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주저 3가지를 중심으로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철학입문서로 본책을 적극 추천한다. 본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사상 해설집이라기보다 그녀의 사상을 기초로 사회를 보려고 노력했으며 중도적인 시각으로 한나 아렌트 주장들의 한계도 잘 지적해주고있다
그녀의 이론을 주요 저서 3가지로 요약해보자
1. 「전체주의의 기원」(1951)
「전체주의의 기원」은 유대인인 그녀가 전체주의로부터 발견한 '악'에 대해서 펼치는 논리이다.
본래 전체주의라는 개념은 (192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운동가에 의해) 탈개인주의적이고 국민전체를 통합하여 국가를 이끄는 한 이념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였으나 세계 2차대전 이후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집단주의 등을 대표하는 부정적의미를 띄게되었다.
전체주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혁명이후 근대에 나타난 '국민국가'이다. '국민'의 의미는 제국, 영주국가에 뒤이은 국민국가에서 나온 근대적개념이다. 국민은 같은 문화적전통을 공유하는 집단이었으며 그 시기에 국민의 위상을 높이는것이 정치적으로 지배적이었다.
예를 들면 늦게 독립국가를 형성한 독일의 영주국가들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되면서 국민의 연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된다.
국민국가에서 국민을 '우리'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적', 즉 '타인'이었고 유럽전역에 이런 '적'의 대상은 서구에 뒤섞여살고 있는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전체주의의 표적이되었고 홀로코스트가 이로인해 발생했다.
잔혹한 유대인대학살을 일으킨 전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을 대중의 무비판적인 수용에서 본다.
본래 '대중'(mass society)이라는 단에에 사용되 mass는 '소비하다'라는 뜻을 포함한다. 즉 대중은 정치나 언론에 주체가아닌 수용하고 소비하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아렌트는 '알기쉽게' 미디어로 전하면 그것을 비판해보지않고 수용하는 '알고 있는 척하는' 대중을 비판한다.
결코 한나 아렌트에게 '알기쉽게' 가공되어 전달되는 공론은 수용되지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아렌트가 지적하는 '악'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악'은 '사고정지'이다.
2.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독일중령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악의 평범성'을 생각하게된다
유대인학살같은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은 특이한 인격으로인해 시작되었다고 모두 생각하겠지만 아이히만의 진술을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않음을 알게된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이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독일에서 나가도록 추방시키는 협상을 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다른이들 보다 협상을 잘했고 일처리가 우수했다. 이런 아이히만 승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였고 나치즘의 유대인학살까지 서스름없이 진행한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인격이 해체되었다고 표현하는 동시에 이러한 모습이 매우 독특한것이 아닌, 쉽게 동조되어버리는 대중의 실체라고 한다. 즉 '악'은 특별한것이 아니라, 굉장히 평범하게 우리에게 있다는것이다. 사고를 멈추고 단순하고 평범히 살아가는 대중을보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한다.
3. 「인간의 조건」(1958)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에서 드러난 '악의 평범성'. 사고를 멈춘 대중을 견제하기 위하여 인간에 대한 재조명을 실시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으로 세가지를 말한다.
첫째, 노동(work)이다. 노동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 속에서 경제적가치가 모든것의 최우선이 되면서 살기 위해 일하는것이 아닌, 일하기 위해 사는 '인간소외'현상을 지적한다
둘째, 작업(labor)이다. 작업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아렌트에게 의자를만드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작업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주변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가되면서 작업과 노동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아렌트는 지구를 '삶의 터전'(작업의 장)이 아닌 도구로 생각하며 지구를 무분별히 개발하고 실험하는 자세를 지적한다.
우주로, 저세계로 시선을 돌리며 '탈지구화'를 문제시하며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소외되었다고 표현한다. 이를 '세계소외'라고 한다.
셋째, 행위(action)이다. 아렌트에게 행위란 인간 고유의 말과 언어로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 인간'을 이상적인 인긴모습으로 말한다. 그리고 고대그리스의 폴리스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주장한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는 근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사회의 '정치'는 사회의 공적인 '선'과 '정의'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찾는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인간, 세계)소외현상에서 탈피한 인간들이 대화를 통해 선과 정의에 더 가까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정치이며, 이런 인간들의 모습을 이상적으로보았다.
한나 아렌트에게 '인간'은 단수의 '개인'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늘 복수이고 '서로-사이'를 늘 소유한 존재이며, 이는 모든 인격을 수용하는 '다원성'을 의미한다.
4. 한나 아렌트의 한계
아렌트가 주장하는 폴리스의 시민은 한 가정의 가장을 의미한다. 가장은 경제적으로 자유한존재, 즉 먹고사는 것에 있어서 자유로운존재이다.(노예와 가족의 노동과 작업을 소유-인간이 복수라는 부분) 시민은 경제적 가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보다 객관적인 공론형성이 가능하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활동과 한 인격을 분리가 불가능하며 사적영역을 위한 공적영역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한나아렌트의 주장을 현대정치에 접목하는 답안으로 내놓긴 힘들다
그럼에도 한나아렌트가 이러한 이론을 펼친것은 하나의 답을 내려주기보다 전체주의속에서 발견한, 대중속에서 발견한 '악의 평범성'을 견제하는 소극적 행동으로 보인다. 동시에 극단적인 국민의 쏠림현상에 대조되는 다른방향의 극단적인 이상을 강조함으로 사용하지않은 생각의 공백을 돌아볼 수 있게 환기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