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품격 필사(1)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 한식의 품격 -이용재 저

by 박노진의 식당공부

들어가는 글


그는 유명하다는 곰탕집 적당한 빈 자리를 찾아 앉는다. 당연히 합석이다. 곰탕은 놋쇠 사발과 전혀 격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뚜껑 없는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겨 있는 말라가는 파를 얹고 멀건 국물 속에 풀어진 밥, 위에 고기 몇 점 그리고 소금 간과 바로 입에 넣을 수 있는 낮은 온도(이건 장점)에서 들척지근한 조미료의 ‘훌훌 욱여넣는’ 곰탕이 서울에서 가장 유서 깊다는 ‘전통 맛집’에서의 경험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비싸지만 빈약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


이런 수준의 음식을 과연 전통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호해야 할 것인가. 종류 불문, 한국의 음식은 맛이 없다. 맛없음에 대한 고민이 가실 날이 없다. 한식 이전에 양식이나 중식, 일식도 마찬가지다. 대량생산 음식도, 가정식을 표방하는 밥집의 음식도 마찬가지다. 취향을 논하기 전에 완성도의 문제가 걸린다. 원인은 한 가지일 리 없다. 재료도, 여건도 나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원리의 이해를 바탕 삼은 기준이나 원칙을 참고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진다. 주먹구구가 판을 친다. 그래서 전작 ‘외식의 품격’을 통해 일단 한국에서 유통되는 양식의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기준과 원칙의 부재를 짚었다.


왜 하필 양식부터 시작했을까? 그 선택의 이유 자체에 일종의 서글픔이 배어 있다. 참고 자료가 많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역사 사료 등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발전을 위한 객관적인 검증을 시도한, 실용적인 자료가 많다. 스테이크가 좋은 예다. 이제 단지 불판 위에서만 익어가지 않는다. 진공 포장되어 저온의 물에 익기도 하고, 그 뒤에 불판을 거쳐 가기도 한다. 액체 질소에 튀기듯 익힐 수도 있다. 조리의 원리를 일단 이해한 뒤 실험을 통해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해보고, 그 가운데서 최선을 찾는다. 그리고 갱신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영어만 할 줄 알아도 얼마든지 그 실험과 연구의 결과물들을 접할 수 있지만 한국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나마 양식의 사정은 좀 낫다. 단지 풍부한 자료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한식의 영역에는 그런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 음식이므로 문제의식을 전혀 품지 못한다. ‘왜?’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원래 그랬다’고 답한다. 하지만 그 원래가 대체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짚어준느 경우는 드물다. 되려 미화하는 경우도 많다.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시원하다’고 칭송한다거나, 발효식품이 한식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것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건강식이라 떠받들기도 한다.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이 벗어지고, 맵고 짠 반찬이 식탁을 뒤엎어도 느끼지 못한다. 말하지만 한식의 수준을 놓고 철저한 불감증, 또는 인지부조화가 일상화된 현실이다.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가? 그 문제 자체를 진단하기 위해 ‘한식의 품격’은 다소 멀다고 느낄 수도 있는 길을 돌아간다. 무엇보다 한식의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포석을 깔아줄 한국어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갈래의 과업을 차례대로 수행한다. 1부에서는 맛의 기본적인 원리부터 살펴본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다섯 가지 맛이 존재하고, 그것들 사이의 균형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각 맛이 작용하는 원리를 일단 소개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한식에서의 역할 또는 부재를 진단 및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한식에만 존재하는 ‘맛 아닌 맛’을 살펴본다. 한마디로 한식은 먹기 힘들다. 펄펄 끓는 국물을 예로 들었듯 극단적인 온도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다. 아니면 너무 익혔거나 너무 안 익혔다. 이렇게 온도 조절의 실패, 익힘의 정도와 방식의 실패가 낳은 결과물을 ‘쫄깃하다’며 힘을 주어 씹어 먹는다.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 너무 익었거나 아예 익지 않은 것 사이에 무수히 존재하는 중간 지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궁극적으로 조리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상태를 ‘한국의 맛’이라 규정하는 사이, 저통과 단순한 습관의 경계는 차츰 더 모호해진다. 한식의 상징이라 내세우는 매운맛도 마찬가지다. 청양고추를 넘어 수입산 캡사이신 농축액으로 강화하는 매운맛이 과연 한국 고유의 맛일까?


또한 조리법이나 형식을 점검함으로써 본격적인 답을 구한다. 밥을 중심으로 한 반찬 위주 상차림이 현재 맛은 물론 시간과 노력의 측면에서 최선의 식사 형식인지 검증하고, 아니라면 보완점을 고민한다. 손맛을 축적할 만큼 여유도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그것의 전수는 가부장적 질서를 지탱하는 데 기여하기 쉽다. 이런 현실에서 좋으나 싫으나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의 맛을 분석하고 의미를 재고한다. 볶음이나 전처럼 익숙한 조리법이 과연 맛을 위한 최선인지 살펴보고, 밥 옆을 늘 지키는 국물 음식의 허무함을 들춰본다. 그리고 이 모두의 유기적인 구성 및 연결을 위해 개개의 음식과 함께 그 상위 범주인 문화 비평을 구조물로 삼는다.

현재의 한식에 품격이란 없다. 물론 음식의 핵심은 맛이다. 맛이 없는 음식은 품격도 떨어진다. 그래서 ‘한식의 품격’은 음식 외적인 문제를 최대한, 그리고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맛에 집중한다. 어원이나 역사를 끝없이 들먹이는 말장난이나 정치적 진영 논리에 의한 가치 판단이 이미 한국의 음식 저널리즘에는 끓어 넘친다. 그 와중에 맛의 담론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배제된다. 맛에 대한 논하기를 두려워하는 수준이다. 이 책은 그러한 담론의 흐름을 다시 음식의 본질로 돌리는 역할을 추구한다.


사회는 갈수록 개인화되고 있는데, 과연 한식은 집 안팎의 영역에서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걸까? 자가 조리가 불가능한 여건이라면 편하거나 맛있게 사먹기라도 해야 한다. 과연 한식은 그런 미덕을 갖추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먼저 고민해야 품격을 찾을 수 있고, 그럴 때에야 세계화처럼 거창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단 ‘안에서 새는 바가지’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이 한데 어우르는 기준과 방법론에 근거한 한식 비평을 꾸준히 써오면서 곧잘 직면하는 비판이 있다. 외국 특히 서양요리의 기준으로 한국 음식의 세계를 재단한다는 주장이다. 얼핏 복잡한 문제 같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의 삶은 이미 서구화되어 있다. 의식주라는 세 가지 필수 요소 가운데 ‘의’와 ‘주’는 이미 완전히 서구화되었다. ‘식’도 맛의 형식 또는 맛의 문법만 놓고 보면 한국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구현하는 방법은 철저히 서양의 기술에 의존한다. 아무도 장작불을 때어 평양냉면의 육수를 끓이거나 면을 삶지 않는다. 서양의 기술으 ㄹ바탕으로 발전한 가스 불이나 압출기가 대체한 지 오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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