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 星天女劍 25화

( SF 무협판타지 ) 풍전등화의 수련, 동심 동체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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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의 바람이 변했다.

잔잔하던 산기운이

어느새 살기로 바뀌어

사방을 핥았다.

풍전등화風前燈火.

그것이 지금의 형국이었다.


멜키오르의 목소리가 산허리를 울렸다.


“수련은 전투요, 전투는 곧 선택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택하면 즉시 패배.”


“동심동체同心同體를 증명하면 비로소 산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이 갈라졌다.

검은 기운이

지맥을 타고 솟구쳤다.

마라의 잔당이 아니었다.

AI 마황의 계산도 아니었다.

사람의 공포가 응결된 것.


청연이 이를 깨물었다.

“심마心魔다…!”


첫 번째로 흔들린 것은 홍몽이 었다.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갈라졌다.


“하하…이게 다 뭐야?"


그때 심마가 속삭였다.


‘넌 늘 웃음으로 도망쳤지.’


찰나—

홍몽의 검이

자기 자신을 향했다.

찰수무책措手無策.


그 순간

하연이 몸을 던졌다.

쾅!

검과 검이 부딪혔다.

하연의 손등이 찢어졌으나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웃지 마.”

“지금은-살아야 할 때야.”

홍몽의 눈이 떨렸다.


그 틈을 노려

녹독의 심마가 폭주했다.

독기가

혈맥을 거꾸로 타고 올랐다.


녹독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그만 스스로 독맥을 끊었다.

퍽.

피가 튀었다.


연화가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아직 죽기엔 이르다!”


연화의 창이

바람을 가르며 회전했다.

일기당천一騎當千.


그러나 심마는

수로 불어나

포위망을 만들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그때—

청연이 앞으로 나섰다.

청연은 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두 손을 모았다.

“기록은.”

“싸우지 않는다.”

“드러낼 뿐이다.”

그의 눈동자에

문장들이 떠올랐다.

기억.

실패.

선택하지 못했던 순간들.

심마가 흔들렸다.

자승자박自繩自縛.


멜키오르가

멀리서 중얼거렸다.

“보기 드문 수다.”

“무공이 아니라—”

“서사(敍事)로 싸우는 자라니.”


하연은 숨을 고르며

모두를 둘러봤다.

각자 상처투성이.

그러나—

아직 서 있었다.

“흩어지지 마.”

“지금은—”

하연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일심동체(一心同體).”


그 순간—

심마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거대한 형상.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압박감이

폐부를 찔렀다.

공포가

뼛속까지 스몄다.

연화가 낮게 웃었다.

“이런 꼴에 무협 운운이라니.”

그러나 창을 고쳐 쥐었다.

“그래도—”

“등은 맡겨라.”

배수진(背水陣).

홍몽이 웃음을 거뒀다.

“이번엔

진짜로 간다.”

녹독이 이를 악물었다.

“독은—

적에게만 쓴다.”

청연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기억하라.”

“우린 여왕이 아니다.”

“그러나—”

하연이 검을 들어

마지막 말을 이었다.

“함께 싸우는 사람이다.”

검과 창과 독과 기억이

하나의 흐름으로 엮였다.

합종연횡合縱連橫.


심마의 형상이

균열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콰아아 앙—!

산이 울었다.

바람이 멎었다.

심마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남은 것은—

숨을 몰아쉬는

다섯 사람.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방박사들.

가스파르가 말했다.


“초식이 거칠다.”

“호흡은 엉망.”

“하지만.”

잠시 멈추고.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가능성은 있다.”

발타자르가 웃었다.


“여왕은 없고.”


“왕좌도 없는데.”


“제법이야.”


멜키오르가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오늘의 수련은 여기까지.”


“명심해라.”


“앞으로의 싸움은—”


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적이 아니라

유혹과의 싸움이다.”


하연은

피 묻은 검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이 수련은

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을.


금강불괴金剛不壞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초심불망初心不忘.

그것이면

지금은 충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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