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
1. 들어가는 말
‘현대신학의 아버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실천신학의 아버지’, ‘해석학의 아버지’ 등 슐라이어마허만큼 한 분야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는 학자는 없을 것이다. 통칭 한 분야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그 분야의 근본토대를 놓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슐라이어마허의 연구업적은 방대하고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그의 이론과 연구방법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흔히 한국교회 내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슐라이어마허의 사상 자체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본래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에 의해 희미해진 신학과 신앙의 영역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에 의해 미개하게 평가받은 종교와 교회는 이제 슐라이어마허에 의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특별히 우리는 계몽주의 시대에 새로운 신학을 선보인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중 기독교의 중심인 ‘그리스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에 접근하기 앞서 슐라이어마허의 생애와 그의 신학방법론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 후 계몽주의 시대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전통적 그리스도론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무엇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지를 중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슐라이어마허의 생애
슐라이어마허는 1768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개혁교회 성직자 가문이었다. (부친과 조부는 모두 신학자였고 그의 모친은 베를린 궁정 수석 목사 슈투벤라우흐의 딸이었다.) 슐라이어마허는 14세 때 회심을 경험했다. 어린 나이에 모라비안 교단 학교에서 경건훈련을 받으면서 종교적으로 깊이 감화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경건주의적인 환경에서 흔히 요구되는 초월적 감정이나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체험할 수 없었다. 대신 칸트의 <미래 형이상학에 대한 서언>에 마음이 끌렸다. 그의 부친도 목회자였지만 철저한 계몽주의자, 합리주의자였다. 그런 영향아래 슐라이어마허 역시 합리주의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레 대학 입학하여 2년 동안 공부하는 동안 슐라이어마허는 신학 공부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 고전, 특히 플라톤의 저술에 열정적이었고 최초인 학문적 저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칸트의 영향아래에서 학문을 하였으며 순수이성이 인간의 경험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칸트의 생각에 동조했다. 반면 칸트의 철학에서 신과 불멸성에 대한 도덕적 증명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약 신이 우리 존재의 구성원리가 될 수 없다면, 어떻게 신이 우리의 인식을 규정하는 원리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순수한 자연의 세계에는 인간이 경의를 표해야할 최후의 신비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철학자가 아닌 신학자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철학자가 아닌 란츠베르그라는 한 외진 마을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계몽주의 사상을 가지고 합리적인 신앙과 도덕적 권면을 늘 전하였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와중 1796년에는 슐라이어마허의 일생을 좌우한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28세 나이로 베를린의 대규모 샤리테자선병원의 개혁교회 설교자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거기서 보낸 6년이라는 세월(1802년 까지)은 슐라이어마허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 기간 중에 경건주의와 합리주의가 조화된 근대 신학자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1799년 슐라이어마허는 유대인의사 마르쿠스 헤르쯔의 집에서 이해심 많은 여인 헨리에트 헤르쯔를 만난다. 그녀와 슐라이어마허는 높은 정신적인 차원의 “신뢰와 진심이 담긴 우정”을 나눈다. 나중에 낭만주의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함께 읽었다. 또한 문헌적으로 많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프리드리히 슈레켈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슈레켈은 슐라이어마허가 문헌적인 생산 작업을 하도록 격려했다. 그의 압박에 의해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론>을 익명으로 출판한다. <종교론>에는 젊은 슐라이어마허가 가졌던 낭만주의적인 종교이해와 기독교 이해가 담겨져 있으며, 이것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슐라이어마허는 루터와 칼빈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 이전의 세계에 살지 않았다. 그는 철저한 근대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피히테와 헤겔에게서 절정을 이룬 근대 철학과 함께 성장했으며, 문헌학자로서 플라톤의 저작들을 훌륭하게 번역해낸 ‘고전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역사비평을 긍정했을 뿐만 아니라 성서 계시의 기초 문헌들에 직접 적용했다. 동시에 슐라이어마허는 근대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생활을 긍정하고 사랑하였다. 그는 ‘베를린 낭만주의자들의 모임’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이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이 모임은 계몽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닌 신학자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낭만주의적 감정의 종교와 과학적 문화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이유이다.
1804년에 슐라이어마허는 할레대학교의 교수와 대학 예배를 위한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짧은 기간 그 곳에 있으면서 그는 강의, 설교, 저술들로 인하여 존경받으며 노련한 신학자로 성숙해갔다. 1806년 프러시아가 나폴레옹에게 패하면서 학교가 폐교되었고 슐라이어마허는 베를린으로 가서 트리니티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었으며 늘 교회를 꽉 채운 성도들에게 매주 설교하는 영향력 있는 목회자였다. 말년에는 플라톤의 책들을 번역하는 것을 포함하여 윤리학, 철학, 해석학 등 수많은 중요한 책들을 펴냈다. 키이스 클레멘츠는 “슐라이어마허의 대작 <기독교 신앙>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이후 개신교 안에서 그만한 규모로 그렇게 조직적인 책이 나온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슐라이어마허는 교의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3. 슐라이어마허의 신학방법론
르네상스는 18세기 유럽 사상을 변화시켰다. 이것은 세속적이며 과학적이며 낙관적인 세계관을 형성했으며 과학적 경험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가 특징이었다. 이 현대적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도전이었다. 이는 성서의 역사적 가치를 비롯하여 전통적인 신학의 모든 전제들을 문제시하고 집중적으로 공격해왔다. 이런 위기에서 19세기 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학적 토대를 제공해야하는 과제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 과제에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이 슐라이어마허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 정신에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 행동하는 것, 느끼는 것이 그것이다. 감정(심연)은 지식이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며 독특한 정신 기능인 동시에 보다 심원한 존재의 단계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을 종교가 발견되는 장소로 보았다. 그가 <종교론>에서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또는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나, <기독교 신앙>에서 종교를 느끼는 것 또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여기서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를 ‘감정’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어의 Gefühl이라는 말은 영어로 감정(sensation)이라는 말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깊고 심오한 의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느낌’이라는 말은 의식 중에 ‘성찰-이전적’ 상태, 곧 뚜렷한 사고나 감정 이전 혹은 그 밑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는 주장하기를, 진정한 종교의 핵심은 모든 유한한 것들이 무한한 것 안에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는데 있다. 그리고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속에서, 모든 행동과 열정 속에서, 이 무한하며 영원한 요인을 찾으려고 모색하는 것 그리고 다만 무엇을 매개로 하지 않는 직접적 느낌 안에서 생명 자체를 소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기초를 실천이성에 두려 했던 칸트의 시도나 절대정신이 역사를 통하여 진행하는 것을 탐색하는 새로운 사변적 합리주의에 신학의 기초를 놓으려고 했던 헤겔의 노력과 함께, 계몽주의 여파 속에서 신학을 시도했던 세 번째 주요한 노력이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곧 실재 전체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유한한 것들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한한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정-에 주목했다.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관은 종교연구의 새로운 길과 방향을 제시했다.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종교인의 감정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이 되었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신앙론은 기독교적으로 경건한 심정의 자극을 이론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에 기인하며 다른 한편으로 이론으로 표현된 것을 정확한 연관아래 두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나 자기의식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했다.
슐라이어마허는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진술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주된 자료로 받아들임으로써 신학에 새로운 활기와 관심을 불어넣었다. 또한 인간 감정에 나타난 자기의식과 하나님 의식을 표현하는 것, ‘하나님-의식’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변적인 철학으로부터 신앙과 신학의 독립을 확립했다.
4.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의 중요성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독교는 신학적 방향을 잡고 있는 경건의 특유한 형태로서 그 가운데 속한 모든 개인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구원의 의식에 관련되는 사실로써 다른 모든 경건의 형태와 구별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경건의 형태이다. 그의 그리스도론에서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경건의 관계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론의 의무는 기독교적 삶에 등장하는 경건한 심정상태를 기술함으로써 구원자인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가 감정 가운데 등장하는 정도만큼 이 관계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며, 이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의 완전성이 밝혀지도록 이 관계를 총괄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어떻게 인간을 구속했고, 인간의 경건은 어떻게 반응하며, 그 경건의 형태는 최종적으로 완전성이라는 목적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면서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예수의 인격’과 ‘예수의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룬다. 은총의 의식을 지닌 신앙인에게는 예수의 인격과 위엄이 모든 것에 앞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런 한에서 예수의 인격과 사역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행위)의 연관 속에서 통합을 추구한다. 그는 전통적인 그리스도론 논의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으며, 그가 속한 계몽주의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을 시도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리스도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논의와 사역에 대한 논의로 나누어서 살펴보며 슐라이어마허가 전통적 해석과 무엇을 달리하는지를 중심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4-1) 그리스도의 인격 중심의 그리스도론
4-1-1) 전통적 양성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
앞서 살펴본 대로 슐라이어마허 그리스도론의 출발점은 나사렛 예수를 통해 일어난 구원을 어떻게 자기의식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가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인간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찾기 위해 우선적으로 이단적인 것을 제시한다. 그는 이단적인 것이 기독교의 본질을 명확하게 하도록 봉사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이단은 가현주의적인 것과 나초레적인 것, 그리고 마니교적인 것과 펠라기우스적인 것이다. 전자의 한 쌍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관련된 이단이고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된 이단이다. 우선적으로 가현주의적인 것과 나초레적인 것, 즉 나사렛주의를 비교해보면 각각 신성과 인성의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이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신성과 인격 어느 것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두 본성의 통일 속에 있다는 것을 확증해준다.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논하며 칼케돈 신조의 양성론을 벗어날 수 없다. 슐라이어마허는 칼케돈 신조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지만, 양성론 교리의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칼케돈 신조의 통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는 양성론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 슐라이어마허가 이해하는 양성론의 본래적 의도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적합하게 기술함으로써 그리스도와 모든 인간 사이의 연결점을 찾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를 가능하면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의도와 달리 양성론은 ‘두 본성 한 인격’의 논리적 모순에 봉착한다고 생각했다.
슐라이어마허는 두 가지 이유로 양성론을 비판한다. 첫째, 그는 본성(Natur)이란 용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 모두를 드러내는 데 부적합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본성은 유한한 실존의 제약, 자연적인 지배 아래에 있는 존재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성이 본성으로 소유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리고 인격은 삶의 통일성을 논하는데 거기에 두 본성이 참여한다는 것은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비상식적인 이론이 된다. 둘째, 삼위일체론과 연관하여 비판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생각해볼 때, 이는 양성론에 토대를 두는 ‘구속자’와 신적 본질을 나타내는 ‘제2의 인격’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긍정하기에는 상충하는 지점이 생긴다. 왜냐하면 양성론은 본성의 통일을 논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은 본질의 통일을 논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본성의 통일은 앞서 문제가 되는 것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상식적인 존재가 제2의 인격으로 제1의 인격과 본질상 동일하다는 것은 더더욱 문제가 된다. 즉 그는 양성론과 삼위일체론 사이에 언어의 불일치성을 지적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가 생각하기에 예수의 인성은 제2격의 신적본질에 참여할 뿐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양성론이 생겨난 칼케돈 신조의 동기에 충분히 동의하면서 전통의 의도를 살려내고자 한다. 그는 신성을 강조하기보다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는 과제로 발전시킨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행위 속에서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지 않고, 예수의 인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식’을 드러내면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설명한다. 칼케돈 신조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슐라이어마허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완전한 인간의 본성이 가지는 본질적인 특성은 바로 신성을 표현한다는 것이며, 둘째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완전성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4-1-2) 원형적(Urbild) 그리스도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적 고민은 ‘신성이 어떻게 인간성과 결합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서 ‘죄’보다 하나님과 연합 가능성에 더욱 주목한다. 그래서 예수를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한 존재로 생각한다. 예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인간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육신보다 원형적인 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래적인 인간의 원형 또는 이상으로 이해했다. 신앙론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다룬 주요명제가 이를 입증한다. “새로운 공통적인 삶의 자아 활동이 구원자에게 독창적이고 그로부터만 나온다면, 개인으로서 그는 동시에 원형이다. 원형이 그 안에서 완전히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이 역사적인 것의 각 계기는 그 안에서 원형적인 것이 된다.” 그리스도는 죄 없는 완전성을 소유했다. 원형성은 이 절대적 완전성을 의미한다. 원형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식’의 절대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하나님-의식’을 소유했다. ‘하나님-의식’의 완전한 원형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성육신을 원형적이며 이상적인 것이 예수 안에서 역사적인 것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슐라이어마허의 표현에 따르면 “구속자 안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는 그분 안에서 발휘되는 가장 내적이며 근본적인 능력으로 간주된다.” 예수가 신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절대적인 의존 때문이다. 예수의 인간성의 모든 요소는 신성과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기에 예수의 인격은 신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전통과 같이 예수 안에서 신성을 인성과 함께 존재하는 분열된 의식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더는 예수 인격의 통일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을 예수 의식의 기저에 놓여 있는 생동적 원리로 생각한다면 신성은 점차적으로 드러나며 예수가 성숙할수록 신성의 표현이 강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 예수에게 하나님-의식은 의식 전체에 놓여있는 것이며 점점 성장하고 발전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수를 인간의 원형으로 일관성 있게 주장한다. 즉 예수는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인간의 모범이자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적 계시이자 계명이다. 슐라이어마허에게 그리스도는 인간 창조의 완성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출현은 단지 인류의 감각적인 생활을 구성하는 반면,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의 출현은 새로운 영적 생활을 구성한다. 아담의 미완성은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식’에 철저히 순종하므로 신적 계명의 완성을 이룬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대립과 모순으로 놓지 않고, 근원적인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자연체계로 창조와 구원의 통일성을 설명한다.
슐라이어마허에게 그리스도는 현실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존재이다. 그는 이상적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적 예수에 도달하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스도가 원형적 인간일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아담’이라는 주장이나, 인간의 원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났다는 그의 견해이다. 그리스도는 초자연적인, 초이성적인 계시로 감추어두기보다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원형적 존재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의 계시는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일 수 없으며 전적으로 초이성적인 것일 수 없다.” “한 인간이 그리스도로 존재했던 것이 확실한 것처럼 무엇보다 먼저 신적인 것을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되는 바와 같이 인간본성 가운데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놓여있어야 한다. 모든 현실적인 것은 가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이러한 관점에서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상은 그 어떤 관점에서도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원형적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식’을 완전히 수용하는 완전성의 단계를 목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그 단계를 ‘정신적 능력의 최고의 전개’로 간주한다. 둘째 아담에 의해 성취된 창조의 완성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님-의식’을 통해 관계 맺고 소통하며 발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벗어나면 ‘하나님-의식’은 억류상태에 머문다. ‘하나님-의식’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을 향해가도록 계명 안에서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인간일반의 차이성이다. 핵심적인 차이는 우리는 스스로의 본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식’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주는 유일한 존재이며 이에 반해 우리 인간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존재는 이차적이며 파생적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중재자이다. 심광섭에 따르면 “슐라이어마허에게 예수의 인격은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수용하는 수동적 차원과 하나님의 사랑을 활동적으로 전적으로 실현하는 능동적 차원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이 일어나는 사건에서 그리스도론이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4-2) 그리스도의 사역 중심의 그리스도론
앞서 살펴본 대로 슐라이어마허는 완전히 ‘하나님-의식’에 사로잡힌 원형적 그리스도의 인격을 주장했다. ‘하나님-의식’에 사로잡힌 그리스도는 이제 ‘성령의 기관’으로서 감각적인 자기인식을 벗어나 완전한 사랑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그리고 우리에게 계명으로 허락된 ‘하나님-의식’이 완전해져야하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역이 주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구속자’ 그리스도를 늘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속죄의 시작이다. 그렇기에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에 있어서 전통적인 속죄론의 입장과 그 의견을 비판한 후 자신의 속죄론과 구속자 그리스도에 대해 서술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전통적인 속죄론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의 입장에 대해 먼저 살펴본 후 슐라이어마허의 속죄론을 살펴보기 원한다.
4-2-1) 전통적인 속죄론에 대한 비판과 발전
슐라이어마허는 정통을 대표하는 만족설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윤리적모범설을 모두 비판하며 자신의 속죄론을 전개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구속사역에 대한 마술적 이해와 경험적 이해를 거부한다. 즉 과도하게 주술적으로 이해되어 종교적 형식만 남게 되는 속죄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반대로 과도하게 경험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속죄론을 비판한다. 이 양극단을 대표하는 예로 전자는 안셀름과 종교개혁자들의 만족설, 후자는 소시누스의 윤리적 모범설을 언급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만족설은 마술적 이해와 가깝다. 안셀름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않은 상태를 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죄는 빚으로 남게되며 여기에 대한 채무를 해결해야한다. 그리스도는 그 빚을 자발적으로 대신 갚아서 하나님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이것이 안셀름의 만족설이다. 안셀름의 배상만족설은 속죄의 객관적인 사실은 확립하고 성육신과 속죄의 상관관계를 확립한데 의의가 있지만 속죄를 만족과 형벌의 양자택일에서 단순히 해석하며, 나아가 속죄의 주관적인 측면이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어 속죄사건과 신앙의 관계가 모호한 것이 문제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조금 더 보완하여 예수의 죽음이 형벌과 만족의 양자택일이 아닌 형벌과 만족 모두를 강조하는 ‘대리적 고난’을 주장했다. 안셀름은 속죄를 죄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했으나, 종교개혁자들은 대리적 형벌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들의 속죄론을 형벌만족설 또는 징벌만족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만족설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인간 개인의 윤리적 변화나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한다. 오직 형벌의 교환만을 마술적으로 설명할 뿐이다. 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죄인의 내적근거와 변화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술적 이해를 비판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식’을 통한 자기의식형성, 인격형성으로 지복을 설명한다. 동시에 슐라이어마허는 징벌만족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징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도덕적 악과 죄의 본질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도덕적 악은 죄로부터 발생하며,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징벌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징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가정은 야만적인 인간의 조건에서 형성되어 하나님께 덧입혀졌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윤리적모범설은 경험적 관점이라 하여 반대한다. 경험적 관점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적 행위가 가르침과 삶의 예증을 통해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이다. 소시누스는 하나님의 정의를 도덕적인 공정과 정직으로 간주했다. 그는 죄를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대리적인 형벌의 불가능을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적 모델과 모본으로, 탁월한 도덕교사로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속죄의 목적이 아닌 인내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는 단지 구원의 길을 보여준 도덕교사이며, 속죄는 단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이 견해의 문제점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어떤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나 모범자일 뿐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수성, 즉 개인과 인격적인 만남은 설명될 수 없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가 그리스도와 관계 안에서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경험론적인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단순히 인간의 사역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의 핵심인 생명의 교제를 패턴이나 모조품 같은 외적인 관계로 취급했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구속활동을 ‘신비적 속죄론’이라고 불렀다. 신비적이란 말을 사용한 의미는 무한자가 유한한 것 안에 임재 한다는 것으로 사용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식’이 완전하게 수용되었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의식’안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신비적 속죄론은 마술적 속죄론과 경험론적 속죄론의 중간에 위치하며, 기원은 초자연적이나 활동은 자연적이다. 마술적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구속활동의 자연성을 부정하고 경험적 속죄론은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만 신비적 속죄론은 초자연적인 기원에서 구속사역이 시작하여 자연적 과정에서 구속사역이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4-2-2) 슐라이어마허의 구속자 그리스도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주장하는 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세 가지로 죄를 해석한다. 첫째, 그는 죄 아래 있는 자아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자아이며, 둘째 이 자아를 몸, 감각적 기능들과 동일시 한다는 것이며, 셋째, 타자로부터 천성적으로 독립해 있으며 유한한 자원을 얻기 위해 그들과 투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슐라이어마허는 죄를 공동체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한 사람의 죄는 항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죄는 확산되며 집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죄가 원죄로 나타나듯이 한 사람의 구원이 전 인류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속죄를 구속과 화해로 구분했다. 그에게 구속은 ‘하나님의-의식’이 ‘자기의식’ 안에 출현하여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며, 화해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축복의 교제를 의미한다. 전통적 속죄론에서는 구속과 화해를 동일한 것으로, 라틴적 속죄론에서는 화해를 우위에 두었지만, 슐라이어마허는 구속에 우위성을 부여하고 화해를 그 완성으로 생각했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구속능력을 그의 특정 활동이 아닌 ‘하나님-의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인간은 구속과 화해를 얻는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사역은 중재자로서 ‘자기-전달’이다. 여기서 슐라이어마허의 독특함이 하나있다. 그는 구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사역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구속은 그리스도의 친교에 의존하므로, 그의 죽음은 구속과 간접적인 관계를 가질 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죄의식을 자극하므로 그리스도와 신자의 친교형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앞서 설명한 그리스도 사역을 두 가지로 분류하여 구체화 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의 신앙이다. 예수께서 각 개인의 ‘하나님-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감각적 자기-의식’을 지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육에 대한 ‘영의 지배’를 세운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신도에게 구속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의 삶의 몫을 나누는 것, 곧 예수의 삶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행위자이며 신자는 수용자이다.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구속자와의 삶의 교제 속에서만 가진다. 거기서 구속자의 절대적이며 죄 없는 완전성과 지복은 구속자에게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속을 필요로 하는 은총을 입는 자의 욕구는 자유롭게 취하는 수용성에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인격은 곧 행위로 드러난다. 그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는 구속하고 인간은 수용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위는 사역에서 하나의 결합된 요소로 드러난다.
둘째, 공동체적 신앙이다. 즉,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식’의 능력을 통해 죄의 공동생활에 대치되는 새로운 공동생활 또는 신자와의 친교를 이룩하는 것이 그의 사역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강조된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공동생활을 건설하며 여기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삼중직을 수행한다. 첫째로 예언자로서 기능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식’을 근원으로 가르치고, 예언한다. 예수의 주요 가르침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하나님-의식’과 하나님 나라는 서로 의존적이다. 곧, ‘하나님-의식’의 일깨움은 하나님 나라의 세움을 통해 일어나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식’의 일깨움을 통해 세워진다. 둘째로 대제사장으로서 기능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식’을 완전히 복종하여 성취했다. 그는 그가 하나님과 누리는 친교로 우리를 참여하게 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속죄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그리스도도 죄악의 공동생활 속에서 죄악을 정복하여 새로운 공동생활이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대제사장은 중보자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우리의 삶과 기도를 거룩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왕으로서 기능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식’을 신도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삶의 원리를 다스림으로 왕적인 역할을 감당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회복시키고 하나님 나라라는 수평적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사랑을 통해 타자를 향한 ‘폐쇄적 삶’에서 ‘공감과 사랑의 삶’으로 전향이 일어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단번에 실천한다. 이로써 형이상학적인 은혜와 구속이 현실적인 형태로 역사적 삶에 등장한다.
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생애와 그의 신학방법론을 살펴보고, 나아가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예수를 인격과 사역의 측면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이후 이 둘 사이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기존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일된 방식으로 전개하기보다,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별개로 설명했다. 반면에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인격영역을 설명하기 위한 전통적인 신학서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뒤 자기의 방식으로 ‘원형적 그리스도론’을 서술한다. 나아가 예수의 사역영역을 설명하기 위한 전통적인 속죄론을 비판한 이후 자기의 방식으로 ‘신비적 속죄론’을 서술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여기서 각각의 범주를 설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일성 있게 연결시킨다. 그의 신학은 전적으로 예수의 인간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예수를 통해서 어떻게 인간보편에게 선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식’이 드러나며, 깨달아지는지를 인격과 사역을 통일시켜 설명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죽음을 무릅쓰고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예수의 삶과 그에 의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가 인류가 지복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완전성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식’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완전한 수동성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부터 구속의 행위가 일어났으며 이는 결국 개인에게 새로운 인격을 선사한다.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구속자 그리스도는 중재자로서 개인을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초대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창조에서 완성으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참고도서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기독교신앙』 (경기 : 한길사, 2006, 최신한 역)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그리스도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1)
-목창균 ,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사상』 (경기: 한국신학연구소, 1991)
-목창균 , 『현대 신학 논쟁』 (서울: 두란노, 1995)
-최신한, 『슐라이어마허-감동과 대화의 사상가』 (서울 : 살림출판사, 2003)
-헤르만 피셔 , 『슐라이어마허의 생애와 사상』 (서울: 월드북, 2007)
-한스 큉 , 『위대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서울: 크레스천헤럴드, 2006)
-안셀무스 ,『인간이 되신 하나님』(서울 : 한들, 2015, 이은재 역)
-스탠리 그랜츠, 로저 올슨 , 『20세기 신학』 (서울: Ivp,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