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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남의 신혼일기

(단편 소설, 2009년 미주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대상)



2009년 1월1일
 

아침에 일어나는데 그만 허리를 삐끗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몇년전 군대에 있을때 선임에게 기합받는답시고 허리를 맞은 그 이후로 영 시원찮은 허리였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순간, 너무나 큰 고통이 밀려와 일어나지도 못하고 잠시 그대로 누워있었다. 몸을 꼼짝 할 수 없었다. 망년회로 밤 늦게 마셨던 숙취와 사무실의 새 프로젝트로 과로해서 늘어졌던 온몸의 신경들이 허리 통증 한방으로 ‘나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몸에 붙어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던 이 놈의 허리 척추뼈가 이렇게 중요한 몸의 한 부분이라니 새삼 놀라운 생각까지 들었다.


하기야 인간이라는 짐승도 척추동물로 구분되지 않는가?

허리뼈가 이처럼 중요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감탄하고 있는데 남자 갈빗뼈에서 나왔다는 여자라는 종류도 중요한 뼈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있을때는 모르다가 없으면 고통스러운 여자라는 존재…특히 아내라는 존재는 더더욱 그런 것 같았다.

있을때는 모르다가 사라지면 고통스러운 아내라는 존재……..

합의 이혼한지 한달이 지나면서 아내의 존재는 나에게 솔직히 고통으로만 남아있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궁극의 ‘고통’이라고나 할까. 관계를 청산하면 시원해지겠지라고 이혼서류에 도장은 찍었지만 추운날씨와 맞물려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혼했는지 의구심도일었다.


‘왜 이혼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술 마시다가 했더니 상구라는 놈은 ‘이혼해봐야 그 이혼한 이유를 알수있다’는 뭔 말하는 지 알수 없는 개똥철학을 술취한 목소리로 외친 기억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세상에 고통당할려고 발악하는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마음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으면 절대로 이혼하지 않았을텐데…


마음이 훵한것이 정말 노래가사처럼 ‘총맞은 것처럼’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총맞아서 구멍이 난것같은’표현도 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심장에 정확히 총을 맞아 총구멍이 나면 몸은 ‘얼른 세상을 뜨도록 ’ 프로그래밍되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죽는데 무슨 고통을 그렇게 음미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이혼의 고통은 ‘총맞은 것처럼’이 아니라 ‘총 맞은 것 보다더’로 바꾸어야 정확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오늘이 새해 첫날인데 이런 나를 낳아준 부모님들께 찾아 뵙고 문안인사라도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다시 움직여 보았다. 그렇지만 내 의도와는 정반대로 몸이 2개로 분리되어 따로 노는 듯한 기분 더러운 느낌이 요통과 함께 나를 다시 한번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으니 이대로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라는 고독감이 공복감과 함께 밀려왔다.


2008년 12월 31일


알람이 정신없이 울려 눈을 억지로 떴는데,  알람에 붙은 날짜를 보니 2008년 12월 31일이라 일기장에 그대로 2008년 12월 31이라고 적었다.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만히 그냥 그대로 누워있었다.


몸이 마치 천근만근 쇠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란 말은 그냥 문학적인 표현일뿐, 눈꺼풀이 아니라 온 몸 전체가 너무 무거웠다. 그러나 저러나 몸을 이렇게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니,,,누가 밤새 내 몸뚱아리를 100년은 더 된 소나무에 다가 이식수술을 해놓은 것 같았다.


몸을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려고 몇번을 시도하다가 일어나봐야 할 일도 없는데라는 생각에 눈을 다시 감았다.


일단 눈을 다시 감자 내 몸이 깃털처럼 자유로워졌다. 새처럼 날아 다니는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한 것 같은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런 어려움없이 내몸이 누워져 있는 어두운 방안을 떠나 밝은 햇볕이 연극무대의 스포트 라이트처럼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는 거실쪽으로 날아갔다.


화려한 조명과는 달리 너저분하게 거실 바닥에 흩트러진 옷가지와 냄새나는 ( 모든 것이 실제처럼 생생했다 )양말들은 엄청난 조명때문에 박물관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아니, 마치 세상의 인간들이 모조리 유체이탈하고 남긴 옷가지들처럼 보였다. 옷은 사람의 인격, 사회적 위치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도구TOOL’인데 그 도구들을 벗고 날아가버렸다는 것은 인간이상의 존재 즉 철학이 말하는 초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점점 눈을 감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상상이 즐거워졌다.


‘진작 이렇게 할 껄’


허지만, 나는 내 눈앞에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지면 동상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선 채 눈만 감아버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주 무기력하게 말이다.


국민 학교 시절 ‘육성회비’라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돈을 기한 안에 학교에 가져 오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기압 맞을 때도, 고등학교때는 학생과장이라는 사람에게 아무이유없이 맞을때도 , 대학입시 원서 넣은 곳마다 떨어지는 상황속에서도, 군대 선임상사의 무자비한 폭력이 몰아칠 때도…그리고…어렵게 아내의 뱃속에 들어앉은 우리 아기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에 죽어버렸을때도 나는 그냥 눈을 감고 마냥 무기력하게 그냥 서 있었다.


‘우리 아기…’


잠시 자유롭고 솜털같았던 내몸이 ‘우리아기’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하염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고함과 비명들 온 몸을 휘감더니 용수철처럼 눌러져 있던 슬픔과 절규가 이곳저곳에서 막 튀어올랐다. 그 숫자는 내가 살아온 인생속의 모든 슬픔과 절규의 숫자와 맞먹는 것 같았다.


‘당신이 그렇지뭐..’


내가 아이의 시체옆에서 아무말없이 눈을 감고 서있는데 아내는 그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언제나 그렇지뭐’


마치 열려라 참깨같은 마법의 주문처럼 아내가 그 말만 하면 나는 괴물로 변했다.

눈에는 악어의 눈물을 한껏 품고, 심줄들이 흉측하게 피부에 툭툭 나온 징그러운 괴물로 나는 변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괴물의 생김새같은 폭력과 폭행을 보여주었다. 그 괴물이 아내한테 퍼부은 폭행과 폭언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을때 후회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아내가 부른 그 괴물이 다 저지른 일이다’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와 무거운 죄의 굴레를 벗어던진 카톨릭 신자의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일 것이다.

허지만, 아내는 내속의 이 영험한 괴물의 존재를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이혼을 한 것이다. 아내가 그 괴물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나랑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한 것은 괴물인데 왜 나하고 이혼했겠는가?


2008년 12월30일


눈을 떴다.


이상하게 어제와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미친듯이 달려도 다람쥐 쳇바퀴속에 갇힌 것 같은 썩 좋지 않는 느낌. 어제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 듯한 시간의 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제 일기의 날짜를 보니 12월31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써 놓았는데 아무리 읽어도 2008년도의 마지막날인 12월31일날 내가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하루정도 틀릴수도 있고 12월31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으므로 오늘 날짜를 ‘2008년 12월30일’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일기장 페이지 제일 윗장에’2008년 12월30일’이라고 적어넣었다. 그리고, 어제 적힌 ‘12월31일’을 지우개로 고쳐 쓰기 위해 일기장이 놓여있던 책상의 서랍들을 말끔하게 뒤져 보았지만 지우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우개는 언제나 주위에서 뒹굴다가 정작 필요할때는 사라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였던 것이다. 지우개를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다가 문득 종이 한장을 발견했는데 이렇게 적혀있었다.


합의이혼을 하시기 위해서는 법원에 비치된 협의 이혼 의사 확인 신청서 1통, 호적등본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이혼신고서 3통을 작성하셔서 협의이혼 담당자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법원에 가실때에는 당사자가 가셔야지 대리인을 통해 신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당일 법원에 비치되어 있는 양식에 작성해도 되지만 ‘빠른 수속’(!)을 위해 미리 양식을 구해서 작성해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까지 읽자 마지막줄에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둥그런 얼굴, 둥그런 눈, 둥그런 입술,,,


그런, 둥글 둥글한 아내의 모습처럼 우리 결혼도 둥글둥글했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도대체 무엇이 잘 못되었단 말인가? 어릴때부터 평범한 가정과 평범한 환경속에서 나는 뭔가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왔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당구, 전자오락같은 하찮은 것들조차에도 전력투구 리스트에 올려 놓고 열심히 했었다.


열심히 무조건 열심히,,,


이것이 내 인생의 좌표였다. 그렇게만 하면 내손에 뭔가가 반드시 쥐어졌다.


그러나, 결혼은 뭔가가 달랐다


열심히 결혼생활을 하자는 어색한 표어를 걸어놓고 여태까지 열정적으로 살아온 내 인생의 방식대로 결혼생활도 잘하려고 나는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결혼은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났으면 포기라도 했을텐데,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멈춰서서 날 한껏 약올렸다.


갑자기 허리통증이 왔다. 약이 바짝 오르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주니 통증이 왔다. 통증이 허리부터 시작해서 왼쪽 다리의 뒤를 스쳐 지나가는데 묵직한 구렁이가 내 몸위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였다 . 도대체 언제부터 내 허리가 이랬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2008년 12월 29일


잠에서 깼다.


침대위엔 나혼자만 누워있었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까? 아내는 언제나 내가 찾을 때마다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약간 뻑뻑한 느낌이 허리에 들었다. 침대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는데 출렁거리는 침대의 탄력때문에 허리의 신경이 어긋났는지 박자가 맞지 않는 나와 아내처럼 통증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통증이였으나 혼자 우는 것도 서럽고 이상해서 꾹 참았다.


아무리 내가 남자라도 내눈물에 관심가져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뼈가 사무칠 정도로 나를 서럽게 했다.


만약 내가 변시체로 발견되어도 죽은지 오랜 뒤에 썩은 냄새 풍기면서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이 실제로 내 코를 거머쥐게 만들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오렌지색과 베이지색이 어색하게 조화된 부엌 가구색이 눈에 무척 거슬리게 들어왔다. 부엌수납장 하나를 열어보니 형형색색의 비닐봉지가 들어앉아 있었다. 비닐봉지 겉에는 ‘김’ ‘다시용 멸치’ ‘오징어채’라는 낯에 익은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분명 아내가 쓴 글씨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까? 나는 부엌을 나와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 보았다.


‘최 현수 최 현수’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마치 숨박꼭질하는 것처럼 이 방문 저 방문을 열어봤지만 술래는 보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방이 4개나 되는 이 곳에 나혼자 내버려진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길거리에 내버려진 고아의 서러운 느낌들이 나를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말로는 표현하기 복잡한 감정들이 불량배처럼 튀어나와 나를 중간에 놔두고 왕따 취급하는 기분도 들었다. 나쁜 불량배들이 나를 중간에 놓고 주먹으로 때리고 밟고 욕했다. 나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버릇처럼 눈을 감고 엎드려서는 계속 아내의 이름만 외쳤다. 나도 이세상으로 나오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자궁의 방을 통과했을터인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분이 지났을까? 계속 아내 이름만 외치다가 그만 실수로 미끄러지면서 가수 모서리에 머릴 심하게 내리쳐

버렸다. 붉은 와인이 머리에서 흘러 내렸다. 어이가 없었다.


이상하게 아무런 고통은 느껴지지 않고 바닥에 흘러진 피를 보면서 피는 왜 붉은 색일까 생각했다. 노랑색이나 분홍색이면 좋을텐데…


다시 나는 한 참을 엎드려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에는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고 바닥에는 피가 말라 눈물, 땀과 함께 뒤덤벅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처칠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처칠인가? 영국국민들에게 피,눈물, 땀을 요구한 위인이…


‘초등학교때 배운 처칠이 기억나니 우습군…’


최근 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들은 아주 선명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아내를 만난것도 초등학교때부터였다.


그렇게 따져보니 아내와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알고 지낸 사이였다. 3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을 서로 나눠 써야만 했던 ‘운명’이였던 것이다. 나나 아내 둘다 막내로 태어나 근본적으로 나누어 쓰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였는데, 알수없는 ‘불가항력적 힘’은 무조건 우리 두사람에게 주어진 무엇이든 나누어 쓰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나누어 쓰기 위해서는 서로 ‘약속’이라는 것을 맺어야 했었는데 사실 언제나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은 나였고 그 어긴 약속을 이해하는 쪽은 언제나 아내였다. 어릴때, 나는 그런 아내를 바보같다고 매일 놀려댔었다.


‘이혼도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닐까.’


씁쓸한 마음마저도 허기를 누를수가 없어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 부엌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나는 햇반과 참치통조림, 맛김을 꺼내 주린배를 채웠다. 밥을 다먹고 그릇을 싱크대로 가져 갔을때 나는 너무 놀라 그만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다 떨어뜨렸다. 설겆이를 하지 않는 그릇들이 산처럼 싱크대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였다. 어디서부터 날아 왔는지 파리 몇 마리가 공중을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2008년 12월28일


‘청소 어차피 할거 나중에 한꺼번에 하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날 아는척도 하지 않고 집청소만 하는 아내를 볼때마다 내가 즐겨하던 말이였다.

오랫동안 알다가 결혼한 우리 부부의 대화 길이는 알고 지낸 시간과 반비례였다. 처음에는 밤을 하얗게 새면서도 시간이 부족했던 대화는 나중에 서로 침묵의 특수임무를 띤 스파이부부처럼 암호냄새까지 풍기는 짧고 간단한 내용의 대화만을 주고 받았다. 대화양도 침묵수도를 쌓는 수도승보다 더 가벼웠을 것은 안 재봐도 확실했다.


아내의 친정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 두 모녀는 수화로 대화했다. 나같은 세상소리에 찌들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소리가 마치 있는것처럼 두 모녀는 행동했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사물너머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두 모녀는 손짓으로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정상인인 친정아버지가 조용히 하라고 할때까지(내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두 모녀는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보니,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진 장모님의 장례식 이후러 말도 없이 아내가 방청소를 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았다. 손에 빗자루를 들고 돌아가신 장모님의 영혼과 수화를 시작한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채 고개를 숙이고 진공청소기가 있는데도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는 아내의 모습에서 난 점점 지치고 불평이 쌓여갔다.


왜 아내는 남편의 나와의 대화를 그렇게 거부했을까?


아내는 수많은 대화요청을 하였다고 합의 이혼을 하는 법정에서 진술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제 그런 요청을 했는지 전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말문을 닫았다면 더 이상 싸우기 싫다는 뜻의 무언의 휴전을 요청한 것이지 아내가 대화를 하자는 요구를 내 귀로 들어본 적 사실이 없다고 판사에게 열심히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다. 판사는 반대로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아니면 이 기훈씨가 아내와 대화를 평상시 잘 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시요’라고..


이런 미친놈이..어디서 세상의 어느 누가 그런 증거를 제시 할 수 있단 말인가? 살아오면서 한번도 법정근처에도 가보질 않았었는데 이혼하면서 처음 가본 법정의 첫인상은 ‘울화통’ 그자체였다.


평생 한마디도 못하셨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부부금슬이 남달랐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봐왔으면 아내도 대화가 그렇게 부부관계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터인데 ‘대화부재’를 이혼사유로 적다니 나는 아내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부부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화학작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 화학작용만 있으면 대화가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반평생을 같이 사는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단 말인가? 수많은 심리학자와 소위 ‘부부문제 상담가’들은 무조건 대화로 부부문제를 해결하라는데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서의 고유한 ‘화학작용’이 없는 이상 몇년, 몇백년을 대화해도 서로 선문답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전문가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부부문제에 정통하다 하더라도 절대로 부부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의사가 환자가 없으면 병원문을 닫는 것처럼, 부부문제가 없다면 그 놈의 정통한 ‘부부 문제 전문가’들은 뭘 해먹고 살겠는가? 다 말짱 거짓말이다.


지금 일기를 쓰면서도 내 손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린다. 아내가 조금만 그 ‘화학작용’이 잘 일어나게 비밀공식을 나와같이 인내심을 가지고 버텼더라면 이렇게 이혼하지는 않았을텐데….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2008년 12월27일


오늘은 전화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잠자리에서 깼다.  침대옆 아내의 화장대 위에 놓인 탯줄같은 줄이 달린 스마트폰이 애완동물처럼 죽은 듯 가만히 놓여 있다가 심하게 울렸다.


전화벨소리는 아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음악으로 맞춘것인데 평상시 불편하게 간섭해 들어오는 전화의 특성상 편안한 클래식 음악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나는 아내에게 누누히 강조했었다. 아내는 그때마다 무슨 클래식음악동호인 협회 회장이라도 되는 양 전화벨소리를 그대로 하자고 고집을 부렸다. 이렇게 사사로운 전화벨소리도 아내와 서로 의견 일치를 볼수없다니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나의 단잠을 깨운 전화벨의 주인공은 남자였다.


 ‘아픈데는 괜찮느냐’는 말로 다짜고짜 통화를 시작한 그 친구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언제 회사는 복귀할거냐?’ ‘복귀할 수 없다면 도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거냐?’ 그리고 ‘이혼해서 마누라도 없을 텐데 밥은 어떻게 해 먹느냐?”는 내가 대답할수없는 질문만 잔뜩 늘어놓았다.


내가 그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또 다시 알수 없는 소리를 궁시렁 거리더니 잘 지내라는 통상적인 안부만 남기고 전화를 역시 일방적으로 끊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알수 없는 인물의 무례한 전화 한 통화가 내가 아직도 이 세상에 잊혀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확인은 시켜준 고마운 전화가 된 셈이였기 때문이다.


침대옆 벽에 붙은 결혼사진에는 아내와 내가 세상 행복을 다 차지한 듯 웃고 있었다.


“왜 나혼자 여기 있지?”


저렇게 사진속에 웃는 아내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말인가? 오프닝 행사때 문앞에 늘어진 테이프처럼 누군가의 가위에 의해 싹뚝 잘려져 버린것 같았다.


머리를 싸매고 시간의 띠가 어디에 놓여졌나 고민하는데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덮고 있던 이불과 침대가 놓여진 방 전체에서 퀘퀘한 생선 썩은 것같은 악취가 코끝을 진동했다.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어 허기와 악취로 뒤덮힌 방안을 둘러보는데 창문에는 두껍고 짙은 색의 커튼이 철통수비를 자랑하는 경호원처럼 떡하니 창문전체에 늘어뜨려져있었다.


도대체가 밖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안될 지경이였다.


나는 침대에서 뻣뻣해진 허리를 억지로 끌고 창문곁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잡자 안개처럼 먼지가 일어났다. 숨을 잠시 멈추고 육중한 커튼을 열어젖히자 태고의 신비가 간직된 아파트 빌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저렇게 깨끗하게 닦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광이 나게 닦여진 창문들은 햇빛을 다이야몬드모양으로 화려하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나는 강렬한 조명 아래 대사를 잊어버린 연극배우처럼 멍하니 창문밖을 내려다 보았다. 분명히 저 아파트 빌딩안에는 나같은 사람들이 꼼지락대며 웃고 울고 먹고 잠자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그 희노애락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왔다.


수일을 굶은 거지아이 하나가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다가 우연히 고급식당을 발견하고 살금살금 다가가 식당안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끈만 찾을 수 있다면 고독 때문에 갈라진 내 마음의 틈을 어떻게 동여맬수 있을텐데….


‘그런데 왜 난 이 아파트에 혼자 내버려져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8년 12월 26일


온 세상이 얼어붙었는지 거대한 냉장고 안에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살을 에는 추위가 잠속에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엉금엉금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마자 한동안 아무도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생경함이 휘익하고 내 얼굴을 갈겼다. 배가 고파져 악취가 풍기는 거실 옆 부엌으로 가서 수납장의 서랍들을 일일이 열어보았다.


서랍에는 비닐봉지들만 수북히 있었는데 누가 먹었는지 봉지안에는 반찬만 약간 남아 있었다.


밥통에는 밥이 하나도 없었다.


김이든 봉지하나를 잡고 허기진 도둑같이 허겁지겁 입에다 털어넣었다.


맨 김 들이 목구멍에서 낙하산처럼 펼쳐졌다.


목이 콱 막혔다. 가슴을 치면서 캑캑거리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냉장고옆의 냉수통이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 설거지쌓인 곳에서 컵을 꺼내 냉수를 받아 벌컥 들이켰다. 얼음같은 냉수가 김에 막힌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내렸다.


목구멍이 뻥뚫히며 허기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눈을 감고 서서 오늘이 몇일인지, 왜 내가 집에 혼자 있는지 생각하려 끙끙대보았다.


노력만큼 기억나지 않아 금새 포기하고 집안을 샅샅이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엌에서 나왔다.


거실에는 커다란 LCD 텔레비젼이 이세상과 저세상을 이어주는 입구처럼 서있었다. 텔레비젼 안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손가락끝으로 화면을 꾸욱 눌러보았지만 금새 차가운 거절을 보내왔다. 어떻게 하면 텔레비젼을 틀 수 있을까는 궁금증이 일어 텔레비젼 앞과 뒤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는데 익숙하지 않는 자그마한 버튼만이 눈에 들어왔다. 버튼들을 누르려고 하다가 재미가 사라져 나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검은색 가죽소파 앞에 놓여진 커피테이블위에는 많은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누런종이 봉투 하나를 집어 그 안에 든 종이들을 꺼내보았다. 종이에는 ‘이혼신고서’라고 적혀있었다. 이혼이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면서 언제나 내 주위에 있었던 아내의 행방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마누라는 어디로 간거야?’


은근슬쩍 화가 났다. 이렇게 춥고 배고픈 곳에 나를 내버려두고 가버리다니… 한편으로는 아내와 결혼식을 올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혼자 어디 나갔다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넉넉한 몸집이 어울리지 않게 자그마한 것에 화들짝 잘 놀라는 타입이였다. 연예하는 기간동안 놀릴 때마다 번번히 걸려들었었다. 몰래 아내의 뒤에서 눈을 가리다가 아내를 기절의 문턱까지 보낸 적도 있었다.

 

아내는 독서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식사를 할때도 책을 놓치않아 잔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한번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지 벼르고 있다가 하루는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아내 몰래 국그릇과 소금그릇을 바꿔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맛소금을 한 숟가락 그대로 삼키자마자 아내는 갑작스럽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간질병환자처럼 입에서 거품같은 것이 나오고, 입술이 붓고 얼굴에는 붉은 반점들이 튀어나왔다.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맨발로 아내를 업고 집에서 800미터나 떨어진 병원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응급치료를 끝낸 응급실 담당의사는 아내가 한 가지 음식이 과도하게 섭취하면 호흡기와 입술이 붓는 특이한 알레르기 환자라고 진단내리면서 그렇게 크게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졸지에 명란젓처럼 부은 입술을 가지고 응급실 한구석에 놓인 침대에 누운 아내를 바라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속 아내를 바라보는데, 시야가 흐려졌다. 결혼하고 아내앞에서는 한번도 울지 않았던 내눈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바로 그 때, 정신을 차린 아내가 굉장히 놀란 얼굴로 눈물 글썽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성적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였기에 얼굴이 붉어질정도로 부끄러워졌다. 아내는 조용히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 장모님과 수화 할때 처럼 능수 능란한 자신의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아내의 손을 뿌리쳤다. 사내는 절대로 울면 안된다는 엄격했던 가정 교육이 생각났다.


‘무거운 너 업고 병원에 달려 온다고 흘린 땀이야!’


‘치…누가 뭐랬어? 뭐가 눈에서 흐르길래 닦아주려 했지.’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째려보았다. 아내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2008년 12월25일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안이 뭔가 낯설었다. 수건들이 바닥에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었다. 어차피 더러워보이는 수건이였지만 발에 밟히면 더 더러워질 것같아 수건 사이로 걸어나갔다. 변기 바로 옆에는 세탁기가 놓여있었다. 세탁기 문이 열려진 틈에는 옷들이 전쟁의 사장자처럼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집안에는 나 밖에 없으므로 분명 저건 나의 작품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옷을 벗었길레 저런 예술을 보여주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세탁기속에 넣고 문을 닫았다. 빨래를 해야 겠다는 마음에 세탁기 윗부분에 달린 버튼 하나를 눌렀다. 세탁기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눌렀던 버튼 옆의 버튼을 눌러도 세탁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탁기가 고장이 났나 세탁기를 손바닥으로 쳐봐도 세탁기는 관심 하나 가져 주지 않았다.


“최현수! 이거 왜 이래? 세탁기가 작동을 안해.”


나도 모르게 아내를 불렀는데 아내도 세탁기같았다.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집안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깊은 산속의 메아리처럼 내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화가 났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뿌옇지만 그냥 편안했다. 거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회색빛깔의 하늘과 같았다.


집안의 모든 문들을 열기 시작했다.


문을 열다가 부엌과 화장실 중간의 작은 방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방 중간에는 작은 아기침대가 놓여있었다. 구름같이 폭신폭신해 보이는 귀여운 곰 모양이 그려진 이불이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듯 반듯하게 침대위를 덮고 있었다. 마치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신령한 물건을 만지듯이 손바닥으로 이불보위를 쓸어내렸다.

마음 한 구석이 싸해져왔다.


침대위에는 원형으로 장난감말들이 한결같이 앙징맞은 얼굴을 하고 매달려있었다. 손으로 툭치자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흘려나오면서 움직였다. 벽 한쪽에는 짙은 체리색의 서랍장이 놓여있었다. 서랍장위에는 나와 아내의 얼굴이 찍혀진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 있었는데 액자의 색깔과 서랍장의 색이 인위적으로 맞춘듯 아주 잘 어울렸다.


아내는 예술감각이 있는 여자였다.


그와 반대로 나는 예술감각은 커녕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무미건조한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


아내는 사계절이 매번 바뀔때마다 음악 콘서트나 뮤지컬관람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뮤지컬은 집중해서 구경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어 그래도 아내와 같이 관람하기 괜찮았으나 클래식음악을 듣는 콘서트는 잠잘때나 졸때 코를 크게 고는 나로서는 정말 앉아있기 힘든 공연이였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알고도 번번히 아내는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서 매번 우리 부부는 서로 티격태격댔다. ‘도대체 몇시간동안 어떻게 그런 컴컴한 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냐?’고 항의을 해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하고 내등을 밀면서 공연장으로 끌고갔다.


공연장안에는 오케스트라전체가 바이얼린, 첼로등등의 고문기구를 준비해놓고 나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좌석에 앉히고는 절대고통속으로 나를 밀어부쳤다.


그나마 좌석이 줄 맨끝에 배정되었으면 중간에 뛰쳐 나갈수 있었지만 샌드위치의 고기처럼 정중간에 앉게 되는 날에는 공연이 끝날때쯤에 난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상대배우자의 배려라고는 코딱지도 없는 그 엄청난 관람열정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심각하게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때 아내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모때문에 한번도 어릴때 가보지 못한 그런 공연들에 대한 보상심리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보상심리때문에 내가 보복심리가 생긴다고 맞받아치자 아내는 그 사람좋은 웃음으로 목젖이 보일정도로 함박웃음을 보여줬다. 나는 아내의 그 함박웃음이 너무 좋았다. 아내는 말보다 이런 행동들로 사랑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2008년 12월24일


“어이구 이놈아 어쩌다가 그렇게 됬누..”


전화기안의 목소리는 거의 통곡소리였다.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계속 울먹이다가 전화기를 손에서 떨어뜨렸는지 갑자기 통화가 끊겨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내가 물어볼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이 일방적으로 벌어진 사태였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받을 수가 없었다. 익명의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는 일밖에 없는데 지금 내 기분이 가만히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머리속이 하얗게 아무 기억도 나지 않고 생각하려해도 자꾸 기억의 미꾸라지들은 내가 서있는 반대편 기억의 강 저쪽으로 헤엄쳐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화소리는 나에게 끈질지게 매달였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전화벨소리가 멈추자 고장난 수도꼭지의 물처럼 고요가 집안전체에 흠뻑 흘려내렸다.


눈을 서서히 뜨자 갑자기 아내가 내 눈 바로 앞에 말없이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다시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다시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문처럼 눈을 떴다.


아내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팔로 다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다리 사이에 넣어 암흑의 공간속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어디 가버린 것이 아니라 내 곁에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내 마음을 여는 순간 나타나고 내 마음을 닫는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영적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공간적 제약을 완전히 벗어난 자유의 영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긋지긋하고 냄새나는 이 공간을 마음만 먹으면 거부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암흑속에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덜컥 겁이 생겼다.


그런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되어버린 아내가 차원낮은 내곁에 계속 있어줄 것인가 하는 일종의 두려움같은 것이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제불능자가 되어 버린것 같았다. 사람은 사실 엄연히 따져 보면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절대로 혼자 있을 수 없다. 영적이든 육적이든 나말고 상대방이 반드시 내 주위에 존재해야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홀로 버려질때자신의 목숨까지 스스로 끊어버릴 정도의 공포가 두려움이 몰려오게 되어 있다.


그 공포와 두려움은 가공할 만한 에너지로 변해 한 사람을 무시무시한 괴물로도 만들 수 있다. 머리에는 남들에게 상처만 줄 거대한 상아같은 뿔이 돋아 있고, 모든일에 절망과 고통만을 볼수 밖에 없는 붉은 눈과, 절대로 사랑스런 키스를 할 수 없는 저주와 분노의 불을 뿜어내는 날카로운 이빨의 입을 가진, 도움의 손길도 구할 수 없는 뾰족한 손톱이 박힌 그런 괴물로 말이다.


입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소스라칠만한 한기가 온 몸을 휘어 감싸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에게 눈꼽만큼의 소망이 남아 있기라도 하는 걸까? 누가 이런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바닥을 알수 없는 깊은 영혼의 심연속에 곤두박질 치는 나에게 생명줄을 던져줄 손길은 과연 누구일까?


수만가지 질문들이 틀어놓은 거대한 환풍기의 바람처럼 불어왔다.


‘난 혼자 살 수 있어’라고 거짓말을 해대는 교만한 인간들의 면전에 오물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들고 알 수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주먹으로 보이지 않는 거짓말쟁이들의 얼굴을 피멍이 들도록 두들겨 패기까지 하였다. 정신없이 공중에 폭력을 흔들고 고함을 쳐대다가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 침대위에 대자로 누웠다.


“여보..”


아내가 한 없이 그리웠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억지로 청했다. 꿈속에는 반드시 아내가 있으리라는 확신속에서….



2008년 12월23일


‘도대체 뭐였더라..’


아내가 꿈속에서 나왔는데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내를 보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머리속에서 가물가물 정확하게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요즘에는 머리속에 가물거리며 춤추는 기억들이 나만 초대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무도회를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고집이 있는지라 생각도 나지 않는 기억초대장을 억지로 보내달라고 하지 않기로 했다.


잊는다는 것이 저주가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행복일때가 많이 있다.


아내에 대해 분명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은 어쩌면 나와 아내의 관계에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면서 지기개를 활짝 펴니 마치 내 등에 날개가 생겨나는 착각에 빠졌다.


어디든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빛나는 황금빛의 깃털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날개가 내 몸에 생겨난다는 착각이 시간이 흐르자 점점 현실로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억지로 가자는 대로 질질 끌려다닌 적이 많았었다. 아내는 평상시 약골이라는 소리를 달고 다녔는데.앓고 있던 모든 병들이 여행 가기 전에 반드시 회복되어 여행중에는 절대로 발병하지 않다가 여행을 다녀오면 기가 막히게 일초일분의 착오없이 아프기 시작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었다.


아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세계지도책’이였다. 그중에서 각 나라의 지리, 풍속을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실은 세계지도책을 너무나 좋아해서 침대 머리 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정도였다. 아내가 세계지도책을 펼때마다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눈의 동공들이 팽창되었다. 옆에서 잠을 잘때도 세계각국의 언어를 잠꼬대로 입에서 중얼중얼거렸다.


아내의 종교는 여행교였고 그 종교의 경전은 ‘세계지도책’이였다.


인터넷을 켜도 구글지도만 들여다 보았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의 월급과 휴가가 아내의 그 가공할 만한 여행벽을 서포트해주지는 못했지만 꼼꼼한 가계부관리를 통해 꽤 많은 곳을 여행할 수가 있었다. 아내와 함께한 여행중에 가장 인상깊은 곳이 러시아였다. 눈으로 덮힌 광활한 대지와 육중한 역사의 무게가 함께 느껴지는 곳으로 여행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던 나도 침묵수행에 들어가는 수도승처럼 엄숙하고 장중한 마음으로 여행에 임하게 된 곳이였다. 러시아란 나라의 전체분위기가 성스럽다거나 종교적인 영험함으로 넘치진 않았지만 역설적이게 관광가이드가 데려가는 곳은 러시아 곳곳의 관광명소는 죄다 커다란 성당들이였다. 경찰관없는 경찰서나 의사없는 병원을 둘러보는 기분으로 하나같이 웅장한 성당들을 바라보면서 모든 권력들이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없어지더라도 오로지 성당만이 그 자리에 남는 다는 엄숙한 진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아내는 주위에 아무도 읽어본 사람이 없는 유명한 ‘제목’의 러시아 소설들을 여행내내 언급하면서 내눈에는 똑같이 보이는 눈쌓인 광경들을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용량이 차고 넘치도록 사진을 찍어댔다.


눈속의 아내는 말그대로 눈부시게 빛이 났다. 눈과 얼음에 반사되는 빛의 조명때문에 더욱더 화려하게 빛이 났다.


아내가 러시아로 가서 러시아가 화려해진 것이 아니라 아내때문에 러시아가 더욱더 화려해진 것이다.


아내가 원한 것이 이것이 아니였을까? 일상적인 생활속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경이로운 변화를 절실하게 원한 것이 아니였을까? 아내에게는 여행이야말로 신앞에 엄숙하게 드리는 제사와 예배였던 것이 아니였을까? 활활 타오르는 불위에 올려진 그릇속의 물이 끓어올라 피어오른 깨끗한 수증기들이 모인 순정의 영혼이 아내의 제사속에서 만들어진것이 아니였을까?


2008년 12월22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무생각없이 반사적으로 거실로 나가 TV를 켜고 욕실로 가서 칫솔질을 하려고 둘러보니 세면대위에는 칫솔이 달랑 하나 놓여져 있었다.


칫솔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집안에 나만 홀로 있다는 의미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아내는 반드시 그 어떤 것보다 칫솔을 챙기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칫솔은 이빨을 닦는 기구가 아니라 어떤 공간과 시간에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려주는 표지판같은 것이였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데 칫솔이 있으면 잠시 가까운데 갔다 돌아오겠다는 표시이고 아내는 보이는데 칫솔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멀리 다녀온 표시이고 아내와 칫솔이 함께 보이지 않으면 꽤 오랫동안 집을 비우겠다는 표시이니 한동안 아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치솔뿐만 아니라 치약튜브도 어떤 의미를 전달해주었다. 튜브에 윗부분부터 치약을 짜는 아내의 손자국이 없었는데 그건 아내가 떠난지 오랜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각사각 칫솔질을 하다가 기분이 갑자기 나빠져서 칫솔질을 그만두고 물로 입을 헹궤내는데 귓속에서 계속 사각사각하는 칫솔질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환청치고는 굉장히 기분나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로 입을 헹구는데 우웩 헛구역질이 생겼다.


‘왜 난 아내와 칫솔과 치약 짜는 방법을 가지고 매번 다퉜을까?’


정작 싸움을 한 당사자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인들의 부부싸움을 구경하는 제 삼자처럼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늘은 생각을 조금만 깊게 해도 머리위에 누가 쩡쩡 망치질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사각사각 우웩 쩡쩡…사각사각 우웩 쩡쩡..작으면서도 규칙적이고 날카롭게..사각사각 우웩 쩡쩡..사각사각 우웩 쩡쩡..사각사각 우웩 쩡쩡..사각사각 우웩 쩡쩡..사각사각 우웩 쩡쩡..작으면서도 규칙적이고 날카롭게 쉴새 없이 내 머리속을 울렸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나는 두손을 쥐고 공중을 향해 소리쳐댔다.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 머리를 뽑는 것처럼 손으로 내 머리를 뿅하고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두손으로 머리를 잡아 당겨 보았지만 내 힘이 약한지 아니면 목뼈가 강한지 머리가 뽑히기는 커녕 얼굴에 피와 열이 화악하며 끓어 올랐다. 안압까지 오르고 이빨사이로 비명이 풀피리처럼 흘러나왔다. 있는 힘껏 머리를 위로 당기다가 눈가에 눈물이 고여 흘려내리자, 덜컥 겁이 났다. 손의 힘을 확 빼버리자, 새총위의 고무줄이 튕기듯이 그만 우스꽝스럽게 욕실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누가 나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쑥스러움이 일었다.


뭔가 잡고 이정쩡 일어서려는데 그만 변기 속에 손을 깊숙이 담궜버렸다. 손끝에 차가운 액체의 감촉이 등의 혈관으로 다시 타고 쭈빗한 을씨년스러움으로 올라왔다.


손을 급하게 빼다가 또 다시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다 같은 수돗물인데 변기속의 물에는 왜 그리 기겁을 하게 만드는 지 알 수 없었다.


다 같은 여자인데 유독 아내의 말과 행동에 남편들이 다 기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떤 여자가 야시시한 옷을 입으면 침을 흘리다가 아내 똑같은 옷을 입으면 기겁을 한다. 아내아닌 여자가 관능적인 말을 하면 그말을 되새기면서 흠뻑 빠지다가 아내가 똑같은 말을 하면 벌컥 화를 낸다. 이 남자들의 이중 잣대는 결혼식때 주례인 앞에서 하는 결혼서약과 함께 결혼생활 내내 철저히 맹세된다.

나는 손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욕실을 나왔다.


거실에서 스산한 바람이 용솟음친다.


뼈속깊숙히 느껴지는 허기와 함께 지구의 마지막날 심판대에 선것과 같은 공포도 함께 밀려온다. 지구위에서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동안 아내와 치솔하나 가지고 싸움질한 벌로 내 영혼을 영원토록 태워 버릴 격렬한 지옥불이 느껴지는 공포였다.


2008년 12월21일


잠자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아니, 눈뜬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꿈속에서 펼쳐지는 내 인생의 영화는 필름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듯 내가 보기에도 무척 거친 화질의 화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뚝뚝 끊겨지는 화면과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로 인해 주인공인 나도 스토리 연결이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무엇때문에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인지. 매니저의 강권에 못이겨 얼떨결에 출연하게 된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출연하고 있는 이 영화의 장르가 액션/스릴러인지, 코메디물인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릴적에는 코메디였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액션/스릴러로 변하는 중간중간 멜로가 섞이는 짬뽕 스토리가 영화를 한층더 어렵게 만들었다.


머리가 생각만 하면 아파왔다.


내 인생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담긴 시간은 정확한 나이가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아주 어릴적이였다. 동네 쓰레기장에 버려진 연탄재를 성처럼 쌓아놓고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였다. 그 당시에는 다들 연탄을 난방재료로 쓰기에 쓰레기장에는 연탄재들이 엄청나게 버려져 있었는데 나와 동네 코흘리개들은 대장의 지휘아래 그 엄청난 연탄재들을 성처럼 잇고 견고하게 쌓았다. 성이 일단 건축되면 다들 일사불란하게 연탄재를 손에 쥐기 쉽게 잘게 부수었다. 연탄재가 잘게 준비되면 두편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성에서 재로 뒤덤벅이 된 얼굴과 비장한 눈빛으로 공격준비를 기다렸다. 참모들의 작전회의가 끝이 나면 돌격신호와 함께 전쟁이 시작되었다. 모든 효과음과 비명은 생생하게 아이들의 입에 흘러나왔다. 연탄재가 발생시키는 먼지들은 실제 전쟁포화에서 발생된 연기를 방불케했다. 비오듯이 쏟아지는 연탄재속에서 쓰러지는 놈들은 영화 의 주인공처럼 슬로우모션으로 멋들어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적진에서 쓰러진 아군들을 구출하기 위한 전우애 넘치는 장면들도 곳곳에서 연출되었다. 휴머니즘넘치는 이 전쟁은 해가 중천에 있을때 시작되어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더 이상 전쟁을 치룰수 없게 되었거나 아니면 엄마가 밥먹으러 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야 겨우 끝이 났다. 전쟁포로처럼 귀를 잡혀 집에 끌려가면서도, 다시 쓰레기장 주위를 맴돌면 혼이 난다는 엄마의 엄명속에도 누구 하나 그말을 따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군대소집을 하지 않아도 약속이나 한 듯 자원병처럼 한명도 빠짐없이 쓰레기장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모두들 어릴때부터 전욕戰慾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렇게 액션이 넘실대는 동네 골목 전장에서 익사이팅하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는 연탄재의 연기는 없어졌지만 더 처참한 전쟁들이 연속적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중,고, 대학교에서는 공부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소소한 시험전쟁과 큼직한 입시전쟁으로 수많은 전우들이 나가떨어졌다. 억지로 그런전쟁에서 살아남자 진짜 군대에서 날 현역으로 불렀다. 군대에서는 실제 전쟁보다 더 혹독한 전쟁훈련들이 벌어졌다. 인생영화의 수많은 격전속에서 단련된 나의 호전적인 성격도 현역생활은 참기가 무척 힘들었다.


힘든 군대생활이 나의 전투력을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제대를 하고 나서는 취직전쟁터로 투입되었지만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터라 비실대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완전히 쇠잔한 육체로 후방의 야전병원에 전의를 상실한체로 누워있을 때 아내는 나이팅게일처럼 나를 간호해주었다. 아주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어 이성이라기보다는 친척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아내의 간호를 통해 나는 영혼까지 소생되는 회복을 맛보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인생 격전지 중심부에 투입되었다.


새살로 굳은 살이 돋아나듯 온몸이 철갑으로 변해버린 나에게 거칠것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움도 인생 앞에 내 무릎을 꿇게 만들수는 없었다. 아니 천지개벽할 어려움이 몰려오면 몰려올수록 나는 점점더 강해졌다. 마침내 극심한 경쟁률을 뚫고 취직이 되었을때 나는 이 인생극장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아내와의 결혼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정말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고 그대로 죽고싶은 황홀함의 결혼식이였다.


2008년 12월20일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몇시간동안의 시름끝에 TV를 켤 수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힘들게 다시 볼 수 있게된 TV화면들이 나에게 더 깊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화면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이 뭐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주의깊게 듣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여보. 저 사람이 방금 뭐라 그랬어?”


“………….”


“부부끼리 TV에 출연하니 참 보기 좋네.”


“…………”


“우리도 나중에 저기 나가자. 할 말이 많을 거야.”


“………….”


내가 만약TV에 아내와 같이 나간다면 도대체 무슨 말부터 할까?


요즘에는 머리속으로 뭔가를 계획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냥 물흐르는 데로 의식을 나룻배처럼 띄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 졌고 편안해졌다.


난 언제나 구름위에 몸을 띄운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마음에 들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아내에게 처음으로 프로포즈 한 곳도 지방의 어느 조용한 찜질방에서 였다. 사람이 없어 넓은 찜질방에는 나와 아내밖에 없었는데 나는 아내와 나란히 누워서 있다가 조용히 ‘결혼해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내는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손에 들고 있는 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방울만을 아무 말없이 훔쳤다.


나는 무릎꿇고 앉아 주문해 놓은 달걀을 손에 들고 비굴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바치면서 ‘결혼해 주시면 평생 달걀 삶아드릴께요’라고 외쳤다.


아내는 삶은 달걀을 좋아하였다.


그래도 아내가 반응이 없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찜질방 구석에 있는 불가마방으로 들어가서는 안쪽에서 문을 잠궈버렸다. 10분도 참기 어려운 곳에 내가 20분이상 불가마방에서 나오질 않자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불가마방 앞으로 다가왔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오질 않자 아내는 불가마방문을 열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나는 안에서 탈수로 기절을 해버린 후였다.


타인에게 낯을 잘 가리는 아내가 용기를 내 종업원을 불러왔지만 종업원은 자리를 비운 주인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말을 듣자 마자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면서 아내도 그만 쓰러지고야 말았다.

119구조대가 나타나서 찜질방문을 뜯어내고 나를 구출하고 응급실로 나와 아내를 나란히 데리고 갔는데 치료후에 먼저 깨어난 건 바로 나였다. 나는 다시 부시시 일어나 아내의 침대를 찾아 옆에 서서 복잡한 응급실 한 복판에서 다시 크게 외쳤다.


“최현수 결혼해줘!”


응급실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최현수! 결혼해줘.”


내가 다시 크게 외치자 아내는 그대로 누워 모기 기어가는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결혼해.”


2008년 12월19일


몸에 힘이 없다.


허기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몸속의 에너지 자체가 완전히 고갈된 듯하다. 휘발유없는 자동차처럼 몸의 모든 기능이 올스톱이 된 것같다.


뭐라도 먹어야 된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차 있다.


날짜가 뒤죽박죽이 된 일기도 길게 쓸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먹을 것 좀 가져다 주면 좋으련만, 반나절을 누워있어도 누가 하나 음식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꽤 흘러 창밖이 어둑어둑해지자 이상하게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수돗물밖에 없었지만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누우니 잠시 머리속이 개인 푸른 하늘처럼 맑아졌다.


아내가 지금은 집에 없지만 나를 계속 이렇게 굶겨 놓진 않을 것이다. 음식거리를 두손 가득히 장만하고 언젠가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기 위해 집에 들어오자 마자 부엌으로 향할 것이다. 김치와 꽁치를 듬뿍넣고 갖은 양념을 넣은 꽁치조림은 내가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아내의 요리이므로 준비하는 만찬에 분명히 오를것이다.


내 평생 먹은 꽁치의 양은 아마 원양어선 한 가득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쭉 도시에서만 자라났고, 어촌은 커녕 바닷가에 놀러 간 것도 손을 꼽을 정도였지만 유난스럽게 생선요리를 좋아했다.


갈치


고등어


민물고기부터 바닷생선까지 죄다 회를 하든지 매운탕을 하든지 집에서 먹는 식사에는 반드시 작은 생선 한 토막이라도 상위에 올려져 있어야지 생선없는 식사는 영 밥을 먹은 것같지 않았다.


그런데, 김치를 반드시 먹어야 되는 한국인들 중에 김치를 담굴수 있는 한국인의 수가 적은 것처럼 나는 생선요리를 먹기는 좋아 했지만 직접 생선을 도막내고 내장을 꺼내고 요리하는 건 정말 질색을 하였고 요리되기전 생선의 비린내조차 맡기 싫어했다.


아마 그 이유가 결혼 안간 삼촌들과 고모들까지 한 지붕아래 바글거리며 살던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서열이 낮아 생선 사오는 심부름과 화로에 올려진 생선이 더 잘 굽히도록 부채질을 하는 일을 도맡아 하였지만 정작 밥상 위에 올려진 생선의 살은 전혀 구경도 못했던 환경 때문에 요리 되기 전의 생선을 꼴도 보기 싫어한것이 아닌가 나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그러니, 당연히 생선요리의 몫은 아내다.


통조림은 맛이없다는 나의 신신당부에 수산시장으로 직접 가서 싱싱한 생선을 사가지고 왔다.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금방 다듬고 요리를 바로 만들어내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내말고 이 세상 어느 누구가 나를 위해 저렇게 징그럽고 비린내나는 생선을 다듬어 천상의 요리를 공짜로 해줄 수 있는지 생각했다.

사실 나는 아내의 앞모습보다 부엌에서 생선을 요리할 때의 뒷 모습을 더 좋아했다.


남들의 눈에는 평범할지는 몰라도, 생선을 내리치고 다듬을때 흔들리는 허리와 몸의 곡선은 침을 삼킬 정도로 유혹적이였다.


그래서, 나 자신이 마치 다른 여인을 몰래 훔쳐보고 마음속으로 온갖 야릇한 상상을 하는 관음증 환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감히 다른 여자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순백색의 관능미와 빠져들면 들수록 더 감미롭고 달콤한 강렬한 전류같은 기운들이 아내의 요리하는 모습속에서 나왔다. 숨이 헉하고 막혀 버릴 것같이 퇴폐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그건 반드시 회개해야만하는 죄가 아니라 공중의 천사들 조차도 크고 큰 비밀로 덮어줄 것만 같은 엄숙한 의식같은 것이였다.


의식?


결혼식?


그래 난 지금 신혼생활에 젖어있는 것이다.


갑자기 신혼의 달콤함이 흘러넘쳤다.


기타 피크같은 생선비늘들이 공중에 날리면서 천장의 불빛을 반사할 때쯤이면 아내와 나만의 신령한 제사행사의 절정단계에 도달했다.


절정이 되면 더 이상 나는 남편이 아니고 아내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였다. 육체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한 완벽하게 하나가 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무슨 요리를 좋아했지?”


불쑥 튀어나온 이 질문으로 나는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도 잊게 해 준 환상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아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매일 식후에 과일을 깎았는데 과일을 좋아했나?


2008년 12월18일


알수 없는 분노가 다시 한번 마음을 휩쓸었다.


불처럼 활활 타올라 내 주위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 것 같다

이렇게 불 타오를 거라면

그래 차라리 나혼자인것이 나아.


내가 불타오르고 남는 것은 재일까?


재의 양은 얼마나 될까?


재가 바람에 날아가버릴까?



바람에 날아다닌다면 정말 좋겠다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아갈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불타는 것은 뜨겁고 싫지만

아내를 만날 수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머리속에는 아내 밖에 없다


현수


현수


현수


신혼인데 왜 아내가 없는거야?


여보


2008년 12월17일


오늘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아프다


혹시 오늘,


너무 아파서 죽은 것이 아닐까?


누구 한테 알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아프다고


다행히,

머리속에서는 점점 고통이 잊혀진다

아프긴한데 몇분전의 고통은 기억나지 않는다.


점점

기억이 짧아진다.

내가 종이에 뭔가를 쓴다.

그런데

쓰려고 하면

잊어버린다.


도대체 내가 뭘 쓰려했을까?

아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아니,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앉아서 있지?

아니,

난 도대체 누구일까?


책상에서 난 일어선다.

방문의 문을 연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순간,

모든 것이 갑자기 명확해진다.


그래

나는 무슨 병에 걸린거야

여기서 있다가는 머리속의 기억들이 다 말라버릴거야

그렇게 되면 아내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없어

지금 밖으로 나가서

아내를 찾는 수밖에 없어

내몸과 같은 기억을 했던 아내를 찾아야해.

아파트의 현관문을 향해 걷는다.

문을 여는데 눈에 팻말이 달린 목걸이 같은 것이 보인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저는 이기훈,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저의 집전화번호는 (xxx)xxxx-xxxx입니다.

혹시 제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위의 전화로 전화부탁합니다. ‘


나는 그 목걸이를 목에 건다

아내가 왜 날 버린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머리속에는 아내밖에 없으므로

내 기억을 찾기위해

밖으로 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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