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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Aug 29. 2018

시뮬라크르와 현대소비사회

플라톤과 들뢰즈, 나아가 보드리야르를 중심으로

‘시뮬라크르’와 현대소비사회    

    

1. 존재론적 ‘시뮬라크르’의 개념    


    시뮬라크르는 고대 플라톤 철학에서부터 등장한 개념이다. 플라톤은 모방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모상과 시뮬라크르이다. 전자는 현실과 동일한 비율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후자는 작품을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시뮬라크르가 부정적인 이유는 현실의 감각을 오히려 더 방해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정체』 10권에서 시인과 화가의 모방을 시뮬라크르라고 했다. 플라톤의 존재론적 도식은 ‘원형-모방-시뮬라크르’이었고 화과와 시인의 작품은 세 번째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시인과 화가와 소피스트는 각각 시와 그림과 화술로 모방을 만들어내어 현혹하는 존재들로 평가절하 된다. 결과적으로 플라톤에게 가장 상위개념은 이데아, 가장 완벽한 실재성을 가진 것이고 가장 하위개념은 어떠한 실재성도 가지지 못하는 감각적 차원의 시뮬라크르이다.

    반면에 들뢰즈는 현대에 와서 플라톤의 존재중심, 이데아중심, 재현중심의 시뮬라크르 해석을 역전시킨다. 들뢰즈는 완전한 실재를 전제하는 시뮬라크르를 비판한다. 그는 완전한 실재를 상정하는 것은 삶을 숨 막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들뢰즈는 원형과의 동일성보다 차이를 강조함으로서 시뮬라크르 자체를 강조한다. 들뢰즈는 “오직 차이들만이 서로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사물은 차이에 의해서 생성되고 동일성은 차이의 부가적인 그림자와 같다. 플라톤은 동일성을 중심으로 차이나는 것을 비정상이나 괴물로 취급했다. 그래서 세계를 이데아의 ‘재현’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들뢰즈는 차이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데아라는 본질이 없는 ‘환영’이라고 제기한다. 이는 존재보다 생성을, 동일성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그의 주장이다.  

   플라톤과 들뢰즈는 철학에서 원형과 재현의 문제로 논의되었던 존재론적 시뮬라르크에 집중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뮬라크르의 재현, 완전한 실재와의 동일성, 존재를 강조했고 들뢰즈는 시뮬라크르 자체, 완전한 실재를 부정한 차이성, 생성과 순간을 강조했다. 하지만 둘은 공통적으로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자연적/본래적 시뮬라크르를 탐구했다. 하지만 오늘날 TV, 사진,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제작된 문화적 시뮬라크르를 비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 차원에서 시뮬라크르를 전개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들뢰즈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사건과 기표를 강조하며 이것들이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둘은 인공적 시뮬라크르를 설명할 때 구분되어야 한다.    


2. 문화적 차원에서 해석한 ‘시뮬라크르’의 개념    


    보드리야르의 경우 모방의 모방을 반복한 끝이 시뮬라르크라는 것에는 플라톤과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플라톤과 달리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를 설명할 때 세계의 중심에 이데아는 없다. 그는 시뮬라크르에 의해 세계의 본질과 실재는 감추어졌고, 세계는 오히려 시뮬라크르로 가득 차있고 판단했다. 이는 형이상학적 접근이기 보다 현실에 대한 사회학적인 비판이었다. 현대자본주의 속에서 모든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내용이나 실재가 아니라, 상품의 이미지나 기호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예를 들면 꼼데 가르솜이라는 브랜드의 플라스틱백은 실제로 상품내용이나 성질로 따져보면 고가의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상품을 출시한 브랜드 가치와 로고로 인해서 고가의 상품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더 이상 상품의 실재가 기호로 형상화된 시뮬라크르보다 앞서지 못하며, 그 효용성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보드리야르는 실재나 원본과는 상관없는 비본래적이고 인공적인 문화과 자연세계를 덮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을 통해 메트릭스와 같이 우리는 인공의 세계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시뮬라시옹에서 “실재가 그의 기호들로 대체되는 세계”을 생각했다.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를 예시로 사용한다.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한다. 즉 디즈니랜드라는 시뮬라크르는 일상 속에서 더욱 깊게 침투해 허구를 실재로 만들고 있다. 이는 단지 모방과 재현을 말하는 플라톤식 시뮬라크르와는 대조적인 철저히 순수한 의미의 시뮬라크르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시뮬라르크의 질서를 자연을 모방하는 자연주의자의 시뮬라르크, 에너지와 기계에 의존하는 생산주의자들의 시뮬라르크, 정보와 정보통신학적 게임 위에 세워진 시뮬라시옹의 시뮬라르크 세가지로 구분하였다. 현대의 문화는 세 번째 질서인 시뮬라시옹의 시뮬라르크로 볼 수 있으며, 정보통신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공적인 세계는(시뮬라크르 세계)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반영하는 공간이 된다. 이는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하여 버텨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3. 소비사회 속 시뮬라크르    


    보드리야르는 현대자본주의를 보면서 소비가 기호화된 사회를 말한다.(보드리야르는 이런 자본주의를 긍정하지 않는다. 다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허무주의가 된다.) 기호인 화폐에 의해 소유교환, 기호가 기의나 사물과 관계를 끊고 다른 기호들만을 서로 지시하는 구조적 한계에 도달하게 된 사회가 출현한 것으로 본다. 상품들의 교환가치에 기호가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체계의 자립화에 따른 기호교환의 조작에 의해 기호소비는 진행된다. 시장가격은 상품의 효용성과 가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기호들에 의해 정해진다. 상품의 다양한 이미지와 정보, 디자인 등은 광고로 제공되는데, 이 때 상품은 대중의 요구에 따라 지위, 품위를 상징하는 기호로 광고된다. 상품의 실질적인 기능성과 효용성과 무관한 광고이미지가 기호로 이용된다. 기호와 소비는 개별적인 욕구를 넘어서 사회의 욕망체계를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광고상품이 아니라 기호 그 자체가 된다 구성원들이 기호를 욕망하고 기호를 소비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사회가 바로 ‘소비의 사회’인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기호가 내용을 초월했음을 주장한다. 이제 상품은 기호로 생산된다. 기호가 상품으로 뒤바꼈다. 보드리야르가 말하길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구찌에서 50만원 상당의 수영복을 출시했다. 수영복이 50만원이나 하는 것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수영복의 주의사항이었다. 수영복의 주의사항은 절대로 입고 수영을 하지 마라는 것이다. 수영복의 기능적인 내용, 본질적인 쓰임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수영복의 이미지, 기호가 주는 권위나 우월감이다. 구찌는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했다. 수영을 하기 위해 수영복을 입기보다는 아름다운 수영복을 입고 여유로운 자기를 이미지화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많은 유명인들이 해당수영복을 구입했고 또 미디어를 통해 많이 노출시켰다. 수영복의 내용이 이미지 앞에서 감추어졌고 시뮬라크르는 스스로 순수한 독자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기호는 점점 내용을 감추고, 내용을 상실한 기호는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된다. 상품의 등가가치에 의해 교환되는 기호의 사용은 사라지고, 기호자체가 지시하는 소비사회는 이제 오직 기호로만 유지되고 돌아간다. SNS가 발달된 현대사회 속에서 시뮬라크르는 더욱 강력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상은 실재보다 더 강력한 실재성을 가지게 된다. 많은 이들은 가상의 자기존재를 위해 치장을 하기 시작한다.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 힘든 트레킹에서도 건강미를 뽐내는 자기를 만든다. 부산에 가면 감촌문화마을이 있다. 그곳의 랜드마크는 그 마을 꼭대기에 있는 어린왕자이다. 모두가 그 어린왕자옆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가상의 ‘나’는 모든 부산을 관망하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르는 이제 실재보다 더 실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뮬라크르로 인해 소비하고 시뮬라크르를 위해 소비하한다. 이미지로 인해 소비하고 이미지를 위해 투자한다. 보드리야르가 볼 때 우리의 현실은 실재의 거짓 재현이 아니라 실재가 더 이상 실재가 되지 못하는 사실을 숨기는 시뮬라시옹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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