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제 '나는 대박식당을 꿈꾸지 않았다' 에필로그
사람들이 음식 장사에 뛰어든 이유는 가자가지입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모두에게 식당은 밥줄이자 미래입니다. 식당을 하는 사람은 밥을 팔아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밥’이란 한 글자에 담겨 있는 의미는 전혀 간단치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한때 살아 있던 생명을 죽여서 만든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갑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죽음을 먹고 살아갑니다. ‘밥’의 의미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에게 그 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게 쉬울리 없으며, 이처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먹고 살 일이 막막하면 ‘먹는 장사나 하지, 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밥장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사처럼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국내의 전체 음식점 수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인구 대비 3배 이상 많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통계만 봐도 한 해에 수만 개의 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고닫습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서 2021년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창업한 일반음식점은 총 65,806개, 폐업한 음식점은 54,437개에 달합니다.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을 단순 계산하면 82.7%로, 일반음식점 10개가 창업할 때 8개 이상은 폐업한 셈입니다.
음식점 폐업률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도 높은 편입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국세청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결과를 보면 2019년 기준 음식점업 총사업자는 754,000개, 폐업은 162,000개로 집계돼 폐업률이 21.5%에 이릅니다. 이는 전체 산업 평균 폐업률(11.5%)의 2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음식점업 폐업률은 2019년 국세청 통계 기준으로 52개 업종 가운데 단연 1위입니다. 요컨대 식당 경영은 가장 치열하고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식당의 폐업률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외식업이 실물경제의 최전선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변수에 가장 먼저 흔들리는 업종이 외식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위기가 잊을만 하면 반복 되어왔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25년 전이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7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위기가 덮칠 때마다 세상은 움츠렸고 식당 사장들은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번엔 코로나19가 모든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다시 세상은 어둠에 휩싸였고 우리네 삶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매일이 지옥 같았고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그저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기만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버텨내지 않았던가요.
지난 6개월간 두 명의 대박식당 경영자와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잘 나가는 식당 사장이지만 스무 세 살 무렵 형의 가게에서 장사를 배우던 중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 한 형의 가게를 이어받아 몇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30년을 돼지갈비와 냉면에 올인한 이천 오동추야 이완성 대표, 그리고 호주 유학파 쉐프 출신으로 4번의 실패를 딛고 한식, 그것도 보리밥으로 대박의 기틀을 만든 청주 대산보리밥의 이문규 대표가 주인공입니다.
공저작업을 하는 6개월 동안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일상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드디어 좋은 시절이 열리는가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영업은 호전되었고 매출과 수익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또 다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의 악몽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지역에서 전쟁이 터졌고 그로 인해 촉발된 충격은 물가상승과 유가상승, 그리고 환율상승까지 불러왔습니다. 코로나19의 악몽을 잊을만 하니 전쟁이라는 놈이 인플레와 경기 위축의 양손으로 우리 목줄을 움켜쥐려 합니다.
일부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가 외환위기나 코로나 이상이 될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위기를 빌미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자영업자의 등을 치는 사기꾼들도 슬슬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카톡으로 문자로 잘 보지도 않는 SNS로 주식과 부동산과 채권과 암호화폐로 시원한 한방 투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분명 위기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외식업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써온 나는 다가올 위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경험하고 공부해서 찾아낸 답을 세상에 알리고자 이번 책을 기획했습니다. 제 경험과 지식만으론 부족할 것 같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이완성 대표와 이문규 대표와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며 책을 완성했습니다. 우리가 거쳐온 지난 시간의 과오를 다시 겪지 않게끔, 내 삶과 가족과 주변의 음식점들이 더는 속수무책으로 문 닫지 말라고 말입니다.
공저 작업을 마무리하고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습니다. 10년, 15년은 더 젊은 저자들과 함께 보낸 6개월간의 시간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책을 쓰는 내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샤우론의 절대반지를 찾아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의 힘에 대항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르도르를 향해 목숨을 건 반지원정대와 난쟁이 프로도를 떠올렸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이 책을 쓴 우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뭐든 앞으로 닥쳐올 환난을 외면할 수 없음은 나도 그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 반지원정대의 멘토인 간달프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나 외부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그 게으름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난쟁이 프로도의 양아버지인 빌보 배긴스가 지은 시를 소개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황금이라고 해서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황자라고 해서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속이 강한 사람은 늙어도 쇠하지 않으며,
깊은 뿌리는 서리의 해를 입지 않는다.
잿더미 속에서 불씨가 살아날 것이며,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