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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Nov 30. 2023

나이를 초월한 우정

매 해, 새로운 인연이 찾아옵니다 

작년부터 취미삼아 놓고있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한 회사에서 안좋은 일이 생기고 권고사직을 했습니다. 점점 지쳐가는 마음과 떨어져가는 자존감을 위한 공부였습니다. 


올해 7월에는 일본어 자격증 시험 중간급도 통과했습니다. 한국에 있다면 일본어를 들을 기회도, 쓸 기회도 많이 찾을 수 있을텐데 프랑스 시골에서는 그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9월쯤에 페이스북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일본인커뮤니티에 가입해 글을 남겼습니다. 혹시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이 있다면 같이 만나서 언어교환을 하고싶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 분께서 연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해서 만났는데, 알고보니 저희 아버지 나잇대 분 이셨습니다. 


60대인데도 괜찮겠냐는 말에 저는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편의상 그분의 이름을 가명으로 '에리'라고 부르겠습니다. 에리는 굉장히 침착한 여성분인데, 약 30년 전 쯤 크루즈에서 일하다가 요리사인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이곳에서 살고있다고 하셨습니다. 뭔가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에리의 말투는 저를 편하게 해주어서 모든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시는 게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60대의 나이에도 매일매일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다른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참 대단해보였습니다. 나는 과연 저분의 나이가 되어서도 뭔가 배우고싶은 의지가 생기긴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리의 한국어를 도와주기도하고 저의 프랑스 생활에 대해 일본어로 짧게짧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즘들어 프랑스 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들때도 없지않아 있고,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의 부재를 느끼는 경우도 많아 에리의 조언들이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은 에리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고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전에 에리가 집으로 놀러오라는 초대를 해줘서 감사하게도 직접 만든 돈까스와 일본에서 가져온 소스도 먹어보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일본 어느 시골에서 가져온 진짜 말차도 같이 맛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값지게 느껴졌습니다. 에리는 나이가 많이 드신 부모님을 보러가기위해 올해 12월에 일본으로 갑니다. 6개월정도 있다가 프랑스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에리의 부모님은 96세이신데도 정신도 말짱하시고 걷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저도 부모님이 너무 나이드시기 전에 자주 한국에 가서 뵙고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다음주면 일본에 가기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저를 초대해주어서 화요일 저녁에 에리의 집으로 갔습니다. 에리는 자식이 세 명 있는데, 파리에 사는 첫째 장남은 저와 동갑, 둘째는 저보다 4살이 어리고 셋째 여자아이는 만으로 19세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 날은 에리가 직접 규동을 만들어주었는데 물론 프랑스에서는 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서 팔지 않기 때문에 규동의 온전한 맛은 덜했지만 좋은 고기여서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에리는 직접 만든 김치도 먹어보라고 줬는데 저에게는 마치 샐러드같이 하나도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에리와 둘째아들은 맵다며 혀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맵지 않냐는 말에 "나는 그냥 샐러드같아" 라고 하니 모두 웃었습니다. 


둘째아들은 굉장히 상냥했는데, 하는 일이 정원사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나잇대 사람이 정원사로 일하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자랑스럽게 사진도 보여주고, 일주일에 몇번씩은 스트라스부르 한 동네에서 환경미화원으로도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에리와 그 둘째아들의 자랑스러워 하는 태도가 부러웠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도 저 자신이 부족하다 느껴지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깎아내리는 습관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환경미화원이라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 환경이라 부끄럽다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모두 하나하나가 사회에 소중한 일원이라는 것을 언젠가 우리 젊은층 사람들도 인지하고 사회 분위기가 더 열린사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동안에 본 에리의 막내딸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나있는 느낌이어서 내가 온 게 마음에 안들었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싱크대에 젓가락을 던지는 등 퉁퉁거리기도 하고 해서 왠지 몰라도 화가 단단히 나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여자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서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에리에게 혹시 딸이 안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에리는 그냥 원래 저런애라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아들은 어려서 아직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애라고 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그나마 상냥한 둘째아들이 있어서 에리에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에리와 둘째아들, 그리고 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밌게 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을 에리가 배웅해줬는데 왠지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6월에 다시 만날거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정말 친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저를 포옹해주는 쇠약한 그녀를 보니 에리도 뭔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씁슬한 마음으로 헤어지고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 가는길에 고마웠다고, 우리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있다고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에리는 저에게 '와줘서 고마워. 나이차이가 이렇게 나는데도 친구라고 생각해줘서 고마워,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너의 인생은 지금부터야. 파이팅! 응원하고 있어' 라고 보내줘서 트램 안에서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에리씨도 힘내달라고, 마치 일본 드라마에서 들어본 듯한 말을 스스로 했습니다. 에리는 또다시 막내딸의 태도를 신경쓰지 말라고, 화난 것이 아니고 사실은 착한 애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은 아직 어려서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답장으로 저는 전혀 신경쓰고있지 않고 오히려 신경쓰게 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냥 단지 어머니와 매일 같이 밥먹는게 부러웠고, 에리에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에리는 감동받은 듯한 이모티콘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의 말들이 위로가 됐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에리의 존재만으로 저는 엄청난 힘을 얻고 있기에, 저의 존재가 어떻게나마 일본에서 멀리 이민와서 살고있는 그녀에게 힘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올해 참 많은 일이 생겼는데 이런 생각치도 못한 인연도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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