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때문에 차장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한쪽으로 쏠려 보였다. 가로수의 나뭇가지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긴 머리도, 하나같이 성형미용수술을 하라고 말하는 가게 문 앞에 달린 깃발 모양의 광고판들도 모두 한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한쪽을 ‘선택’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폴형사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 석에 앉은 나는 차창 밖의 광경을 생경스럽게 바라보며 사람도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전공, 결혼상대, 직업같은 굵직한 제목부터 아이들이 백화점에서 고를 장난감 같은 하찮은 것까지 인간은 한평생 철저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범죄를 선택할까?’
‘그럼 범죄를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누가 준 것일까?’
‘만약 그 자유의지를 조절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인간사회에서 범죄가 사라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선하게 세상을 태어나는데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죄를 ‘선택’해서 악인이 되는 것이고 모든 범죄사건은 인간이 선택을 잘못한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생뚱맞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내 머리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럼 지금 난 뭘 선택한거지?’
“무슨 고민 있어?”
폴형사는 시선을 운전하는 방향으로 고정시킨 체 나에게 물었다.
“고민은 무슨? 없어. 고민같은 것은… 그냥 12시간안에 사건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밖에 없어“
폴형사는 듬직한 미식풋볼선수를 연상시키는 동료였다.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했다. 저렇게 얼굴과 몸집에서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반영되는 투명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폴형사는 스미스 박사의 오랜 파트너로 수많은 사건을 함께 수사해왔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신고접수가 막 될때 쯤 만삭인 폴형사의 아내가 갑자기 다쳤다고 연락이 와 자기대신 사건을 대신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마누라가 임신하더니 정신이 나갔나? 그 몸으로 빅베어 꼭대기까지 가서 눈썰매는 왜 탔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네..”
사건 수사를 나에게 맡기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린 듯, 폴형사는 나의 눈치를 살폈다. 신경을 쓰는 모습이 매우 역력했다. 평소 날카로운 내 성격을 의식한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미안하면 나중에 코리아 타운 단골 한식집에서 비빕밥이나 사라고 했지만 폴형사는 미안함을 쉽게 버리진 못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스미스 박사가 다 잘 처리할 거야.”
나는 폴형사가 왜 그를 형사라고 부르지 않고 박사로 부르는지 물으려다 관뒀다. 사건에만 집중하기 위해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내 표정을 곁눈질로 훔쳐본 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폴형사는 나에게 물었다.
“필요한 모든 정보는 머리속으로 막바로 입력될건데 그런데 다른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수도 있으니 너가 입고 있는 옷으로 볼수 있게 만들어 놨어.”
귀여운 곰 같은 표정으로 떠드는 폴형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12시간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미소였다. 맞다. 나는 미소를 택했다. 아니, 미소가 나를 택했나? 헷갈렸지만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찾는 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차창 밖으로 뭔가를 선택하고 한 쪽을 가리키는 미물들의 확신에 찬 ‘선택’들을 나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줄 알아?”
폴형사는 내가 차창밖으로 ‘성형수술광고’판을 보고 있자 그렇게 물었다. 내가 아무말도 않자 그는 말을 막바로 이었다.
“그건 그들 특유의 Saving face(체면)문화 때문이야. 남들 눈에 비춰지는 모습으로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려고 한단 말이야.”
차는 코리아타운 곳곳에 세워진 성형수술 광고판의 숲을 지나 행콕팍쪽을 향해 달려갔다.
11시간50분전
나릇한 토요일 오후, 코리아타운을 관할하는 LAPD 윌셔경찰서에 살인 사건 제보가 들어왔다. 사건은 ‘헹콕팍 보호소’에서 일어났다. 행콕팍 보호소는 한인들중 특별히 소아마비성 정신장애 환자등과 같이 주로 정신 지체 환자들만을 보아 보호 수용하는 곳으로 정부가 시설을 허가한 지 올해로 50년째 되는 동안 경미한 사건, 사고 하나 보고되지 않은 조용하고 아담한 시설의 보호소였다. 피살자는 보호소의 원장인 한국인 이민2세 김득호로 친삼촌으로부터 보호소를 인수받아 원장직을 해오다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기로 한 바로 전날 참변을 당했다.
오랜 형사생활동안 수많은 살인사건을 접해왔지만 이번 만큼 참혹하게 예리한 그 무엇으로 난도질 당한 몸을 보질 못했다. 감정반은 피해자가 살해전에 온몸이 묶여 있다가 몸에 난 상처의 출혈로 천천히 자연쇼크사 당했다고 말했다. 범행 현장은 원장실 안의 응접실에서 였다. 김득호가 살해된 시간은 대략 밤 9시 정도로 그 시간에 다른 환자들과 보호소 직원들은 원장실 건물에서 떨어진 동편건물의 레크레이션룸에서 단체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사실 15명의 환자들은 정상적으로 TV시청이 불가능했지만 7명의 보호소 직원들이 환자들을 돌보면서 힘들었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보호소가 마련한 단체 스케쥴인 것 같았다.
김득호의 가족들은 모두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이 보여지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이였다. 그의 가족으로는 산타모니카 시티컬리지의 시간강사로 있는 아내와 슬하에 일남일녀를 두고 있었다. 사건 당일 날 김득호씨를 제외한 모든 가족은 친척 돌잔치에 참석하였다는 알리바이가 확인이 되어 가족들은 차츰 시간을 두고 진술을 받아도 될 것 같아 보였다.
이번 ‘행콕팍 보호소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뇌성 마비 환자인 지니 리란 여자였다. 그녀는 김득호의 시신 옆에서 발견 되었다. TV시청을 마친 지니 리 담당 보호소 직원이 그녀를 찾다가 그녀와 살해된 김득호를 발견하고 911신호를 한 것이다. 그녀를 용의자라 부르지 않고 목격자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을 살해는 커녕 제 몸도 가누기 힘들정도의 1급뇌성마비환자였기 때문이다.
뇌성마비환자지만 유일하게 살해현장에 있던 목격자로 혹시 진술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에 나는 미국 최고의 ‘뇌 과학 수사대’의 스미스 박사에게 화상전화를 걸었다. 10분간 사건 브리핑을 듣고난뒤 박사는 '양전자방출 단층 촬영술’을 활용한 전기 충격요법으로 뇌를 자극해 극히 제한된 시간동안만 유아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는 환자를 정상인의 뇌로 되돌릴 수 있는 첨단 의료술을 소개했다.
“도대체 전기 충격을 어떻게 뇌에 준다는 거죠?”
박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장 소생 전기충격과 같은 방법이지. 미세한 뇌세포 하나 하나에 전류가 흐르게 나노선을 연결시키는 뇌치료지.”
“엄연히 말하면 치료는 아니죠?”
“그렇지. 충격 후 12시간 뒤에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가니까.”
“그래도 뇌장애인이 12시간 동안 정상인으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군요.”
박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앞에 놓인 기계의 수많은 버튼과 회로선들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듯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정신 장애인의 뇌를 전기 충격으로 정상으로 12시간 돌려 놓아도 그 시간을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사의 말은 얼른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지니 리의 뇌에 전기 충격을 가해 정상인으로 돌린 뒤 누가 김득호를 살해했는지 물어 보고 싶어 좀이 쑤시는 상태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 왔다.
“이번 살인을 목격한 지니란 여자는 선천적인 정신 지체아라면서…”
“내 그렇죠.”
“선천적이라 언어능력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전무할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 말은 그 여자의 뇌를 정상적인 뇌로 12시간 동안 만들어 놓는다 해도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구가 필요하다는 뜻이야. 다시 설명하자면, 주어진 12시간 안에 우리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그 여자에게 습득시켜 주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12시간동안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언어능력을 가르쳐주고 자네가 필요한 목격진술을 받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2시간이지.”
나는 물에서 구조 되었는데 구명보트에 물이 새서 다시 물에 빠지는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희망이 전혀없는 것이 아니야.”
잠시 골똘히 생각하고 난 뒤 박사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예전에 Kim Peek이라는 자폐증 환자가 있었어. 그의 이야기는 ‘레인맨’이라는 클래식영화의 소재로도 쓰여졌는데 그는 소뇌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후16-20개월 사이에 그가 보여준 기억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 아버지가 그에게 읽어준 책을 대부분 기억했고 그것을 다시 거꾸로 외우는 등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해었지.”
“천재군요.”
“그가 한시간동안 읽은 책의 98%를 기억하는 능력을 보였으며 그가 기억하며 머리속에서 불러낼 수 있는 책은 무려 12,000권에 달했다고 하더군.”
“하실려고 하시는 말씀은.”
나는 박사를 재촉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연구해본 결과 오른쪽 측두엽이 발달해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왼쪽 뇌가 손상되어 있다고 한다고 연구보고서는 전해주고 있지.“
“쉽게 말하자면..”
“쉽게 말하자면 이를 통해 우리가 유출해 낼수 있는 가정은 인간의 보통 뇌는 보통 단기기억에서 저장했다가 그것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데 Kimpeek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특정 분야의 기억들이 바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지. 한마디로 손상된 왼쪽 뇌의 특정부위는 장기기억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그 문이 부서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능력을 보이는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라구.”
“잠깐만요”
워낙 복잡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 자폐증환자와 지니리를 연결시켜서 박사에게 이해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지니리란 여자의 뇌를 정상인으로 돌린후 오른쪽 측두엽과 왼쪽 뇌부위를 자극주는 나노주파수를 띄워 천재로 순식간에 만들어보자는 거지.”
나는 정말 박사가 감탄스러웠다.
“박사님이야말로 천재십니다.”
내가 감탄사를 터트려도 박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난관이 있을거야. 그녀의 정신세계가 어떤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니까.”
박사의 냉소적인 말에도 아랑곳없이 내 머리속에는 그러나 온통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걱정마십시요. 제 직감이 좋은데요. 박사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과학의 힘은 정말 대단하네요.”
“과학의 힘이 대단하다고…흠..글쎄…과학으로 인간을 알면 알수록 인간의 능력이 점점 초라해 지는 이유는 도대체 뭔지 요새 통 모르겠단 말이야.”
나는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11시간전
김득호를 죽인 범인을 잡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박사와 통화를 끊고서 나는 입가의 미소를 좀처럼 떼낼수 없었다.
드르르르르
옷에 달린 무선전화 단말기가 진동을 울렸다.
나는 발신자가 ‘박사’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얼른 수신허가 버튼을 눌렀다.
“박사님?”
박사의 우락부락한 목소리는 나의 말을 체 기다려 주지 않고 연달아 이어갔다.
“액정스프레이 가지고 있지?”
“물론입죠.”
“그럼 액정스프레이를 벽에 지금 얼른 뿌려. 동영상 하나 전송할테니 봐.”
나는 아무 액자나 가구가 없는 벽 한면에 액정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러자 벽에 32인치 액정화면이 금새 만들어졌다.
“준비되었습니다.”
약3초후, 액정화면에 동영상들이 다운로드가 다 되었다는 신호가 나왔다.
“박사님 이게 뭐죠?”
“묻지말고 잘 들여다 보기나 하라구.”
박사의 호통에 나는 화면에 집중을 하였다. 화면은 HD 나노방식이였지만 조명이 전혀없는 폐쇠회로의 카메라로 찍은 것이여서 금방눈에 들어오기 힘든 동영상이였다.
“아니 저건.”
화면이 눈에 점점 익어가면서 두사람이 나왔는데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의자에 앉은 사람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
나는 화면안에 들어갈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두사람다 자신의 몸을 묶고 괴롭히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엽기적인 놀이를 즐기는 것같았다.
“사람을 의자에 앉혀놓고… 묶고 있는데…묶는 사람은 여자인데요…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고..남자는 전혀 저항을 하지 않는데요…”
카메라의 각도가 여자의 등뒤로 향했기 때문에 여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 앞 의자에 앉은 남자의 얼굴은 선명하게 카메라에 담겨있었다.
정수리까지 벗겨진 머리. 숱이 없는데 붙어있는 긴 머리카락은 헝크러져 있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은 뭔가 공포에 잔뜩 질린 빛이 서려 있었다.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뭔가 폭팔할 것 같은 비명들이 입속에 가득 차있는지 남자의 양볼은 실룩거렸다.
“어?”
순간 화면이 암흑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동영상이 이게 다입니까?”
“젠장. 풀버젼 영화라도 되는 줄 알아?”
“화면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죠?”
“이 화면은 보호소 관리실에서 입수한 CCTV파일에서 나온거야.”
“시간대가…”
“사건이 일어난 추정시간보다 6시간 전이지..”
“저 남자는 누구죠?”
나는 암흑으로 변한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정말.. 모..르겠나?”
박사는 흥분하면 말을 더듬거렸다.
‘맞아..저 남자는…’
내가 속으로 남자가 누군지 알아챈 순간 박사의 기차화통같은 고함소리가 내귀를 때렸다.
“김득호야..죽은 김득호…아직도 모르겠나?”
나는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박사에게 물었다.
“그럼…김득호를 묶고 있는 여자는?”
“지니리야. 뇌성마비환자 지니리가 김득호를 묶었단 말이야.”
10시30분전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깥하늘은 정오인데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상한 날이였다.
“LA 한 복판에 누가 영국날씨를 수입해서 뿌려놓았나?.” “영국은 가보기나 해본 거처럼 말하네…” 꿀꿀해진 기분에 혼자 툭 내 뱉듯이 한 말을 도박중독자가 돈 채어 가듯 잽싸게 대꾸를 하며 박사가 다가 왔다. “뭐 더 하실 말씀이 있었습니까? 바쁘신것 같은데 사건현장까지 다 방문을 오시고..” 나는 약간 빈정대듯 박사에게 말했다. “이것봐 아무리 지금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수사는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 주어야 한다고..”
박사는 숨이 까쁜지 헐떡거렸다. 만사 제쳐놓고 여기에 온듯 하였다. “그럼 이제 현장의 목격자인 뇌성마비 환자 지니리의 뇌에 전기 충격을 가하여 정상인으로 약 45분간 돌린 뒤 취조할 수는 없게 되었군요. CCTV에서 지니리가 김득호를 묶는 것이 증명이 되었으니까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CCTV화면으로 보면 뇌성마비 환자 지니리가 김득호를 죽인 범인인데 12시간에 백만불이나 하는 비용을 들여 범인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봤자 자기는 안 죽였다는 말만 듣겠지. 아니면 뇌성마비인 상태로 한 살인이라고 자기는 죄없다고 하거나.”
“그럼 지니리가 꼼짝 달싹 못할 증거부터 찾는 것이 순서겠군요.”
“그렇지.”
“먼저 다른 사람들의 알리바이부터 자세히 조사해보죠.” “….” 박사는 복도 벽에 설치된 긴 벤치로 가서 주저 앉듯이 가서 앉았다. “왜 그러세요? 노환 때문에 이제 오래 일어서 계시지도 못하세요?” 나는 농담조로 웃으면서 말했다. 박사는 이제 내후년이면 육십이다. 나와 20살 차이가 난다. 박사는 전혀 대꾸를 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어? 제 말에 상처 받으셨어요?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시죠?” “정신도 올바르지 않아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죽였을까?”
“조금전 제가 말씀드린데로 다른 사람들의 알리바이부터 천천히 조서해 보죠. 보호소안에 지니리를 제외한 모든 다른 사람의 알리바이가 결백한 것이 밝혀지면 지니리에 관한 의문이 자연적으로 해결될지도 몰라요.”
박사는 나의 말에 수긍이 가는 눈빛을 보냈다. 박사는 미궁에 빠진 사건풀기를 정말로 좋아했다. 조금 어려워보이는 수사현장에는 언제나 번개같이 나타나 추리하는 것을 즐겼다.
누구부터 조사를 시작하지?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박사님. 보호소에는 환자가 15명에 보호소 직원7명에 도합 22명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침묵을 깨고 박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박사는 나를 바라보았다.
“다 뇌성마비환자고 정상적인 사람은 7명뿐이죠.”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22명의 사람들은 모두 다같은 레크레이션 룸에 있었다구. 22명의 알리바이는 한 방에 처리 되는 거야.” “사실 김득호를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질 사람은 지니리같은 뇌성마비환자보단 정상인인 그 7명이죠. 그들 중에 하나가 지니리를 시켜 김득호를 죽이게 할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단 그 직원들이 범죄기록이 없는지 신상 명세서부터 조사해봐.”
나는 옷소매에 달린 컴퓨터를 켜고 행콕팍 보호소의 데이타베이스에 접속해 직원 신상 명세서를 열어보았다. 잠시 그들의 신상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나는 눈에 띄는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해냈다.
“아니! 다들 ‘시각장애인’인데요.”
“뭐?” “7명은 다 앞을 못보는 장님들이라구요.” “일부러 김득호 원장이 그렇게 뽑았다고 적혀있는데요” “아니 그럼 장님이 정신지체자들을 어떻게 돌본다는 거지?”
박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동력점퍼쟈켓-류마티스같은 관절염이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있도록 보조근육이 들어있는 의료용 쟈켓 ’의 윗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입담배를 찾는 모양이였다. 박사는 6주전에 금연을 선언했다. 물론 사건이 한가한 시기때의 결심이였다.
10시간전
“김득호는 무척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같아 보여. 보호소를 자신의 성역으로 만들어 놓았어.”
보호소의 메인컴퓨터의 데이타베이스를 이리저리 조사하다가 박사가 말했다.
“환자15명과 시각장애인직원 7명은 그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고 따랐던것 같아. 도우미도 앞을 볼수 없는 사람들로 뽑은 것도 자신이 모든것을 컨트럴하기 위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리해보는데…”
박사는 입담배통을 발견할 수 없었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박사가 초조해지면 나오는 버릇이였다. 나와 박사가 서있는 곳의 로비벽에는 자판기를 말리는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요즘 컴퓨터는 물에 세탁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자판기에 있는 병균을 살균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저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병균은 언제나 돌연변이를 통해 더욱 강력해진다. 세탁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병균에 걸리지 않토록 건강하게 면역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병균처럼 시간이 갈 수록 더욱 악랄해진다. 범죄를 막는 면역성은 범죄를 선택하지 않도록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박사님은 이번 살인사건이 누군가가 그런 독재자같은 김득호에게 앙심을 품고 저지른 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수사를 하는 것이 좋겠지.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보통사람들보다 더 상처받기 쉽거든. 평상시 김득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보호소안에 있는 사람이 지니리를 통해 그를 살해했을 확률이 높아.”
“정황으로 봐서 김득호를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상인 못지 않은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여야 하는데…..다들 장님이고, 정신 지체 부자유자니…그것 참….”
“그럼 남는 것은 김득호의 가족들뿐이야..살해 당했을때 모두 집을 비웠다는 것이 수상하군.”
나는 수첩을 꺼내어 ‘김득호의 가족’이라고 적었다. 적고 나서 이정도는 머리속에 기억해낼수 있는데 왜 수첩에 적었을까 내 자신이 궁금해졌다. 내가 뭔가에 얼이 빠져 있나? 처음에는 사건해결이 무척 쉬워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꼬여버린 실마리 때문인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나저나 김득호는 왜 이런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보호소를 운영하게 되었죠? 그의 인상을 보면 전혀 이런 일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김득호는 미국에 태어났어도 한인이민자야. 한인들은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나도 주류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아. 김득호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직종을 택한것이 아니라 아마 친척이 이런 직종에 종사하고 물려줘서 하게 됬다고 보면 돼. 재미한인들은 인간관계가 무척 좁거든. 다 친척이나 가족중심으로 이민생활을 하지.”
“저도 코리아타운에서 오래동안 수사활동을 해서 한인에게 범죄가 발생하면 주위 가족이나 친인척부터 조사하죠.”
“그런 한인들이 요즘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가는 것이 유행이더군”
“왜 이민을 왔다가 다시 역이민가는 거죠?”
“다른 민족들은 이민을 자국보더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하는데 많은 한인들은 이민이유를 단순히 ‘자녀교육’이라고 말을 해.”
“자녀교육요?”
“응. 자녀교육. 아마 특별히 다른 이유가 없어서가 대강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는데 하여튼 그러다가 자녀가 다 커버리고 몸도 늙어 병이 생기면 의료비도 저렴하고 말이 통하는 한국이 그리워지겠지. 그래서 역이민가는 것 같아. 평상시 미국주류사회와는 교통이 없었기에 미련도 없이 미국을 더 쉽게 떠날수 있는거지”
“예전에 한국에서 이민온 친구가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말이 이제 이해가 가는 군요. 너무 심심해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느니 차라리 재미있는 지옥으로 역이민을 선택하는 편이 한국인에겐 나을 수도 있겠군요”
“천국 지옥 하니까 그런데 자네는 매일 이런 지옥같은데 살다보니 이게 다 인가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정말 천국이라는 곳에 단 1분이라도 머무르고 싶어. 그러 곳에 역이민가고 ,,,,아니 이민가고 싶어”
직업상 범죄구덩이에 뒹굴다보니 정말 박사의 말대로 이 세상같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가끔 이런 세상의 반대같은 천국이라는 곳이 혹시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미국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덜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20xx년도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된 ‘성경책 테러폭탄’사건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성경책 테러폭탄’사건은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주위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이너 마이트 정도의 폭팔력을 가진 종이폭탄을 제조해서 그것으로 성경책을 제작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대량살포를 한 사건이였다. 당시 정부는 긴급히 모든 성경책을 회수 하기 시작했으나 기독교인들의 반발이 커서 완전한 성경 회수가 힘들었고 급기야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 연쇄폭팔이 일어나면서 9.11테러 이후 최대의 사상자를 내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테러’는 언제나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정확히 그 목적을 이루었다. 성경책 폭탄으로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미국정부는 어처구니없이 테러리스트에게 항복하는 성명발표를 TV를 통해 발표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분개했다. 그때 미국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국내의 기독교 교회와 단체의 성경을 정부차원에서 관리하는 ‘성경종량제’를 선포했다. 그러나 그것은 폭탄일지도 모르는 성경을 회수하기 위해서라고 그러지만 내가 봐도 한 종교의 경전을 정부가 가져가 버리는 종교 탄합 정책같아 보였다. 미국내의 모든 성경책을 정부가 회수해서 허락된 성경만을 보라니 물론 기독교계는 반발을 했고 비기독교인들도 ‘종교자유’에 위배된다고 시위를 했지만 정부는 막무가내였다. ‘성경종량제’에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차례로 검거 되었고 점점 기독교를 박해하는 분위기가 미국내에 팽배했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가 기독교인인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역이민을 택하기도 했다.
9시15분전
“그런데 폴형사는 어디 있어?”
“마누라가 임신했는데 눈썰매인가 뭔가 타다가 다친 모양입니다. 어젯밤에 헐레벌떡 나가더라구요.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잖아요. 조심해야 되는데 6개월전까지는…”
순간 박사가 벤치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내 앞에 섰다.
“자네 방금 뭐라 그랬지?”
“폴형사 마누라 임신했는데 다쳤다구요.”
“아니 그 다음…”
“예?”
“그 다음 무슨 말 했냐니까?”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한다고…”
나를 다그치던 박사의 입주위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걸 언제나 선택하지…다른 좋은 선택이 언제나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무슨 말씀이죠?”
“당장 살해현장으로 가자”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두고 박사는 복도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9시 13분전
박사는 현장수사를 무척 좋아하였다. 사무실에서 앉아 3차원 입체 부양 영상에서 보여주는 사건현장을 극히 싫어했다. 이유는 ‘범행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박사는 주장했다. 범행의 냄새가 무슨 냄새일까? 여름철 내어다 놓은 쓰레기가 썩는 냄새? 목욕을 하지 않고 있는 일꾼들의 냄새? 머리속으로 온갖 역겨운 냄새의 기억을 꺼내봐도 범행의 냄새가 무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없어야 할 곳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가 아마 범행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박사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그냥 박사님이 뭘 추리할까 생각하고 있었죠”
나는 얼굴을 붉히며 뒷통수를 긁었다.
“문은 안으로 잠겨 있어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사무실에는 뇌성마비환자인 지니리와 원장 김득호만 있었어.”
박사는 김득호의 시체가 놓여졌던 가죽의자를 가리켰다.가죽의자의 손잡이 부분에는 엄청난 양의 피가 말라 붙어 있었다.
“역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것이 사람마음이라는 자네 말이 맞네.”
“예?”
“김득호는 자살한 것 같아.”
“자살이라고요? 타살이 아니고..”
“자살이 아니고서야 이런 의자에 손이 묶여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팔이 묶여 있다고 해도 이런 의자는 조금만 격렬하게 흔들면 옆으로 넘어질 보통의자야.”
“의자가 가벼워서 팔이 묶여도 일어서서 걸어다닐 수도 있겠는 걸요.”
나는 의자를 흔들어 보았다. 끼익 쇠붙이 소리가 의자에서 났다.
“그러나 자살을 남이 보는 앞에서 하는 사람도 있나요? 밀폐된 이 방에는 그래도 지니리가 있었잖아요.”
“그 여잔 정상이 아니야.”
“만약 생명보험이라고 들었으면 자살은 보상처리해주지 않을 것이고, 왜 김 득호는 이렇게 자살을 한거죠?”
“그래서 내가 자네말에 다시 여기 오게 된거야.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다는 말에 말이야. 자살 할 수 없는 상황의 사람이라서 나는 그가 자살했다고 추리해. 어서 검시과에 연락해서 시체의 정확한 사인死因이나 조사하라구. 이건 자살이 분명해.”
박사는 너무나 확신하는 목소리로 방이 떠나가라 외쳤다. 나는 옷에 부착된 무선전화를 꺼내 검시과로 전화를 걸었다.
“김득호 검시결과가 어떻게 됐어?”
무선전화의 화면에 검시과의 피터가 떠오르자 박사는 내 손에 있던 전화기를 빼앗아 기차화통 삶아먹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씨~ 깜짝이야…소리는 왜 질러?”
피터와 박사는 단짝 친구였다.
“김득호 검시결과 안 나왔어? 어쭈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지 담배나 피우고..”
화면속 피터의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것을 발견한 박사는 좀전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귀가 멍해지네. 야. 너 같이 발암물질 내 뱉는 담배 피우는 줄 아냐? 이건 산소담배라고 피우면 산소가 발생되는 산소담배라고…”
산소담배는 니코틴담배와는 달리 피우면 산소(O2)가 발생되는 친환경담배로 재미한인이 최초로 개발한 담배였다. 맛은 기존담배보다 없지만 요즘 한참 각광받고 있는 환경보호 기호품이였다. 담배에서 발생하는 산소도 발화되지 않는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어 인간의 나쁜 버릇이 인류에 공헌하는 창조를 낳은 것이 이 산소담배가 처음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보았다. 인류는 여기까지 오는데 열심히 세상을 파괴해 왔다. 환경도 사람 자신도.
8시15분전
“김득호는 손목의 동맥을 끊어 과다 출혈사 한 것 같아”
“난 자살로 보는데 자네 생각은?”
피터는 산소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연거푸 품어대었다. 가늘었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나도 많은 시체를 접해봤지만 이 사람처럼 깨끗한 상태도 드물어…그어진 손목의 상처이외에는..”
피터는 눈속의 눈알이 거의 사라질 정도로 눈을 더더욱 가늘게 떴다. 나는 박사의 손에 들린 무선전화 기를 빼앗아 피터에게 물었다.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살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에게는 죽기전 무의식단계가 짧게라도 있다구. 이 바닥경험상 김득호의 시체해부결과는 자살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강해. 제기랄… 나는 자살하는 인간들이 제일 싫더라. 해부하는 재미가 하나도 없거들랑.”
재미?
해부를 재미로 한다는 피터의 말에 소름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박사를 바라 보았다. 박사는 김득호가 자살한 것이 분명함에도 뭔가 더 찾을 것이 있는듯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 보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옷에 집어넣고 박사에게 갔다. 사무실벽면은 보호원의 전체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핑크색이였다. 유치하거나 혹은 촌스런 핑크색의 선입관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계속 들여다보면 기분이 묘해지는 컬러였다.
‘핑크계열 색깔을 좋아하면 성격이 어떻다고 하더라?’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남자 성격치고는 꽤 특이한 성격이 아닌가. 벽면을 조사해보니 페인트프린트한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질 않았다. 요즘은 벽을 페인트 붓으로 일일이 칠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처럼 얇은 컴퓨터 모니터 스크린을 벽에 붙여 원하는 벽색깔을 나타내는 시공기술이 유행인데 이것 역시 재미한국인이 개발한 기술이였다. 스크린 사이의 이음새를 보니 분명 최근에 한 것임에는 확실했다. 이 시공은 벽색깔을 원하는 데로 기분에 맞춰 바꾸는 장점은 있었지만 벽에 못질해서 그림을 걸거나 하는 데코레이션은 불가능한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생긴것이 영화처럼 프로젝터로 벽에 그림을 쏘아주는 방식이 생겨났는데 살인사건이 벌어진 장소라 누가 프로젝터를 꺼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김득호의 사무실 모서리에 놓인 개인 데스크로 가까이 가서 위에 놓인 컴퓨터를 한번 켜보기로 하였다. 나는 먼저 경찰서의 사이버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지금 행콕팍 보호소 살인 사건 현장에 와 있는데 피해자 컴퓨터로 해커 들어가서 그 속에 든 기본정보를 나한테 지금 다운로드 해주지 않을래?”
“특별히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아니 그 아직은…자 컴퓨터 등록일련번호를 알려주지 34wsa123sewtop”
나는 몸을 숙여 컴퓨터 본체 뒷면에 붙여진 일련번호를 불러주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사실 이 사이버형사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로 하면 좋을 텐데 목소리가 거의 미소년과 비슷한 음성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다 되었습니다. 바로 다운로드 해드릴까요?”
“그전에 뭐 특별나게 말하고 싶은 점은 없어?”
“아바타 부인이 4명이나 있네요.”
“아바타 부인?(사이버 상에서 이성이나 동성과 결혼하여 신혼생활을 하는 인기사이트에서 결혼상대자를 지칭하는 말)”
“온라인에서는 결혼 횟수가 무제한 인거 아시죠? 그런데 한꺼번에 4명은 좀 많네요”
요즘 한참 큰 사회적 물의를 빚는 사이버결혼식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였다. 너무 몰입하는 유부남, 유부녀들때문에 정부가 ‘사이버간통죄’입법 추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현실생활의 결혼생활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아무 상대나 사이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하는 재미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그런 ‘사이버불륜’을 하는 친구가 내 주위에도 수두룩하였다. 거의 폐인이 되어가게 자극적이고도 은밀한 모든 하이텍 방법이 한번 발을 디딘 사람들은 좀처럼 빠져 나가지 못하는데 부인이 4명까지 되는 죽은 김득호가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7시5분전
“김득호가 그 정도로 아바타 신혼생활의 중독을 보일 정도라면 그의 가족들과는 사이가 당연 좋지 않겠지” “이제 가족들을 얼른 만나봐야 겠군요.” 나는 옷에 달린 컴퓨터로 김득호 가족들의 현재위치추적신호를 넣었다. “아바타부인이라…” “왜 그러십니까?” 나는 박사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박사님.김득호가 아바타부인으로 보호소의 장애인과 사이버상에서 신혼관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박사는 맞다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다시 컴퓨터를 연결해 보호원생중에 컴퓨터를 다룰줄 아는 장애인들을 추려 내라는 명령을 입력했다. 나는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일까? 뭔가 야릇하고도 깊은 암흑 같은 고독이 사무실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시체가 치워지고 난 뒤에도 그 시체가 잠시 있었던 그 공간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존재가 공간 전체를 어김없이 매우고 있었다. 나는 그 무언가를 ‘혼’이나 ‘영’으로 생각했다. 그 ‘영’과 ‘혼’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는 공간에서 어느 질서를 유지하고 살려면 반드시 ‘신’같은 절대자의 관리를 받지 않을까 막연히 나는 생각해 보았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 사인을 알 수 없어도 나의 오감을 벗어나 본능적으로 막바로 느껴지는 그 신비한 기운은 어느 시체에서건 나왔다. 이유없는 죽음은 절대로 없었다. 그 말은 곧 이세상의 모든 탄생과 삶도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반장은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괘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나는 구석에 놓여진 미니냉장고에 손을 가져가 문을 열어보았다. 냉장고안에는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천연산소통과 생수병 그리고 비타민제들이 수두룩하게 들어있었다. 나는 비타민제통을 하나를 꺼내 보았다. 손으로 비타민제 통을 쥐자 비타민의 ‘영양정보’가 통에 새겨진 스크린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사님! 이것좀 보세요. 이거 자살할 사람치고는 너무 건강을 챙긴 것이 아닙니까? 여기 영양정보를 보세요” 나는 비타민 통을 박사의 눈앞에 내밀었다. 바로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타민통을 들고 있던 나와 박사는 단발마의 비명소리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뭐야?” 나와 박사는 동시에 김득호의 사무실을 열고 복도로 나와 두리번 거렸다. 나는 소매에서 헹콕팍보호소 도면을 얼른 찾아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사운드 디텍터를 걸었다. “박사님. 비명소리가 저쪽 복도 끝 환자병동에서 울린 것 같은데요.” 순식간에 복도에는 보호소 곳곳에 서있던 형사들과 경찰대원들이 몰려들었다.
6시35분전
“뭐야?” “뭐지?” 나는 손에 만약을 대비하여 권총을 꺼내들었다. “여자가 쓰러졌는데요.” 박차고 들어간 문안에는 꿰꿰한 냄새가 가득차 있었다. 3평 남짓한 방 중앙의 윗쪽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쇠창살이 박혀있었다. 소나기 오기전 짙게 찌푸린 회색하늘 같은 색깔의 페인트가 벽에 칠해져 있었다. 병실 바닥에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수 없는 걸쭉한 노폐물들이 널려져있었다.
나는 앞서간 도착한 경찰대원들 틈 속을 지나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 엎어져 있는 여자는 간질병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심하게 엉킨 머리카락은 오랫동안 감지 않았는지 역겨운 냄새가 났으며 역시 지저분한 환자 복을 입고 있었다. “왜 그래?” 뒤따라온 박사가 병실안에 가득 들어찬 형사들 틈속에서 힘겹게 나오며 물었다. “모르겠는데요.어라?” 순간, 여자는 허우적거리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더니, 목안에 기름칠을 전혀 하지 않은 쇠톱니바퀴 두개가 거칠게 맞물리면서 나는 소리와 똑같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의 끔찍한 비명소리를 참을 수 없어 두손으로 귀를 막았다.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뭐 어떻게 해봐..곧 숨넘어 갈 것 같은데.” 병실안에 서있는 형사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했지만 정작 아무도 그 여자에게 손을 댈 엄두를 못내고 그냥 어정쩡하게 서있기만 하였다. “비켜봐욧!” 방안의 형사들과 나는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 곳에는 보호소직원이라는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한 여자가 입체 눈동자가 새겨진 시각 장애인의 특수 고글을 쓰고 문앞에 서있었다. 특수 고글에서 나온 광선은 이리저리 스캔을 하면서 혹시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경고신호를 주고 있었다. “지금 쓰러진 분은 저희 보호소의 환자님입니다. 지금 기도가 막혀 숨을 쉴수 없는지 괴로운모양입니다. 누가 저 분을 일으켜 세워주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목소리는 무척 애절하면서도 명령하듯 절도가 있었다. 형사 한명과 내가 얼른 여자의 말대로 엎어진 환자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로 곧 숨이 넘어 갈 뻔 했는지 내가 손을 대자 내가 휘청거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으로 나의 컴퓨터 자켓의 옷 소매를 꽉 붙들었다. “헉헉…” 여자를 일으켜 세우자 죽을 고비를 넘긴 듯 숨을 세차게 내쉬었다. 어느센가 시각장애인으로 보이는 여인은 세워진 여자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감아 앉으면서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이제 되었어요. 지니씨...” “지니?” “왜 그러시죠? 아시는 분이세요?” 시각장애인여인은 작은 내 목소리에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아..그러니까 전 이런사람입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켓 안 주머니에서 형사신분증 꺼내 그녀의 눈앞에 가져갔다. 나는 순간 속으로 그 보호소직원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사신분증을 재빠르게 안주머니로 도로 넣었다. 난감해 하는 나에게 보호소직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형사인 것 압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고글에는 신분증에 새겨진 바코드를 읽어 음성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보호소에는 한시라도 눈을 뗄수 없는 뇌성마비 환자님들이 대부분인데 수사하신다고 저희직원과 환자님들을 격리시키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보호소직원은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목소리에 압도되어 꾸중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하였다.
‘내가 남의 귀인이 되어주지 않고 어떻게 길 떠난 내 자식이 귀인을 만나기 바라랴’
보호소직원이 입고 있는 티셔츠 가슴부분의 LCD스크린에서 이런 문장이 지나갔다. 보호소직원은 자신이 안고 있는 지니리를 무척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니리는 보호소직원의 품안이 친숙한지 그새 안정을 되찾고는 천천히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지니리의 환자복 등 쪽의 스크린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많이 놀란 모양이네 냄새나는 방에서 어서 나가시죠.”
박사가 지니리를 안고 있는 보호소직원에게 말했다. 박사가 ‘냄새나는 방’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신기하게 그때부터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내 코를 자극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머지14명의 환자들의 방에도 이처럼 악취를 풍길 정도로 더러웠다고 했다. 이런 관경을 보니 피해자 김득호가 정말 환자들을 위해 행콕팍보호소를 운영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뭔가 다른 이익을 노리고 보호소를 맡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은 내가 아니라 이 지저분한 환자병동을 목격하는 누구라도 가질만한 것이였다. 김득호가 온라인 상에서 아바타부인을 4명씩이나 두는 것은 사실 보통일이 아니다. 현실세계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과는 차원이 틀린 이야기이다. 한명의 아바타부인을 만족시키기도 24시간이 모자란 판국에 4명씩이나… 어느 민족보다도 배타적인 재미한인들의 인터넷중독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모양이였다.
6시간전
“뭐해? 공중부양의자없어?”
박사의 무뚝뚝한 고함에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카고바지의 왼쪽 주머니에서 공중부양용 물질을 꺼내었다. 양손으로 물질의 끝을 손으로 누르자 물질이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손으로 공중에 떠있는 물질을 의자모양으로 만들어 지니리와 옆에 서있는 보호소 직원을 향해 밀었다.
“자 앉으세요. 일단”
“환자님이 많이 놀라셨는데 먼저 휴게실로 가서 안정을 취했으면 하는 데요.”
박사와 나는 화가 약간 난 듯한 언성으로 말하는 보호소직원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시각장애인이긴 하지만 미모와 몸매가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이는 25살과 30살 중간이 되어 보였지만 그녀가 입은 LCD스크린티셔츠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스타일이였다. 요즘 LCD스크린 티셔츠는 컬러화면이 나오는데 그녀가 입은 셔츠는 글자와 간단한 흑백그림만 나오는 5년전 버젼의 티셔츠였다. 그녀의 외모가 너무 튀어서 유행지난 옷을 입은 그녀에게 동정심이 유발될 정도였다.
“질문이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의자에 지니씨를 앉히시죠.”
보호소직원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신의 바지에서 컴퓨터 코드를 몇가닥 꺼내서 지니리가 입고 있는 셔츠에 플러그인 시켰다. 코드가 플러그인되자 지니리는 웃는 얼굴을 하더니 편안하게 공중부양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희킴이라고 합니다.”
유창한 영어로 희킴은 대답했다. 희킴도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2세같았다. 나는 옷소매에 ‘행콕팍보호소 직원 희 킴’이라고 입력시켜 윌셔경찰서 데이타베이스에 신원조회를 부탁했다.
“HE KIM? 아름다우신 얼굴에 아름다운 이름같아요.”
동양적인것을 무조건 아름답고 신비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백인인 나는 정말 그녀의 이름이 귀엽게 들렸다.
“대학졸업하고 놀았어요. 시대가 발달해도 앞을 못보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데는 없죠.그런데 하고싶은 질문은 지니리에 관한 것이 아니였나요?”
“아? 예…예”
나는 어설프게 머리를 손으로 긁으며 대답했다. 옆에서 조용히 날 지켜보던 박사가 쩔쩔매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직접 희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니리씨가 사건 당일에 혼자 김득호씨와 사무실에 있던데 희킴씨는 그때 무얼 하셨죠?”
사실 박사가 희킴에게 물은 질문은 김득호가 살해된 날 흐킴이 입었던 옷의 칩을 회수해서 내비케이팅 분석을 통하면 희킴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박사는 희킴에게 직접 말을 듣고 싶은 모양이였다.
“누가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저는 여기 안에 있을 수 밖에 없으니 그 때도 보호소안에서 있었죠.”
희킴의 대답은 마치 감금당한 사람의 불만처럼 들렸다. 박사의 눈치를 살피니 박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죽은 김득호씨가 환자들을 돌보는 직원을 전부다 시각장애인들로 고용한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아마 원장님이 눈 뜨고는 못볼 짓을 하신 모양인가보죠.”
“예?”
한인들은 코리아타운에 모여살면서도 서로 헐뜯고 업신여기는 특이한 성격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수사관한테 자기 보스를 대놓고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직접 들으니 그 국민성이 신기했다.
“희킴씨가 ‘눈뜨고 못볼짓’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김득호씨에게 무슨 좋지 못한 감정이라도 있는건 아닌가요?.”
“전 전혀 그런 감정이 없어요. 전 그냥 앞을 못보지만 다른 감각들이 무척 예민한 편인데.. 최근 원장님은 굉장히 신경질 적이 되셨고 저보다 휠씬 민감해지셨죠.”
“혹시 그게 무엇때문인지 짐작가는 점이 있나요?”
순간 희킴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박사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입을 다시 열기를 기다렸다.
“이건 그냥 제 느낌인데요…제가 느끼기에 원장님은 최근 부인과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 보였어요.”
“특별히 희킴씨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동기가 될만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요즘 부쩍 직원들 앞에서 아바타 부인자랑을 많이 했죠.”
박사는 희킴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물었다.
“아니.그건 온라인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인데 기혼자인 김득호가 직접 그런 개인적인 일을 직원들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자랑했다는 건가요?”
희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옷소매로 희킴의 신상정보가 다운로드되어 들어왔다. 그녀의 여러가지 정보중에 나의 눈을 번쩍 띄이게 만드는 정보 한줄이 있었다.
‘불법 장기 매매로 불구속 입건.’
아름다운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전과기록이였다. 나는 박사에게 슬쩍 옷소매의 LCD스크린을 보여 주었다. 박사는 아무 소리 없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장기매매는 요즘 한창 정부에서 특별히 단속하는 범죄였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신체부위만큼은 사람 몸에 달린 것 만한 것이 없었다. 희킴은 블랙마켓에서 안구 2개를 구입하려다가 잠복경찰에게 입건 되었다고 신상정보는 가르쳐 주고 있었다.
“원장님은 저나 다른 직원들에게 매일 아바타부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원장님은 저희들과 꺼리낌없는 관계를 자랑하고 싶은지는 몰랐어도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너무 자주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무척 곤혹스러웠어요.”
“질문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는 공손한 목소리로 희킴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차피 볼 수 없는 사람앞에서 박사가 왜 저리 공손한지 순간 의아했다. 자기를 보는 것을 눈치챈 반장이 나를 바라보면서 시니컬한 표정을 지었다.
“더 질문이 없으시다면 지니씨를 레크레이션룸으로 데리고 가도 될까요?”
“물론 입니다만, 현장조사가 끝날때까지는 보호원을 벗어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밖에 나갈 일도 없는 걸요. 알았어요”
희킴은 지니리를 부축해 레크레이션 룸쪽으로 가고 난뒤 나는 복도에 빽빽하게 들어선 동료형사과 경찰관들을 각자수사지역으로 보낸뒤 박사에게 다가갔다.
“저 여자도 좀 이상한데요. 전과기록도 있는데다가 저런 미모를 가지고 육체적으로 힘든 보호소 직원으로 있다니..”
“그래서?”
“자기 눈 한번 고쳐 볼까하고 여기에 일하는 거 같은데 그걸 눈치챈 김득호가 그걸 미끼로 희킴에게 찝적대며 다가간것이 아닌가 하는 거죠. 괜히 자기 아바타부인이 4명이라면서 은근히 여자한테 인기많은 걸 자랑하면서 희롱한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데요. 방금 저 여자가 김득호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보셨어요? 표정이 무슨 벌레 씹는 거 같잖아요. 맞아 분명히 저 여자는 김득호에게 협박당했을 거야”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박사는 아무말 없이 지니의 방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어보았다.
“그럼 자네는 이제 김득호가 자살하지 않았고 저 여자가 김득호를 죽였다는 거야? 자꾸 찝적대서? “
“뭐 그렇찮아요.. 돌아가는 게 쩝.”
“좋아. 그럼 김득호가 자살하지 않고 누군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다시 추리를 해보자구. 모든 직원과 환자들은 김득호가 살해 당할시에 레크레이션룸에 함께 있었다구. CCTV에 김득호와 같이 있었던 사람은 지니리 밖에 없었어. 자네도 봤잖아 지니리가 의자에 앉은 김득호의 팔을 묶는 모습을…김득호는 누군가에게 과출혈을 일으킬 정도의 상처를 입고 가죽의자에 앉혀졌던 거야.”
“그런데 지니리는 왜 의심이 가게 그 방에 홀로 김득호의 팔을 묶고 있었을까요?”
박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처음부터 CCTV나온 여자가 지니리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인것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던거야.”
5시간30분전
“예?”
“자 다시 CCTV를 보자구”
박사는 액정화면을 벽에 다시 만들었다. 나는 리모컨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나름대로 화면이 선명하게 보여지도록 한뒤 장면 하나하나를 천천히 조그셔틀로 돌려나갔다. 화면속의 김득호의 얼굴은 보호소 안에서만큼은 신이였음에 틀림없어 보여주었다. 잔뜩 화가 난 신. 잘된 일은 자기가 한 일이고 못된 일은 나몰라라 팔장끼어 버리는 있으면 성가신 신의 모습을 한 김득호였다. 왜 죽었을까? 보호소안에서만은 무소불위의 힘을 떨치던 장난질이 더 이상 재미없어진 것인가? 박사 말대로 그가 자살을 했다면 그 이유는 무료함이 아닐까. 삶에 대한 무료함.
“정말 화면의 여자가 지니리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깨끗한 영상은 없군요.”
박사는 CCTV를 한참 들여다 보더니 방 모퉁이에 쌓여진 종이박스위에 앉아서 산소담배를 다시 물었다. 박사의 말대로 지니리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였다. 누군가 환자복을 입고 지니리와 비슷한 체구의 제 삼자가 화면속에 있다고 우기면 반론할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렇네요. 화면안의 여자가 지니리가 아니라고 쳐도 김득호가 저렇게 의자에 묶여있을때까지 분명히 살아 있어요. 얼굴을 봐요. 웃고 있잖아요.”
박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질근 질근 씹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너무 저 여자와 김득호의 얼굴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
“이것이 녹화된 날짜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
박사는 내가 멍청하게 있는 동안 CCTV플레이어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옷소매에 달린 컴퓨터에서 와이어를 하나 꺼내 CCTV 측면에 여러개의 잭 플러그중 하나에 꽂았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이부분이 붙여진게 금방 표시나잖아”
“예?”
“이거 한달 전 자료야. 이런 낡은 디지털방식으로 바꿔치기를 하다니 이런 속임수에 시간을 날린 우리가 멍청한것 같아”
“한달전 자료라면…”
“누군가 한달전 자료를 죽기 바로 직전으로 바꿔치기 해 놓은거야”
“그럼 이제 김득호는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는 것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게 되는 거군요.”
“김득호를 살해한 자가 우리가 이런데 시간을 보내도록 일부러 바꿔치기 한 거야. 어서 보호소안의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한사람씩 모조리 조사해야 겠어. 김득호의 가족은 어디있어?”
박사는 누가 자기를 속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4시간45분전
김득호의 가족이 보호원에 도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소매에 달린 이동통신시스템을 열었다. 보호원의 정문관리시스템의 자료를 훓어보니 약15분전에 김득호의 가족이 탄 자동차가 보호원으로 들어온 사실이 포착되었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CCTV앞에 서있는 박사를 향해 나는 김득호의 가족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박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옷에 달린 컴퓨터를 이리저리 누르고 정보를 입력하더니 말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세요? 같이 가요”
나는 허둥지둥 박사의 뒷꽁무니를 쫓아 나갔는데 아무래도 김득호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는 모양인것 같았다. 박사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서고 나는 그뒤를 따라가는데 차가운 보호원의 복도에는 박사의 발자국 소리만 뚜벅뚜벅 거리면서 울렸다. 보호원의 건물은 적어도 100년은 더 되어보였다. 복도와 벽면에 발라진 벽빛깔은 색깔이 벗겨져 흉측하게 드러나 있는데 보호원과 어울리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박사를 따라가면서 나는 곰곰히 여태까지 조사한 사실을 정리해보았다.
정년퇴직후 65세 한인이민2세 김득호는 자신의 친척으로부터 보호원을 인수받아서 15명의 환자 특히 정신장애가 심한 여성들로만 구성된 환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환자들을 돌보는 도우미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력장애인들로만 뽑아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시켰다. 김득호의 관한 컴퓨터속의 자료를 조사하면 할 수록 보호원을 책임받아 운영하게 된 의도가 오갈데가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는 아닌것 같았다. 컴퓨터에 아바타 부인만해도 4명이나 되는 사람이 무슨 소명의식으로 이런 보호원을 운영했겠는가. 이상이 김득호에 관한 조사이고 그다음은 지니리. CCTV를 통해 처음에 나와 박사는 간질증상도 있어 보이는 소아마비성 정신지체환자인 지니리가 김득호를 죽였거나 최소한 죽을때 유일하게 같이 있었던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시과에는 김득호가 혼자 자살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한달 전 화면이지만 왜 김득호는 홀로 지니리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같이 있었을까? 그리고 장기매매전과자 희킴을 수사하고 난뒤 CCTV화면이 한달전 영상과 허술하게 바꿔치기했다는 것이 발견됐다. 아 정말 헷갈린다. 지금 김득호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더더욱 헷갈리게 되었고 누군가 나와 박사를 다른곳으로 신경을 돌리게 만들려고 하는 것같은 느낌도 든다.
4시간 15분전
나는 옷소매에 달린 자판을 두들겨 보호원의 15명의 환자와 7명의 직원사진을 다시 다운 로드하여 슬라이드식으로 쭉 훓어보았다. 다들 시각장애인이고 정신지체아이지만 외모가 다들 보통 이상이였다. 누군가가 지니리와 김득호의 수수께끼같은 상습적 행동을 눈치챈 제3의 인물이 마치 지니리에게 살인죄를 덮여씌워 김득호를 해치운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제3의 인물이 있다. 불법장기매매전과가 있는 지니리의 도우미 희킴일까. 시각장애인인 희킴이 안구가 필요해 이 보호소에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다 집어치우고 구속영장을 발급받아 희킴을 추궁해볼까. 그런데 너무 추리가 쉽다. 정신지체자의 안구를 파헤질 희킴의 계획이 사전에 김득호에게 들켜 김득호를 죽였다는 줄거리는 초등학생이라도 생각해낼수 있는 스토리다. 다른 뭔가가 있는것 같다. 정말 다른 뭔가가 자꾸 내 수사를 흐트리고 있다.
4시간전
헹콕팍 보호소는 ㄷ자의 3층건물로 김득호의 사택은 3층꼭대기 전체를 쓰는 팬트하우스였다.
“누구시죠?”
박사가 사택앞 인터컴을 누르자 인터컴에 달린 LCD화면으로 창백한 얼굴의 여인의 얼굴이 떴다.
“네 LAPD입니다.”
찰칵.
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중한 철문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간 김득호의 사택은 이때까지 칙칙한 보호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였다. 대리석으로 보이는 바닥에는 형이상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고 휘황찬란한 LCD벽지가 집안 전체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나와 박사앞에 나타난 인터컴의 여인도 이지적이고 우아한 동양미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뭐야? 여기 여자들은 다 미인인걸’
한국여인들이 다들 성형수술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성형을 해서 저렇게 미인인가 나는 궁금해졌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인은 나와 박사에게 손짓을 하며 거실로 우리를 인도했다. 거실에는 깔끔한 모양의 가구들이 벽에 기대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가구위에 놓인 LCD사진액자들은 모조리 꺼져있었다.
“여기 앉으시죠”
거실중앙에는 거대한 L자의 검은 가죽소파가 있었는데 앉으니 자동으로 온몸이 편하게 조정되었다.
“뭐 드실거라도?”
“아니 됐습니다. 몇가지 질문드리기 전에 갑작스런일을 당하셔서 마음에 상처가 크시겠습니다.”
“아버지는 상처만 많이 남겼죠. 흑흑..”
나는 잠시 혼란 스러웠다. 분명 우리 앞의 여인은 적어도 40대는 되어 보였다. 동양인들의 나이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눈주위의 주름이나 쳐진 피부로 보면 분명 40대 이상은 되어 보였다. 박사도 앞에 앉은 여인이 김득호의 아내라고 생각한 모양인것 같았다.
“아? 예.. 어머니는 집에 계십니까?”
“아버지? 아..참 어머니는 인체장비청소 중이시죠.”
참으로 이상하게 이 여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헷갈려했다.
“인체장비라면?”
“어머니는 머리만 빼고 온몸이 메카닉으로 구성된 안드로이드죠. 오래전에 수술을 받아서 장비가 구식이라 청소를 하지 않으면 작동불능이 빈번해지죠.”
김득호의 딸은 말끝마다 ‘~죠’라고 무척 기계적으로 말하는 로보트같았다. 아무 감정없는 목소리로 눈은 우리를 보고 있어도 아무데도 촛점을 두고 있지 않은 매마른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아가씨께 질문 몇가지만 드리겠습니다.”
“아가씨? 호호호 오래간만에 아가씨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내요. 다이어트 호르몬수술후에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는데.”
요즘 남가주의 코리아타운은 미국성형수술의 중심지로 날씬하고 탱탱한 몸을 원하는 타인종들도 많이 몰려들었다.다이어트 호르몬수술은 코리아타운의 한인 젊은여성들의 인기 성형수술로 인체 호르몬에 변화를 주어 절대로 몸에 살이 찌지 않게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수술을 가리켰는데 날씬하고 탱탱한 몸을 유지시켜 주지만 몸의 노화를 앞당기는 단점이 있었다. 김득호의 딸은 데이타에서는 대학교2학년생이라고 하였지만 최근에 다이어트 수술만 마친뒤라 얼굴이 40대의 나이 든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내 동생이 아가씨 같죠. 그애는 미남 수술을 했거든요.”
미남수술도 일종의 호르몬수술이였다. 이 수술은 젊은 청소년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수술로 이수술을 받고 6개월후면 얼굴이 연예인을 빰치는 멋진 미남얼굴로 변했다. 이수술은 여성호르몬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남성기관이 퇴화해 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청소년들이 시술을 받았다. 왜 그렇게 한국인들은 성형수술을 좋아 하는지 난 도대체 알수가 없었다.
“동생은 어디에 있죠?”
“자기 방에 있겠죠. 그애는 사람많은 곳에 갔다오면 얼마나 신경질를 부리는지. 기집애처럼.”
“그럼 아가씨한테 몇가지 물어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언제 아셨죠?”
“아버지?”
아버지라고 하자 또 김득호의 딸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깐.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주디라고 하…죠.”
역시 머뭇거리면서 김득호의 딸 주디는 말했다.
“주디씨. 아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헷갈려 하는데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박사은 수사할때 이렇게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질때가 많았다. 심리적으로 인간은 기습질문에 진실을 이야기할때가 많다고 박사는 철저히 믿고 있었다.
“…….”
“왜 대답못하시죠?”
김득호의 딸 주디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결심을 한듯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나와 박사에게 풀어놓았다.
3시간 45분전
주디의 입을 통해 나온 김득호의 가정은 한마디로 요즘 LA한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전형적인 인체성형중독증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암같은 병에 걸린 신체부위를 교환치료하는 목적으로 발전된 바이오닉기술들이 외모성형을 위해 무분별하게 시행되어 극단적으로는 인체호르몬을 교체하는 끔찍한 불법시술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집안이 부유했던 김득호는 많은 돈을 인체성형수술비에 물쓰듯 써 댔음을 딸 주디는 진술해 주었다. 김득호의 사무실 냉장고에 수북히 담겨져있던 비타민병등은 과도한 인체이식과정에서 결핍되는 영양분을 채워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 이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김득호는 당뇨병을 지병으로 앓아와 두다리를 일치감치 교체하였고 그래서 원래 5"5'였던 키가 수술후 6피트가 넘는 훤칠한 키로 변모되었다고 했다. 지방으로 쳐진 배는 왕자 근육이 넘실대는 멋진 복근으로 교체되었고, 두팔과 내장등은 앞으로 100년은 거뜬히 쓸 수 있는 단단하고 멋진 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이오닉화 되었다.
이야기를 주디에게서 여기까지 듣다가 나와 박사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머리와 목부분이외에 모조리 기계덩어리라면 김득호가 죽을 정도로 흘린 손목의 피는 도대체 무엇이단 말인가? 주디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김득호가 생전에 시술했던 성형수술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는데 얼마나 총알처럼 떠들어 대는지 귀에는 사실 아무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와 박사가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거실로 걸어나왔다. 나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사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는 호신용검에 왼손을 가져갔다.
“누구시죠?”
“전 김득호씨의 아내되는 사람입니다만. 당신이야 말로 누구시죠? ”
“아내? 목소리가 완전히 남자인데..당신 도대체 누구야?”
박사는 아예 호신용광선검을 꺼내고 나를 보고 수갑을 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소매에서 수갑을 꺼내 앞에 서있는 건장한 남자를 향해 당장 달려들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자 주디가 우리와 남자사이에 급하게 끼어들더니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그만하세요. 우리 엄마예요.”
“뭐?”
“여성호르몬을 차단해서 하는 미용수술이 약간 잘못되서 모습은 남자지만 우리 엄마예요.”
주디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되었고 그녀의 뒤에 선 남자의 얼굴도 점점 굳어져 갔다.
이런 유전자와 호르몬을 장난질해서 발생되는 촌극이 지금 미국한복판의 코리아타운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나는 신이 있다면 부르짖고 싶어졌다. 이게 도대체 뭐냐고.
3시간 15분전
나는 광선검과 수갑을 다시 옷에 부착시키면서 주디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남자를 다시 천천히 바라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눈에 구분은 할 수 없어도 자세히 보니 여성이라는 느낌은 전해졌다. 7대3의 비율의 가르마로 곱게 빗질을 한 헤어스타일에 검은색의 묵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머리카락은 아마도 염색을 한 것 같아보였다. 눈주위와 이마위에 펼쳐진 나이테는 엄청나게 발달된 의학기술도 어떻게 지울 수 없는 모양같았다. 남성호르몬의 발달로 코밑에는 수염이 나있어 여자가 콧수염을 달고 장난치는 모습같았으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여성의 기품이 느껴졌다.
‘홍인경. 65세. 산타모니카컬리지 환경미화과 교수’
LAPD 형사과 중앙 신원조회실의 서버와 연결된 내 옷의 컴퓨터로 김득호의 아내, 아니 배우자인 홍인경의 신원이 금새 확인되었다. 요즘 최고의 인기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환경미화부원을 양성하는 환경미화과의 교수라는게 조금 놀라웠다.
박사의 대답이 체 끝나기도 전에 홍인경의 손이 딸 주디의 어깨위에 올라가자 단발마의 비명이 방안 전체에 날카롭게 퍼졌다. 원래 여자였다라고 해도 이제 홍인경의 손은 메카닉이라 힘이 이만저만 세지 않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홍인경의 손이 약간만 스쳤는데도 주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꼬꾸러졌다.
“얘가 왜 이렇게 엄살은 부려? 형사님들이 뭐라고 나한테 그러시겠니. 버릇없게 시리.”
“아닙니다. 따님이 물었지만 저희들이 괜찮다고 했었습니다.”
홍인경은 쓰러진 주디를 일으켜 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디는 어금니를 물고 소리없이 울먹이며 일어나 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 나는 한 소리를 할려고 하는데 박사가 한 손으로 나를 저지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식교육을 제가 너무 소흘히 했군요. 정말 커피라도 드시지 않겠어요?”
홍인경은 나가버린 주디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과장된 얼굴로 박사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몇가지 질문 드릴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이번일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홍인경은 마치 가면을 바꿔치기하듯 슬픈 표정으로 금새 바꾸었다.
“말도 못하죠. 그이가 얼마나 가족과 보호소 사람들을 위해 밤낮으로 얼마나 고생했는데..흑”
홍인경은 방금 자신의 딸을 넘어뜨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나는 홍인경의 모든 행동들이 다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여기 와서 아무런 힘이 없는 정신장애인들과 보호소직원들과는 달리 김득호의 죽음에 눈물을 보이는 사람(거의 메카닉이지만)은 김득호의 배우자 홍인경이 유일했다. 나는 온라인 아바타 부인, 냉장고 속의 수많은 비타민제, CCTV속의 알수없는 행동들을 홍인경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희킴은 김득호가 가족들과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진술도 했는데 홍인경은 지금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홍인경을 잠시 바라보던 박사가 위로의 말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경찰이 최선을 다해서 김득호씨를 살해한 범인을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살해한 범인이라뇨?”
나와 박사는 동시에 놀란눈으로 홍인경을 바라보았다.
“살해라뇨? 전 그이가 자살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말을 어디서 들으셨죠?”
“전도사가 우리 가족이 돌잔치에 있을때 전화왔어요.”
“전도사라니 기독교의 전도사 말인가요?”
나는 미정부가 ‘성경종량제’를 실시해도 역시 한인들은 기독교인수가 많아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남편이 워낙 기독교에 광신적이라. 매일 아침에 전도사를 모셔놓고 보호소에서 예배를 드렸죠?”
“그럼 그 전도사가 김득호씨가 사망했다고 전해주면서 자살했다고 덧부쳤단 말입니까? 어떻게 자살인지 확신했을까요? “
“………………..”
홍인경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무표정으로 변했다. 나는 정말 홍인경이 영화배우를 하면 아마 최고의 배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전도사는 저희 보호소의 모든 행정과 종교행사를 관할 하시는 분이시고 남편 생전에 전도사가 하는 말은 무조건 100% 신뢰를 하기 때문에 자살이라고 그러니까 그냥 아무런 의심없이 그런줄 알았죠.”
“혹시 김득호씨가 자살할 만한 이유가 있었나요?”
“자살할 이유?”
“네. 자살할 이유. 전도사라는 분이 자살이라고 했을때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요?”
“그..건…그냥 요즘 그가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었고 많은 양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어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네. 냉장고에 가득 넣어놓고 복용하던걸로 저는 알고 있어요. 요즘은 꽤 그리고 자주 먹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왜 말리지 않았나요? “
“제가 환경미화과 교수예요. 낮에는 교단에 서고 밤에는 수많은 기업들에게 초대되어 강연을 하죠. 강연스케쥴은 내후년까지 차있어 보호원 일까지 신경쓸 수가 없었어요. 난 남편이 여태까지 어련히 잘해왔기 때문에 약 먹는 것은 알았지만 말릴 수는 없었어요.”
방금 울먹이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홍인경은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물론 나와 박사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결론은 확실히 내리지 않았지만 홍인경은 김득호가 자살했다고 확실히 믿는 것 같았다.
2시간 40분전
“최첨단 성형수술작품 2점을 정신 없이 구경한 것 같군.”
나는 김득호의 팬트하우스에서 보호원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투덜거리듯 말했다.
“홍인경의 신상기록을 경찰서에 연락해서 자세한 사항을 다시 다운시켜봐.”
박사의 말에 나는 소매에 달린 컴퓨터를 통해 홍인경의 기록을 다시 자세히 다운시키도록 명령내렸다.
“홍인경. 환경미화과 교수 65세..”
“그거 말고 의학진료기록을 조사해봐.”
커서를 움직여 홍인경의 평생진료기록을 펼쳐보자 대부분 성형수술기록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몸의 95%이상이메카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박사가 그 기록을 볼수 있도록 소매에 달린 모니터를 내밀었다.
“역시..추리대로 홍인경은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예전에 상실했었군. 그래서 아까 자신 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알 수 없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김득호의 딸 주디가 홍인경의 손끝에 고통스러워 지른 비명이 아직도 내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장님도 홍인경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나요?”
박사는 웬 뚱딴지 같은 질문이냐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냥 궁금해서요.”
“잘 모르지만 아마 눈에 눈물샘이 있으면 눈물이 나올걸 장님이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을 기계로 교체시킨 홍인경이 눈물샘은 그대로 놔둔 것이 눈물을 흘릴때 만큼은 자신의 눈물로 흘리고 싶은 마음에서 였을까 괜히 궁금해졌다.
“김득호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는 그 기독교전도사는 도대체 누구야. 보호소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인적사항도 다운로드 받아봐.”
“예 알겠습니다.”
나는 소매를 들어 박사가 요구하는 정보만 입력시키려다 나는 어차피 사건해결을 위해 필요할 것 같아서 건물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보도 요청하였다.
홍인경(김득호의 배우자)
주디 김(김득호의 딸)
민 김(김득호의 아들)
7명의 환자 도우미(희 킴 외)
15명의 정신장애환자(지니리 외)
의 정보가 순식간에 다운로드되자 마지막으로 나는 전도사의 신상정보도 요청했다.
“어? 반장님 경찰서중앙컴퓨터에서 전도사의 신상정보제공을 거부하는데요.”
“거부하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전도사가 교회소속(성경종량제로 각 시에 하나씩만 개신교 교회가 있다)이기때문에 LA카운티 교회중앙컴퓨터로 다운로드 요청을 하라는 프로로콜이 뜨거든요”
“젠장 이름이라도 알 수 없나?”
“지금 알아 보고 있죠..LA카운티 교회소속으로 행콕팍보호소에 파견된 전도사라….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나는 열심히 옷소매에 달린 키보드를 두들겼다.
“엉? 파견된 전도사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아바타전도사인데요.”
박사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엘리베이터문이 열렸다.
“아바타전도사라…”
“김득호의 아내 홍인경은 당뇨로 시력을 상실해서 그냥 목소리만 듣고 전도사를 실제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죠.”
현재 코리아타운에는 온갖 성형중독환자들과 인터넷중독환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범죄도 성형비 마련 아니면 마약처럼 초현실속으로 몰아넣는 인터넷이용료마련비를 위해 발생되는 일이 허다했다. 김득호의 죽음도 이 두가지 이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추리가 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망막잔상술을 해부기술팀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수사가 답답하게 진행되는것이 내심 탐탁지 않게 생각되었다. 인간이 발전시켜온 기술로서 충분히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뭣하러 일일이 사람을 만나 수사를 하는지 도무지 박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망막잔상술?”
“아니 박사님은 지금 시대가 무슨 시대이신줄 아세요? 기계로 인간을 탄생시키는 시대예요.망막잔상술은 최근 해부학에서 각광받는 의학술이죠. 원래는 시력을 복원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인데 요즘 최첨단 의학테크놀로지는 이제 죽은 사람의 눈에서도 죽기 바로전에 무엇을 보았는지 시신경의 뉴우런에서 잔상들을 복원해내게 되었죠. 아시죠? 사람이 죽기전 특히 살해당하기 전에는 자신의 망막과 뇌에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는 사실을요. 아마 살해된 김득호도 죽기전에 망막과 뇌에 누군가를 남겼을 겁니다.”
“이것봐 내가 그따위 망막잔상술을 모를 줄 알아서 그러는 줄알아?”
나는 박사를 바라보았다.
“김득호가 자살할 생각이였던지 어떤 범인이 김득호를 죽이려 했던지 요즘 수사에 망막잔상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이라도 아는 사실이라 분명히 수사관들이 망막잔상술을 수사에 이용한다는 전제하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나는 아무대꾸 없이 박사를 계속 바라보았다.
“망막잔상술이 뇌와 망막에 외상이 없는 이상 현재까지 79%까지 복원이 가능한데 그놈의 복구불가능의 21%때문에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박사는 약간 흥분했는지 톤이 올라갔다.
“아니라고! 현재 최근 몇년간 망막잔생술을 통해 사람이 죽기전에 보게되는 것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세상이 아닌 경우가 75%를 육박하고 있어. 그말은 곧 사람이 살해 당하던, 병으로 죽던, 많은 사람들이 현재와 다른 사후세계를 보기 때문이지”
박사는 숨을 꿀꺽 삼켰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난 말이야. 과학이 첨단으로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과학의 한계. 즉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현상들이 더욱더 많이 드러나게 되어 점점 과학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너가 말하는 그 과학의 힘만으로는 수사를 못하겠다는 거지“
나는 그제서야 박사가 수사를 멍청할 정도로 고전적 방법으로 진행시키는 이유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어서 김득호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것부터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군요.”
“우리가 왜 니가 말하는 과학의 도움이 없이 보호원내의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는지 이제서야 깨달았나? ”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박사님!!”
옷소매에 달린 셀률러 폰에서 같이 왔던 수사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희 킴이 살해되었습니다.”
“뭐?”
나와 반장은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시간전
보호소에서 일하고 있던 시각장애인 희킴은 나와 박사가 동료수사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벌써 두명씩이나 죽다니”
나는 장기매매전과가 있는 희킴이 죽었다는 사실이 내심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희킴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수없는 이상한 마음에 김득호를 살해한 첫번째 용의자로 희킴을 주목했기 때문이였다. 나는 그녀가 뭔가를 숨기는 듯한 모습이 많이 걸렸다. 아무리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지만 희킴정도의 미모면 충분히 더 낳은 삶을 살수 있었을텐데 조그마한 보호소에서 환자도우미로 일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희킴이 왜 합법적인 안구기증을 받지 못하게 된건지 혹시 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 다시 소매위의 자판기를 두들겼다.
‘혹시 희킴이 정신장애환자들의 안구를 불법체취하기 위해 일부러 여기서 일하게 된것은 아닐까?’
잔인한 상상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였다.
“자식들이! 너희들은 도대체 뭘했길래 수사관들이 버글버글 대는 곳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냐고?”
박사는 화가난 목소리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수사관들에게 호통을 쳤다.
“어휴 정신병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구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보호소 곳곳에는 얼핏들으면 장례식 장의 곡하는 소리가 울려펴지고 있었다.
“아..정말 시끄럽군.”
박사는 괴로운 얼굴을 하면서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나에게는 그 환자들의 소리들이 단순히 의미없는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아픔..고독함...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비밀의 방에 갇혀버린 정신지체 부자유인들의 절규는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몸은 비록 그렇지만 동식물이 아닌이상 인간에게는 혼과 영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커뮤니케이션방법은 바로 저 소리라고 생각하니 무엇을 말하기를 원할까라는 호기심도 일었다. 나와 박사는 일단 주위의 소음으로부터 정확한 대화를 하기 위해 귀에 상호통화리시버를 꽂았다. 주파수를 맞추고 난뒤 박사는 바닥에 쓰러진 희킴을 자세히 보기위해 무릎은 꿇고 앉아 쓰고 있는 안경을 CT 촬영모드로 바꾼뒤 그녀의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죽은사유는 전기 쇼크 같은데. 이 여자도 몸의 65%가 메카닉으로 구성되어 있네. 몸에 교체된 기계재질들이 싸구려라 전기전도율이 다른제품들보다 센 편이여서 더욱더 쇼크가 크게 다가왔을 거야.”
소매에 달린 컴퓨터 모니터에서 희킴이 살아 있었던 동안 남긴 모든 자료들이 다운로드되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희킴의 출생지가 사이버공간인 포털 HUGI로 되어 있었다. 국적의 경계가 없는 사이버공간의 출생신고가 현저히 높아가고 있는 이유는 아이를 다국적인으로 손쉽게 만들수 있다는 잇점때문에 한국의 중산층부모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던 출생신고 방법이였다. 교육열이야 한국부모를 앞으로 지구가 망할때까지 그 어느나라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지만, 범죄자들에게는 국적을 숨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어 수사기관들이 범인체포의 사법관할권여부를 놓고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폐단弊端을 만든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희킴은 1997년생으로 아버지가 환경미화와 관계된 일을 하는 미국 보통중산층의 외동딸로 태어 났다. 고등학교까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별다른 기록은 보이질 않았지만 대학교로 들어가면서 그녀의 성형중독과 인체의 혈당관리를 하는 췌장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불법다이어트의 기록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희킴은 살을 빼기 위해 몸의 당분을 중화시켜버리는 소위 인슐린 뉴츄럴러를 사용했는데 그만 췌장이 망가져서 당뇨합병증으로 30살에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꽤 큰 성형미인 선발대회 진으로 입상한 경력까지 있던 아가씨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다가오고야 만것이다. 과다한 성형으로 사채업자의 돈까지 빌려쓴 아가씨에게는 기계안구가 아닌 천연안구를 살 수 있는 돈은 더더구나 있을리가 만무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연예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여자의 손에 들린 팜 컴퓨터에서 나온 전기가 충격을 준것같군”
박사는 주머니에서 꺼낸 볼펜끝으로 엎어진 희킴의 왼손에 들린 검게 탄 팜 컴퓨터를 건드려 보았다.
1시간15분전
“안돼 안돼!!”
갑자기 한 남자가 수사관들이 서있는 틈사이를 뚫고 큰소리로 울면서 들어왔다.
“누구야?”
“빨리 막아”
육중한 메카닉장갑을 낀 수사관들이 달려들어온 남자의 어깨와 손을 잡자 남자는 순식간에 제압을 당했다. 남자는 수사관들에게 거미줄에 걸린 가려린 벌레처럼 파르르 떨면서 꼼짝도 하질 못했지만 계속 큰소리로 희킴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킴! 킴!.”
희킴의 시체를 조사하려다만 박사는 수사관에 잡힌 남자를 향해 걸어가서 남자 앞에 섰다. 남자의 얼굴은 사실 목소리만 남자였지 외모는 웬만한 여자를 빰칠정도로 아름다웠다. 눈물을 흘리면서 헝클어진 모습이였지만 오똑한 코와 유난히 큰 눈의 준수한 용모를 덮을정도는 아니였다.
“당신 뭐야?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야?”
남자는 울음을 멈추었다. 큰 눈동자는 흰자위 미백술(흰자위를 하얗게 하는 시술. 원리는 인위적으로 혈관이 발달된 결막(흰자위 겉층)을 제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혈관이 거의 없는 공막(흰자위 속층)을 노출시켜 하얗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받은 듯 검은 눈동자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났다.
“킴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죠?”
“얼굴을 보니 어린 학생인데 누구지?”
박사가 남자에게 묻는 순간, 바이오 긴급응급구조대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뭐? 뭐야? 시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아직 수사가 덜 끝났다구!”
“자동호출장치에서 신호가 와서 저희가 출동했습니다.”
유니폼에 달린 작은 LCD스크린에 ‘긴급응급구조대 B-9조 책임자’라는 글자가 지나가는 사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사망하신분의 몸에 심장박동이 멈추면 자동으로 우리가 출동하게끔 되어있다는 거죠.”
응급구조대원들은 반장과 책임자라는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신속하게 희킴의 시신을 진공장치가 달린 관속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말리고 싶었지만 박사의 표정이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 같아 그냥 서서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희킴의 시신이 들어간 진공장치의 옆부분에 퓨식~ 공기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시체가 몇부분으로 나누어 지기 시작했다.
“뭐야?”
“헉! 킴!!! 안돼”
희킴의 시신이 도막나자 울음을 그쳤던 남자는 더 크게 울면서 진공장치에 매달렸다.
“이 여자분의 몸 몇 부위가 채권자의 요구로 반환되도록 법정지시가 되어 있습니다.”
나와 박사는 김희연의 시신의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고 동시에 놀라 멍하니 바라보는데 책임자라는 사내는 자신의 손바닥위에 놓인 노트북에 뭔가를 쓰면서 뭐 별일 아니다라는 시근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운 사채업자들이로군.”
“희킴이 사채꾼들 돈으로 성형수술을 했는 모양이죠. 뭐 자기들도 채무자한테 남은 돈 될만한 것들은 회수를 해야 겠죠”
현재 미국의 모든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들에게 있었다. 뭔가의 중독에 매달린 사람들이 자신의 장기나 고가의 메카닉몸체를 담보로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였다. 최근 사채업자들은 사이버상에서도 코흘리개 아이들 게임하는 데 들어가는 사이버 머니도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면서 큰 사회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일단 사채업자들에게 걸려든 아기고 노인이고 영혼까지 저당답혔다. 은행 금융기관들이 사라진 뒤 감히 경찰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 오늘날 미국의 사채업자들이였다. 나와 박사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응급구조대원들이 사채업자가 요구하는 시체의 몸부위를 회수 하는 동안 바라만 볼 뿐이였다.
“흑흑흑”
수사관에게 잡힌 남자는 이제 고개를 떨구고 흐느꼈다. 나와 박사는 그제서야 응급구조대의 작업광경에서 눈을 떼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넌 누구지?”
“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단호한 남자의 목소리에 박사는 움찔하는 것 같았다.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애 차별금지가 법으로 강력하게 입법화되고 난 뒤부터 미국인들은 동성애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대상이 동성을 떠나 더 넓고 어처구니 없는 대상에 까지 흘러갔다. 애완동물, 뒷뜰의 나무 그리고 급기야는 죽은 시체까지 대상의 폭을 넓혀갔다. .
“이름이 뭐야?”
“민입니다. 민 킴”
“민? 넌 그럼…죽은 김득호의 아들?”
“네..”
박사는 민 킴을 잡고 있는 수사관들에게 놓아주라는 말을 하고 민 킴을 일단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기 좋은 한적한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심이 크겠네.”
박사는 위로를 시작하면서 민킴을 안심시키며 대화를 시작하려 했는데 민킴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였다.
“그 미친사람이 죽건 말건 내가 알바 아니고요. 내….내 사랑 킴을 누가 저렇게 했는지 어서 밝혀주세요.”
민킴이 ‘미친사람’이라는 말을 할때 박사 옆에 서 있는 내가 봐도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버진데 말이 조금 심한 것 아닌가?”
“하하하.”
박사의 말에 민 킴은 짧게 웃더니 나와 박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형사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뭐 편안한데로.”
“형사님은 사람죽인 살인자들을 잡는 일을 하시죠?”
“..수사관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맞지. 클래식한 의미로 말이야.”
민킴의 눈에 다시한번 불꽃이 튀었다.
“진짜 살인자는 아버지 김득호입니다. 그러니 형사님들은 그 살인자만 수사하세요. 자꾸 김득호가 살해당했다고 다른 사람들을 수사하니까 내 사랑하는 킴이 죽은 거잖아요. 김득호야 말로 살인자입니다. 김득호는 살아있을때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간접적이긴 하지만. “
“간접적? 그게 무슨 말이지?”
민킴을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바꿨다.
“김득호가 컴퓨터 온라인에서 아비타부인이 한 둘이 아닌것은 잘 아시죠?”
“그건 개인패스워드를 모르면 알 수 없는 사실인데. 아들인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민킴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순식간에 당황한 빛이 스쳐갔다. 수사에 노련한 박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뭐 그건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를 워낙 잘하니까. 패스워드 정도야 손쉽게 알아낼수 있을테고..그나저나 학생은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시간에 친척 돌잔치에 갔었지?.”
민킴은 박사의 물음에 아무 대답없이 고개만 떨군체로 서 있었다.
“왜 대답을 못해?”
“전 돌잔치에 가질 않았어요?”
“뭐 돌잔치에 가질 않았다고 그럼 그 시간에 뭘 했어?”
“당연히 킴과 같이 있었죠.”
“누나하고 어머니닌 너와 함께 돌잔치에 갔다고 그러던데 그럼 그때 돌잔치에 간건 누구지?”
“저도 몸의 70%가 성형부품입니다. 나하고 똑같은 기계 하나 더 만드는 건 요즘세상에 어려운일도 아니죠.”
“뭐 그럼? 돌잔치에 로보트를 대신 보냈다는 말인가?”
“누나는 완전 성형중독자라 자기만 바라보지 남에는 신경도 안쓰고 엄마도 당뇨합병증으로 눈이 어두우니 속이는 일은 식은죽먹기죠.”
나는 민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매로 민킴에 대한 자세한 신상 정보를 다운로드받았다. 민킴은 LA온라인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LA사이버수사대에 처음입건이 7살때였는데 불법온라인 게임인 ‘악플킬러( 무작위로 한 개인을 지목해서 악성댓글을 달아 실제로 사람을 먼저 죽이게 만드는 사람이 챔피온이 되는 잔인한 온라인 게임)’에 로그인한 죄목으로 불구속보호감찰형을 3년정도 받았었다. 그리고 보호감찰뒤에는 컴퓨터게임 중독에서 벗어 났는지 온라인학교를 아무 특별한 사고없이 다니는 평범한 학생으로 나타났다.
“왜 속였지?”
“….그랬잖아요. 킴을 사랑한다고..”
사랑…..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학생! 학생이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우리보고 믿으라는 건가?”
이제는 노래에도 나오지 않는 ‘사랑’이란 말을 도대체 김수민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사실 사랑은 이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생뚱스런 단어다. 50~60년전에 출판물이나 고전소설을 보면 그때 당시는 ‘사랑’을 무슨 지상 명령처럼 외쳤던 시대였다. 사는 이유도 사랑.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랑. 죽는 이유도 사랑. 성공하는 것도 사랑. 돈을 버는 것도 사랑. 온통사랑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치 큰 가위가 엿을 싹뚝 자르듯이 사랑은 순식간에 우리주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도 내가 어렸을 때 쯤에는 사랑이 분명 주위에 있었던 것이 희미하게 기억은 나는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주위에 ‘사랑’은 분명 없다. 증발해렸다. 기화화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에..
58분전
민은 킴을 2년전 처음 보호소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놀랍도록 뛰어난 미모에 민은 호감을 가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전형적인 컴퓨터 게임 중독자인 민은 태어나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에 민도 ‘그 이상야릇한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사랑’인줄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루는 아버지 김득호가 교회에서 파견된 전도사와 나누는 대화중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제서야 자신이 겪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뒤, 민은 킴과 교제를 시도하려 현실세계보다는 사이버공간으로 그녀를 끌어 들이려 노력했다. 실제로 동성이 아닌 이성과 그것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와 오프라인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사귔어?”
박사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민에게 묻자 민은 이제 마음이 조금 진정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박사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뭐? 아니 아까 사랑한다고 난리친 건 뭐야 그럼? 연인이 죽어서 그렇게 고함친거 아냐?”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 인터넷으로는 그녀를 불러들일수는 없었어요. 저의 사랑을 고백하려면 반드시 인터넷에서 만나야하는데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 사이버세계에는 들어 갈 수가 없었죠. 인터넷선을 신경수술로 만들어 그녀의 뇌에 이식시키면 되지만 그녀는 그런 수술을 받고 싶어 하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우리 누나처럼 성형수술에만 관심이 있어보였고 시력을 되찾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것같아 보였어요.”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어?”
“킴의 전화를 도청하면서 안 사실이예요.”
“너 그거 불법인줄 알지? 남의 전화에 도청 들어가면.”
“형사님. 저는 지금 아저씨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거라고요. 전화 도청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는 지금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 녀석 봐 당돌한데…”
“요즘 내 또래 아이들 중에 전화 도청하지 못하는 애가 어디있어요?..에이.. 갈래요.”
“어라? 너 이야기 하다말고 어디 가겠다는 거야?”
박사는 갈려는 민킴을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난 민킴의 행동이 요즘 인터넷중독아이들의 전형적인 돌발성격이라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요. 아저씨들하고 이야기해봤자. 킴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 수사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내방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은 ‘굳이’ 천국을 가지 않더라도 천국같은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생활 깊숙이 더 깊게 살펴보면 사실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도래한 것 같았다. 골치 아픈 문제들이 미국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와 요즘 미국에 있는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을 떠나 자신의 모국으로 역이민을 떠나는 것이였다. 이런 말 안통하는 지옥에서 사느니 모국으로 가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49분전
미국에서 가족의 의미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들 이혼할거 뭐하러 결혼하냐는 식이다. 자녀를 낳는 일도 요즘 부모들은 게놈지도를 펼치고 우성의 유전인자들만을 모아 자식을 인공조립해서 자식들을 낳는다. 우성 유전자의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아이들의 두뇌가 뛰어나고 능력을 탁월해도 민킴처럼 인간미라곤 전혀 없었다. 자기 밖에 몰라 애당초 부모와 자식간의 ‘효도’라는 말은 기대하기가 힘고 특히 미국내 한인 이민가족들은 주류미국인들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그런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더 나빴다. 예전에는 부부끼리 스와핑하는 일이 문제시 된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모 몰래 자기들끼리 부모를 스와핑해서 남의 집의 자식놀이하는 하는 이상한 놈들도 생겨났다.
박사는 민킴이 자기 아버지 김득호에 대한 분노가 단순히 요즘세태의 반영인것같아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미워하는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박사는 이야기를 하려다 나갈려는 민킴을 구슬렸다.
“내가 미안하다.”
박사의 말에 민킴은 순식간에 다소곳한 태도롤 변했다.
“미안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미운 이유가 뭔지 이야기 해줄수 없겠니?”
박사의 말에 민킴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였다. 박사의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말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니죠.”
“뭐?”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아니라고요.”
“아버지가 아니면?”
“심한 성형수술과 호르몬 조작으로 아버지는 어머니가 되셨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되셨단 말이예요.”
아버지의 성性과 어머니의 성性이 뒤바뀌고 세상의 성도덕이 문란해진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였다. 유전자조작으로 우수한 형질의 인간들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세상이 더 나아지는 커녕 극도의 이기주의와 가정파괴가 세상에 심해져갔다. 결혼의 의미를 성차별없이 사랑하는 그 누구와도 결혼할수 있다는 합헌임을 결정하면서 서서히 가정은 붕괴되어 갔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국가경쟁력이 엄청나게 약화된 사실에 경악한 미국정부는 부랴부랴 ‘결혼 의무법’을 입법화하여 남자28세 여자25세가 되면 전국 네트워크의 데이타를 통해 알맞는 결혼 상대자를 컴퓨터로 추렴해 리스트로 만들어 미혼 남녀의 집으로 발송하였다. 미혼남녀는 리스트를 받는 즉시 ‘신체검사’를 받고 상대방을 골라( 일부일처제에 의해 한명하고만) 정해진 기간안에 결혼식을 올려야만했다. 신체검사를 통해 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추출당한 상태라 자식도 유전자 기술로 우성형질을 골라 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렇게 정부에서 관여하는 결혼생활과 그 결혼으로 만들어진 가정은 겉모습은 결혼한 가정 같았지만 사실은 또 다른 신종범죄와 문제를 낳는 온상지로 변질되어 갔다. 먼저 이혼율을 정부에서 조절을 하는 바람에 이혼이 무척 힘들어졌다. 이혼이 힘들어지니 각종 가정폭력과 사랑없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은밀한 관계를 즐기는 일이 가정내에서 비일비재했다.
30분전
민킴은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김득호와 홍인경의 유전자 조립을 통해 최고의 우성형질 아기로 태어났다. 김득호 부부는 자식에 대한 관심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한가족이지만 서로 각각의 고유한 공간을 가지고 절대로 간섭하지 않았다. 민킴은 그러나 태어날때부터 다른 유전자 조립 아이와는 달리 ‘감성지수’가 다른 아이와는 4배나 높은치수를 나타내는 특이한 아이였다. 민 킴은 자라면서 점점 더 외로움을 탔고 타인보다 더 타인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증오심을 더더욱 키워갔다. 가정에서 완벽한 딸자식으로의 의무는 다하는 누나와는 달리 자신은 청소년기가 되자 완전히 문제아가 되었다. 컴퓨터로 손가락만 대면 등교할수 있는 온라인학교도 하는둥 마는둥하고 각종 불법 성형 제품거래와 마약성분의 향정신성 컴퓨터게임을 주로 하는 코리아타운 최고의 딜러가 되었다.
“그럼 죽은 사람은 아버지 김득호야? 어머니 홍인경이야? 이런 젠장 나도 헷갈리는데.. 망할놈의 성형수술…..외모때문에 생식기도 떼내는 짓까지 하다니 세상 망했군…”
박사는 민 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혀를 찼다.
“아버지의 몸은 오래전에 여성이 되셨죠.”
민킴은 말끝을 흐렸다.
LAPD 검시과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한 김득호의 부검결과 성별은 분명 남자 였다. 그러면 사망한 사람은 실제로 홍인경이 되는 셈이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박사는 수사관에게 보호소 사택 안에 있는 우리가 홍인경이라고 만난 김득호를 즉시 체포해오라고 지시했다.
박사가 그러는 동안, 나는 다시 희킴의 생전 인터넷 자료를 분석하다가 혼란에 빠졌다. 방금 김득호와 홍인경의 아들인 민킴은 아버지 김득호가 운영하는 행콕팍 보호소의 직원으로 일하는 희킴과 사랑에 빠졌다고 진술했지만 희킴이 생전에 남겨놓은 모든 인터넷자료에는 민킴에 대한 어떠한 연정의 기록은 커녕 민 킴의 이름조차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민킴은 공중 부양 의자에 앉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하는 행동이 덩치만 컸지 완전히 어린애였다. 저런 어린애의 모습을 한 인간들이 이 순간에도 악마에게 혼을 맡긴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고 하니 등골이 오싹졌다.
25분전
방금 전기쇼크를 먹고 죽은 희킴은 누가 죽였을까?
성형수술비와 안구수술을 위해 돈을 빌리게 된 사채업자일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홍인경이 수사관의 손에 이끌려 나타났다.
“아니 왜 절 다시 보자고 그러셨죠?”
홍인경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사건을 해결하려고 불렀습니다.”
보호소 복도에 서 있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럼 누가 범인인지 알아냈다는 겁니까?”
박사의 갑작스런 자신감에 놀란 나는 박사를 바라보았다. 박사는 아무말없이 의자에 앉아 훌쩍이고 있는 민킴을 바라보았다.
김득호를 죽인 범인이 아들 민킴인가 나도 민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여기 행콕팍 보호소안에서 사이버 범죄 전과기록이 있는 김득호의 아들 민킴만이 아버지한테 앙심을 품고 지니리를 이용해 자살처럼 보이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
20분전
박사는 천천히 복도안을 둘러보았다. 훌쩍거리던 민킴과 수사관들에게 끌려온 홍인경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박사를 바라보았다. 박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영혼을 잃은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인간들은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면 두발달린 짐승으로 보다 더한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헹콕팍 보호소 살인사건’이라는 온라인 게임이 최근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고 해서 이 게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게임은 어느 역대 3D온라인 게임보다 월등한 게임이군요. 리얼리스틱한 가상공간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등등…”
뭐야 이게 다 게임이라고…
“이 게임은 게임 제한 시간인 12시간안에 범인을 밝혀야 하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다 게임이라면 나는 뭐야?
“먼저 내가 홍인경씨를 보자고 한 이유는 당신의 진짜 정체를 모든사람들앞에 밝히고 싶어서죠. 홍인경씨 이리와봐요.”
“정말 계속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한 말을 하는데…증거가 도대체 뭐죠?”
홍인경은 복도가 떠나가도록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쳤다. 박사는 홍인경의 고함소리에 잠시 씨익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켓 오른쪽 큰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홍인경 얼굴 바로 앞에 펼쳐보였다.
“증거는 바로 이거..”
눈이 보이지 않는 홍인경에게 박사의 손에 들려진 약통이 보여질리가 없었다. 그 약통은 죽은 김득호의 방에 있던 미니냉장고에서 나온 비타민을 담은 통이였다.
“당신은 남편 김득호가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어 많은 양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사무실에 보관하면서 복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직접 현장에서 샅샅이 조사해서 가져왔는데 이것봐…수면제, 신경안정제는 커녕 성형부작용을 막기 위한 여러 영양제나 비타민제 밖에 없었다구.. 자 보라고…”
홍인경은 얼떨결에 약통을 받아 그 통이 비타민인지 확인하고는 얼굴이 붉혀지더니 박사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증거라고…남편이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는 어디 숨겨놓고 먹을 수 있잖아. 그리고 이게 비타민인지 수면제인지 성분을 분석도 안해보고 통 겉면에 나오는 ‘영양정보’로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판단하냐고?”
“홍인경씨”
박사의 무거운 목소리에 홍인경은 말을 더하려다 원격조종장치의 스톱모션스위치가 눌려진 정지된 화면처럼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지금 그게 수면제인지…비타민제인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뭐?”
“지금 당신이 그 통을 보고 뭔지 알 수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당신! 눈이 보이지.”
나는 박사의 말에 순간 컴퓨터를 다시 접속해서 홍인경의 평생의료기록을 확인했다. 의료기록은 마치 주민등록증처럼 아무도 건드릴수없는 자료인데 분명 홍인경은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상실한 기록이 나와 있었다.
“홍인경 당신이 눈이 보인다는 당신은 홍인경이 아니라는 증거야. 정신지체장애자는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음을 알고 지니리를 이용하여 홍인경을 살해 시킬 수 있는 사람”
“……..”
“김득호! 당신을 홍인경과 희킴의 살해혐의로 체포한다.”
박사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홍인경은 아니 김득호는 다리에 힘이 빠진듯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으아아아!!!”
홍인경이 사실은 성형수술을 한 김득호라는 사실을 박사가 말하자, 순간 아들 민킴이 분노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김득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복도에 서있던 형사들이 순식간에 민킴을 막으며 수갑을 채워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
10분전
이번 게임도 이겨서 즐거운듯 박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게임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추리를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요즘 남가주 코리아타운 한인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성형수술로 비롯된 한 가족의 비극을 다룬 사건이지요. 성형수술을 심하게 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이 전환되고 온갖 성형 부작용과 컴퓨터중독인 자식들이 주인공인 살인사건 게임 입니다. 가족의 아버지이자 정신지체아이들을 수용하는 헹콕팍 보호원장 김득호는 의자에 묶여 잔인하게 살해되는데 CCTV에는 김득호를 의자에 묶는 사람으로 환자 지니리가 찍혀 있었습니다. 이건 자기 몸도 못가누는 지니리가 어떻게 김득호를 묶을까라는 생각에 집중하게 만들어 게임유저의 추리력을 흐트리려는 일종의 함정이였죠. 많은 유저들은 ‘지니리를 누가 조종하여 김득호를 살해했다’고 추리하게 만들지만 저는 처음에 CCTV의 촬영시간을 토대로 김득호가 타살을 가장한 자살이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함정에 빠지려하지 않으려고 또 다른 함정에 빠진 꼴이 된 것입니다. 허지만 김득호의 아내 홍인경과 두 자식들을 만나면서 자살에서 타살로 마음이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떨떨해지기 시작했다. 뭐 이게 다 게임이라고…이 현실이 다…
박사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을 계속 이어갔다.
“김득호와 홍인경은 결혼국의 주선으로 부부가 되었지만 무늬만 부부로서 자식을 낳기 위해 서로 정자와 난자와 제공한 사이로 아무 감정이 없던 사이였죠.
그러다가 성형중독증 홍인경이 단골 성형 병원 직원으로 부터 우연찮케 남편 김득호의 유전자 게놈지도와 홍인경의 것이 기적적으로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게 되었죠. 나는 그걸 홍인경의 통화 기록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인경은 벌써 당뇨합병증으로 시력도 잃었고 몸도 성형을 한답시고 과다한 호르몬 조작으로 몸은 완전히 망가져서 평상시 꼼꼼하게 자신의 통화 기록을 남의 손에 닿지 않게 보관한다는건 무리였습니다. 그 정도 통화기록을 알아내는 건 나같은 추리게임의 전문가에게 식은 죽먹기보다 더 간단한 일이였습니다.
홍인경은 게놈지도가 완벽히 일치하는 김득호와 몸을 통채로 맞바꾸기는 엽기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홍인경은 남편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그게 그만 김득호가 홍인경을 의심하게 만들게 되어버리죠. 우연찮케 여러 경로를 통해 홍인경이 성형수술을 위해 자신을 죽일것이라는 계획도 눈치채게 되었고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홍인경으로부터 목숨을 구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김득호는 애당초 아바타부인이 4명이나 되는 구재불능 인터넷 중독자였죠. 홍인경도 그사실을 잘알고 있었는데 김득호는 역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홍인경을 유인해서 남편 몰래 컴퓨터를 살피게 해서(눈이 보이지 않는 홍인경은 오디오로 인터넷을 웹서핑할수 밖에 없는데 오디오만으로 시각장애인을 속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김득호가 보호소 직원인 희킴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홍인경은 그때 구체적으로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언제나 아바타부인과 보호소직원으로 김득호의 주위에 맴도는 희킴을 이용해 남편 김득호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죠.
원래 희킴은 자신의 안구를 살 목적으로 아바타부인노릇을 온라인에서 하다가 김득호의 눈에 띄였는데 우연찮게 희킴의 실제사진을 온라인에서 보게된 김득호가 현실세계에서도 가까이 두기 위해 보호소에 취직을 권유했고 희킴은 안구값을 더 많이 모을 생각으로 헹콕팍 보호소에서 일하게 되었죠. 그런데 희킴이 보호소에 일하게 된 첫날, 아들 민킴이 그만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김득호와 아들 민킴이 한 여자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거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쑥맥인 아들 민킴은 멀리서 김득호와 희킴의 애정표현을 그저 바라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아들은 아들은 분노와 질투로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어머니는 엽기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성형부품을 얻기위해 살해하려 하고.. 죽고 죽이려는 끔찍한 지옥의 한단면이 한 가족안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침묵이 흘렀다. 박사는 말을 이어갔다.
“김득호는 홍인경을 기절시켜 성형수술을 한뒤 자신의 사무실에 홍인경을 놔두고 안구를 미끼로 매수한 희킴를 지니리로 변장시켜 홍인경을 살해하려는데 그만 아들이 들어와 김득호의 모습을 한 홍인경을 죽이게 합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아들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교활한 김득호는 아들이 홍인경을 살해하는 장면이 담긴CCTV를 평상시 지니리와 엽기적인 놀이를 했던 모습으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CCTV화면을 교체한 자국을 일부러 남겨 수사관들이 자연적으로 아들을 의심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참 대단하죠. 순식간에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니,,,,”
박사는 잠시 말없는 나를 바라보았다.
“김득호는 그렇게 아들을 의심하게 만들어 궁지에 몬뒤 희킴도 전기자극으로 죽여 아들을 자극해 소란을 피우게 만듭니다. 모든 사실도 아는 희킴도 없애버리는 이중효과를 거둘려는 생각이였겠죠.”
박사는 고개를 떨구었다. 자기도 김득호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미안한듯..
“ 이 게임은 정말 잔인한 존속살인사건게임인데 뭐 게임이니까 극단적으로 묘사되었겠지만 이런일이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이고 가족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재미 한인들에게는 이런일이 비현실적인 것 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분전
나와 박사는 헹콕팍 보호소의 주차장에 서서 체포된 김득호와 민킴을 실은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된지 12시간이 다 되어 가자 주위의 모습들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하늘에서는 게임을 제작한 제작진의 이름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마친다는 클로징이였다. 외모를 중시하고 체면을 따지는 한국인들의 단면을 꼬집은 점이 분쟁의 소지가 있을 것이지만 이번 게임은 체면만을 따지는 한인성형중독자들의 죽고 죽이는 살인을 다룬 게임으로 외모지상주의의 말로를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게임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는 비록 12시간이였지만 소아마비성 정신장애인인 나에게 이번 게임에 파트너로 수사에 협동한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컴퓨터 게임때마다 박사와 같이 활동하는 폴형사가 이번에는 아내때문에 빠져 혼자 사건을 풀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다행히 내가 신기술인 전기충격요법으로 비록12시간이지만 정상인으로 수사에 협조를 할 수 있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된 모양이였다. 박사의 많은 추리가 나의 머리 아니 내 옷 소매의 컴퓨터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 다 필요한 존재들이다. 현실세계에서 무뇌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나처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장애인도 비록 컴퓨터 게임속이지만 정상인보다 휠씬 두뇌가 뛰어난 천재로 활동할수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게다가 외모만 번지르르한 악한 범인들을 잡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정신 지체 부자유 수사관이라니 정말 통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수많은 정신 지체 부자유자들이 이렇게 활동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내 눈앞에서 박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가상현실 수사 게임인 ‘헹콕팍 보호소 살인사건’은 닫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