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예외적인 한식의 거울(2) 한식의 품격 필사
평양냉면은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다. 정도의 차이야 존재하겠지만 프로에게도 녹록치 않다. 핵심 요소인 육수와 면 양쪽 모두 그렇다. 평양냉면의 면은 기본적으로 메밀 중심이다. 그리고 이름과 달리 메밀은 밀 가문의 일원이 아니다. 수영이나 대황(디저트 재료로 쓰는 루바브(rhubarb))같은 마디풀과(polygonaceae)인데, 씨앗을 먹기 때문에 유사 곡물로 분류된다. 다만 밀이 아니라 글루텐(gluten)을 함유하지 않으니 가루에 물을 섞어 치대어도 탄성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메밀 반죽은 보통 밀가루로 만든 것처럼 매끈하지 않고 푸석푸석하며 쉽게 갈라진다. 일반 밀가루처럼 반죽을 늘려 면을 뽑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압출을 선택한다. 반죽을 틀에 넣고 꾹 누르면 주형의 구멍 모양에 맞춰 면이 쭉 뽑혀 나온다. 하지만 힘이 없어 길게 늘어지지도 않고 쉽게 끊어지니, 아예 뜨거운 물 위에 틀을 올려 뽑아내자마자 삶는다. 일반적인 평양냉면, 또는 명목상이라도 메밀을 쓴다는 막국수의 제면 환경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전분을 20~30% 더해 힘을 준다.
주방에서 직접 면을, 주문과 동시에 뽑는 덕분에 평양냉면은 한 켜의 가치를 덧입는다. 한식에서 드문 결의 신선함 말이다. 생재료, 이를테면 활어회의 신선함과는 다르다. 그건 아예 맛이 깃들지 않은, 날것의 거칢이다. 반면 평양냉면은 사람의 손을 거친 신선함을 품는다. 한편 직접 제분으로 신선함의 가치를 한층 더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식재료는 일단 물리적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맛과 향을 빠르게 잃는다. 커피나 향신료 같은 씨앗이나 열매, 심지어 마늘 같은 향신채가 대표적이다. 칼등으로 누르면 세포벽이 깨지면서 기름이 흘러나온다. 순간 강한 향이 배어 나오지만 화합물은 휘발성이 강해 금방 날아가버린다. 곡식이라면 눈과 겨의 지방이 금방 산패해 묵은 내를 풍기고, 심하면 시큼해져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순간의 최대치를 바로 음식에 더할 수 았을 때 식재료가 맛에 최선으로 공헌할 수 있다. 메밀의 직접 제분은 이를 장려하는 과정인 동시에 최선의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잘 보이는 유리벽 너머의 공간에서 제분기가 돌아간다. 먹는 이의 믿음을 확보하는 장치다.
국산과 효능에 대한 맹신
재료에 대한 고민은 상존한다. 크게 보아 맹신과 불신 사이의 갈등이다. 식재료는 가장 뜨거운 불신의 대상이다. 대량생산, 다국적 기업,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등 수많은 요소가 신뢰 체계에 도전한다. 그 틈새를 ‘신토불이’ 네 글자가 비집고 들어가 잠식한다. 국산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 거리와 환경 사이의 관계도 가세해 틈을 벌린다. 가까우면 좋고 멀면 나쁘다. 이성보다 감성, 더 나아가 윤리적, 민족적 접근이다.
한국의 식탁은 여전히 폭이 넓지 않고 보수적이지만, 신토불이 고집이 의미 없어질 만큼은 넓어졌다.
한편 재료는 언제나 또 다른 맹신의 근원이다. 효능을 향한 맹신 말이다. 한국 식문화의 효능주의는 이제 하이브리드 수준이다. 민족주의와 한방, 그리고 양식과 현대의학이 혼재하는 한가운데에서 뒤엉켜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의 트위커 계정이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음식의 궁합을 소재 삼아 홍보한다. 한국식 보양과, 음식을 단순히 영양분의 집합체로 여기는 서양식 영양주의(nutritionalism)에 입각한 항산화, 노화 방지 같은 개념이 뒤죽박죽 섞였다.
‘음식이 곧 약’이라는 믿음의 일부지만, 설사 효능이 실제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 먹어야 하는 양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초콜릿만 해도, 효과를 모기 위해서는 킬로그램 단위로 먹어야 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음식은 음식이고 약은 약일 뿐이다. 약은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먹는 것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유효 성분을 추출 및 농축해서 만들어진다. 약을 맛이나 즐거움을 위해 먹지 않는다. 따라서 약식동원(藥食同源)은 음식에서 맛과 먹는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개념이다. 둘의 세계는 확실히 구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