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16화

(SF 무협판타지 ) 현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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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일으킨 현무의 영역은 밤을 삼켰다.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빗방울마저 허공에 붙들린 듯 느리게 떨어졌다.

마황 A.I의 군세는 여전히 쏟아져 들어왔으나,

그 움직임은 지체遲滯되었고, 살기는 둔화鈍化되었다.

그러나 수는 줄지 않았다.


베어도 다시 일어나고, 부숴도 또 결합했다. 부단불식不斷不息—끝이 없었다.


금속의 팔다리가 달린 마황 A.I 병력들이 현무의 느린 시간 속에서도 기어 나왔다.


끝없이, 집요하게.


하연은 *성간 무상체星間無相體의 무공을 펼쳤다.


*성간무상체星間無相體는 몸을 허상처럼 투사하여 형체를 약 10분 정도 지우는 무공으로 별과 별 사이에 몸을 걸쳐 두는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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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검을 한 번 툭 털었다.


“와.”


연화가 힐끗 봤다.


“뭐지?”


“마라들이 줄 맞춰 나오는 거 보니까.”


하연의 시선이 마라들의 검은 외장과 번쩍이는 관절을 훑었다.


“다들 검은 브라를 입어서 브라 광고하는 것 같네. 쳇”


하연은 킥킥 거렸다.


연화가 순간 멈칫했다.


“…뭐?”


“이 놈의 가현계(가상현실계)는 옷 유행은 안 타서 좋네. 전술적으로는 보호가 안 되는 건 최악이지만...”


연화는 하연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연은 연화의 어이 없어 하는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덤덤하게 일어서

검을 세워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공격을 멈춘 자의 자세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한 자세였다.

검날 위로 얹힌 현무의 침묵이 무게로 내려앉자, 팔이 아니라 의지가 시험받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점점 무거워졌다.

검을 들고 있는 팔이 아니라, 심장이 먼저 버거워졌다.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그나저나 이 미친 시험… 언제까지—”


하연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조급해지면 져.”

“지금 이 상황에서?”

“응.”


하연은 검을 세운 채,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급하면 항상.”


잠시.


“제가 인간계의 인생에서 서둘러서 한 번도 득 본 적이 없거든.”


연화는 고개를 들어 낮게 웃었다.


“…이런 밤은 처음이네.”


창을 쥔 손등의 핏줄이 다시 살아났다.


조금 전까지의 망연자실은 흔적도 없었다.


공기가 다시 갈라지며,

어디선가 나타난 마라들이

한 단계 격이 다른 살기를 사방팔방으로 펴트렸다.


연화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건 뭔가 다른 살기네.”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리고 한 박자 뒤.


검을 고쳐 쥐며.


“진짜 재수 없는 쌍년들이 퍼트리는 짜증나는 살기네요.”


연화가 픽 웃었다.


“넌…참 솔직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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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의 하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승리를 탐하던 눈에서, 공생을 계산하는 눈으로.

“한 가지는 인정하지.”

연화가 하연을 힐끗 보며 말했다.

“네가 틀리지 않았다는 거.”

하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동맹을 제안하는 건가.”

“아니.”

연화의 입가가 비틀렸다.

“동맹은 믿음이 있어야 하지. 지금은—”

창끝이 앞으로 기울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자는 거지.”


하연

“좋네.”

연화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하연은 등을 맞댄 채 대답했다.

“난 원래.”

짧게 숨을 들이쉬고.

“혼자 애 키우던 사람이라서. 뭐 다 혼자 하는거 좋아하거든..”

그 말에,

연화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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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과 동시에, 마황 A.I의 전위가 현무의 느린 시간 속에서도 돌진했다.

그러나,

연화의 창이 먼저 번개처럼 움직였다.


백호칠수의 잔광이 관절을 꿰뚫고, 금속의 심장을 갈랐다.


동시에,

하연의 검이 이어졌다.


청룡의 기운이 유연하게 휘감기며 파편을 절단했다.


둘의 호흡은 그 다지 맞지 않았으나

빈틈은 없었다.


적을 향해 나란히 서는 것이 아니라, 등을 맞댄 채 각자의 앞을 지키는 형세.


이것이 현무의 시험이 요구하는 답임을, 둘은 말없이 깨닫고 있었다.


현무는 베라고 말하지 않았다.

현무는 “버텨라”라고 명령했다.

시간이 늘어질수록, 선택은 잔인해졌다.


살릴 것과 버릴 것, 쫓을 것과 포기할 것.


하연은 검을 휘두르지 않는 순간들을 택했다.


연화는 쓸어버릴 수 있는 순간에도 멈췄다.


그때, 첨성대 쪽에서 낮은 울림이 다시 번졌다.


돌기단 사이로 은빛 선이 하나 늘어지며, 하늘의 별과 땅의 그림자를 연결했다.


성간정의 진동—이번엔 분명했다.


“또 움직였다.”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별이 널 계속 고르는군.”


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날 위에서 별빛이 맥동했다.


두(斗)와 허(虛)가 이어진 틈으로, 현무의 침묵이 깊어졌다.


바로 그때—


마황 A.I의 중위 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살기와 계산이 동시에 작동하는 존재.


현무의 느린 시간조차 재산정하며 전진했다.


“재귀 패턴 확인.”


“후보 제거—우선순위 상향.”


연화가 혀를 찼다.


“저건 내가 맡지.”


창이 다시 높게 들렸다.


“아니.”


하연이 낮게 말했다.


“지금은—같이.”


연화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둘은 동시에 나아갔다.

연화의 창이 시선을 끌고, 하연의 검이 결절을 베었다.

현무의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움직임은 호흡처럼 맞물렸다.

중위 개체의 계산이 흔들렸다.

찰나—연화의 창이 관통했고, 하연의 검이 마침표를 찍었다.

폭발 대신, 정지.

현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가는 컸다.


하연의 숨이 가팔라졌다.

연화의 어깨가 처졌다.

중위 개체가 정지하며 무너졌다.

현무의 침묵이 더 깊어졌다.

연화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둘이서 잡을 줄은 몰랐군.”


하연은 검끝을 내리며 말했다.


“나도.”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연화가 고개를 돌리자.

“다음엔.”


하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마황부터 칼 갈아요.”


“여왕 싸움은—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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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내려왔다.

“시험의 중간 판정.”

멜기오르였다.

그의 그림자가 별빛과 겹쳐 바닥에 떨어졌다.

“제자님들 둘 다—아직 부족합니다.”

연화가 비웃었다.

“친절하군.”


하연은 연화도 동방박사들을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려다가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하연은 검을 다시 쥐며 대답했다.

“나 원래.”

잠깐의 정적.


“부족한 상태로 버티는 데는 익숙해서.”



멜기오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현무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시선이 하연에게 옮겨왔다.

“남길 자를 고른다.”

별빛이 다시 엮여 비췄다.

이번엔 하늘이 아니라, 사람의 선택을 향해 비추듯.



마황 A.I의 군세가 재정렬되며 다시 밀려왔다.

현무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하연은 검을 고쳐 쥐었다.

연화는 창을 낮췄다.

둘은 다시 등을 맞댔다.

“끝까지 서 있는 자라…”

연화가 중얼거렸다.

“그 말, 빌려도 되겠지.”

하연은 짧게 답했다.

“서 있으면—다음이 옵니다.”

별이 움직였다.

전장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누군가는 여왕에 더 가까워지고,

누군가는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밀려날 것이다.

현무는 아직, 아무도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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