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무협 판타지 ) 거울속의 여왕
밤이 커튼 처럼 내렸다.
가상현실계의 경주시 남산은 고요했지만
공기는 살얼음처럼 얇았다.
동방박사 가스파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세계가 뒤집혔다.
하연은
혼자였다.
연화도,
청연도,
홍몽도,
녹독도—
사라졌다.
앞에는
거대한 흑색 수면水面.
거울.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눈.
똑같은 검.
그러나—
눈빛이 달랐다.
차갑다.
흔들림이 없다.
완벽하다.
“안녕.”
거울 속 하연이 말했다.
“아직도 여왕의 자리를 거부하고 있네.”
하연은 검을 들어 올렸다.
“넌.”
“내가 아니야.”
상대가 웃었다.
“나는 네가 될 수 있었던 미래.”
“왕좌를 받아들인 하연.”
순간—
공기가 폭발했다.
두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쾅—!
충돌.
불꽃이 튀었다.
땅이 갈라졌다.
거울 하연의 속도는
한 수 위였다.
무심.
무감.
무결.
검이 허공을 스치자
하연의 어깨가 찢어졌다.
피가 튀었다.
“넌 아직도 망설여.”
거울 하연의 목소리는 낮았다.
“누군가를 지키려고 하지.”
“여왕은 지키지 않아.”
“지배하지.”
하연이 이를 악물었다.
다시 돌진.
발끝이 바위를 박살내며 튀어 올랐다.
회전.
베기.
그러나—
빈 공간.
잔상.
등 뒤에서 검기가 폭발했다.
콰앙!
하연이 구르며 일어섰다.
숨이 거칠다.
시야가 흔들린다.
“네가 거부한 왕좌는.”
거울 하연이 다가왔다.
“누군가는 차지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야.”
“강자는 오른다.”
“약자는 따를 뿐.”
하연의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설안의 말.
연화의 웃음.
청연의 기록.
그리고
아이의 손.
순간적으로 스쳤다.
“넌.”
하연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강해.”
“완벽해.”
“하지만.”
눈이 번뜩였다.
“혼자야.”
거울 하연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찰나.
그 틈.
하연이 파고들었다.
쾅—!
두 검이 얽혔다.
근접.
숨이 섞인다.
“여왕은 고독하다.”
거울 하연이 속삭였다.
“그래서 강해.”
하연이 밀어붙였다.
“난.”
“강해지려고 싸우는 게 아니야.”
“함께 살아남으려고 싸워.”
검이 튕겨 나갔다.
하연은
검을 던졌다.
상대가 당황했다.
“뭐—?”
주먹.
정면.
쾅!
거울 하연의 턱이 꺾였다.
하연이 소리쳤다.
“왕좌는 필요 없어!”
“내가 올라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올라간다고?”
“그럼.”
“우린 계속 싸우면 돼!”
거울 하연의 눈이
처음으로 분노로 일그러졌다.
별빛이 폭발했다.
검기 폭풍.
하늘이 찢어졌다.
산이 무너졌다.
하연은
피를 토하며
달렸다.
피하지 않았다.
정면 돌파.
콰아아앙—!
충돌.
빛이 사라졌다.
정적.
하연의 검이
거울 하연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베지 않았다.
“넌.”
하연이 말했다.
“내 일부야.”
“지워버리면.”
“난 또 다른 왕좌를 만들겠지.”
천천히—
검을 내렸다.
거울 하연이 물었다.
“그럼 날 어떻게 할 거지?”
하연이 숨을 고르며 답했다.
“같이 간다.”
“왕좌 없이.”
그러자 거울이 깨졌다.
산산조각.
별빛이 흩어졌다.
그리고—
하연의 눈이 더 깊어졌다.
완벽하지 않으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처럼....
하연이 경주 남산으로 돌아왔을 때,
연화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어땠어?”
하연이 피 묻은 얼굴로 웃었다.
“이겼어.”
청연이 조용히 덧붙였다.
“…아니."
“받아들였군.”
멀리서
가스파르가 중얼거렸다.
“합격이다.”
“여왕이 아니라.”
“지도자로.”
하연은 검을 어깨에 걸쳤다.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거울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계속)