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대량생산된 한국적인 맛

by 박노진의 식당공부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 한식의 품격 필사(3)-이용재 저

라면, 대량생산된 한국적인 맛(23p)


한국적인 맛의 대량생산

한식을 살펴보는 여정을, 왜 굳이 밥도 아니고 공장에서 생산된 인스턴트 음식인 라면으로 시작하는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라면은 한국에서 최초로 현대적인 대량생산 음식이다.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후루룩 짭짭’ 먹듯 훑어보아도 한국의 식문화가 보인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은 무엇인가? 범위를 비단 한국에 국한하지 말고, 세계를 대상으로 삼자. 한국의 맛을 소개하고 싶다면 어떤 음식을 선택할 것인가. 주저없이, 단연코 라면이다. 쇠고기국물을 바탕으로 얼큰함이 살아 있다. 요즘은 사람 잡을 듯 정도가 지나친 매운맛의 라면도 쏟아지지만, 이 맛이 좋은 싫든 가장 한국적인 맛이다. 또한 정치적인 목적도 한몫하여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 잡고 인이 박여버린 맛이기도 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되었다.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했고, 맺지 않은 닭 구물 바탕이었다. 이런 라면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한국인이라면 매운맛’이라는 윗분의 지시로 얼큰해졌다. 참으로 한국답달까. 덕분에 그래서는 안 될 힘이 음식과 맛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서도 의미 있다.


계량과 감의 충돌

라면은 조리예를 정확히 따라서 끓일 때 맛있다. 애초에 실험을 거쳐 대량생산화되었고 계속 연구되고 있다. 물은 계량컵으로, 시간은 타이머로 측정하면 된다. 현대적인 음식에 맞는 현대적인 취급이다. 안철수가 비커와 타이머를 써 라면을 끓인다고 밝혔다가 빈출을 샀다. 라면이 그런 음식이냐는 반응이었다. 라면은 정확하게 그런 음식이다. 다만 한 사람이 연간 70여 개를 먹을 정도로 친숙한 음식이다 보니, 감에 기대어도 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형성되었다. 크게 보면 라면의 문제만도 아니다. ‘한식=친숙한 음식’인 데다가 ‘음식=감정의 산물’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반영한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한식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곧잘 폄하당한다. 하지만 그런 과학기술이 없었더라면 1년에 35억 개 가량이 소비되는 라면과 그 얼큰한 맛을 아예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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