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령(1)❯
드디어 원고작업을 마감하였다. 자판을 째려보기를 한동안. 승자가 누구인가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마친 원고가 그동안 쌓이게 했던 체증을 가라앉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대견해하기 보다는 거친 서투름에 마음이 안타까움도 같이 생각게 한다.
울트라 이후 알지 못할 자신감이 한동안 감싸고 있었다. 깔끔한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어쨌던 그때 마음은 사지로 가는 줄 모르고 교황을 외치며 창을 어깨에 메고 전장으로 웃으며 출정했던 십자군의 어린병사들처럼 가벼웠다. 그 기세로 남은 원고를 정복해 들어갔다. 국지전을 벌일 때는 하루에 몇 개의 칼럼을 단숨에 정복할 때도 있었다. 가는 곳마다 칼을 꽂으며 정복자의 만용을 여지없이 흩뿌렸다.
마지막 고지를 향한 백병전이 끝날 즈음 작전회의가 열렸다.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에게 현장을 버린 CEO처럼 돌아오라니······ . 본영의 장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선봉장의 혁혁한 전공에 한마디 칭찬은 커녕 싸늘한 차가움만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틀 후 전령이 왔다. 전령은 전날 왔지만 전령의 전달은 현장 속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 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통신두절이라나.
“차별적 원본을 확보하라.”
새로 하달된 작전명령이었다. 고민에 쌓였다. 지금 벌이고 있는 몇 개의 작은 전투는 어찌할 것이며 마무리되어가는 당장의 공격은 어찌해야 하는가? 작전명령서도 새로이 도달하였다. 예전의 작전지침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진격로를 명시하고 있었다. 그랬다. 분명 가보지 않은 길로 진격하는 것만이 한니발의 후예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전장은 피아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혼란스러운 백병전을 감수해야만 한다. 포병의 지원도 현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결국 국지전에서의 승부는 선봉군의 자체 판단과 용병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좀 다르다. 몇 가지 전투 자체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할 판이다.
유혹과도 같은 전투를 벌이라니. 적의 칼에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찔러야 생존할 수 있음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법이다. 그런데도 장군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침을 내려 보내다니. 현장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작전 명령서를 다시 해석해 보았다. 칼만 꽂고 다음 전투로 진격만 하다간 등 뒤에서 숨으면서 자라난 독버섯에 애써 빼앗은 땅을 다시 빼앗기리라는 경고가 있었다. 부실한 점령지는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Back to the basics !"
양피지로 새겨진 명령서를 촛불에 태우자 비로소 나타난 숨어 있었던 지침이었다. 아, 이런 뜻이었구나.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전열을 재정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책의 원고를 마감한 후 다시 재작업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이미 쓴 시간만큼 다시 원고와의 다듬기 작업이 지루하게 지속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술년이 가기 전에 출간하리라는 애초 계획이 연기될지도 모른다. 어찌 정해진 계획만이 중요하겠는가. 제대로 된 내용이 더 중요할 것이다. 편집의 지원을 받으려 했던 것도 혼자서 마감해 보기로 하였다. ‘작가의 정신이 가장 뚜렷하고 명확하게 나오는 순간’을 위하여.
‘최고의 품질을 확보한 원본’을 위한 사색과 연구를 시작하려 마음먹었다. 테드 레빗이나 피트 드러커, 필립 코틀러로 인해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닌 바넘, 찰스 디킨스 그리고 제임스 그레이엄과 같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유혹, 장군은 이를 수동적 유혹이라 하였다. 그 유혹을 다시 공부하면서 손님이 줄을 서게 하고 서비스와 맛을 특화시키는 검증된 모델을 만들리라.
지난 2년 동안 국지적인 전투가 계속될 때에도 한번도 지침을 내려준 적이 없었던 장군이었다. 그저 매일 조금씩 전진하라는 원초적 방침 외에는 별도의 전술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 간신히 적을 뚫고 한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 고지 너머 광활히 펼쳐진 대륙처럼 정복해야 할 땅의 위용에 눈부셔한 우쭐거림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였다.
까불지 마라!
한길 앞이 천길 낭트러지니 잘못 전진했다간 다시 보지 못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박노진의_식당공부
#매출은_과학이다
#자립형식당_경영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