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15화

( SF 무협판타지 )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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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의 창끝이 땅에 닿았다.

더는 내려가지 않았다.

아니—내려갈 수 없었다.

폭우 속에서 그녀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 믿어왔던 기세는

마치 허공에 흩어진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연의 검은 그녀의 목전에서 멈춰 있었다.

목을 겨누지도, 승리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 무심함이—


연화를 더 깊이 찔렀다.


“……졌나.”


연화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말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여태껏 그녀는 한 번도

‘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왕은 늘 이기는 자였고,

지는 자는 애초에 여왕이 될 수 없었으니까.


연화의 시야가 흐려졌다.


폭우가 아니라,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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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찢어졌다.


사방에서 검은 균열이 열리며

기계적인 기척이 밀려들었다.

금속과 살기가 뒤섞인 불쾌한 파동.

마황 A.I의 군세였다.


“표적 확인.”


“여왕 후보—제거 대상 재분류.”


차가운 음성이 밤하늘을 긁었다.


연화는 고개를 들었다.


하연도 동시에 검을 들어 올렸다.


망연자실하던 연화의 눈에


처음으로 분노가 불붙었다.


“……하.”


짧은 웃음.


“이런 꼴로 죽을 수는 없지.”


연화는 창을 다시 쥐었다.


비틀리던 기세가, 다시 곧게 세워졌다.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연화의 옆으로 반 걸음 다가섰다.


"아니 저 검은 브라 부대가 여기에도 나타나다니.."


연화는 수많은 마황AI 무리인 마라들을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다가 일어선

두 사람의 어깨가 스쳤다.


적이 바뀌었다.

이제는—

동병상련同病相憐도,

일시동맹一時同盟도 아닌,

배수진背水陣의 마음으로 두사람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마황 A.I의 전위병이 쏟아져 내렸다.

펄럭이는 옷과 번쩍이는 금속 팔다리,

끝없이 재생되는 인공 살기들.


연화의 창이 먼저 날아들었다.

백호칠수의 잔광이 번쩍이며

기계의 관절을 꿰뚫었다.


하연의 검이 뒤따랐다.

청룡의 기운이 유연하게 휘감기며

파편을 가르듯 적을 절단했다.


둘의 호흡은 맞추지 않았으나,


서로의 빈틈을 본능처럼 메웠다.

합종연횡合縱連橫—

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연합.

그러나 수는 너무 많았다.

마황 A.I의 병력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증식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다.

연화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연의 검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 순간—

땅이 가라앉았다.

소리가 사라졌다.

현무의 영역이 열렸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공격은 더뎠고,

방어는 끝이 없었다.

마황 A.I의 병력조차

그 침묵 속에서 둔해졌다.

하연의 검이 멈췄다.

연화의 창도 내려갔다.

숨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늘어졌다.

‘이대로 가면…’

하연은 깨달았다.

여왕은 공격자가 아니다.

부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서 있는 자다.

하연은 검을 내렸다.

그리고 버텼다.

피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저—쓰러지지 않았다.

그 순간,

두斗와 허虛가 미약하게 반응했다.


청룡의 검 위에,

현무의 침묵이 덧씌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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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의 별과

버팀의 별이

처음으로 겹쳤다.

별들이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첨성대에서 빛이 치솟았다.


하늘이 응답했다.

“여왕 후보, 하연.”

“조건 충족.”

선언은 담담했다.


환호도, 축복도 없었다.


하연은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현무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남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더 잔인한 전장이라는 것을.


연화는 그 빛을 올려다보았다.


망연자실하던 눈동자에

다시 한번, 불꽃이 살아났다.


“… 끝까지 서 있는 자라.”


그녀는 창을 고쳐 쥐었다.

이번엔 하연을 향해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해.

마황 A.I의 군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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