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예외적인 한식의 거울(1)

by 박노진의 식당공부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 한식의 품격 필사(4)-이용재 저

평양냉면, 예외적인 한식의 거울(28p)

미션 임파서블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에 미국 한식은 단맛이 아주 강했다. 풍부한 재료를 바탕으로 폭발적인 단맛의 한식, 누군가는 ‘LA화’라고 표현했다. 찾아 먹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불고기, 갈비 등 육류 요리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미국 각지의 거점 대도시에선 복수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었다. 요즘 목을 매는 ‘가성비’, 즉 가격 대 성능비가 뛰어났다. 소를 닭처럼 키우는 지료의 사육 방식과 저렴한 노동력이 공급회는 인력 환경이 손을 맞잡은 결과였다. 비단 한식의 사정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짜장면 같은 한국식 중식도 한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네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 온 화교 덕분에 오렌지 치킨 같은 미국식 중식마저 한 지붕 아래서 골라먹을 수 있었다. 분명 맛의 특혜였다.

평양냉면의 매력은 무심함, 또는 아닌 듯 그러함 아니던가. 구고 국물로서 최소한의 두툼을 함을 품은 육수 위로 퍼지는, 고소하다기엔 좀 넘치고, 구수하다기엔 또 살짝 모자란 메밀향, 등골이 가볍게 서늘해질 정도의 차가움, 아니 시원함, 진하게 캐러멜화된 마블링의 양념 쇠고기, 펄펄 끓는 뻘건 국물의 뚝배기 순두부와 허물없이 어울리라고 하기엔 고고한 음식.

한식의 제반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또한 음식 자체의 콘셉트와 구성, 맛 등은 물론 이를 둘러싼 의식이나 논란 등 한식 그 자체를 논하기엔 적합한 매개체다


사람은 스스로를 볼 수 없다. 그래서 거울을 쓴다. 생김새를 비롯 얼굴의 잡티까지 속속들이 보인다. 평양냉면은 한식에게 그런 음식이다. 한때 너무 흔치 않아 타자의 위치에 속했지만, 이제 인기를 얻다 못해 일종의 컬트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표준어 아닌 ‘슴슴하다’마저 긍정적인 의미를 띤 대중적인 표현으로 자라 잡았다. 이처럼 평영냉면이 특히 의미와 쓸모가 강하 한식의 거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식의 세계에서 평영냉면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관련이 있다.

평양냉면의 위상과 입지: 가정식과 식사 형식에 대한 인식

평양냉면은 입지와 위상에 대한 인식은 특별하다. 평양냉면은 밖에서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집밥과 바깥 음식의 경계가 모호한 한국 음식 문화에서 이러 ㄴ존재는 흔치 않다. 평양냉면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 식문화에선 외식, 특히 고급 외식을 위한 콘셉트의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끼니를 위한 음식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음식의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개념과 식문화가 부재한다. 말하자면 총체적 경험으로서 파인 다이닝을 위한 음식과 서비스, 분위기(인테리어) 등의 역할 모델 또는 틀(template)이 없다.


그래서 가격대가 올라가면 싼 음식에서 재료의 가격만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그 전형이 대표 외식 형식인 고깃집이다. 재료에 금전적 가치를 전부 몰아준 결과인데 마치 고급 한식의 형태인 양 통한다.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 경험 전체의 격이 일관되지 않는다. 불균형이 심하다. 재료인 고기 자체는 비싸지만 식기나 인테리어나 서비스 등은 훨씬 수준이 낮다. ‘외식비=재료비+최소 노동력’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선입견이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를 지배한다.

여기에 재료의 질이나 위생 등에 대한 불신이 가세해 외식의 입지를 약화한다. 그 결과 반대급부로 집밥이 숭상된다. 집밥, ‘집’의 ‘밥’이니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무엇보다 집밥 예찬은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맹신으로 변질된다. 어머니의 강조는 ‘밥상 차리기는 여성의 일’이라는 가부장적 인식과, 조리를 포함한 가사노동 분담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한편 ‘손맛’은 음식에는 이성보다 감성의 잣대가 중요하다는 편견을 강화해 레시피와 과학적 검증이 개선해나가는 조리의 현대화를 막는다.


집밥과 바깥밥은 왜 다를 수밖에 없을까. 전문적인 이해며 기술도 물론 중요하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만큼 여건, 특히 도구나 설비 등도 중요하다. 중식의 ‘불맛’이 좋은 예다. 반구형의 철 볶음 팬인 웍(wok)만 갖춘다고 해 집에서 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용 가스레인지의 출력은 평균 7,000BUT 인 반면 음식점 주방의 웍 전용 화로는 대개 여섯 자리, 즉 100,000BTU 선에서 시작한다. 전문적인 손길이 엄청나게 다른 환경을 다뤄 볶고 튀기는 것이다. 조리의 원리는 같지만 환경이 다르니 음식 맛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식문화는 이런 차이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떨어진다. 사 먹는 경우, 집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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