 하면 사라지는 건지 궁금했다.
방금 막내가 새로 옮긴 유치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너무 잘 지낸다고.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항상 웃고 있다고!!
이 어미는 선생님의 전화한동에 남편이 준 스트레스를 작게 작게 구겨서 껌종이 사이즈로 만든 다음
저 멀리 말로 차버렸다. 시골에서 부부싸움 후 살아남는 방법은 여전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