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 성당 가는 길에 날은 너무 추웠다.
무엇보다도 10월부터 나 혼자 결심한 것이 있는데 바로 돈을 아끼며 헌금을 매주 10유로씩 내는 것이었다.
많으면 많지만 사실 일주일에 카페 가는 것을 자제하면 충분히 낼 수 있는 금액이다.
하느님께 쓰는 시간은 창피하게도 일주일에 단 한 시간뿐이다.
하루를 살면서 가끔 날이 좋을 때나 기분이 행복할 때 감사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나는 기도가 한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월급도 벌기 시작했으니 이 정도는 내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오늘 하필 찾아둔 돈을 다 썼고 다시 은행 atm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성당에 도착하기 5분 전에 그걸 알았고 귀찮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대충 갖고 있는 동전이나 내지 뭐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때 갑자기 내 양심이 내게 말 걸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는 생각이 든다.
돈을 찾자마자 성당 앞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남자분을 보게 되었다. 그분을 보자마자 예수님이 나에게 말 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분한테 원래 갖고 있던 동전을 드려야 된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고 사실 양심보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양심은 안 지키면 나 자신이 창피한 것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느낌은 약간 강한 제의처럼 느껴진다.
그분께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동전을 드리고 나도 모르게 힘내세요, 좋은 일요일 되세요.라고 말했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 뿌듯했다.
그분은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나에게 고맙다 했다. 성당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이 당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주 보고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구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었을 때 오는 행복이 내가 무언가를 받았을 때보다 더 크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신앙을 가진 자는 더 구할 게 없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미사의 화답송은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였으며 제1 독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
마치 내가 한 작은 행동에 주님이 응답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복음을 듣고 곧 확신으로 변했다. 내가 들었던 느낌은 예수님의 음성이었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에 우리가 나중에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 주위에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갈릴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럼 여태 무엇을 했나, 오히려 못 가져서 슬퍼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찬식을 할 때 예수님의 작은 몸, 겸손한 마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똑바로 살자 생각했다.
한 번 더 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감싸주며 아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사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같은 사람들이구나!
나는 더 슬퍼하거나 더 다른 것을 원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있기에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