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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Aug 29. 2018

지위적 불안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인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중심으로)

지위적 불안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인    


1. 들어가는 말   

 

   2017년 11월 15일, 2017년도 수능을 하루 앞둔 수요일, 모든 집중력을 가다듬은 고3의 각오가 지진과 함께 송두리째 흔들렸다. 5.4 규모의 지진이 경북 포항을 강타했고 그날 저녁 7시경 교육부는 수능을 1주일 연기하겠다고 급하게 발표했다. 지진피해도 지진피해이지만 많은 관심과 화두는 고3들이 겪게 될 혼란과 불안감에 집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1주일 후에도 시험 치는 도중에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포항에 사는 사람은 시험의 기회가 불평등한 것이 아닌가?” 등의 걱정과 불안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많은 대중들도 수험생들의 불안에 동조했고 이것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 외에도 지진에 대한 사회 각층의 다양한 불안감들이 존재했고 언론을 통해 등장했다. 수능시험에 관한 수험생의 불안뿐만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물리적 피해자의 불안, 땅값 폭락을 예상하는 부동산 투기자의 불안, 경북 포항의 안전과 원전의 위험에 대한 거주민들의 불안 등 하나의 사건이 다채로운 불안을 일으켰다.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은 인간과 뗄 수 없는 실존의 단면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인간의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사건이 다채로운 불안을 일으키는 이유는 인간이 불안해하는 요인도 다채롭고 복합적이며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불안의 요인을 세 가지 범주로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불안은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내면에서 ‘인정’받기를 욕망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교의식으로 인한 불안을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마지막으로 인간의 환경의 ‘불확실성’에서 발생하는 불안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인정욕구’로 인한 불안(불안의 내면적 요인)    


   불안의 첫 번째 요인은 ‘인정’에 대한 욕구이다. 대부분 사람은 높은 지위, 막대한 부와 권력, 숭고한 명예를 원한다. 그리고 이것을 목표로 자신의 모든 정력을 쏟아낸다. 그 이유는 지위와 부, 권력과 명예 그 자체가 목적이기보다 그것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관심과 사랑 때문일 것이다. 즉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수아는 「불안의 책」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서글프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미래에,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들이 찬사를 받는 날이 오고, 마침내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진정한 가족들 사이에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고.” 우리는 늘 타인의 이해와 인정을 추구한다. 누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우리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면 우리는 삶에 큰 의미부여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름 있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한다. ‘이름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므로 그 이름의 가치, 정체성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이다. 반면 ‘이름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중의 하나로서 개인의 가치와 개성, 정체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추구한다. 설령 그것이 가난과 불편일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더 낫게 평가된다면 가난과 불편을 자처할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관심, 공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핍된 삶에서 불안을 느낀다. 가난 자체가 불안이 아니다. 가난한 삶에 대한 타인의 조롱과 경멸, 무리 안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토록 타인의 관심이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시를 당하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부정적인 평가로 우울해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미소나 칭찬에 금세 행복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과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기에, 늘 타인이 동경하는 삶을 살아내기에 급급하다.

    이런 불안감은 사람이 속물근성을 갖도록 한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은 인정받기를 원하는 불안한 사람의 단면이다. 속물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존경을 표하며 권력에 편승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 존재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두려움은 괴로운 열등감을 낳는다. 열등감은 남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애쓰게 만들고 속물근성을 더욱 부추긴다. 우리는 대중에게 무시당할 때, 그들에게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갈망은 사회적 야심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대중은 관심을 얻기 원하는 갈망과 사회적 야심을 비판할 수 있으나 이내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인 양 쫓아간다. 속물의 행동은 두려움에서, 존엄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경멸하기보다 슬퍼하고 이해해야 하는 ‘불안한 존재’의 단면이다.       

   속물은 지위의 상징들을 갈망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팔고 다니거나 호사스러운 장식물에 연연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화려한 사치품을 가진 사람들이 존경받았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서부터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불안은 관심과 인정에 대한 소외에서 발생한다. 그 두려움이 인간을 속물로 만들고 집착의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오늘날 발달한 매체는 속물근성을 더욱 부추긴다. 매체는 성공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열등감과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무언가를 욕망하게 만들어낸다. 이런 내면의 욕구는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넣어야한다는 강박감을 주고 이런 현상 속에서 내면에 심어진 내적 결핍은 또다시 무언가를 갈구하는 악순환이 된다.


3. ‘비교의식’으로 인한 불안(불안의 관계적 요인)    


    불안의 두 번째 요인은 ‘비교의식’이다. 과학 문명과 역사의 진보로 인류는 유례없는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의 평균적인 삶의 질과 복지 수준은 과거보다 향상했으며 즐길 수 있는 여가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삶의 질과 행복감은 비례관계를 보여주지 않았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요인은 적절한 수치상의 분배나 생활 수준 향상이 아니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반면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 같은 준거집단에 속한 타인에게 느끼는 비교의식은 불안의 원인이다. 사르트르는 「출구 없는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타인은 나의 세계를 훔처가고 나를 억압하는 지옥과 같은 존재이며, 우리는 이 시선에서 결코 자유 할 수 없는 평가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의식은 질투심을 일으키고 질투심은 우리에게 심리적 고뇌를 일으킨다. 즉 우리는 절대적 기준에서 부의 증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부의 상대적 관점에서 보면 불안함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고, 심지어 당연한 결론처럼 느껴진다.

    특별히 비교의식은 17세기 정치적 사고가 평등주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평등사상은 과거 신에 의해 주어진 계급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계급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발견했던 인류에게 수많은 비교 대상을 선사했다. 민주사회와 산업사회에서 선두주자로 달리던 미국인은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이런 부에도 불구하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더욱 괴로워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왜 미국인은 번영 속에서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가’라는 제목으로 불만과 높은 기대, 선망과 평등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많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삶의 풍요를 기대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 평등하나 물질적으로는 평등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은 과거에 가지지 않았던 기대와 꿈을 갖게 되었으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불안도 덤으로 갖게 된 것이다. 특별히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그 격차는 더욱 심하게 드러난다.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회 안에서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를 받는다. 부자나 ‘이름 있는 사람’은 이미 사회의 구조 속에서 근면 성실한 사람이며 더욱 ‘나은 존재’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 인정받지 못한 자, 관심 밖에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부족하고 능력이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평등사상은 사람들에게 비교의 대상을 넓게 제공해주었으며, 능력 위주의 사회는 개개인에게 비교의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었다. 인류는 비교의식 속에서 늘 불안하고 슬픈 존재로 살아갈 운명을 마주한 것이다.    


4.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불안의 환경적 요인)    


   불안의 마지막 요인은 ‘불확실성’이다. 근대 사회가 되면서 과거 ‘신’중심의 사회는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회로 바뀌었다. 그래서 사회 속의 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양한 측면으로 사회적 요소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특별히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해 경제적인 요소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경제시장의 예측하기 힘든 상황은 사람에게 불안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위를 통해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불확실한 상황은 불안에 불안을 더한다. 마치 어둠이 주는 직관적인 두려움같이 불확실한 상황은 인간을 더 깊은 불안으로 이끌고 간다. 우리는 불안의 요인인 ‘불확실성’을 3가지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변덕스러운 재능’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사람은 지위를 통해 인정받기를 원하며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능력을 입증 받아야 한다. 능력은 한 사람이 가진 재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데, 이 재능은 한결같이 우리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능은 한동안 우리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그간의 성공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고의 능력을 우리 마음대로 내세울 수 없다. 우리의 재능은 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능은 때때로 ‘운’에 의지한다. 적절한 상황에 자신의 능력이 입증되는 금상첨화의 상황을 우리는 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과거로부터 ‘운’을 빌기 위해 종교에 많이 의존해왔다. 인간의 재능과 능력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고용주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위의 문제가 고용주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대규모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동자는 불리한 조건으로 자신의 노동을 고용주에게 팔 수밖에 없었다. 피라미드식의 구조의 꼭짓점에는 고용주가 있으며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고용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서 보상을 받고 인정받지 못해서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작업장을 억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며, 이런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불안이 자라나게 된다. 불안에 노출된 노동자는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공적인 역할 이외의 책략들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용주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노동자를 평가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불안을 또 경험하게 된다. 노동자가 고용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 ATM 개발로 은행 업무 종사자들이 50만 명이나 일자리를 잃었듯이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새로운 기계 시스템은 갈수록 영리해지면서 점차 인간의 활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고객 상담원은 복잡한 메뉴 구조를 지닌 전화 자동 응답 시스템으로 대체됐다. 공장에는 더 많은 로봇이 도입되면서 단순 노동이나 저숙련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효율성은 증가하고 생산비는 감소했다. 또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경기 침체 상태로 접어들었다. 중산층의 임금은 계속해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공업 중심지의 몰락과 함께 암울한 전망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복되기 마련인 경기순환 현상마저 갈수록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셋째로 ‘세계 경제’이다. 19세기 초 이후 서양 경제의 역사는 성장과 후퇴를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성장 그래프의 변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주기마다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하다.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 회사들은 미래에 예상되는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 자산 가격의 상승과 더불어 생산 비용도 올라간다. 노동자의 고용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그러나 경제가 상승 그래프를 멈추고 불황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과도한 투자와 대출로 인해 경제적인 손해를 감당하기 시작한다. 부채와 이자는 점점 늘어나며 비효율적인 노동력은 불필요하게 되어 실업률이 늘어난다. 경제 환경의 지속적인 변동은 사람에게 지속적인 불안을 준다. 합리적인 상업 조직은 이윤을 내기 위해 원료, 노동, 기계를 가장 싼 값에 모은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가능한 한 가장 비싼 값으로 팔려고 한다. 사람에게 ‘지위’를 부여하는 상업 조직에는 이윤창출이라는 경제적 요구와 노동자의 안정과 존경, 종신직을 갈망하는 인간적 요구가 늘 공존한다. 하지만 경제 위기는 이 공존을 깨뜨리고 늘 경제적 요구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삶에서 불안이 떠날 수 없다.       


5.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들 살펴보았다. 먼저,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인정욕구로 인해 불안해진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하려고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물질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더욱 근심하게 된다. 인간의 속물근성은 나날이 늘어나게 되고 인간은 불안의 존재인 동시에 집착의 존재가 된다.

   다음으로 인간은 관계적 측면에서 생겨나는 비교의식으로 인해 불안해진다. 인간은 늘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존재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나온 듯하다. 인류는 경제적 빈곤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비교의식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는 평등사회에서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받을 때, 개개인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타인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상황과 환경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해한다. 평균적으로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대표적으로 3가지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첫째로 자신의 재능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재능은 변덕스러우며 늘 한결같지 않기에 중요한 순간에 발휘되지 못할 수 있다. 둘째로 고용주의 마음이다. 소시민은 고용주에 의해 생계를 이어나가므로 고용주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서 늘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경제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시장의 흐름에 따라 소시민의 생계는 늘 휘청거린다.

    불안은 ‘자기-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요소에서 발생한다. 불안의 요인은 다각적이고 입체적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다양한 삶과 얽혀있는 ‘나’는 관점마다 달라지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늘 비교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격지심, 반대로 자만심에 사로잡혀 희비가 엇갈리는 존재이다. 모든 대중은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찬찬히 살펴본 세 가지 요인을 통해서 불안한 자신을 진단해볼 수 있다. 나아가 불안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의지와 용기를 조금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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