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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Apr 28. 2016

적절성의 미학

내안에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고

2011년 여름방학 이희용교수님과 '미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었다.

칸트의 미학이론,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 라깡의 이론  등 정확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미학'을 다루고 공부했었다


그때 한창 윤리학에 관심있었던 나에게 교수님께서 던져주신 책은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었다


양장의 두꺼운 책을 스타벅스에 앉아서  꾸역꾸역 읽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 소개할 책 '내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무겁고 버겁던 그리고 지루하던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몇시간이면 후루룩하고 읽을수있도록 설명해놓은 입문서이다.(다소 내용을 너무 가볍게만들어서 애덤스미스의 원저와 상당히 대조되기도한다)


도덕감정론은 애덤스미스가 묘비에 새길정도로, 6번의 개정판을 낼 정도로 애착을 보인책이다. 오늘날 국부론이라는 대작을 내고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애덤스미스가 도덕?이라는 주제를 다룬것이 이상하겠지만 본래 애덤스미스는 도덕철학자였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싶어한다 그리고 이것을 행복이라고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자기애와 이타적인 인간애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이 갈등에서 대부분 자기애가 승리한다. 지나친 자기애는 스스로를 행복한사람, 사랑받는사람처럼 보이게하기위해 모든 수단을 합리화시킨다. 때로는 스스로를 옳다고 속이며 자기기만을 하기도하고, 부와 명예를 얻으면 더 행복하다고 착각하기도한다.


애덤스미스는 이런 자기애를 제어해줄 장치를 신이 사람의 내면에 만들었다고한다. 그리고 이것을 '공정한 관찰자'라고 한다.(보이지않는 손과 비슷한 뉘앙스이다)

공정한관찰자는 사람이 명예와 고결한것, 숭고한것을 욕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양심과 내면에 바른것을 제시하며 그렇게 실천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사랑받는척하거나, 사랑받고있다고 착각하는 가짜행복이아니라 모두에게 진정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사람으로 살아가게끔 견인하는것이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이다.


진심으로 칭찬과 존경을 받기위한 사람은 더 이상 아첨과 자기기만과 착각에서 가짜행복을 찾지않는다. 그는 지혜롭고 덕스러운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즉 도덕적인삶에서 찾는것이다. 애덤스미스에게서 이 도덕의 척도는 '공감'에 있다. 그래서 나는 애덤스미스의 도덕을 '공감의 윤리'라고 말한다. 공감에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는 '적절성'이다. 적절하게 타인과 나의 감정의 조화를 이루는것이 가장 아름다운상태라는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이성에 도덕을 호소하지않는다.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감정의 상태에서 도덕을 찾는다


애덤스미스의 도덕은 딱딱하거나 부담스럽기보다 대중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공리주의의 경향을 띄기도한다. 경제학자이기에 당연한 부분이기도하다.


하지만 우리가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시장이라는 공간이다. 시장경제체제의 시초인 애덤스미스는 돈과 권력에서 행복을 찾지않는다. 하지만 오늘의 시장은 돈에서만 행복을 찾고 돈이 곧 힘이된다. 애덤스미스는 시장을 이야기하며 돈의 유통보다 서로가 적절히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꿈꾸지않았을까? 서로 대화하고 조율하고 공감하는 시장말이다. 보이지않는손, 시장가격에 대한 그의 낙관은 이런 관계에대한 기대였을것이다

물론 그런 관계와 감정, 공정한 관찰자의 한계가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애덤스미스가 낙관론자임이 확실히 증명되었지만 우리는 이책에서 시장이라는 괴물에게 어떤 치료제가 필요한지 다시한번  생각해볼여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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